1. 경복궁 해태의 설화
이태조가 한양(지금의 서울)에 도읍을 정하고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을 지었는데,
그 뒤로는 자주 궁전에 불이 났다.
그러자 일부 사람은 그 원인이 안산인 관악산이 火氣가 있는 화산인 까닭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관악산에다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를 그 속에 집어 넣고,
한편으로는 광화문 좌우편 앞에 해태 한 쌍을 만들어 앉혀 놓았는데,
이는 관악산의 火氣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전설은 <서울명소, 고전>, 기타 여러 책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려있다.
해태에 대하여서는 단편적이기는 하나 중국의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보인다.
그 글에 의하면, 해태는 실제의 동물이 아닌 상상의 동물로서, 바르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덤벼들어 뿔로 받기도 하고, 혹은 물어뜯기도 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 해태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안다고 하는 신수이므로 해서 중국 고대에는 이 해태의 모양을
본떠서 법관의 관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해태관이라고 하였다.
조선조 때, 이 해태를 돌에다 조각하여 서울 경복궁 앞 정문 좌우에 앉혀 놓은 것은 그 지대 좌우에
나라 정사를 경영하는 육조가 있으므로 특히 그곳을 택한 것으로서, 나라 정사는 정직하게 해야 하니,
옳고 그름을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므로 조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한다는 뜻과 또는 모든 관원들은
그렇게 하라는 뜻에서 중국의 고사를 본받아 이것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2. 강감찬 장군 설화
강감찬 장군이 한양판관으로 부임해보니 집집마다 처마에서부터 땅까지 그물을 늘어뜨리고 있었다고
한다. 장군이 이유를 물으니, 백성들이 "호랑이를 막으려고 그물을 쳐놨다"고 답했다.
이에 장군은 남산 잠두에 있던 노승을 끌고 와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이후 며칠 동안 남산에선 호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때부터 사람을 물어가는 일이 사라졌다고
한다. 백성들이 강 장군에게 연유를 물으니, 장군은 이렇게 답했단다.
"노승은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의 우두머리였다. 내가 그에게 무리를 이끌고 떠날 것을 명했다."
이 설화에 등장하는 남산 잠두는 누에 머리를 닮았다는 식물원 부근 봉우리다.
3. 용왕산 설화
용왕산
한남정맥의 인천 소래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한 지맥이 구로구와 양천구·강서구의 작은 산구릉들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 표고 78m의 용왕산은 목동 산 7-3번지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에 우뚝 솟아 있다. 일명 엄지산(嚴知山)이라고도 한다.
용왕산은 표고 78m와 68m의 두 개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목동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 두 봉우리가 마치 펴놓은 엄지손가락을 옆에서 보는 것처럼 되어 있다.
‘으뜸’이라는 뜻도 있지만 ‘첫머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엄지산은 지형적으로 천호(千戶)가 살 수 있는
들판의 들머리에 있기 때문에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또 역산(逆山)이라고도 불려지는데 이 산의 형태가 한양을 등지고 돌아앉아 있다 해서 붙여졌다.
용왕산은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죽어서 왕으로 환생하려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부터 용왕산·왕령산(王靈山)·왕재산(王在山) 등의
‘왕’자가 들어간 산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용왕산에는 옛날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죽어서 왕으로 환생하려고 온갖 선정을 베풀고
이 산에 묻혔지만 어렸을 때 걸인을 박대했던 업이 하나 있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설화도 있다.
용왕산공원은 1971년 8월 6일 건설부고시 제465호로 시설근린공원 목동제1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8년 8월 21일 서울특별시고시 제422호로 최종고시 되었다.
공원면적은 218,168㎡이며 공원시설은 16종 182개가 있다.
3개의 산책로와 파고라 등책 1개가 설치되어 있다. 휴양시설로 용왕산 정상에 2동의 팔각정자를
설치하여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고풍스럽고 한국적인 모양의 휴식공간 제공 및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으며, 벤치 28개도 설치하였다. 유희시설로 놀이기구 3종 4개를 설치하였으며,
편익시설로 옹달샘 2개소와 음수대·화장실 등이 설치되어 있고 연인원 92,000명이 이용하고 있다.
용왕산의 동쪽 산줄기 끝이 안양천에 닿고 다시 안양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양천구와 구로구의
경계지점에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는 표고 76m의 칼산이 있다.
양천구에 있는 산세가 대개 둥근 편인데 비해 칼산은 안양천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인해서
동쪽 부분은 벼랑처럼 깎여 길게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산정상이 칼날처럼 형성되었으므로 칼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러한 칼산과 용왕산은 안양천으로 해서 서로 이어지고 있으며 양천구의 수문장(守門將)으로서
무장인 칼산과 문인인 용왕산이 각각 지키고 있는 형세이다.
칼산은 신정동 75-2의 22필지 128,600㎡를 대상으로 1971년 8월 6일 건설부고시 제465호로 미시설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칼산공원 또는 고척공원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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