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백련암
해인사에는 12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그 가운데 백련암은 산내 암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한가할 뿐 아니라 경계 또한 탁 트여 시원하다.
기이한 바위와 탁 트인 전망은 가야산의 제1경승지로 꼽힌다.
특히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백련암터를 가야산의 으뜸가는 절승지로 일컬어 왔다.
백련암을 처음 창건한 연대는 잘 알 수 없고 다만
선조 38년 곧 서기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스님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창건자 및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오래 전부터 고승들이 즐겨 수행처로 삼아 오던 이곳은 역대로 산중 어른들이 주석해 왔다.
곧, 소암대사를 비롯하여 환적, 풍계, 성봉, 인파대사와 같은 스님들이 일찍이 주석하였고, 몇해전 성철스님께서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원통전과 영자당을 위시한 요사채 몇 동이 조촐하게 서 있고 축대를 새로 쌓고 기도터를 새로이 신축하여 도량이 일신되었다.
영자당에는 환적대사, 인파, 대송 등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 원통전은 1687년에 환적스님이 신축하였고 뒤에 응해가 중건하였다.
해인사 주변암자 표지석
해인사로 가기 전 삼거리에 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꼭 연꽃봉오리 같이 보인다.
도반들과 함께 백련암으로 가고 있는 오솔길
이 길을 걷다 보면 제일먼저 지족암, 희랑대, 그리고 백련암으로 가는 참 예쁜길이다.
백련암의 지주인 생전의 성철 큰 스님 모습
언제봐도 정겹고 그리운 얼굴 = 스님 뵙고싶습니다._()()()_
성철스님의 다비식장
백련암
삭막한 겨울의 백련암 모습
백련암 7층석탑
雙獅子石燈(쌍사자석등)
1층은 觀音殿(관음전)
관음전은 2층건물로 되어 있다. 1층은 관음전 현판이 2층은 적광전현판이 걸려있다.
백련암에는 관음전이 두 곳이 있다 그 중 한 곳이 이곳이며, 백련암에서 옛 가람의 향기를 찾을 수 있는
원통전(圓通殿,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있다.
관음전 법당 내= 관세음보살의 정면모습
살짝 옆모습
법정스님과 성철스님의 삼천배 친견을 비판하다라는 신문기사이다.
성철스님은 1993년 11월 4일 새벽에 해인사 퇴설당에서 상좌를 불러 "때가되었다."이르시고는 열반에 드셨다.
내말에 속지마라,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이미지에 불과하니깐,
너 자신을 속이지마라. 정직하지 않으면 너 자신을 똑 바로 볼 수 없으니깐
스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 중에서....
적광전으로 가기 전 계시판에 성철스님의 기록들과 사진들이 붙여있다. 수시로 바꾸어 붙여놓으신다.
얼마전에 열반하신 법전큰스님, 성철대종사, 혜암대종사, 한분이 생각이 잘안납니다. 죄송^^...
계시판에 있는 젊은날의 스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상단) 스님의 이력과 스님의 열반소식이 함께 실려있다. (하단)
성철스님이 영가대사의『증도가』를 읽으시고 출가결정을 하신후
해인사로 떠나면서 세상사의 허망함과 진리를 향한 결연함을 드러내는 출가시를 읊으니 그때의 세수는 26세 이였답니다.
그때 읊으신 출가시
하늘에 넘치는 큰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통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내 홀로 걸어가노라.
성철스님은 (1912년 ~ 1993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으며 진주중학교를 졸업한 후 해인사로 출가 하여 동산 스님 밑에서 득도하였다.
임종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상좌들에게 "참선 잘해라"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이후 금강산의 마하연선원등 여러선방은 10년간 두루 거치면서 안거하셨다.
음식은 주로 생식과 현미밥과 담식을 드시면서 용맹정진을 거듭하셨다.
파계사에서 행한 장좌불와 8년은 유명한 사실이다.
성철스님의 열반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넘치고 죄업은 수미산을 자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 뿜으며 푸른 산에 결린도다.
성철스님께선 보조 지눌이 내세웠던 頓悟漸修 (돈오점수) 대신 頓悟頓修 (돈오돈수)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셨다.
頓悟頓修 (돈오돈수)란 : 단박에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것이며,
頓悟漸修 (돈오점수)란 : 깨달은 뒤에도 점차 닦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2층에 있는 寂光殿(적광전)이다.
이곳 적광전(寂光殿)은 3000배를 해야 성철스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던 그 법당이다.
석가모니불과 좌우보처로 문수와 보현보살
寂光殿(적광전)에는 단독으로 주존불인 석가모니불과 좌우보처로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의 광배(光背)는 후불탱(後佛撑)으로 조각하여 개금하였다.
주존불은 결과부좌에 항마촉지인을 결하며, 법화경을 설하고 있다. 머리 위에 연기에 표현된 6분의 분신불이 묘사되어 있다.
이곳 적광전(寂光殿)은 3000배를 해야 성철스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던 그 법당이다.
석가모니불과 좌우보처로 문수와 보현보살
적광전에서 바라본 백련암의 모습
天台殿(천태전) 혹은 羅漢殿(나한전)이나 獨聖閣(독성각)이라고도 함 : 나한을 모신 곳
백련암에서 옛 가람의 향기를 찾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의 한 곳입니다.
나한 탱화와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獨聖(독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홀로 깨달은 성자란 뜻
천태전 앞에 핀 꽃 너무 예쁘고 탐스럽게 피어있다.
圓通殿(원통전) =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
1687년(숙종 13) 환적스님이 지은것인데 응해 스님이 한 차례 중건 했다고 한다.
백련암에서 옛 가람의 향기를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에 한 곳이다.
圓通殿(원통전)에 모셔져 있는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圓通殿(원통전)
圓通殿(원통전)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古心院(고심원, 불상대신 성철스님상이 모셔져있다.)
이 건물은 성철스님이 보관하시던 여러나라의 진귀한 불경과 책들을 보관하려고 지었던 전각이라 한다.
그래서 고심원<古心院>이라는 당호가 붙은 것이란다. 당호는 스님께서 생전에 손수 지으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님께서 문이 채 달리기도 전에 그만 입적하시고 말았다.
고심원 기둥에는 성철스님의 열반송(涅槃頌)이 주련으로 걸려있다.
주련으로는 스님의 열반송이 쓰여져있다.
生平欺狂男女群 (생평기광남녀군) :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 (미천죄업과수미) :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活陷阿鼻恨萬端 (활함아비한만단) : 산 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一輪吐紅掛碧山 (일륜토홍괘벽산) :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 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고심원에 모셔져 있는 성철스님의 좌상
고심원의 성철스님의 좌상
성철 스님을 친견하려면 부처님께 삼천 배를 해야 한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유명하다.
절을 하면 하심(下心)이 되고 하면 할수록 참회가 된다.
무엇보다 땀을 흘린 만큼 탐진치 삼독(三毒)이 말끔하게 사라진다. 절하는 자체만으로 커다란 힘이 된다.
고심원안에 있는 輪藏臺(윤장대) - 경전을 넣고 돌리는 나무 책장
◉윤장대란 장경(藏經)을 돌리(륜[輪])는 대(臺)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회전식 불경 보관대이다.
전설에 의하면 살아생전 한 번도 못보고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염라대왕에게 꾸중을 듣는다고 하는 윤장대는
정성을 다해 돌리면서 한 가지 소원을 빌면 업장이 소멸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이러한 경전신앙은 원래 글을 모르는 중생에게 경전을 읽는 효과를 준다고 한다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나무로 된 책장을 말한다. 전륜장(轉輪藏), 전륜경장(轉輪經藏), 윤장(輪藏)이라고도 한다.
경전을 넣은 나무 책장인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부처님이 진리를 설하신 것을 진리의 바퀴를 돌리는 법륜(法輪)에 비유하듯이
무지한 중생들은 부처님의 진리가 담긴 경전을 돌리는 행위에서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즉 무지한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한 방편으로서 불심이 돈독한 사람이 윤장대를 돌리면서
쌓은 공덕이 불경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는 자비로운 마음이 깃든 것이다.
윤장대를 처음 만든 사람은 중국 양나라의 선혜대사라고 전해져 오고 있지만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석문정통(釋門正統)> ‘탑묘지’에 따르면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으며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한다. 하지만 당나라 때 이미 윤장대가 많이 설치돼 있었음은 사실이다.
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가 지은 시문집인 〈백씨문집(白氏文集)〉 ‘소주남선원 천불당 전륜경장’을 보면
“불당 중앙에 경장이 있는데, 8면으로 되어 있으며 경방안에는 바퀴를 달아서 돌릴 수 있게 하였다”라고 명기돼 있다.
佛面石(불면석)
백련암 경내에 들어서면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바위를 잘 보면 사람의 얼굴모습을 띠고 있다.
어떻게해서 이곳에 이렇게 있게되었는지는 모르나 눈, 코, 입, 귀까지 다 모여있다.
진짜 눈은 지그시 감고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모습이 선정에 들어있는 부처님을 닮았다고 해서 불면석이라고 부른단다.
佛面石(불면석)
부처님 얼굴처럼 생긴 불면석이 마당을 지키고 있다.
스님이 계시는 방 앞에 핀 장미
공양간 이층인 스님들 요사채에서 바라본 풍경 저 밑으로 해인사의 절이 보인다.
백련암은 고승들이 많이 배출된 수도처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며 가야산 제일 승지로 꼽혀 왔다.
2층 건물로 되어 있는 이곳은 1층은 공양간 2층은 스님들 요사채로 사용된다.
이 자리에 서서 보면 이곳은 1층이지만 경내로 들어가면 이곳은 지하가 된다.
2층 스님들이 계시는 요사채에서 바라본 경치는 환상적이다. 비오는 날에는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공양간 건물에 새겨진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용 두마리 그림이 조각되어 있다.
또 다른 한면에는 용트림을 하고 있다.
수각에 조각되어 있는 개구리 두마리
백련암에는 보기드문 이 공중전화기가 문 옆에 붙어있다. 언제부터 이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지금도 사용이 가능할련지는 알수가 없다.
성철스님은 이 문을 이용하셨다.
신문기사에 항상 등장하는 백련암 일주문이다.
천진불인 우리 예쁜 조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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