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과 영혼의 말씀

중국의 유마, 방거사(龐居士)

백련암 2012. 7. 11. 12:58

 

 

온갖 분별에서 벗어나라, 깨달음도 일상사와 다르지 않느니

 

이원섭(시인)

 

 

 

 

 

 

 

방거사의 사람됨

중국의 선종은 대대로 이름 있는 거사(居士)를 배출했으나 그 중에서도 특출한 이가 방거사다.

유마(維摩)의 화신(化身)이니, 보처대사(補處大士)니 하는 말을 들은 것만 보아도 禪에서 차지하는 그 위치를 알 수 있거니와,

방온(方蘊)이라는 본명 대신 ‘방거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는 것도, 그가 거사선(居士禪)을 대표하는 거물이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방거사는 아버지가 태수(太守)를 지낸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어엿한 명문 출신이었으나, 일찍부터 세속적 영화의 하잘것없음을 알아

불법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명리(名利)에 담박했던가는 후일 온 재산을 배에 싣고 나가, 동정호(洞定湖)에 던져버린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버리느니 가난한 이웃에 나누어 줌이 옳지 않으냐’고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자, ‘나에게 독이 되는 것을 어찌 남에게 주겠느냐’고

했다는 말이 전한다. 가히 그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신통묘용(神通妙用)

이런 그가 道를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찾아간 것은 석두(石頭)스님이었다.

청원아 1세인 석두희천(石頭希遷)은 저 남악하(男樂下) 1세인 마조도일(馬祖道一)과 함께 이대감로문(二大甘露門)이라 일컬어져,

중국선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공헌한 대선지식인(大善知識人)이다.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것이 방거사의 질문이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두스님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아버렸고,

그 순간에 방거사는 깨닫는 바가 있었다.


만법은 온갖 현상과 온갖 존재를 이르는 말이니,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란 차별적인 외부의 사물에 지배받지 않는 사람이다.

밖으로 선악(善惡)· 범성(凡聖)· 미오(迷悟) 따위의 분별을 일으켜서 그것에 끌려 다니는 것이 범부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방거사의 질문은 ‘그 같은 구속에서 벗어난 것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니까,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바로 제시해 보라는 것이 방거사의 요구였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면목이란 것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면목이란 본래의 자기를 이르는 것 뿐이므로, 만일 그것을 ‘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온갖 분별 이전에 있다고 해야 한다.

 

곧 분별을 일으키는 것에 의해 본래면목에서 멀어져 온 것이 우리들 범부의 양상이다.
그러므로 만일 ‘무엇이 본래면목일까’ 하고 생각을 달인다면, 이는 본래면목에 대해 분별을 일으키는 데 지나지 않고,

그러기에 그만큼 본래면목으로부터는 유리(遊離)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본래면목은 불변 자체를 포기할 때 스스로 드러나는 경지일 뿐, 묻거나 대답하거나 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석두스님이 방거사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그 입을 틀어막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거나 이리하여, 마치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 달리기 시작하는 준마(駿馬)처럼 방거사가 깨닫게 된 것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하루는 사제 사이에 대화가 벌어졌다.
“여기 와서 나를 만난 지도 꽤 시일이 흘렀는데, 요즘 그대의 일상사는 어떠한가.”


“일상사를 물으신대도, 입조차 달싹할 것이 없습니다.”
이 때에 지어 바친 것이 다음의 게송이다.

 

일상사가 다를 것이 없나니
내가 저절로 합치는 것 뿐,


하나하나 취사(取捨) 않으매
곳곳에 어긋남은 없도다


주자(朱紫)를 누가 존귀하다 이르는가
청산에 한 점의 티끌조차 없는 것을


신통묘용(神通妙用)이 무어냐 하면
물을 긷고 땔나무 나르는 일.

 

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頭頭非取捨 處處勿張乖
朱紫誰爲號 丘山絶點埃
神通幷妙用 運水及般柴

 

세상의 상식으로 우리의 일상사는 미혹(迷惑)에 속한다 여겨, 그것과 다른 진리의 세계가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일상적인 시간 뿐이니, 이것을 제외한 곳에 어떤 시간이 있다는 것인가.

그런 별도의 시간이나 생존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야말로 분별이 빚어낸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방거사에 있어서 깨달음은 일상사와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깨닫고 보매 깨달음마저 탈락하고 말아서 있는 것은 일상사 뿐이었다.

이는 오로지 온갖 분별(取捨)에서 벗어난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고관[朱紫]을 귀하게 알고 백성을 천하게 여기듯 깨달음이니, 부처를 귀중히 받들어 번뇌니, 중생이니 하는 것을

그것과 구별하는 의식 같은 것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그의 심경(청산)은 그 같은 분별(티끌)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리하여 그의 일상사가 바로 신통묘용인 것이 된다. 흔히 신통이라면 하늘을 날든가 물 위를 걷든가 하는 일을 생각하기 쉽지만,

설사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거기에 어떤 종교적·도덕적인 가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도리어 배고프면 밥 먹는 따위의 일상사가 신통이 못 되는 것과는 달리 방거사의 그것이 신통으로 바뀌는 것은,

그가 분별을 넘어서는 것에 의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요, 그 깨달음에조차 머물지 않고 일상적인 자기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디 깨달음은 미혹 속의 중생 쪽에서 붙인 이름일 뿐, 깨달은 사람에게는 깨달음도 존재함이 아니므로, ‘깨달음조차 머물지

않는다’ 함은 깨달음의 심화(深化)일 따름이지, 그것을 내던지는 것과는 다르다. 어쨌거나 우리의 일상사가 지니는 뜻을 이렇게나 깊이

파악한 예는 드물 것으로 여겨진다.

 

선불장(選佛場)

몇 해 후 방거사는 강서(江西)로 마조대사를 찾아와, 석두스님을 뵐 때와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다 들여 마시거든, 그 때 가서 일러 주리라.”


이는 결국 설할 수 없다는 것이고, 스스로 분별을 끊는 것에 의해서만 밝혀진 문제라는 뜻이니,

이 때도 깨닫는 바 있었던 방거사는 다음 같은 게송을 지어 마조대사에세 바쳤다.

 

시방(十方)에서 행자들 모여들어
모두가 제가끔 무위(無爲)를 배우나니,


여기는 부처 뽑는 과거장이라
마음 비워 급제해 돌아가노라.

 

十方同共聚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유위(有爲)·무위(無爲)라는 말이 있다. 어떤 원인[因]과 조건[緣]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유위’니, 그러기에 현실계의 온갖 현상은

다  유위에 속하고, 생멸 변화가 그 특성이 된다.


이에 비해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이루어짐이 아닌 것이 ‘무위’이므로, 생멸 변화를 초월한 깨달음· 열반의 세계가 무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위(無爲)라는 글자의 뜻이 시사함이 크니, 이를 직역하면 ‘함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함이 없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가.


최근 돈오(頓悟)· 점오(漸悟)의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일반적으로 수행에 의해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기야 처음부터 수행이 없다면 깨달음이 이루어질 리 만무한 일이므로, 큰 상식의 테두리에서는 정상적인 견해라고

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수행으로는 결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어째서 그런가.  수행은 본디 미혹 속에 있는 자기의 처지를 자각한 사람이, ‘이대로는 있을 수 없다’ 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미혹과 깨달음, 생사와 열반의 대립이 있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얕은 데서 높은 데로, 청정하지 못한 상태

에서 보다 청정한 상태로 옮아감을 뜻한다.

 

그러므로 수행 자체가 하나의 분별이다. 이에 비해 깨달음은 대립이 없는 세계요, 분별이 끊어진 경지다.

그러므로 분별로 깨달음에 접근하려 할 때는, ‘깨달음은 분별이 없는 경지’라 하여 그것에 대해 분별을 일으키고 있는 결과밖에는 될 것

이 없으니, 거기에 있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분별’이다.

 

그렇다면 수행을 통해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수행이 안고 있는 이 같은 자기모순을 나타낸 것이, “모두가 제가끔 무위(無爲)를 배우나니” 라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이 없어야’하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무엇을 의식해 구하거나 노력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는’무위가 깨달음이라면, ‘함이 있어서는’안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리고 ‘함이 없기’란 무엇보다도 어렵다. 우리들은 처음부터 분별이 서 있기에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설사 산중에 움막을 묻고 홀로 지낸다 해도 ‘함이 없는’ 생활인 것은 못 된다. 그런 중에서도 머릿 속은 분별로 가득 차 있어서,

그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지껄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요, 잠이 든다 해도 꿈을 꾸는 터이니까 무엇인가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 같이 무엇인가를 함이 우리들의 속성처럼 굳어져버린 까닭에, 어떤 어려운 일을 하는 것도, 아무 것도 ‘함이 없는’ 일에 비하면 훨씬

쉬운 것이 되어 버린다.


어째서 이런 사태가 빚어지느냐 하면, 불도에 있어서는 도달점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어딘가 먼 저기에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에게, 그것도 무엇을 구하느니 마느니 하는 일념(一念)의 분별도 일어나기 이전의 본래의 자기(本來面目)에게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거사가,  “마음 비워 급제해 돌아가노라”  한 것은, 바로 이렇게 본래의 자기로 돌아감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서‘부처 뽑는 과거장’이라는 원문으로 ‘선불장(選佛場)’이라는 말은 대단하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인 줄 알고 있고, 또 입으로는 발심(發心)이니 뭐니 하면서도, 기실 마음 속에서는 비굴한 생각에 젖어 복(福)이

나 빌고 있는 것이 불교인들인데, 도량을 선불장이라 갈파(喝破)했으니 얼마나 장한가. 이 같은 의기가 결여된다면, 거기에서 이루어지

는 것은 뻔하다고 해야 한다.

 

눈은 어디에 떨어지나?

석두·마조라는 두 대선사 밑에서 단련된 방거사는, 이후에 종횡무진의 기봉(機鋒)을 나타내 일류의 선객들과 교유하게 된다.

그가 석두스님의 사법제자인 약산(藥山)을 찾아 며칠을 묵다가 길을 떠날 때였다.


약산스님은 열 명의 제자에게 분부해 방거사를 동구 밖까지 배웅하도록 따라 보냈다.

그들에 에워싸여 길을 가는 중 마침 함박눈이 내렸다. 이를 본 방거사가 손을 들어 공중의 눈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펄펄 날리는 저 눈이 다른 데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군…….”
말이 약간 심상치 않은 지라, 전씨(全氏)성을 가진 선객이 걸려 들었다.


“다른 데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니, 어디에 떨어진다는 말씀입니까?”
그 순간, 방거사가 손을 뻗어 선객의 뺨을 쳤다.


“너무 경솔히 마십시오.”
이렇게 항변하는 선객을 향해, 방거사가 꾸짖었다.


“이러고도 선객입네 한다면, 염라대왕이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대로 물러설 수도 없게 된 선객이 반격했다.


“거사는 어디에 눈이 떨어진다 하시는 것입니까?”
방거사는 다시 뺨을 보기 좋게 치면서 내뱉었다.


“눈으로 보되 소경 같으며, 입으로 말하되 벙어리와 같구나.”


이 문답은 『벽암록』에 수록되어 있다. 전씨 성을 가진 선객이 뺨을 맞은 근거는 어디에 있었겠는가.


“눈이 다른 데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한 마디가 문제의 발단(發端)이지만, 이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말도 없다.
펄펄 날리는 눈들은 제가끔 자기가 떨어질 곳에 떨어지는 것 뿐이니, 세 살 먹은 어린애였다면 간단히 그 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말을 약간 비틀어서 “다른 데에 떨어짐이 아니다”라 했다 해서, 도리어 그 말에 얽매이고 만 것이 그 선객이었다.

그리하여 금시에 분별을 일으키고 말아서, 그 말에 무슨 오묘한 도리라도 포함돼 있는 듯 헤아린 것이 잘못이라면 큰 잘못이다.


아마도 『법화경』의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라는 말씀이라도 머리에 떠올려, ‘그렇다면 이 눈은 진여(眞如)에라도 떨어진다는

말인가’ 하고 여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은 어디까지나 눈일 뿐이고, 떨어지는 곳에 떨어지는 것 뿐이지 떨어지는 것에 어떻게 ‘다른 데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방거사의 너무나 당연한 말에 의혹을 일으켰다면 이 사람은 선의 공안에 있어도 똑같은 태도를 취해, 그 무슨 도리를 거기에서 찾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선객이라면 맞아도 싸지 않은가.

 

단란(團欒)한 가정

방거사는 조리를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 일생을 극빈 속에 살았으나, 아내와 아들, 딸도 모두 도인이었다.
한 번은 선정에 들어 있던 방거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렵고 어려우니, 백석(白石)의 유마(油麻)를 나무 위에서 뿌림과도 같도다.”


유마는 참깨다. 참깨를 나무 위에서 뿌려서는 절대로 싹이 날 수 없듯, 분별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하여,

수행의 어려움을 드러낸 말이리라.


집안 일을 하고 있던 아내가 이를 듣고 화답했다.
“쉽고 쉬우니, 침상에서 내려와, 발이 땅을 밟음과도 같도다.”


분별에 서기에 어려워질 뿐이니, 본래의 자기를 확인하여 ‘아무 것도 함이 없음’이 깨달음이라 할 때, 이렇게 쉬운 일이

다시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자 부모의 화답하는 소리를 듣고, 딸 영조(靈照)도 끼어 들었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으니, 백초두상조사의(百草頭上祖師意)!” 백초(百草)는 온갖 사물의 뜻이다.

온갖 사물의 절대적 진리[祖師西來意]는 저렇게 명백히 나타나 있으니, 그것은 어렵다거나 쉽다거나 하는 분별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이 동일한 견처(見處)에 서서, 같은 말을 하고 있음이 된다.


또 방거사의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아들 있되 장가 안 들고
딸은 딸대로 시집가지 않은 채


온 식구 모두 다 단란한 중에
함께 무생(無生)의 얘기 주고 받나니.

 

有男不婚 有女不嫁
大家團欒頭 共說無生話

 

대가(大家)는 속어(俗語)니, ‘다[皆],의 뜻, 무생(無生)은 불생불멸(不生不滅)과 같은 말이어서, 절대적 진리를 이른다.

세속에 남아 있으면서도, 어느 출가자보다도 청정한 가정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들의 임의사명(任意捨命)

자기의 죽을 때를 안 방거사는 딸에게 말했다.
“인생이란 꿈 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다. 너는 너의 인연을 따라 살아가도록 해라.” 그러고는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지,

밖에 나가 해의 위치를 알아보도록 일렀다. 밖에 나갔던 딸이 돌아와 말했다.


“벌써 오정이 된 듯하지만, 마침 일식중이어서 확실치 않으니, 아버지가 직접 나가 보시지요.”
그래서 늙은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일식도 아닌 것 같아 이상히 여긴 그가 방에 돌아왔더니,

어느덧 딸은 방거사의 자리에 앉아 합한 자세로 숨을 거두고 난 뒤 였다.


죽은 딸을 바라보며 방거사는 웃으며 중얼댔다.
“내 딸이지만, 참으로 민첩하군!”


그래서 방거사는 딸의 장래를 위해 죽음을 일주일 연기했고,

그가 죽을 때는 마침 그 고을(襄陽) 태수 우적이 찾아왔다. 우적은 그의 지기이자 사법제자였고,

후일 『방거사어록』을 편찬한 사람이다.


방거사는 그에게 말했다.
“다만 원컨대 온갖 유(有)를 공으로 돌릴망정, 삼가 온갖 무(無)를 진실이라 여기지 말라
[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무(無)는 공(空)이니, 유(有)를 공이라 하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공을 진실인 듯 여겨서는 안 된다는 유언이다.


이 때 거사와 딸의 시신은 암굴에 있고, 아내와 아들은 본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거리가 너무 먼 관계로

우적은 거사를 다비해 장사지내고, 그 후에 사람을 보내 가족에게 알렸다.


“늙은이의 장사도 안 지내주고 먼저 가다니…”
하면서 딸에 대해 투덜댄 방거사의 아내는, 들에 나가 있는 아들을 찾아가 부음을 전했다.
이를 들은 아들은 ‘앗!’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잠시 뒤에 보니 어느덧 선 채로 숨을 거두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노파마저 이디론가 사라져 자취를 끊으니, 좌탈(坐脫)· 입망(立亡)을 온 가족이 자재히 해냈다는 점에서,

그의 가족 같은 예는 다시 없다고 할 것이다.

 

월간 <선문화> 2003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