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의 최후의 날 영화의 한 장면
화산 폭발로 멸망한 도시 = (네이버 자료)
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산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내렸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폼페이는 이 화산 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소멸한 도시 중 하나다.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엄청난 양의
흙과 돌은 순식간에 폼페이를 뒤덮어버렸다. 운 좋게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들은 지상을 뒤덮은 고온 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타 죽었다.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20,000명의 약 10퍼센트인 약 2,000명이상이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당시 폼페이는 B.C. 89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 철저하게 로마화가 진행된 도시였으며, 로마의 상류계급이 별장을 건설했던 인기 있는
휴양지이기도 했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인 63년 2월에 대지진이 일어났지만 도시는 착실하게 재건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6년 뒤 도시 전체는 화산재 밑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폼페이 멸망의 참극에 대해서는 당시 로마의 정치가 소(小)플리니우스가 역사가 타키투스에서 보낸 편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소 플리니우스 = 로마 제정기의 정치가이자 문인, 소아시아의 비티니아 총독,
베스비오 화산의 폭발을 묘사한 편지와 기독교도 처리에 관해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가 유명하다.
당시 소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에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나폴리만 입구 미네눔에 머물고 있었다. 폭발 당일 소플리니우스의 어머니가
베수비오 화산 상공에 이상한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소플리니우스에게 알려주었다. 소플리니우스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재빨리 어머니와 함께 먼 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후에 그는 편지 속에서 그때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그의 숙부인 대플리니우스는 당시 함대의 선장으로 배를 타고 나가 구조 활동을 펼쳤지만 독성이 강한 화산 가스에 질식해 그만 죽고 말았다.
당시 로마 황제 티투스는 폼페이 참극에 대해 보고를 받고 곧바로 구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피해가 너무나 커서 화산 분출물에 의해
도시는 완전히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로마 황제까지 나서서 폼페이의 몰락을 막아보려 했지만 폼페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로마의 도시
역사에 퇴장했던 폼페이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92년이었다.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 작품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연한 계기로 폼페이의 소재가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본격적인 발굴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1748년에는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독점 사업으로 폼페이에 대한 발굴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굴은 약탈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름다운 출토품만이 중요하게 취급될 뿐 나머지 유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또 모자이크나 벽화 같은 미술품들도 충분한 조사도 없이 모조리 프랑스 왕궁으로 실려가버렸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폼페이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국왕 빅토르 에마뉴엘 2세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를
발굴대장으로 임명하고, 조직적인 발굴을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유적에 대한 구획 정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리와 보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단은 유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후에도 폼페이 발굴은 계속되어 현재는 도시의 약 5분의 4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이다. 이곳에서 많은 출토품들은 현재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발굴조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폼페이는 당시 로마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유적이었다. 화산 폭발로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도시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한 변이 약 2킬로미터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 서쪽에는 포럼이라 불리는 광장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신전과 시장, 시청 등이 모여 있었다.
조사를 통해 바로 이 지역이 폼페이의 종교·정치 · 경제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시 곳곳을 이어주는 도로들은 모두 포장되어 있었으며, 차도와 보도로 구분되어 있었다.
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사거리에서는 공동 수도와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내기 위한 수도관 시설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밖에 공중 목욕탕과 체육관, 두 개의 극장, 1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도 발굴되었다.
발굴 과정에서 발견한 빵집과 술집에서는 화산 폭발이 갑자기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남아 있었다.
화덕에 그대로 남아 있는 불에 구운 빵과 술집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잔 등이 바로 그 증거다.
한가로운 일상을 한순간에 참극으로 몰아넣은 급작스런 화산 폭발과 그로 인한 도시의 파괴가 단지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을 폼페이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배우와 비극 가면 : 벽화
폼페이 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
기원전 80년에 로마제국으로 흡수된 폼페이는 제국의 도시로 재정비되어 곳곳에 많은 공공건물과 대저택이 건설되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70년에는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이 지어져 폼페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검투사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대극장에서는 가면을 쓴 배우들의 연극이 공연되어 사람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대 저택에서의 삶과 예술 : 정원이 그려진 벽화 3면 중 1면
귀족이나 부자들이 살던 대저택에는 화려한 벽화와 조각품들이 가득했습니다. 집안의 벽에는 신화속 장면이나 남녀의 사랑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정원에는 사람의 흉상과 동물을 조각한 대리석 조각품이 잘 가꾸어진 식물 사이에 배치되었습니다.
특히 "황금팔찌의 집(House of the Golden Bracelet)"에 있었던 "정원이 그려진 벽화"는 총 길이가 약 10m에 달하는 큰 그림입니다.
그림에는 푸른 정원 안에서 한가롭게 나무에 앉아있는 새와 분수,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기둥 등이 그려져 있어
마치 실제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술의 신인 바커스 : 청동
폼페이는 와인이 특산품으었기 때문에 술의 신 바커스에 대한 숭배의식이 조각품이나 벽화에 다양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술의 신인 바커스 : 청동
대 저택
고대 그리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기둥과 대리석 수영장, 오리를 안고 있는 큐피드 동상으로 유명한 대 저택이라네요
부유한 시민이었던 사람의 집으로, 아름다운 크레스코 벽화가 실내를 장식하고 있어 폼페이의 어떤 저택보다 아름답습니다.
이 저택은 화산이 폭발하기 17년 전인 서기 62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진 것을 복원한 집이랍니다.
안 뜰에 있는 기둥과 조각도 멋지지만 여러 개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가 더 멋지답니다. 큐피드가 일하는 모습을 비롯하여, 신화 속의
멋지고 극적인 장면을 그려놓았는데 원근법을 잘 활용하고 있어 당시 로마인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답니다.
신과 숭배의식 : 비너스 여신상 : 제질 = 대리석<참고 = 사진을 찍을 수없어 도록에 나와 있는 것들입니다.>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신들을 숭배했고, 도시 곳곳에 신전을 세웠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는 특히 폼페이와 관계가 깊습니다.
로마의 장군 술라는 폼페이를 "콜라니아 코르넬리아 베네리아(Colonia Cornelia Veneria)"라는 이름으로 비너스에게 바쳤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폼페이는 와인이 특산품으었기 때문에 술의 신 바커스에 대한 숭배의식이 조각품이나 벽화에 다양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최후의 날 인간화석으로 남은 사람들◈
아름다운 예술과 풍요로 가득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 그러나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화산 폭발로 한 순간에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비극의 도시 폼페이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기획 특별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순간 느닷없이 죽움을 맞은 순간을 생생하게 전댤해주는 캐스트(웅크린 남자, 엎드려 죽은 여인 등
화산재 속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당시 모습을 재현한 석고상)와 조각품, 벽화, 장신구 등 30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회 잘 보고 왔습니다.
간다 간다하면서 마지막에 치달아 4월 1일날에야 갔다왔으나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네요 이럴까봐 계속 미루어왔었는데 ㅠㅠ
못가보신분들도 EBS에서 [다쿠 오늘]을 한번 시청해 보고 가시면 더 이해도 빠르고 신감도 남니다. 설명도 잘 되어는 있습니다.
폼페이 최후의 날 : 웅크린 남자 : 재질 = 석고, 높이 = 90cm
폼페이 유적에서 시도한 효과적인 복원기법 중 하나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교수가 찾아 낸 캐스트 제작 기법입니다.
쭈그린 채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남자의 캐스트와 밀려드는 화산재를 막기 위해 엎드린 채 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의 캐스트,
온 몸이 뒤틀린 채 죽어간 경비견의 캐스트 등은 죽음의 순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폼베이 최후의 날
온 몸이 뒤틀린 채 죽어간 경비견의 캐스트 등은 죽음의 순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폼페이 사람들의 식생활 : 가룸을 담았던 항아리 : 도기
로마제국의 번영이 이어지면서 폼페이 시민들도 이에 따른 풍요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는 다양한 식재료들이 판매되었고,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상점도 있었습니다. 특히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인 가룸(Garum)은
폼페이에서 만들어진 것이 유명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와인과 더불어 폼페이의 중요한 특산물이었습니다.
폼페이 사람들의 식생활 중에서 수닭과 과일이 있는 정물화
의술 : 수술용 도구 재질 = 청동
고대 로마의 의술은 그리스로 부터 전해진 것으로 약재를 이용한 치료법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외과 수술도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수술도구들은 현재의 것과 비숫할 장도로 상당한 수준에 있었습니다.
먹이를 잡은 사자 조각상 : 대리석
검투사 투구 : 청동
유골 항아리 : 재질 = 유리
폼베이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그대로 매장하기도하고, 화장한 후 그 재를 병에 담아 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시내에는 무덤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성문 밖에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움의 추구 병 : 청동
고대 로마 여성들의 장신구는 매우 다양했습니다. 머리에는 금으로 된 그물망이나 머리띠, 다양한 모양의 머리핀 등을 사용했고,
몸에는 금으로 된 반지를 비롯해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으로 치장했습니다.
또한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다양한 화장용기와 거울 같은 도구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폼페이 여인들의 모습을 잠작하게 합니다.
대 저택에서의 삶과 예술 : 정원이 그려진 벽화 3면 중 1면
귀족이나 부자들이 살던 대저택에는 화려한 벽화와 조각품들이 가득했습니다. 집안의 벽에는 신화속 장면이나 남녀의 사랑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정원에는 사람의 흉상과 동물을 조각한 대리석 조각품이 잘 가꾸어진 식물 사이에 배치되었습니다.
특히 "황금팔찌의 집(House of the Golden Bracelet)"에 있었던 "정원이 그려진 벽화"는 총 길이가 약 10m에 달하는 큰 그림입니다.
그림에는 푸른 정원 안에서 한가롭게 나무에 앉아있는 새와 분수,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기둥 등이 그려져 있어
마치 실제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뱀 모양의 팔찌 : 금
폼페이의 경제활동 : 시장그림 벽화
폼페이는 항구도시이자 상업과 농업의 도시였습니다.
베수비우스 지역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는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품페이의 중요한 수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제활동에 있어서 엄격한 계량과 측정이 이루어졌음은 저울과 저울추에 새겨진 숫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폼페이를 관람하고 특별기획을 하고 있는 곳으로 ...
요세프 융만에게 헌정된 잔 : 1836년경 = 북부 보헤미아 - 노비스베트작 투명유리, 도금, 커팅, 조각
체코국립박물관 소장
노비스베트 유리 공방에서 제작한 것으로 정교한세공 기술이 돋보이는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 잔은 요세프 융만(1773년~1847년)을 위한 선물로 제작되었는데, 그는 인문학자이자 작가로 체코의 민족부흥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1835년-1839년에 융만은 체코어 - 독일어 사잔을 발간하여 체코어 문법의 토대를 만들었고, 이로써 체코어가 당시 지배적이었던
독일어와 동등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글귀가 잔에 장식되어 있다.
요세프 융만에게 헌정된 잔 받침부분의 세밀
체포되는 예수 : 로키차니 지역 미토의 성스테파노 성당, 시대 = 1500년 경, 재질 = 나무에 채색, 도금
양면의 제단화로서 앞면에는 예수가 겟세마네에서의 철야기도 후 군인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이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돈을 받고 예수를 판 유다가 돈주머니를 목에 걸고 있다. 유다의 뒤에는 베드로가 있다.
베드로가 예수를 보호하고자 대제사장 하인의 귀를 칼로 베자 하인은 고통스러워하며 주저앉고, 예수는 그의 귀를 고쳐준다.
배에서 상안들을 구하는 성 니콜라우스 : 로키차니 지역 미토의 성 스테파노 성당, 시대 = 1500년 경, 재질 = 나무에 채색, 도금
뒷면의 그림은 성 니콜라우스가 행한 기적을 묘사한 것으로 큰 폭풍에 휩쓸리는 배에 성 니콜라우스가 나타나
파도를 가라앉히고 배에 탄 이들을 구하고 있다.
성 니콜라우스가 행한 기적을 묘사한 것으로 큰 폭풍에 휩쓸리는 배에 성 니콜라우스가 나타나
파도를 가라앉히고 배에 탄 이들을 구하고 있다.
◈체코의 기독교 문화
체코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9세기 무렵이다. 이후 체코 영토에는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 문화가 뿌리내렸다.
체코에 남아 있는 수많은 성당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정교하게 만들어진 성물 등은 체코의 역사 깊은 기독교 문화를 잘 보여 준다.
체코의 기독교 역사에서 종교 개혁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14세기 말 카톨릭 교회의 부패가 심해지면서 얀 후스[Jan Hus]를 중심으로
성경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개혁 운동이 체코 내에서 대대적인 호응을 얻자 위협을 느낀 로마 카톨릭 세력은
1415년 후스를 화형헤 처하고 십자군을 조직하여 후스파를 공격하였다. 이 전쟁으로 체코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유럽 최초로 신앙 선택의 자유를 얻어내는 역사적 성과를 올렸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수놓은 제의 : 시대 = 1500년~ 1530년, 체코국립박물관 소장
사제가 미사 때 입는 제의복으로, 비단, 금, 은, 보석등 최고급의 재료로 만들었다. 볼룩하게 무늬를 넣은 십자 자수는 금, 은, 견사와 모시로
만들어져 양피지와 양모로 보강되었으며 당시의 최고 수준의 자수를 보여준다.
십자가에 목박힌 예수의 몸은 베드로와 바울,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와 성요한, 그리고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받는 천사들로 둘러싸여 있다.
베드로와 바울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 발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받는 천사
부활한 예수 : 시대 = 1420년대 재질 = 양피지에 과슈, 금은박
비용이 많이 드는 채색 필사본은 주문자의 사회적 지위와 교육수준을 보여주며, 또한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와 비교할 때도 유용하다.
예수의 태형, 십자가에 못박힘, 부활등 예수 생애의 주요 사건이 그려져 있다.
채찍질 당하는 예수 : 시대 = 1420년대 재질 = 양피지에 과슈, 금은박
비용이 많이 드는 채색 필사본은 주문자의 사회적 지위와 교육수준을 보여주며, 또한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와 비교할 때도 유용하다.
예수의 태형, 십자가에 못박힘, 부활등 예수 생애의 주요 사건이 그려져 있다.
채찍질 당하는 예수, 부활한 예수 : 시대 = 1420년대 재질 = 양피지에 과슈, 금은박
▣유리 제작의 기원과 중세▣
체코의 유리제작은 중세에 본격적으로 발달하였습니다. 경제적, 문화적인 번영과 함께 유리 제작이 증가하고,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고딕 성당의 창문을 장색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 보헤미아 혹은 중유럽, 시대 = 15세기 전반, 재질 = 유리, 납
체코국립박물관 소장
예수 그리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의 일부로서, 십자가 아래에서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회화에서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아 당시의 패널 그림이나 책 삽화와 비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 서부 보헤미아 - 제브니체, 성 야곱 성당, 시대 = 14세기 중반, 재질 = 유리, 납
고딕 성당에서 눈길을 끄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을 입힌 투명한 유리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조각을 납선으로 연결하여 슈아르즐로라는 기법의
검은색 그림으로 세부를 묘사하였다.
전시된 유물은 체코에 남아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 보헤미아 혹은 중유럽, 시대 = 15세기 전반, 재질 = 유리, 납
체코국립박물관 소장
예수 그리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의 일부로서, 십자가 아래에서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회화에서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아 당시의 패널 그림이나 책 삽화와 비교할 수 있다.
성합 성체 안치기 성작
성체 안치기 : 시대 = 15세기, 보헤미아 황동, 도금, 유리
유리 안에 있는 반달 모양 받침에 성체를 넣도록 제작되었다. 날씬하고 긴 형태가 고딕 성당의 탑을 연상시킨다.
프로테스탄트는 금은과 보석으로 만든 제구를 쓰는 것에 대해 로마 카돌릭 교회를 비판하였다.
이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안치기는 일반 금속으로 만들었다.
유리 안에 있는 반달 모양 받침에 성체를 넣도록 제작되었다. 날씬하고 긴 형태가 고딕 성당의 탑을 연상시킨다.
이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안치기는 일반 금속으로 만들었다.
성합 : 시대 = 1250년 - 1300년 보헤미아 재질 = 구리, 도금
성합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상징인 성체를 보관하는 제구이다. 미사 때는 사제가 제단 위에 놓인 성합에서 성체를 꺼내어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성별(聖別)한 성체는 잠가서 보관하였는데, 이 성합에도 자물쇠의 걸쇠가 달려 있다.
성작 : 시대 = 15세기 후반 슬로바키아 재질 = 은, 도금, 유리
전형적인 고딕 후기의 성작으로 작은 구슬 장식과 녹인 금사를 붙이는 누금세공 기법으로 장식하였다. 볼래 그리스와 비잔틴에서 유래한
이 기법은 베네치아에 전해졌다가 15세기에는 전 중부유럽에서 유행하였다.
성작의 부분손잡이와 받침부분
문장이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 : 시대 = 1499년 보헤미아 - 풀젠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교회 재질 = 유리, 납
금색 방패와 검은 수탉으로 표현된 가문의 문장과 봉헌자의 이름[Hermana ze Zerovnika]이 있다.
그는 이 작품을 주문하여 현지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교회의 유리창에 쓰도록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과시를 위해 교회에 기부를 했던 당시의 관습을 보여준다.
성모자상 : 1500년 이전 보헤미아 동남부 지방 - 우홀리쉬테, 성 레오나르도 성당, 재질 = 나무
이 성모자상은 보헤미아 남부의 후기 고딕 조각의 예로 아름답고 우아하며 예술적 가치가 높다. 성모마리아는 왕관을 쓴 천상의 여왕
으로 묘사되었으며, 아기 예수를 안고 있다.
성모자상 : 부분적인 세밀 촬영
성모자상 : 보헤미아 동남부 지방 - 우홀리쉬테, 성 레오나르도 성당,
귀족의 문장이 있는 술잔 : 시대 = 1579년
훔펜이라고 불리는 술잔으로 귀족의 대저택에서 열리는 연회에서는 이러한 술잔을 가득 채워 돌려가며 마시는 전통이 있었다.
채색된 가문의 문장은 그 소유자를 나타낸다.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체코의 귀족들은 축하연에서 아름다운 에나멜 그림이 그려진 술잔으로 축배를 들었습니다. 예술의 후원자 루돌프 2세의
궁정에서는 보석 세공기법을 응용하여 잔과 접시를 세공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이후 보헤미아 유리 세공기법의 발전을 예고하였습니다.
독수리와 선제후의 문장이 있는 술잔 : 시대 = 1587년 체코국립박물관 소장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와 함께,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국가와 도시의 문장을 그려 장식한 홈펜이다.
붉은 바탕에 흰사자가있는 보헤미아의 문장을 눈에 띄는 위치에 그려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체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생애를 묘샤한 술잔 : 17세기 전반
전면에 인간의 생애를 시기별로 나눈 우화적인 그림이 묘사된 술잔이다. 독일어로 쓰인 글자는 도덕적이거나 해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의 생애를 묘샤한 술잔 : 17세기 전반
전면에 인간의 생애를 시기별로 나눈 우화적인 그림이 묘사된 술잔이다. 독일어로 쓰인 글자는 도덕적이거나 해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사자 머리 장식이 있는 술잔 : 시대 = 1600년 경
다리가 달린 술잔은 체코에서 16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났으며 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네델란들에서 수입된 유리 제품을 모방한 것이다.
돌기 문양과 두드러진 에나멜, 두껍게 도금된 장식이 시각적 효과를 높인다.
배 모양 잔들 : 시대 = 1664년~ 1680년 이후 페르디난도 에우세비오 미세로니 가족공방
배 모양 잔 : 시대 = 1664년~ 1680년 이후 페르디난도 에우세비오 미세로니 가족공방
정교하게 연마한 얇은 잔으로, 네 개의 꽃잎 모양을 표현하였다.
배 모양 잔 : 시대 = 1664년~ 1680년 이후 페르디난도 에우세비오 미세로니 가족공방
황제 루돌프 2세는 밀라노의 보석 세공사 미세로니 형제를 프라하로 불러와 보석 세공을 비롯하여 장신구, 식기 및 종교용품을 제작하도록 하였다.
이 잔은 미세로니 가문의 후손인 페르디난도가 만든 그릇을 사후에 그의 아내가 조립하여 만든 것이다.
음료나 사탕, 과자를 담는 데 사용되었다.
십자가 목걸이 : 시대 16세기 전반
이러한 십자가는 로마 카톨릭에서 성직자를 상징하는 표시였다. 삼엽문 형태로 끝이 장식된 십자가와 보석의 색감,
전통작인 사슬 구성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보여준다.
십자가 목걸이 : 시대 16세기 전반. 삼엽문 형태로 끝이 장식된 십자가와 보석의 색감,
항아리 : 시대 = 1638년, 모라비아 또는 슬로바키아 서부지방 재질 = 하반 파이앙스, 주석,
하반 하이앙스는 이탈리아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떠나온 재침례교도가 만든 도자기로,
질좋은 재료에 다양한 식물과 문장을 채색하여 장식했다.
◈"보헤미아의 교회는 유럽 어느 왕국의 교회보다도 아름답고 훌륭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얇은 유리로 된 커다란 창을 통해 빛이 예술적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보헤미아 어디에서든지 이러한 유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보헤미아를 방문했던 교황 비오 2세,『보헤미아의 기원』, 1548
동방 박사의 경배가 그려진 유리창 : 시대 = 1630년, 중부 보헤미아 - 부로우미 재질 = 유리, 에나멜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 동방 박사들이 황금, 유향, 몰약을 가지고 온 모습을 묘사하였다.
삼손이 그려진 유리창 : 시대 = 1604년, 중부 보헤미아 재질 = 유리, 에나멜
성경에는 삼손이 이스라엘 민족을 탄압한 불레셋 사람 천 명을 나귀의 턱뼈로 때려 죽였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삼손이 나귀의 턱뼈를 쥔 채 무릎을 끓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펠리칸이 그려진 유리창 : 시대 = 1604년, 중부 보헤미아 재질 = 유리, 에나멜
자신의 가슴을 쪼아 새끼들에게 그 피를 먹이는 펠리칸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주제는 예수의 희생과 부활을 상징하여 인기가 있었다.
귀족의 문장이 그려진 유리창 : 시대 = 1603년, 보헤미아 재질 = 유리, 슈아르즐로
귀족 대저택에 이용되었던 유리창으로 가문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다. 도시민의 집에는도시나 길드의 문장을 유리창에 장색했다.
섬세한 세부 묘사가 두드러진다.
예수의 부활이 그려진 유리창 : 시대 = 1583년, 북부 보헤미아 - 오를리츠케 산의 데스트나 재질 = 유리, 에나멜
르네상스 시대에 불투명한 에나멜로 유리를 장식하는 제네치아의 전통은 큰 방향을 일으켰다.
종교 건축물에 쓰이는 유리에는 주로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장면, 혹은 종교적 상징이 묘사되었다.
터키 군대를 무찌르는 루돌프 2세 : 아드리안 더프리스(1556년~1626년 회화), 에기디우스 사들레르(1568년~1628년),
시대 = 1603년 경, 프라하 재질 = 동판화에 채색, 체코국립박물관 소장
이 초상화는 루돌프 2세가 헝가리 왕국에 침입한 터키 군을 막기 위해 전쟁에 앞장선 모습을 권위있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루돌프 2세는 과학, 문화, 예술을 후원한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의 치세하에서 프라하는 가장 발전하고 부유한 도시중 하나가 되었다.
터키 군대를 무찌르는 루돌프 2세
지혜가 무지를 이기는 알레고리 : 바르톨로메우스(1546년~1611년, 회화), 에기디우스 사들레르 2세(1570년~1629년, 동판화)
시대 = 1600년, 프라하 동판화에 채색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했던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의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한 동판화이다.
루돌프 2세의 왕실에서는 예술과 과학을 후원하였는데, 이 장면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당나귀 귀가 달린 것으로 표현된
무지에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4원소 중 불의 알레고리 : 시대 = 17세기 말 보헤미아 재질 = 유리에 그림, 금박
밑그림 위에 유리판을 대고 그림을 그린 뒤, 유리판을 뒤집어 채색된 면이 아래로 가도록하는 포드말바(Podmalba)를 이용한 작품이다.
금박을 넣은 부분과 검은색을 칠한 부분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최고의 신 제우스와 아름다운 여인 세멜레가 에로스의 화살에 맞아 사랑에 빠지지만,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로 세멜레가 죽게된다는 비극적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스웨덴 군에 포위된프라하 : 카렐 슈크레타(1610년 ~ 1674년), 시대 = 166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재질 = 종이에 동판화
체코의 바로크 화가 카렐 슈크레타의 작품이다.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30년 전쟁(1618년~1648년)은 체코 인구의 삼분의 일이 감소할 정도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이 그림은 30년 잔쟁의 막바지였던 1648년에 스웨덴 군이 루돌프 2세의 진귀한 수집품을 차지하고자
프라하를 포위했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장식용 향신료 그릇 : 시대 = 1700년~1730년, 남부 보헤미아-노베흐라디. 루츠니체 또는 포호르지 유리작업장으로 추정
재질 = 투명유리, 루비색 유리 섬유, 핫워킹
테이블 장식품 중 하나로 투명도가 높고 루비색 유리 섬유가 들어가 있어 촛불을 비추면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페르디난트 백작의 술잔 : 시대 = 1679년 중부 보헤미아 - 브로우미 재질 = 노란색 유리, 에나멜
이 술잔에는 후기 르네상스의 전통을 잇는 에나멜 그림이 그려져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과 그리스도가 함께
묘사되어 있으며, 다른 면에는 가문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다.
페르디난트 백작의 술잔 : 시대 = 1679년 중부 보헤미아 - 브로우미 재질 = 노란색 유리, 에나멜
내가 바라보는 쪽에서 = 왼쪽 면에는 가문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다.
터기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 장식된 술잔 : 시대 = 1700년경 남부 보헤미아 - 야노우슈코바후트 유리공방으로 추정
재질 = 투명유리, 루비색 유리 섬유, 커팅, 조각
이 잔에는 검과 홀, 마리가 둘 달린 독수리, 십자가가 장식된 지구의가 묘사되어 있다. 이 장식은 1683년 신성로마제국이 수도 빈을 포위했던
오스만 제국 군대를 격퇴하고 발칸반도로 쫓아버린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다.
왕관을 쓴 아기 예수상 : 시대 = 1740년~1750년, 체코국립박물관 소장
왕관을 쓴 아기 예수상 왕관의 세밀
왕관을 쓴 아기 예수상
성 프로코피우스 전설이 있는 팔리디온 : 미니어처는 1669년 이후, 부조는 1720년~ 1740년 때, 틀은 = 1750년 경 제작됨
이 작품은 카톨릭 신자가 개인의 신앙심을 위해 만든 것으로, 체코의 수호 성인 프로코피우스의 삶을 그린 13개의 작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금한 은으로 만든 부조는 체코의 수호 상징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성 프로코피우스 전설이 있는 팔리디온
도금한 은으로 만든 부조는 체코의 수호 상징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성작 : 리날도 란초니(1671년~1737년), 시대 = 1723-1733년, 프라하 재질 = 은, 도금
카톨릭 신자들은 영혼을 구제받고자 교회 안에 제단이나 제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성작을 만든 금세공사 리날도란초니는 풍성하고 정교한 세공으로 유명하다.
▣19세기의 보헤미아 유리▣
보헤미아 유리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제작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정교한 커팅과 유리에 색을 넣는 다양한 방법으로
마치 유리로 만든 장신구 산업도 발달하였습니다.
통 모양의 그릇 : 시대 = 1835년~1840년, 남부 보헤미아 - 이르지코보우톨리 재질 = 마노 유리, 도금, 커팅
체코 국립박물관 소장
1830년대에 마노 유리는 인기가 있었다. 유리 자채에 색을 넣어 자수정, 오팔, 마노등 천연석을 모방했다.
남부 보헤미아 부쿠오이 백작의 유리 공방에서 주로 생산했다.
통 모양의 그릇
배모양 잔 : 시대 = 1720년 ~ 1730년 대 동부 보헤미아 - 쿤슈타트, 이그니츠 프라아슬러 재질 = 투명 유리, 슈아르줄로, 금, 커팅
검정색에 가까운 적갈색 에나멜을 사용하여 단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유리나 도자기 표면에 풍속화, 풍경화, 중국풍 그림 등을
그려 장식하는 데 이용되었다.
배모양 잔
꽃무늬 잔 : 시대 = 1730년~1740년대, 동부 보헤미아 - 쿤슈타트, 이그나츠 프라이슬러 작업실에서 그림
재질 = 투명 유리, 슈아르줄로, 금, 커팅
넓은 면에는 장식적인 선들 사이로 담배를 피우는 푸토가 보이고 옆면에는 이국적인 새가 묘사되어 있다.
뚜껑에는 바다에서 항해하는 장면과 사냥하는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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