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과 영혼의 말씀

성철스님: [불교의 근본사상] 영원한 진리(2)

백련암 2009. 9. 5. 20:00

6.불교 최고 원리는 중도(中道)

 

* 원시경전에서의 중도사상


 

지금까지 대승경전의 입장에서 선(禪)과 교(敎)를 통하여 일관된 최고원리가 중도사상(中道思想)이라는 것을 설명해 왔는데

대중들도 대개는 이해했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가 하나 붙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원시경전이든 대승경전이든 모두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믿고 정전 그 자체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문이 발달되고 불교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들의 성립시기가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예를들면 법화경이나 화엄경의 범어본(梵語本)을 언어학적, 문법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이 경전들이 부처님 당시에 성립된 것이 아니라

부처님 돌아가신 후 5~6세기 뒤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조스님께서도 부처님 돌아가신 후 천여년 뒤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면 내가 지금까지 부처님 근본사상은 중도(中道)라고 법문한 것이 부처님 뜻과는 관계없는 거짓말이 되어 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당시에 친히 하신 말의 기록이 아니라 돌아가신지 5~6백년 뒤에 성립된
경전을 인용하여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이
아니다”고 주장하여 불교계가 크게 당황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라 합니다.

 
이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의 주장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경전 연구를 
거듭한 결과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은

아니다”고 하는  확증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면 우리 불교의 초가경전으로 대 •소승에서 함께 인정하는 아함경은 모두 다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인가 하고 연구해 보니

아함경 조차도 모두다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도 판명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버리니 불교를 어디 가서 찾아야 될른지 모르게 되어 학자들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신다면 물어나 보겠는데 그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학문적으로 곤란한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학자인 우정백수라는 분이

“어떻게 해야만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중요한 사적(史廣)을 기초로 삼고

둘째, 부처님 당시의 인도 일반 사상을 참고하고

세째, 원시경전 가운데서 제일 오래된 부분이라고 인정되는 것을 종합하면

이것만은 꼭 부처님이 설했으리라고 믿어지는 공통된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원칙들을 기둥삼고 부처님의 근본불교를 알려고 우리가 노력해야지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如是我聞)”고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 다 부처님이 친히 설한 경전이라고 알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학자들이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어디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여 불교의 근본사상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원시경전인 아함경도 대승경전도 아닌 율장(律藏)을 학자들이 많이
신빙하여 연구하였습니다.

율장을 보면 시대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나 문법학적으로나 부처님 당시부터의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 내려온 것으로서 혹 중간에

오면서 가필한 내용이 더러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봐서는 가장 부처님 말씀에 정확하지 않은가 하고 학자들이 판단을 내렸습니다.

율장 가운데서도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학자들은 통칭하여 초전법륜(初轉法備)이라고 합니다.

이 초전법륜편이 불교에 있어서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율장의 초전법륜편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世尊)이 다섯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출가자는 이변 (二辺)에 친근치 말지니 고(苦)와 낙(樂)이니라.

여래도 이 이변을 버린 중도를 정등각(正等覺)이라 하였다.」

출가(出家)라는 것은 꼭 승려가 되는 것만이 아니고 인도 당시에는 집을 나가 道를 닦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道를 전념으로 닦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변에 집착해서는 안되니 예를 들면 고(苦)와 낙(樂)이라는 것이다.
이변이라 하면 시비와 선악, 있음과 없음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어째서
“고와 낙”을 예로 들었느냐 하면 부처님 당시 실정에 비춰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수행자들은 대부분이 고행주의자였으며 다섯비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행주의자란 세상의 향락을 버리고 자기 육신을 괴롭게 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병을 따라 약을 주듯이 고행주의자들인 다섯비구에게 「苦와 樂을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세상의 향락만 버릴 줄 알고 고행하는 이 괴로움(苦)도
병인줄 모르고 버리지 못하지만,

참으로 해탈하려면 고와 낙을 다 버려야 한다.

이변을 버려야만 중도를 바로 깨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변을 버리고 중도를 정등각하였다”는 이 초전법륜이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부처님의 근본법이라는 것은 세계의 어느 학자이든간에

확증하고  있으니 이것을 “부처님의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이라고 합니다.
「욕락(欲樂)과 고뇌(苦뼈)의 양극단을 떠나서 중도(中道)는 여래에 의하여
정등각(正等覺)되었다」

이 중도대선언은 남전대장경 중부경전에 있는 것을 인용하였고, 오분률(五分律) • 사분률(四分律) 등에도 기록되고 있으나

남전대장경파 같이 명백하고 정확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깨치신 것이 “이변을 떠난 중도”라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봅니다.

세계의 어느 불교학자이든간에 율장의 초전법륜편의 중도대선언을 불교의
근본 출발점으로 삼는데

혹 또 논란하기를 경전 성립사적으로 보아서 율장보다도 더 앞선 경전인 “숫타니파아타”에서도 중도를 설명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숫타니파아타의 피안도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변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도 집착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러므로 불교의 근본이 중도사상에 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부처님 돌아가신 후 몇 백 년 뒤에 성립되었든지간에 어떤 경전이든지 중도사상에 입각해서 설법되어져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 법이고 그렇지 않다면 부처님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앞에서 말한 천태종이나 화엄종이나 선종 등이 중도를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그대로 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학자들이 잘 몰라서 대승불교를 의심하고 소승불교만이 부처님
불교가 아닌가 하고 연구해 보았지만 부처님의 근본불교가

중도사상에 었다는 것이 판명된 뒤에는 대승비불설은 학계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이론은 일본의 명치(明治) 말엽에서 대정(大正)초기인 20세기 초엽에 성행했습니다.
그러면 인도에 있어서 용수(龍樹)보살이나 마명(馬嗚)보살이 주창한
대승불교운동(大乘佛敎運動)이란 무엇인가?
대승비불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대승불교는 용수보살 자신의 불교이지

부처님 불교는 아니라고 하여 소승불교만이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불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근본불교가 중도에 있다는 것이 학문적으로 판명되므로해서 그런 주장은 다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용수보살이 주창한 대승불교의 근본 뜻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면
그때까지 있었던 부파불교에서 벗어나 바로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근본불교로의 복구운동이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세월이 지나면서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
각자의 교리를 주장하게 되니 이 시대를 불교사적으로

부파불교시대 (部派佛敎時代)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는 18 또는 20 부파불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각 파가 각기 자기의  주장을 펴서 이것이 불교다 저것이 불교다 하여 논쟁을

많이 하였지만  모두 어느 한쪽에 집착한 변견이었으니 이것이 소승불교입니다.
대체로 보면 영원한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무견(無見)으로 갈라졌는데
대중부(大聚部) 계통에서는 무견(無見)을 주장하는 파가 좀

있기는 있어도 상좌부(上座部) 계통에서는 모두가 유견(有見)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부파불교인 소승불교시대에 있어서는 변견으로 근본을 삼았고
소승경전도 그 당시 자기네들이 편집하고 전해 내려오면서

많이 가필(加筆)하고 개필(改筆)하였습니다. 이것이 저간의 사정이였습니다.

용수보살이 대승불교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삿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破冊顧正)」
는 것이었습니다.

즉 유견(有見)이 아니면 무견(無見)인 소승불교의 삿된 변견을 부줘버리고 부처님의 바른 견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나선 것이

용수보살의 근본 목적이며 사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용수보살은 중론(中讀)과 대지도론(大智度論)을 저술하여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중도를 천양하였습니다.

중도! 이것만이 부처님의 정통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의 제자 제바존자와
같이 부파불교의 추종자들과 일생을 논쟁을 벌여 변견을

부셔버리고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복구시키기 위해서 활약하였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대승경전이란 시대적으로 봐서는 혹 부처님과 오륙백 년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사상적으로 봐서는 부처님 근본사상을 정통적

으로 계승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승불교는 정통이 아니며 대승불교가 정통인 것입니다!

하나 덧붙일 것은 시대적으로 보아서 불교를 원시불교(原始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나눕니다.

원시불교를 다시 부처님 당시와 직계자제들이 있었던 불멸후 30년까지를 대개 근본불교라하고 그 후부터 불멸 후 백 년까지를 협의의

원시불교라 말하고,

부파불교는 소승불교로서 불멸후 1세기 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까지 사오백년 사이를 말하고 대승불교는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일어난 새로운 불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근본불교인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인 소승불교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부파불교시대에 있어서는 유견 아니면 무견, 무견 아니면 변견으로 각기 자기 교설을 주장한 소승불교로써 중도사상이 하나도 없는데

반하여 근본불교는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모든 교설이 설하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소승불교는 부처님 사상을 오해한 변질된 불교이며 정통의 불교는 아니라는 것은 요즈음 와서 학자들이 다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 근본불교사상에 대한 연구 공적이 제일 큰 사람은 우정백수 박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도사상의 독창성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같이 근본불교 원시불교 대승불교를 일관하는 중도사상이라는 것이 불교만의 독특한 진리인지 아니면 다른 종교

나 철학에 있어서도 이 중도의 사상이 있는지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학문이나 무슨 이론이든지간에 그 시대상을 떠나서는 그 학문이나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대개 말합니다.

아무리 큰 학설이라해도 평지돌출한 것은 있을 수 없고 오직 과거 학설의 영향을 받거나 그것을 조금 발전시키거나 변형시킨 것으로

생각하여 신학설이란 것도 시대적 변형과 시간적 발전이라고 봅니다.
불교연구가 깊지 못하였을 때는 세계의 불교학자들도 중도사상(中道思想)
이란 것이 인도사상의 하나의 발전과정이지 부처님이 독창적

으로 새로 발견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연구가 깊어짐에 따라서 고대 인도에 있어서 부처님 앞에도 중도사상은 없었고, 당시에도 중도사상이 없었으며 오직 부처님

만이 발견하고 성립시킨 새 진리가 중도사상이라는 것이 세계 불교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우정백수와 인도의 바루아의 공적이 제일 크다고 보겠습니다.
그럼 인도사상에서 어떻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부처님 당시까지의 인도사상을 크게 나누면 하나는 바라문사상이며
하나는 여기에 반대하여 일어난 일반사상 즉 육파철학(六派哲學)

사상이며 이것은 불교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도 합니다.

인도의 정통사상인 바라문교에서는 전변설(轉變說)을 주장합니다.

전변설이란 우주의 최초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근본적인 것 범(梵), 브라흐마를 인정하고 이것이 전변하여 순차적으로 잡다함이

생겨서 우주만물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또 그 개개 물체 가운데 유일무이한 브라흐마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재신(內在神)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말하자면 범신(梵神)사상으로 종교적이며 정신적이며 유신적(唯神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사를 해탈하여 참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으려면 부정과 죄악에 물들여진 내재신으로서는 해탈할 수 없으므로 마음을

제어하는 명상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육체적인 어떤 노력보다도 정신적 수양을 하는 수련방법을 택했던 것이니 이것을 보통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합니다.

다음 일반사상 즉 육파철학에서는 적취설(積聚說)을 주장합니다.

적취설은 이 허공중에 독립하여 상주하는 독립된 많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체만물은 이들 제 요소가 서로서로의 결합과 접적에 의해 성립하는 것으로서 결코 유일무이한 근본적인 무엇으로부터

만물이 생겨난다고 하는 단일한 근본체를 부인합니다.

이 설은 기계관에 빠지기 쉽고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적 정취도 결여되어 있다고 봅니다.
적취설에 있어서는 물질과 정신을 이원론적(二元論的)으로 보아서 정신이
물질인 육체에 속박되어서 생사를 해탈하지 못하므로

육체의 세력을 약하게 하면 그만큼 더 정신이 자유로와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고행주의(苦行主義)를 택했습니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같이 전변설이란 종교적 유신적(唯神的)이며
적취설은 과학적 유물론적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사상에 대해서 부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하는 것인데 상세히 설명하려면 끝이 없고 간단히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음 바라문계층의 수정주의자인 아라다 선인과 우드라가
선인에게 가서 공부하여 그들이 체험한 극의(極意)를 증득했으

나 실지의 해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전변설을 주장하는 수정주의를 버리고  다음에 적취설을 주장하는 고행주의자로 가서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육년동안 갖은 고행을 다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어서 고행을 버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공부해서

새벽 별을 보고  정각(正覺)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인도 수행방법의 양대조류인 전변설의 수정주의나 적취설의 고행주의를 다 버리고 자기 독특한 새 입장을 개척한 것입니다.

부처님 전의 모든 인도 사람들은 참으로 우주의 근본원리를 바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중도를 몰랐으며 부처님만이 우주의 근본원리를

바로 깨쳐  중도사상을 천양한 것인 만큼 인도사상의 시대적 변형이라든가 시간적 발전이라고 볼 수 없는 부처님이 처음 제창하신

새출발의 사상이라고 학자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사상이 인도에 있어서는 그렇지만 동•서양을 통해서 중도와 같은 사상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도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유교의 중용(中庸)과 불교의 중도(中道)가 같은 것이 아니냐고
흔히들 말하는데 전혀 틀리는 사상입니다.

중용(中庸)이란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책인데 그 책 속에서
“희•로•애•락이 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희•노•애락•이 나서 적당하게 사용되는 것을 화(和)라고 말한다”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한 바 「“회•로•애•락이 나지않는 것이 중(中)이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중도가 아니냐?」고 의심할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누누히 설명해왔지만 양변을 여의는 동시에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이므로 중용과는 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쌍차쌍조(照)를 내용으로 하는 중도를 바로 알게되면 동서양의 모든 종교나 철학이 불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보면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불교나 유교나 도교나 예수교나 혹은
헤겔철학이나 칸트철학과 같지 않느냐고 혼동시켜버리는 사람들

도 많이 있는 데 이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럼 중도사상이란 다론 어떤 종교나 무슨 이론과도 타협할 수 없는 고립된
사상인가?
예수교나 유교나 도교나 회교나 또는 어떤 철학이든지간에 각기 자기의 독특한 입장이 있으며
그 입장을 고집하여 타협할 줄 모릅니다.

그것은 변견에 집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알고보면 일체만법이 불교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중도사상을 모를 때는 유교는 유교, 불교는 불교 무슨 철학은 무슨 철학, 유신론이든지 유물론이든지 각각 다 다르지만 중도사상을

바로 알게되면 금강경에서 “일체 만법이 모두 불법이다”고 말씀하신 바와같이 일체만법, 일체 모든 진리를 융합한 우주의 근본원리임

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고보면 예수교도 우리 불교요 유교도교도 우리 불교입니다.

결국 불교를 바로 알려면 부처나 마군이를 함께 다 버려야 합니다.

부처와 마군이가 서로 옳다고 싸우면 양변에 집착했기 때문에 불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참으로 우리 불교를 바로 아는 사람이라면 부처와 마군이를 다 버려 버려야 합니다.

이와같이 중도사상은 철학적인 면에 있어서나 실천면에 있어서나 모순 상극된 상대적인
차별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이 융합된 절대

원융자재한 대원리입니다.
이 사바세계의 현실은 모순상극이여서 곳곳에 언제나 싸움이 그칠 사이
없습니다.

그 싸움 때문에 고(苦)가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순상극인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걸림없는 자유의 세계, 해탈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원통자재한 중도에 입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양변을 떠나 가운데(中)도 머물지 아니하는 중도사상만이 오직 참다운
극락세계를 이 현실에 실현케 할수 있을 것입니다.


※註 : 육사외도(六師外道) : 부처님 당시에 여섯명의 유력한 철학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말한다.

외도란 불교 이외의 도(道)를 설하는 사람의 의미이다.
1) 푸라나 카삿파(不聊過葉) : 도덕부정론자(道德否定論)이다. 선악의 구별은
인간이 멋대로 정한 것이라 진실에 있어서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업에 대한 응보도 없다고 생각하여 도덕관념을 부정하였다.

그는 살생도덕질사음거짓말을 하여도 악이 아니며, 보시극기진실 등에 의해서 선(善)은 생겨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노예의 아들이었다 하며 나채수행자였다고 한다.


2) 파쿠라 캇챠야나(婆浮陀伽枏那) : 인간존재가 일곱가지의 집합 요소

즉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원소와 고(苦) 락(樂)  생명(生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물론적인 주장을 했다.


3) 막칼리 고살라(末伽利瞿舍利) : 숙명론(宿命論) 또는 결정론(決定論)을 주장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12요소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어서 다만  운명과 환경과 천성에 의해서 변하는 것으로써, 일정한 생활이 특별한

업에  의해서 규정되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사명외도(邪命外道)의 대표자이다.


4) 아지타 케사캄발린(阿?多舍欽婆羅) :풍만이 참된 실체이며
인간은 이를 4원소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감각적 유물론자로서 어리석은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도 신채의 파멸에 의해서 단멸하여
소멸해 버린다.

그래서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시를 권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가르침이며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헛된 말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단멸론(斷滅誠)이라고 한다.


5) 산자야 밸라리풋타(散若夷羅梨沸) :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은 인도에 있어서

도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산자야이다.

그의 제자인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이 동문 250人과 함깨 부처님에게 귀의한 것은 초기 불교에 있어서 중요한 일대 사건이

다.  그는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을 거부하는 일종의 회의론자였다.


6) 니간타 나타풋타(尼乾院若提子) : 자이나교의 조사(租師)를 나타내는 명칭으로써 육사(六師) 가운데서도 재일 중요하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은 물질의 업에 속박되어서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거기에서 벗어난 영원한 안식처인 지복(至福)의 상태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고행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독신의 유량생활을 하며 엄격한 계율을 지켰는데 살생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한다. 도둑질 않는다. 음행하지 않는다. 무소유의 다섯 가지를  철저히 지켰다.

극단적인 불살생주의와 무소유주의의 실천은 그들로 하여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고행케 했다.


* 법문 출처: 해인지 <해인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