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각산(북한산)에 오르면 금선사가 있습니다.
금선사는 무학 대사가 창건했다.
조선 왕조의 도읍을 정하려고 삼각산에 올라 지세를 살피던 중에 지금의 금선사 터에 서기가 서려있음을 보고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에 소실되었고, 이후 1955년 도공 스님이 중건했다. 1994년 법안 스님이 부임한 후에야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북5도청을 지나 비봉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막 땀이 맺힐 때 쯤 금선사를 가리키는 푯말이 나온다.
200년이 넘은 소나무 곁을 지나서 108계단을 오르면 주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다. 경내에 계곡물이 흐르고 그 위에 홍예문이라는 예쁜 다리가 걸쳐 있다.
계곡 위에 정갈한 사찰, 그것은 지었다기보다 꾸몄다고 해야 옳다. 어디를 둘러봐도 허튼 구석이 없다.
반야전 아래는 목정굴이 있다. 작은 폭포 곁 석굴에 수월관세음보살을 모셨다. 부처님 눈길을 따라가면 인왕산이다.
금선사 목정굴에는 조선 순조 임금 탄생설화가 스며있다. 나무의 정기가 모여 있다고 해서 예부터 목정굴(木精窟)이라 불렸다.
이곳은 한국불교를 구한 큰 스님의 간절한 기도가 배어있다. 이야기를 풀어보면 이렇다.
조선시대 승려들은 도성 출입조차 할 수 없었다. 천민이나 다름없었다. 자연 절과 함께 산 속으로 숨어들었지만 관아와 유생들의 추적은 집요했다.
승려들은 성곽 쌓는 일에 동원되었고, 지방 진상품을 만들어 바쳐야 했다. 유생들은 절에 와서 술과 고기를 먹으며 승려들을 부렸다.
전국 곳곳에서 불두를 잘라 우물에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고, 사찰을 불태웠다.
승려들은 노비 아닌 노비가 되어 염불과 참선할 시간이 없었다. 불법이 말라가고 있으니 중생구제는 요원했다. 불교는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대구 팔공산에서 수행하고 있던 용파(龍波) 스님은 낙담했다. 어떻게든 나랏님 생각을 바꿔야했다. 임금과 담판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승려 신분으로는 도성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스님은 도력으로 한강에서 청룡과 황룡이 엉키어 올라가는 서기방광을 연출했다. 대궐을 거닐던 정조가 이를 보고 놀랐다.
신하들이 상서로운 기운이 나오는 곳을 찾아가니 노인이 누더기 한 장을 덮고 누워있었다. 차림은 남루했지만 얼굴에 서기가 어려 있었다.
노인이 임금 뵙기를 청했다. 신하들이 궁궐로 데려가자 스님은 임금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소승은 용파라 합니다. 불교 탄압에 조선의 수행자들이 곤경에 처했습니다. 부디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정조는 용파 스님의 법력을 한 눈에 알아봤다. 임금의 마음이 움직였다. 정조는 대신 다른 부탁을 했다.
“잘 알겠소. 그렇다면 내 부탁도 하나 들어주시오. 지금 후사가 없으니 불력으로 이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오.”
용파 스님은 궐을 빠져나왔다. 조선 불교의 운명이 자신에게 달려있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했다. 천안통(天眼通)을 열었다.
대궐 뒤 삼각산 금선사에 주석중인 농산(聾山) 스님이 보였다. 한걸음에 찾아갔다.
“소승이 임금의 후사를 이어주기로 임금과 약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 살피니 이 일을 맡아 주실 분은 농산 스님뿐이었습니다.
조선 불교의 앞날이 우리 둘에게 달렸습니다.”
농산 스님은 빙그레 웃었다. 이미 용파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용파 스님은 수락산 내원암에서, 농산 스님은 금선사 목정굴에서 300일 관음기도에 들었다.
어느 날 후궁 수빈 박씨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말했다.
“소승은 농산이라 하온데 금선사에서 정진 중입니다. 소승이 마마의 몸속에 들어가 나라의 대를 잇겠습니다.”
다음날 왕실에 보낸 사람을 알 수 없는 봉서가 올라왔다.
‘경술(庚戌) 6월18일 세자탄강(世子誕降)’
궁궐에서 금선사로 사람을 보냈다. 그러자 목정굴에서 정진하던 농산 스님은 막 열반에 들었고, 굴 안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과연 6월 18일이 되자 수빈 박씨가 세자를 낳았다. 그가 바로 순조 임금이었다. 정조는 스님과의 약속을 지켰고, 목정굴 위에 절을 크게 중창했다.
이렇게 농산 스님이 조선 불교를 구했고, 그 기도 현장이 목정굴이었다. 일찍이 경허, 일타 큰스님들도 금선사가 한국 불교를 구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법안 스님이 주지로 오기 전까지 목정굴은 버려져 있었다.
일주문
상층 반야전과 하층 해행당이다
지금은 대웅전을 보수중인지 임시로 대웅전역할을 하고 있다.
반야전에 임시로 세워져 있는 대웅전 현판
대웅전 삼존상
대웅전 신중탱화
대적광전
대적광전에 모셔진 중앙 비로자나불/ 좌측 석가모니불/ 우측 노사나불
대적광전 신중탱
대적광전 앞뜰 뜰밑이 미타전과 연화당이다
대적광전 벽화 보현보살
대적광전 벽화 문수보살
대적광전벽화
대적광전 벽화
대적광전 벽화
상층 미타전 하층 연화당<낙골당>
미타전 벽화
미타전 벽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하차 3번출구로 나와서 위에 버스를 이용해
구기동 종점인 이북5도청하차.마지막 비봉휴계소가 있다.
이길로 계속 10여분 정도 가다보면 목정굴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금선사 가는길과 "비봉, 가는길이 갈라진다
▶참배를 끝내고 광화문으로 돌아올때 두 종류의 버스가 있다 번호는 7212번인데 운전석 앞에 써있다 수색쪽으로 가는버스와
옥수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옥수동방향을 타야한다
수색쪽으로 가면 불광동쪽으로 가니 광화문과는 정반대로 가게 되는것이다.
세우고 10여분 올라오면 된다.
'서울 경기 = 心 마음의 길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계사 (0) | 2011.05.06 |
---|---|
구기동 금선사 가기 전 연화사 (0) | 2011.03.30 |
서울 구기동 금선사 의 목정굴과 금선사 적묵당, 심검당, 홍예교, 삼성각 (0) | 2011.03.30 |
신흥사 말사인 서울 종로의 감로암 (0) | 2011.03.26 |
대한불교 관음종 총본산 낙산 묘각사 (0) | 2011.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