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현재는 미륵산이라 함)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나라 지도를 닮은 저수지가 보인다.
사자암 대웅전
1993년 발굴조사 이후 새로 지은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겹처마로 된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건물의 내부에는 목조로 조성된 석가여래좌상을 비롯하여 좌우에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탱화는 석가모니후불탱과 신중탱ㆍ지장탱을 봉안하고 있는데, 모두 1994년에 조성된 것이다.
대웅전 내부 =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관음보살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산에 있는 절에 삼성각에모셔져있는 용왕도
삼국유사에 기록된 1300여년 전의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초월한 "서동 · 선화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백제(百濟)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그 못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 아이 때 이름은 서동(薯童:마동)이다.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늘 마를 캐어 팔아서 생업을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마동이라 이름했다.
그는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인 서라벌(徐羅伐 지금의 慶州)로 가서
마를 동리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과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그는 동요(童謠)를 지어 여러 아이를 꾀어 그것을 부르게 했는데 그 노래는 이렇다.
<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얼러두고 맛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
이런 동요가 서라벌 안에 쫙 퍼져서 대궐에까지 들려지니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했다.
떠나려 하자 왕후(王后)는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공주가 장차 귀양 터에 이르려 하는데 서동이 도중에서 나와 절하면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온 지는 알지 못했으나 우연히 믿고 좋아했다.
이로 말미암아 서동을 따라갔으며 몰래 관계했다.
그런 후에야 서동(마동)의 이름을 알았으며 동요의 영검을 알았다.
함께 백제로 와서 모후가 준 금을 내어 생계를 도모하려 하니 서동은 크게 웃으면서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공주는 말했다.
"이것은 황금입니다. 한 평생의 부를 이룰 만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파던 곳에 황금을 흙처럼 많이 쌓아 놓았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은 천하의 진귀한 보배이니 당신이 지금 그 금이 있는 데를 알면 그 보물을 부모님(眞平王)의 궁전에 수송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동은 말했다.
"좋소."
이에 금을 모아 언덕처럼 많이 쌓아놓고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금을 수송할 계책을 물으니
법사는 말했다.
"내가 신통한 도의 힘으로써 보낼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
공주는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갖다 놓으니 법사는 신통한 도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보내어 두었다.
진평왕은 그 신비로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하여 늘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 말미암아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하루는 왕(武王)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밑의 큰 못 가에 이르니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올렸다.
왕비가 왕에게 말했다.
"이 곳에 큰절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진실로 제 소원입니다."
왕은 그것을 허락했다.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었더니 법사는 신통한 도의 힘으로써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서 평지로 만들었다.
이에 미륵삼존의 상(像)을 모방해 만들고 전(展:佛閣)과 탑(塔)과 묘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彌勒寺)라 하였다.
신라 진평왕은 각종 공인(工人)을 보내어 역사를 도와 주었다.
그 절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무왕조(武王條)에 나오는 기록이다. 고본에는 무강왕(武康王)이라 했으나 백제에는 그런 왕이 없으니
누구는 30대 무왕이 아니라 25대 무령왕(武寧王)일 거라는 추측 아래 그 전대인 동성왕(東城王) 15년에 백제와 신라가 통혼한 사실을 두고
꾸며댄 로맨스일 거라고 보는 이도 있다.
설화 모티브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과 비슷한 입신출세의 기이담(奇異譚)으로 통과제의(通過祭儀)로 이 역시 고대소설의 일반적인 특징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황당한 픽션이다.
"연못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라는 것은 국조나 영웅의 초인적인 탄생 설화와 같되,
굳이 용으로 한 것은 고대의 농경사회에서 지닌 용신앙(龍信仰)에서 온 것이다.
마동이 이야기대로 이름 없는 평민 출신이었을까 하는 건 의문이니, 몰락한 왕손 아니면 후궁에서 낳은 서왕자일 수도 있다.
글 중에 나 오는 서동요(薯童謠)는 4구체 민요형인 향가 · 풍요 · 혜성가와 더불어 삼국시대의 가요로서 가장 오래된 노래로
일종 참요(讖謠)의 성격을 띠고 있다.
황금을 흙처럼 쌓아놓았다는 건 실제 금이 아니고 이른바 물물교환이 교역수단이었을 당시 식료인 마(薯預)가 곧 돈(황금)이라는 시사가 된다.
지명법사의 신통력이란 사람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는 신비로운 도력(道力)으로 고대인이 믿은 주술력(呪術力)에서 나온다.
용화산은 미륵산의 본 이름. 용화(龍華)와 미륵(彌勒)은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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