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벽면에 붙어있는 십장생도
당가의 천장 장식(唐家天障裝飾) : 시대 = 조선 19세기
당가(唐家, 닫집)는 왕의 의자인 어좌가가 놓이는 공간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정전(正殿), 편전(便殿)등과 같이 왕이 자리하는 중요한 건물이나 돌아가신 왕의 초상화를 모시는 건물인 진전(眞殿)의
감실에서 볼 수 있다.
당가(唐家, 닫집) 내부의 천장에는 왕의 존엄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인 용이나 봉황조각이 부착되었다.
봉황무늬 천장장식(鳳凰刻寶蓋, 봉황각보개) : 시대 = 조선
보개(寶蓋)는 궁궐 정전(正殿)이나 편전(便殿), 진전(眞殿) 등 당가(唐家, 닫집)가 설치되는 건물의 천장에 설치되었던 장식물이다.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상의 동물로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상징하였다.
십장생 그림 창호(十長生圖窓戶, 십장생도창호) : 시대 = 조선 19세기 후반
네 개의 문짝이 한 쌍으로 미닫이로 설치되며, 가운데 두 짝마다 불발기 창이 있다.
그림면이 안으로 향하게 설치되어 방 안에서 사방으로 그림이 연속되게 보인다.
왕실의 장생과 복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실내를 꾸미는 역할을 하였다.
십장생 그림 창호(十長生圖窓戶, 십장생도창호) : 시대 = 조선 19세기 후반
잡상(雜像) : 시대 = 조선
잡상이란 기와지붕 위 추녀마루에 흙으로 빚어 올린 작은 장식기와이다. 궁궐의 재앙을 막아주기를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주로
『西遊記[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토신들을 형상화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액운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잡상은 홀 수로 올라가는데, 경복궁 경회루에는 제일 많은 11개의 잡상이 올려져 있다.
더불어 용마루의 양끝에는 화마를 막기위해 바다에 사는 짐승인 치미의 형상도 빚어 올려 놓았다.
잡상(雜像)
『西遊記[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토신들을 형상화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액운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용두(龍頭) : 시대 = 조선
경복궁 근정문 내림마루 끝에 올렸던 용머리 모양의 장식이다.
천산갑(穿山甲)
고궁에 가면 지붕 위에 여러가지 동물과 맨 앞에 석인을 만들어 얻는데 그 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렵풋이 잡상이라 하는 것은 들은적이 있었으나 정확히 무슨 용도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나름 생각에 궐내에 잡귀들이 못들어오게 해 놓았나보다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확하게 알았다.
이번에 고궁박물관에 다녀오면서 이들이 서유기에서 나오는 인물등 토신들을 형상화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액운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라는 것을 알고 재미있어 일일이 나열해보았다.
※▶찬신갑이란 = 포유류 동물 천산갑과에 속한 동물. 몸 전체의 길이는 30~90cm 정도이고 꼬리와 몸통의 길이가 거의 같으며
머리와 배의 일부를 제외한 몸 전체가 갈색의 비늘로 덮여 있다.
머리는 원뿔꼴이고 긴 혀를 이용하여 개미 따위를 햝아먹는다. 비늘은 약으로 쓰인다. 네팔, 중국, 타이완, 미얀마 등지에 분포한다.
※"천산갑(穿山甲)"의 비늘은 천연두나 홍역 따위에 약으로 쓴다.
마화상(馬和尙)
이구룡(二口龍)
사오정(沙悟淨) 정면
사오정(沙悟淨)
저팔계(猪八戒)
손오공(孫悟空)
삼장법사(三藏法師)
경복궁 근정전 상량문(景福宮 勤政殿 上樑文) : 시대 = 조선 1867년(고종 4년)
근정전(勤政殿) 중건 공사 내력을 적은 글로 조두순(趙斗淳)이 짓고 김병덕(金炳德)이 글씨를 썼다.
2001년 근정전 중수공사때 상층 종도리 하단에서 발견되었다.
근정전 상량문(勤政殿 上樑文)
어기어차! 들보를 동녁으로 올리니, 아침 해 떠오르며 화창한 바람에 부챗살 펴듯
삼소(三素)의 구름에 서색(瑞色) 드러내니, 팔방이 혼연 태화(太和) 속이로다.
어기어차! 들보를 서녁으로 올리니, 성물(成物)의 신공옥촉(神功玉燭)에 보금자리 하네.
아름다움 조짐에 풍년을 점치니, 누런 구름 사방의 들에 아름다워라.
어기어차! 들보를 남녁으로 올리니, 궁전지붕 시원하며 하루에 세 번 접견하도다.
남훈전(南薰殿) 해온(解慍)의 노래 기다리지 아니하고, 온 백성은 성은에 젖어 있네.
어기어차! 들보를 북녁으로 올리니, 뭇 별 북극성 중심으로 벌려 있네.
황동(黃銅)이 첫 시동하며 현당(玄堂) 열리니, 대 화합의 아름다운 음악 온 누리에 오르네.
어기어차! 들보를 위에 올리니, 음양 조화의 경륜(經綸) 임금님과 나란히 하네.
하늘의 도 체득하여 궤촉(軌躅) 조화롭게 하니, 날로 불어나는 만기(萬機) 폐함 없어라.
어기어차!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뜰 앞 만리에 조야(朝野)가 균평하구나.
임금인 낮은 백성의 말 듣기 꺼리지 아니 하시니, 우리 동포 광하의 은혜 입으리라.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참여를 밝힌 글(興宣大院君閤下奉, 흥선대원군 합하봉) : 시대 = 조선 1867년(고종 4년)
왕명을 받들어 실질적으로 경복궁 중건을 주도한 흥선대원군의 업적을 공사 감독관 목록에 함께 넣지 않고 격을 달리하해 붉은 비단에 따로 쓴 글이다.
흥선대원군
대원군(大院君) 합하(閤下)께서 고종의 뜻을 받들어 경리(經理)하여 힘써 궁궐의 역사(役事)를 도왔는데,
지금 공사 감독관의 목록에서 감히 그 가운데에 섞어 나열하지 못하는 것은 일의 형편이 그러하다.
그러나 드디어 궁궐을 세우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후세에 증명할 수 있겠는가?
별도로 일폭을 마련하여 삼가 그 작호(爵號)를 썼으니, 기록한 까닭은 역시 드러내어 밝히려는 것이다.
고종 4년(1867년) 정묘 2월 9일
※▶ 고종연간의 경복궁 중건(景福宮 高宗重建)
1395년(태조 4년)에 창건 된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래 중건되지 못하고 폐허로 남아 있었다.
경복궁의 중건 논의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270녀년이 지난 1865년(고종 2년)에 신정왕후의 명으로 재건이 결정되었다.
재건 공사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1867년(고종 4년) 11월 근정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이 완공되었다.
고종은 같은 해 11월 16일 친히 경복궁에 나아가 근정전에서 백관의 하래를 받았으며, 1868년 7월 2일 경복궁으로 처소를 옮겼다.
2001년 근정전의 중수 공사를 위해 종도리를 살피던 중 1867년 중건 당시에 봉안했던 근정전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경복궁 근정문 상량문(景福宮 勤政門 上樑文) : 시대 = 조선 1867년(고종 4년)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의 근정문을 상량(上樑) 할 때 넣은 것으로 2001년 중수공사 중에 발견되었다.
왕에 대한 칭송과 나라의 안녕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창덕궁 낙선재 상량문 현판(昌德宮樂善齋上梁文懸板) : 시대 = 조선 1847년(현종 13년)
현종이 1847년(현종 13년) 낙선재를 세우고 지은 상량문 현판으로 당시 승정원의 도승지였던 조봉하(趙鳳夏, 1817년 ~ ?)가 명을 받아 글씨를 썼다.
※▶ 御製 樂善齋 上樑文(어제 낙선재 상량문) 번역 글
...과인(寡人)은 계승하고 서술하는 것에 어두워, 건물을 지어 선왕의 계책을 드러내고자 한다.
나라를 다스릴 모범을 여니, 오른쪽은 평평하고 좌측은 층계가 마련되었고, 조성의 시설이 그득하니, 위는 거적자리 아래는 대자리의 잔치가 어찌 없을쏘냐.
이어 편안히 거처할 침소를 중희당(重熙堂)에 정하고, 동쪽 끝자락에 새 건물 몇 칸을 짓노라.
붉은 흙을 바르지 않음은 규모가 과도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화려한 서까래를 놓지 않음은 소박함을 앞세우는 뜻을 보인 것이라네.
부지런히 띠풀로 지붕을 이으니, 궁실에서 뜻이 즐거우려 함이 아니요, 넓은 집을 성대하게 올리니, 이 뜨락에 귀화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에 편액의 글자를 아름답게 내리니, 실로 이름을 돌아보아 의로움을 생각하라.
...
새가 놀라고 꿩이 나는 듯한 좋은 제도를 보고, 궁중에서 한가로이 거처하는 매우 편안한 건물을 지으니,
동쪽 벽의 꽃구슬을 붉게 아롱져 모든 패옥이 찬란히 빛나고, 서쪽 곁채의 아름드리 홰나무는 춤을 추어 팔방의 창문이 영롱하네,
화려한 책갑에 상아 제첨(題籤)을 한 간책(簡冊)은 옛날 유양산(酉陽山)의 소장보다 많고, 수 놓은 상자에 비단 글씨축의 도서(圖書)는
임금께서 을야(乙夜)의 독서에 대비하여, 찬란하게 인(仁)으로 터를 삼고 의(義)로 문을 삼으니, 송축하노라,
복은 냇물처럼 복록이 흐르고 남산처럼 장수를 누리시라.
....
도광 27년 정미(丁未年 1847년) 5월, 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예문관직제학 성서원정 규장각검교대교지제교
신 조봉하(趙鳳夏)가 명을 받들어 삼가 쓰다.
㉠ ㉡
창덕궁 연경당에 걸었던 주련(昌德宮演慶堂柱聯) : 시대 = 조선
㉠"맑은 흥은 솟아오르려는 달보다 높고 淸興高於將上月<청흥고어장상월>"
"깊은 정은 개봉하려는 술독에 비할 만큼 넘치네 深情溢比欲開尊<심정일비욕개존>"라는 뜻으로 서로 대련을 이룬다.
현재 창덕궁 연경당에 같은 글씨의 주련이 걸려있다.
㉡"구름 속 도성에는 한 쌍의 궁궐이 있고 雲裏帝城雙鳳闕<운이제성쌍봉궐>",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가 있네 雨中春樹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 라는 대구의 시를 적은 주련이다.
※▶주련은 건물의 기둥을 장식하기 위해 세로로 글귀를 적어 걸어놓는 것을 말한다. 현재 창덕궁 연경당에 동일한 주련이 걸려있다.
창덕궁 "보소당" 현판(昌德宮寶蘇堂懸板) : 시대 = 조선
창덕궁 낙선재에 걸었던 현판이다. "보소당(寶蘇堂)"은 헌종 임금의 당호(堂號)로, "보소(寶蘇)"는 '중국송나라 최고의 문인으로 널리 알려진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년 ~ 1101년)의 문예를 보배로 삼는다' 는 의미이다.
"향천연지"
창덕궁 낙선재 승화루 "향천연지" 글씨 탁본(昌德宮 樂善齋 承華樓 "香泉硏池" 刻字 拓本)
창덕궁 낙선재 승화루에 있는 돌 연못의 글씨 부분을 탁본한 것이다. "향천연지(香泉硏池)"는 향그런 샘물과 같은 벼루모양의 연못을 뜻한다.
*'연(硏)'은 '연(硯= 벼루)'과 통용자이다.
덕수궁 "돈덕전" 현판(惇德殿懸板)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덕수궁 "돈덕전"은 대한제국 초기에 건립된 건물로서 고종이 외국사신을 접대하던 서양식 건물이다. 현재 철거되어 남아있지 않다.
경운궁 현판(慶運宮 懸板)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1905년(광무 9년)
경운궁 즉조당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경운궁은 덕수궁의 원래 이름이며 고종이 직접 쓴 글씨이다.
즉조당은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했던 곳이며, 고종의 환궁 이후에는 정전(正殿)으로도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正殿(정전) = 예를 행하는 궁궐의 중심 공간
정전은 궁궐의 가장 중심 전각으로 법전(法殿)이라고도 부른다. 왕이 조하(朝賀)를 받는 장소이며, 국가의 중요 의식이 행해졌던 곳이다.
경복궁은 근정전(勤政殿), 창덕궁은 인정전(仁政殿), 창경궁은 명정전(明政殿), 경희궁은 숭정전(崇政殿), 덕수궁은 중화전(中和殿)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마당에 박석을 깔고 월대 위에 높이 세워져 있어 궁궐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자 중심 전각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낸다.
정전 앞 박석이 깔린 넓은 마당을 조정(朝廷)이라 하며, 정 1품부터 종 9품까지 백관의 품계에 따른 정렬을 위한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문반은 동편 품계석 옆에, 무반은 서편 품계석 옆에 정렬하였다.
전각 내부 임금의 자리에는 용상(龍床), 일월오봉도 병풍(日月五峰圖屛), 당가(唐家), 보개(寶蓋), 등 왕의 상징물들을 설치하여 왕의 위엄을 나타내었다.
수라간 현판(水剌間 懸板) : 시대 = 조선
꽃모양 은잔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은제 연잎모양 식기(銀製蓮葉形食器, 은제연엽형식기) : 시대 = 조선
은제 연잎모양 식기(銀製蓮葉形食器, 은제연엽형식기) : 시대 = 조선
桃形瓢子(도형표자, 복숭아 표주박)
은제 오얏꽃 장식 병(銀製李花文甁, 은제이화문병)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칠보 꽃병(七寶花甁, 칠보화병) : 淸나라
법랑향로(琺瑯香爐) : 시대 = 淸나라
조선 후기 중국 청나라에서 수입하여 궁궐에 비치하였던 법랑 향로이다. 향로 전체에 화려한 꽃문양으로 장식 되었다.
유약을 금속기에 올리고 열처리를 하여 빛깔을 내는 기법으로, 파란 칠보(七寶)라고도 부른다.
법랑향로(琺瑯香爐) : 시대 = 淸나라
적의차림 대수머리에 사용하는 비녀들이다.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적의(翟衣)차림 대수머리에 사용하는 비녀들이다.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1922년 영친왕 내외가 순종임금을 배알 할 때 영친왕비의 대수머리를 장식한 비녀들이다.
대수머리는 대례복인 적의(翟衣)를 입을 때 갖추는 가체의 일종이다. 머리를 어깨까지 내리고 양 끝에는 봉황장식비녀,
윗부분에는 털비녀와 봉황장식 비녀를 꽂았다. 머리에는 옥으로 장식된 금댕기를 둘러 화려한 왕실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영친왕이 입었던 곤룡포(英親王袞龍袍, 영친왕곤룡포)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곤룡포는 왕이 집무를 볼 때 입는 옷이다. 곤룡포는 금실로 용무늬를 수 놓은 옷아라는 뜻으로
가슴 · 등 · 양 어깨에 발톱이 다섯인 오조룡을 금실로 수 놓은 보(補)를 붙였다.
이 곤룡포는 영친왕이 1922년 순종을 알현할 때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친왕비 당의와 남색대란치마(英親王妃唐衣 · 藍色浚襴裳, 영친왕비당의 · 남색대란상)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조선시대 여성들이 예복으로 착용하였던 당의와 남색의 대란치마이다. 당의는 조선시대 여성복의 소례복(小禮服)으로 평복 위에 입었으며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었다. 왕비나 빈의 당의에는 꽃무늬[花文, 화문]와 박쥐 떠는 수[壽] · 복[福]등의 글자를
민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금직(金織)이나 금박(金箔)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스란은 예장용 치마에 장식한 금직 또는 금박의 단을 뜻하는 것으로 한 단 더한 것은 스란치마, 두단 더한 것은 대란치마라고 하였다.
스란치마 밑에는 대슘치마와 무지기라는 속치마를 겹쳐 입어 치마를 풍성하게 부풀려 입었다.
영친왕비 당혜(英親王妃 唐鞋)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표면은 홍색 모란문 은직단으로 만들고, 신코와 뒤축에는 각각 연두색과 청색 비단으로 장식하고 같은 색의 가는 선으로 테를 둘렀다.
바닥은 솜을 이겨 붙여 푹신하게 하였다.
영친왕 익선관(翼善冠)과 목화(英親王 木靴) : 시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20세기 초
영친왕이 썼던 익선관(英親王 翼善冠)
익선관은 곤룡포를 입을 때 머리에 쓰는 모자로, 가죽에 옷칠을 하여 만든 후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 통풍이 잘 되도록 하였다.
이 익선관은 영친왕이 1922년 순종을 알현할 때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친왕이 신었던 목이 긴 신발(영친왕 목화, 英親王 木靴)
왕과 문무관리들이 관복을 입을 때 신던 목이 긴 신발이다. 이 목화는 영친왕이 1922년 순종을 알현할 때 착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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