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 제6조 혜능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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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바 없이 마음 낼지니’… 그러나 아버지가 남해(南海) 신주(新州)로 귀양 오게 되어 신주에서 태어났다. 3살 때에 아버지를 잃게 되어 어머니가 수절하며 길렀는데, 자라면서 점점 가세가 궁색해져 땔나무를 해서 편모를 봉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而生其心)”라는 경전의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이 맑아져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그 손님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책이며, 누구에게 얻었습니까”
그 손님이 말했다. “이는〈금강경〉이라는 경전입니다.
나는 호북성 기주 황매현의 동(東) 빙무산(憑茂山)에서 5조 화상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홍인 화상으로부터 ‘한 권의〈금강경〉을 손에 든 것만으로도 곧 견성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그 말을 듣자말자 홍인스님과의 사이에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곧 늙은 어머니에게 스스로의 생각을 알려서 이해를 구하고는 황매의 빙무산으로 홍인스님을 뵙기 위해 달려간다. 홍인스님께서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는 누구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영남(嶺南)의 백성입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오직 부처가 되기 위하여 왔습니다.”
홍인스님이 말했다. “그대는 남방 출신의 오랑캐여서 불성(佛性)이 없거늘 어떻게 부처가 되려고 하는가?” "썩 물러가라."
홍인조사는 나무꾼에게 호통을 쳤지만 그가 여지껏 기다리던 큰 법기(法器)임을 알았다.
스님이 대답했다. “사람에게는 남쪽과 북쪽의 차이가 있겠지만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스님의 대답을 들은 홍인스님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느라고, <주위의 제자들 눈초리를 의식한 5조 홍인조사는 "가서 방아찧는 일이나 하거라." 고한다.>
“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 대답하느냐”라고 꾸짖으면서 방앗간으로 보내어 주야로 방아를 찧고 장작 쪼개는 일을 시켰다.
"예 스님"
새벽부터 밤까지 천명스님의 식량을 찧는 일은 여간 고달픈일이 아니다. 하찮은 시골뜨기 행자지만 그의 속에는 거룩한 道心 즉 불성이 자라고 있었다.
8개월이 지난 어느날 홍인조사가 들렀다. "고생하는구나. 내 너의 불성을 인정하나 악한 무리들이 시샘하여 해칠까 염려하는 뜻을 짐작하겠느냐?" "예. 그래서 저도 큰 스님 곁에는 가지않고 있나이다."
얼마후 5조 홍인조사는 그의 법통을 전해줄때가 왔음을 알고 제자를 불러 모았다. 스님이 방앗간으로 보내진지 8개월 후 홍인스님은 문하의 수행자들에게 불법의 큰 뜻을 깨달은 게송(偈頌)을 지어서 보인 사람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겠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의 생사문제가 크거늘 너희는 종일토록 복전만을 구하고 생사고해에서 헤어날 생각은 없는것 같구나.
너희는 각기 돌아가서 게송을 지어 오너라. 만약 깨친 사람이 있으면 의발을 전하여 6조 조사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신수상좌는 괴로웠다.
내가 짓는 뜻이 법을 구함이면 옳지만 조사의 자리 를 탐한 것이라면 옳지 않은 일인데 어쩔것이냐."
-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라
“몸은 진리의 나무, 마음은 맑은 거울의 받침과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먼지가 않지 못하게 하라.”
다른 스님들이 보았을때는 참으로 잘지은 깨친사람의 게송이라고 칭찬이 자자했지만 스승 홍인조사는
하루 이틀 생각해서 다시 지어오너라." 신수상좌가 지은 게송인데 큰스님이 좋다고 외랬다우. 하지만 딱지 맞은 거라우."
신수스님의 게송을 들은 혜능스님이 말하였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깨달은 것도 있고 깨닫지 못한 것도 있다.”
나무꾼은 게송을 잘 지으면 의발을 전수받는다는 말을 처음 듣고 마침 그곳에 와서 머무는 관리에게 간청했다.
- 보리는 원래 나무가 없고 맑은 거울 역시 틀이 아니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며, 맑은 거울도 원래 받침이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때가 낄 수 있겠는가.”
이 게송을 본 대중들은 감탄 감탄 깜짝 놀랐다.
스님의 게송에서 큰 기량을 본 홍인스님은 그날 밤 스님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심법(心法)을 전수한 다음에, 주위의 시기를 꺼려, 야밤에 산을 떠나도록 하였다. 의봉원년(儀鳳元年, 676년, 39세)에 마침내 때가 되었음을 알고, 산에서 내려와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에 도착한다.
그때 마침 그곳에서는 인종(印宗) 법사가〈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라고 논쟁하고 있었다.
이때 스님이 그 두 사람에게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스님의 이와 같은 지적에 놀란 인종법사는 스님을 윗자리에 모셨다. 이 곳에서 마침내 혜능은 정식으로 출가절차를 밟아 그의 선법을 본격적으로 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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