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 = 心 마음의 길을 찾아서

서울 구기동 금선사 의 목정굴과 금선사 적묵당, 심검당, 홍예교, 삼성각

백련암 2011. 3. 30. 00:46

서울 구기동 의 금선사와 목정굴 이야기

 

조선시대 정조 때의 일이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하여 불교에 대한 폐해가 극심하던중 대구 팔공산의 파계사에 주석하시던 용파(龍波)스님은 정조를 알현하고, 불교에 대한 극심한 폐단이 있음을 아뢰니, 정조는 이의 시정을 약속하면서 왕실의 대를 이을 왕자를 잉태하기 위한 기도를 부탁하였다.

 

마침 정조는 슬하에 세자가 없어 고심하던 중이었다. 이에 정조는 스님에게 세자탄강(世子誕降)을 위한 기도를 명하게 되었다.

 

용파스님은 이를 수락하고 금선사에서 정진하시던 농산스님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고, 두분 스님은 수락산 내원암과 삼각산 금선사에서 각자 기도에 들어가셨다.

 

농산스님은 바로 이곳 목정굴에서 300일간 관음기도를 올린 것이다.

기도가 익어갈 무렵 용파스님이 선정에 들어 살펴보니 왕자의 몸을 받아 태어날만한 이가 농산스님 밖에 없는지라 농산스님께 왕자로 환생할 것을 아뢰니, 농산스님께서 이를 수락하시고 수빈 박씨의 꿈에 현몽하시어 환생의 뜻을 밝히시고는 기도를 마치고 상서로운

징후를 보이며 열반에 들었다.

 

이때 왕실에 발신을 알 수 없는 봉서 하나가 올라 왔는데 " 경술(庚戌) 6월 18일 세자탄강(世子誕降)" 이라 적고 있었다.

과연 순조는 바로 이 날 태어났다. 이 날 서북쪽으로부터 맑고 붉은 서기가 왕실에 닿아 산실을 휘감고 있었다. 사람을 놓아 그 진원을 추적하게 하니 그곳은 다름 아닌 바로이곳 목정굴이었다.

 

굴 안에는 좌탈(坐脫)한 채로 앉아 있는 농산스님의 탈신(脫穀身) 뿐이었으나, 서기는 여전히 그의 정수리로부터 산실(産室)로 흘러

들고 있었다.

 

농산스님의 입적과 순조로의 환생을 목도한 정조는 내수사(內需司)에 명(命)하여 목정굴 위에 절을 크게 중창하게 하였으니 곧 금선사이다.

 

내원암의 사적에 두분 스님 사이에 오고 간 서신이 남아있어 이 이야기가 전해지며, 지금도 금선사에는 순조의 탄신제(誕辰祭)를 모시고 있다.

 

 

 

 

목정굴들어가는 첫 관문인 무무문

 

관세음보살= 농산스님이 300일간 관음기도하던곳

뒤에 약수가 있다 물맛이 좋았던것같다

 

밖에서 본 관세음보살

 

 목정굴로 올라가는 계단

 

목정굴에 모셔진 관음보살 뒤로 해서 금선사 대웅전가는길이다.

 

금선사 삼성각

1965년에 금어 인용성안이 조성한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독성탱화

 

칠성탱화

 

산신상과 산신탱

 

삼성각 벽화

 

바위틈에서 약수가...

 

홍예교

 

적묵당역시 생각과는 다르게 관리가 잘 안되있다.

 

심검당

600년된 사찰의 심검당의 모습이 변해져 있다

*다른 건물들은 불이나는 바람에 다시 지어졌음 지금도 불사가 한창이다

 

 

찾아가는 길 /
 1) 지하철 1호선 광화문역 하차 건너편 교보문고 쪽에서 푸른색 버스 ‘7212’번 이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하차 3번출구로 나와서 위에 버스를 이용해 구기동 종점인 이북5도청하차.

     하여 두갈래길중에 좌측으로 좁은 산길을 오르면  "연화사" 입구가  옆에 비봉<국립공원>매표소가 있으며 

     마지막 비봉휴계소가 있다.

     이길로 계속 10여분 정도 가다보면 목정굴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금선사 가는길과 "비봉, 가는길이 갈라진다  

 

▶참배를 끝내고 광화문으로 돌아올때 두 종류의 버스가 있다 번호는 7212번인데 운전석 앞에 써있다 수색쪽으로 가는버스와

   옥수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옥수동방향을 타야한다 

   수색쪽으로 가면 불광동쪽으로 가니 광화문과는 정반대로 가게 되는것이다.

 

2)  승용차로 올 경우에는 구기터널이나 자하문-세검정을 지나 구기동 이북5도청으로 올라와 국립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10여분 올라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