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와 그외사찰 = 아름다운 곳

제주도 약천사

백련암 2010. 9. 10. 23:35

= 약천사 =

 

아주 오래 전부터 현재 약천사 자리에는 지역 사람들이 [돽새미(도약샘(道藥泉) → 돽샘 → 돽새미)]불리는 좋은 수질의 약수(藥水)가

흐르는 약수터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약수를 마시고 기갈을 해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약수를 마시고 병이나았다고 한다.

물 좋은 이곳에 절을 지어 이름을 약수가 흐르는 샘이 있다는 뜻에서 자연스레 절 이름을 藥泉寺(약(藥)자와 샘 천(泉)자)로 부르게 되었다.


일부 사학자들은 고려말경부터 약천사가 있어왔다고 주장하면서 옛 문헌의 기록을 현재 자리에 위치한 약천사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확보하고자 힘쓰고 있다. 다만 제주의 많은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문헌적 기록 부재가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다.

 약천사는 1981년 혜인스님께서 이곳에들러 큰 절을 짓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부터였다 제주도의 많은 지명이 불교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약천사가 소속된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은 아미타부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돌아가고자 하는

(西方淨土 阿彌陀佛[서방정토 아미타불]께 歸依[귀의]한다) 불자들의 염원이 담겨진 지명이다.

 

약천사를 창건하신 혜인스님은 약천사에 약사여래불을 모셔서 약수와 더불어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 무병장수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법당에는 세분의 부처님(삼불)이 모셔져 있다  중앙에 계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비롯하여  오른쪽 아미타여래불, 왼쪽이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1.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화엄도량(華嚴道場)이다.

더없이 넓고 무진한 부처님의 진리 세계가 원융무애하게 펼쳐지는 화엄사상은 한국 불교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선종의 가풍을 일궈 내고 있는 해인사 등 주요 사찰들도 모두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1.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미타도량(彌陀道場)이다

일체 중생을 모두 극락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법장비구의 대원력을 구현하고자 하는 미타도량이다.

창건주이신 혜인스님께서는 [청정한 자성이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自性彌陀)] 임을 법문 때마다 가르치고 계신다.


이곳에 절을 지어 모든 사람들을 고통과 근심이 없는 극락세계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도량이다.


1.약사여래가 계시는 약사도량(藥師道場)이다

모든 사람들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원하고자 원력을 세워 약사여래를 큰법당 좌보처로 모신 약천사는 사찰을 창건하기 전부터  사시

사철 흘러내리는 약수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되찾았다.  약천사의 명칭도 약수가 흐르는 샘(도약샘-道藥泉)이 있는 곳에서 비롯되

었다. 이러한 인연의 터에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모두 편안함을 얻기를 기도하는 도량이다.


혜인스님이 지금 모습의 약천사를 짓기 전에 약천사는 오랜 세월 명맥만 이어오는 조그만 초막이었다. 450평 남짓의 절터에 약수암

이라 불리는 18평짜리 제주 전통 양식의 초가삼간이 전부였다. 현재는 모두 없어져 그 자리만 잔디를 심어 보존되고 있다.
본격적인 불사가 시작되고 그 후 절의 규모가 갖추어져서 이름을 약천사(藥泉寺-약수 샘이 있는 절)로 부르게 되었다. 불사가 마무

리된 현재까지도 약수는 새로 조성한 연못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1981년 혜인스님은 제주도에 국제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대가람을 짓고자 터를 찾아다니던 중 이곳 약천사에 와서

한라산의 영봉이 보이고 앞으로는 한없이 넓은 바다가 펼쳐진 지금 이 자리를 대가람의 터로 잡았다.
혜인스님은 1943년 남제주군 화순에서 태어나 14세의 어린 나이에 발심 출가하여 해인사 일타큰스님의 맏상좌가 되어 가르침을 받으셨으며

전국 제방에서 참선, 기도 수행하시던 중 혜인스님은 제주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과 제주불자님들이 넉넉히 수행 할 불자들에게 내놓고 자랑할 만한

사찰이 없음을 늘 아쉬워하였다.  초창기 사찰 조성을 위한 자금은 주로 혜인스님께서 직접 전국을 다니시며 법문하고 받은 법사비까지 아껴 모아

주변 토지를 사들여 사찰 부지를 확보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 2월 토지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큰 법당을 제주에 있는 (주)정한건설에 맡겨 착공하기에 이르렀다.

큰 법당의 기본 구조는 금산사의 미륵전과 같은 외부 3층 구조의 양식을 취하고 화엄사 각황전의 웅장한 구조미를 모본으로 하여

스님께서 직접 설계의 초안을 잡으셨다.


큰법당을 착공한 1986년에 지역주민들이 즐겨 찾는 신앙의 대상인 나반존자를 모신 삼성각을 짓고 그 앞에 종각체도 지었다.


1991년 음력 9월 보름 동양최대 규모의 웅장한 골조가 완성되어 지상 29.5m 높이의 외부 3층, 내부 4층 구조의 1,023평 넓이의 큰법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날 은사이신 일타큰스님께서 직접 상량문을 쓰시고 상량법회를 가졌다.


1992년 봄 현재 회주실로 사용 중인 건물과 그 아래에 자모당을 지어 평소 스님께서 즐겨 법문 하셨던

부모은중경의 내용과 같이나이든 보살들과 노모를 봉양하게 되었다.


1996년 음력 9월 15일 <대웅전 낙성대법회 및 나한전 상량식>를 가졌다. 이로서 약천사 큰법당은 공사 착공으로부터 8년 6개월 만에 건축뿐만 아니라 단청,

봉안된 부처님의 개금, 봉안된 보살님, 그리고 목조 탱화의 개채까지 끝나서 그 웅장한 자태를 천하에 드러내게 되었다.


낙성식 대법회에는 큰법당뿐만 아니라 법당 지하에서 내부 통로로 연결된 820평(2,707.71㎡)의 요사채와 요사채 좌우에 3층 누각 형태로 된

북각과 종각도 완성되었으며, 법고와 범종을 걸고 타종식도 함께 가졌다.
이날 큰법당 및 요사채 일괄 건물의 회향과 더불어 새로 지은 나한전의 상량식도 함께 가졌다. 이로서 약천사 대작불사는 일단계 완성을 보게 되었다.


1998년 11월 25-26일 양일에 걸친 <종단등록 기념 대법회>를 개최하면서 일괄된 약천사의 토지와 건축물을 창건주 혜인스님이 소속되어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10교구 본사 은해사]를 본사로 종단에 등록되었다.

이날 종단등록 기념 대법회과 함께 신임 주지 성공스님의 주지 진산식도 거행되었다.

성공스님은 포교 활동에 큰 열의를 가지고 활동하여 그동안의 외형불사에 치중해 왔던 약천사의 위상을 사회적으로 널리 선양하였다.



약천사 전경



약천사 전경 현판


 

법종루


 



약천사의 약수


 

대적광전



법당= 비로자나부처님, 좌측 약사여래불, 우측 아미타 부처님

우측 신중전


 

나한전



나한전 부처님


나한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