瑞鳳塚(서봉총)
경상북도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 지정해제), 경주대릉원일원(사적 제512호 재지정) : 시대 = 신라시대 5세기
일제 강점기인 1926년조선총독부 박물관의 고이즈미〔小泉顯夫〕등이 발굴하였다. 이 고분 발굴에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가 참가한 것을 기념하여,
스웨덴의 한자명인 서전(瑞典)의 ‘서(瑞)’ 자와 이 고분 출토 금관의 봉황(鳳凰)장식에서 ‘봉(鳳)’ 자를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라 이름지었다.
이 고분에서는 ‘연수원년신묘(延壽元年辛卯)’의 기년명(紀年銘) 은합이 출토되어 신라고분의 편년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봉총은 종래 경주 노서리고분군의 일원으로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9호로 지정되어 왔으나 근래 2011년 7월 28일경주 노서리고분군을 비롯한
5개 고분군이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통합되면서 사적 512호로 재지정되었다.
경주 노서동 제129호분이다. 1921년 경주 금관총(金冠塚)이 우연히 발견된 이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는
1924년 금령총(金鈴塚)과 식리총(飾履塚)을 발굴하였으나 모두 봉분이 없어진 폐고분이어서, 신라고분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봉분이 일부 남아 있는 이 고분을 1926년 발굴하였다고 한다.
발굴 전에 이 고분 주위에 들어선 민가들에 의해 봉분은 크게 훼손되어 있었으며, 발굴 결과 이 고분의 남쪽 부분 일부는 이 고분보다
뒤에 축조된 다른 고분과 중복되어 있어 두 고분이 표형(瓢形) 쌍분(雙墳)이며, 서봉총은 그 표형분의 북분으로 추정되었다.
남분은 1929년 영국인 데비드(Devid)가 경비를 부담하여 발굴조사하고 데비드총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두 고분의 중복 범위가 좁고 무덤덧널의 방향도 크게 다르며 출토유물의 격도 차이가 있어 원래 표형 쌍분으로 축조된 것인지는 의문점이 많다.
조사 결과 이 고분은 매장부체부인 덧널의 주위와 위에 냇돌을 쌓아 적석부를 구축하고 그 위로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봉분 주위로는 냇돌로 호석을 쌓아 두른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적석목곽분]으로 밝혀졌다.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가운데 대형급에 속한다.
출토유물을 살펴보면, 나무널 안에서는 동쪽으로 머리를 둔 피장자가 착장하고 있었던 금관과 관수식(冠垂飾) 금제 태환식(太環式) 귀걸이,
마노 대롱옥 · 수정 다면옥 · 각종 곡옥을 꿰어 만든 목걸이, 금 · 은 · 유리구슬을 꿰고 끝에 비취곡옥을 단 가슴장식,
금제과대(金製銙帶)와 요패(腰佩), 금·은 팔찌와 유리팔찌, 금반지 등의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금제 태환식 귀걸이는 이외에도 금관의 동쪽과 과대 아래에서도 요패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나무널 안에서는 이와 같은 장신구 외에는 소형의 금동장 도자가 1점 출토되었을 뿐이며 대형요패가 피장자의 오른쪽 허리 아래에 착장되어 있었다.
이는 관수식과 귀걸이가 태환식인 점과 함께 여자 무덤이 확실한 황남대총(皇南大塚) 북분과 같은 특징이어서 서봉총의 피장자가 여자였음을 말해준다.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 중 금관은 다른 신라 금관과 마찬가지로 테 위에 나무모양 장식과 사슴뿔모양 장식을 세운 것이나,
내부에 속모자 모양의 골격을 설치한 것이 다르다. 이 골격은 금관의 테 안쪽에 금판을 전후좌우로 세워 위에서 ‘십(十)’자 모양으로 교차시키고,
그 교차점에 세 마리의 봉황형 장식이 달린 금판을 부착시킨 것이다. 유리팔찌는 다른 신라고분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며,
요패들과 함께 피장자 허리부분에서 나온 태환식 귀걸이는 태환을 사격자(斜格子)로 투조한 것으로 이례적이다.
이 부장품들 가운데 은제대합(銀製大盒)에서는 뒤에 뚜껑 안쪽 면과 그릇 바닥에서 바늘 같은 것으로 새긴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연수 원년인 신묘년 3월에 대왕(大王)이 이 은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봉총 은합의 이 명문은 경주 호우총(壺杅塚) 출토 청동호우에 새겨진 을묘년명(乙卯年銘)과 함께 지금까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발견된
단 2개의 기년명 가운데 하나로 신라고분의 편년 연구 등에 극히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만 불행히도 연수는 지금은 알 수 없게 된 잃어버린 연호로서, 고구려의 연호였을 것으로 추정될 뿐 그 사용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여기서 신묘년은 서기 391년, 451년, 511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서봉총의 상대연대는 황남대총 남 · 북분보다는 늦고 천마총(天馬塚) · 금령총보다는 이른 시기로서
신라에서 돌무지덧널무덤 축조기의 중기 쯤에 해당된다.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은 6세기 전반경에는 이미 소멸되었으므로, 은제대합의 신묘년은 서기 511년은 너무 늦고
대체로 451년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서봉총은 이 연도에서 멀지 않은 5세기 중엽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분의 규모와 출토유물로 보아 당시 신라의 왕비나 또는 왕비에 버금가는 최고 지배층의 여성묘였을 것이다.
과학으로 풀어보는 瑞鳳塚 金冠(서봉총 금관)
국립중앙박물관은 경주 서봉총에서 출토된 금관을 주제로 한 테마 전시 "과학으로 풀어보는 서봉총 금관"을 선보입니다.
서봉총은 1926년에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조사했던 신라 무덤으로 봉황장식이 달린 금관이 출토된 곳입니다.
이 금관은 신라의 여러 금관 중 유일하게 정수리 부분에 봉황 모양을 장식하여 매우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오늘날과 마찬가기로 고대에도 봉황은 최고 권력자들 상징하는데, 봉황이 나타나는 것은 천하가 크게 안정되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믿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봉황 장식이 달린 금관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토대로 금관이 제작당시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라 금관의 제작에는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지, 또 이를 밝히기 위해 박물관에서는 어떤 과학적 분석법을 사용하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 전시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과학으로 풀어 보는 서봉총*
金冠(금관, 보물 제 339호)과 1. 금허리띠와 장식 = 金製銙帶裝飾[금제과대장식]
그리고 금관 양 옆으로 금 귀걸이 = 金製太環瓔珞附耳飾[금제태환영락부이식]
중간. 유리팔찌 = 琉璃製釧[유리제천], 금팔찌 = 金釧[금천], 하단. 금반지 = 金製指環[금제지환]
금관 진품 보물 제 339호
금관 좌측 모습
금관 우측 모습
드리개 없이 본체의 금관
완전 옆면
金冠(금관) : 보물 제 339호
금드리개 = 金製垂下飾[금제수하식] : 보물 제 339호
1. 금 귀걸이 = 金製太環瓔珞附耳飾[금제태환영락부이식]
2. 중간. 유리팔찌 = 琉璃製釧[유리제천] *釧= 팔찌 천
3. 중간, 금팔찌 = 金釧[금천]
4. 하단. 금반지 = 金製指環[금제지환]
1. 금허리띠 장식 = 金製銙帶裝飾[금제과대장식]
2. 금허리띠 장식 드리개 = 金製垂下飾[금제수하식] *垂 = 드리울 수
금허리띠 장식 = 金製銙帶裝飾[금제과대장식]
1. 금허리띠 장식 = 金製銙帶裝飾[금제과대장식]
1. 금허리띠 장식 = 金製銙帶裝飾[금제과대장식]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금관의 속
1. 금허리띠 장식 = 金製銙帶裝飾[금제과대장식]인 드리개들
금 허리띠 장식들
서봉총 출토 유물
서봉총에 묻힌 사람은 봉황 장식 금관을 쓰고 금장식을 한 허리띠를 찬 모습이다. 또 굵은 고리 귀걸이와 유리 목걸이, 금제 팔찌, 은제 팔찌
유리 팔찌, 금반지 금동 신발들을 착용한 상태였다. 하지만 남성을 상징하는 큰칼(大刀)은 출토되지않았는데,
이 때문에 성봉총에 묻힌 사람을 여성으로 보기도 한다.
묻힌 사람 주변에서는 금제 그릇, 은제그릇, 액체를 데우는 청동그릇(靑銅鐎斗[청동초두]) 과 여러 말갖춤 등도 출토되었다.
특히 은제 그릇에는 "연수(延壽) 원년(元年)" 이라 새겨져 있어서 주목된다.
그런데 이 "연수(延壽)"라는 연호(年號)는 동아시아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鐎 = 초두 초. = 다리가 셋에 자루가 달린 작은 냄비를 말함, 군중(軍中)에서 사용함
모사품
모사품
금관의 제작 방법
서봉총의 금관은 금제 부속 320개를 포함하여 모두 374개의 부속으로 만들었다.
부속 중 바탕판 · 달개 · 못 · 실은 금이고 곱은옥은 비취와 유리다. 금관은 대륜(帶輪, 금관의 테두리) 5개의 세움 장식,
봉황 장식을 각각 만든 후 못으로 고종하여 완성하는데 제작 공정은 다음과 같다.
밑그림 그리기 → 바탕판 자르기 → 무늬 베풀기 → 구멍 뚫기 → 대륜, 세움 장식, 봉황장식에 달개와 곱은옥 금실로 고정하기 →
세움 장식과 봉황 장식 못으로 대륜에 고정하기
드리개
3. 관테(帶輪 혹은 臺輪[대륜, 대륜])
4. 금못(金釘[금정]) 5. 달개(瓔珞[영락]) 6. 금실(金絲[금사]) 7. 곱은옥(曲玉[곡옥]) 8. 볼록 무늬(半球文[반구문])
9. 점렬무늬(點列文[점열문])
4. 금못(金釘[금정]) 5. 달개(瓔珞[영락]) 6. 금실(金絲[금사]) 7. 곱은옥(曲玉[곡옥]) 8. 볼록 무늬(半球文[반구문])
9. 점렬무늬(點列文[점열문])
산자모양의 맨위 = 1. 맞가지 세움장식(對生枝形立飾[대생지형입식]) 사슴뿔모양의 맨위 = 2. 엇가지 세움장식(互生枝形立飾[호생지형입식])
하단 점선무늬를 뜻함 = 10. 삼각 점렬문(三角點列文[삼각점렬문])
11. 봉황장식(鳳凰裝飾[봉황장식])
12. 梁帶(양대)
금 드리개의 부분별 명칭
1. 굵은 고리(主環[주환]) 2. 노는 고리(遊環[유환]) 3.연결금구 · 달개(連結金具 · 瓔珞 [연결금구 · 영락])
4. 버들잎 모양(柳葉形裝飾[유엽형장식]) 5. 볼록 모양 장식(半球體裝飾[반구체장식]) 6. 버들잎 모양 장식(柳葉形裝飾[유엽형장식])
7. 사슬 장식(鎖形裝飾[쇄형장식])
◈ 복원 내용◈
서봉총 금관의 가장 큰 특징은 2매의 양대(梁帶, 봉황 장식을 고정한 긴 금판) 끝부분을 관테에 금못으로 고정한 점이다.
또 관테에는 6개의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1926년도와 1934년도에 촬영한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양대가 다른 위치에 고정되었고 곱은옥도 떨어져 있다. 떨어져 있는 곱은옥의 모양은
1926년 출토 사진과 일치하며, 떨어진 곱은옥에 남은 금실의 순도와 제작기법 역시 금관에 남아 있는 것과 같다.
이를 근거로 금관을 만들었던 당시의 모습을 추정해서 복원할 수 있다.
금귀걸이(金製太環透彫耳飾[금제태환투조이식]) *透 = 통할 투, 금귀걸이(金製太環耳飾[금제태환이식])
은귀걸이(銀製太環耳飾[은제태환이식]) 금귀걸이(金製太環耳飾[금제태환이식])
은팔찌 = (銀製釧[은제천])
금귀걸이(金製太環耳飾[금제태환이식])
금그릇(金製 盌[금제 완])
000 만드는 금팔찌는 높은 순도(22K)의 금을 사용하고 000 들어야 하는 그릇은 낮은 순도(16.5K)의 금을 사용하였다.
서봉총의 연대 : "연수 원년 태왕의 치세 신묘년 삼월중에, 태왕이 교시하여 세 근 여섯량을 사용하여 합우를 만들었다."
신묘년은 451년 또는 511년이다.
延壽 元年 太歲在卯三月中(연수원년태세재묘3월중) …壽元年太歲在辛(…수원년태세재신)
太王敎(敬?)造合杅用三斤六兩(태왕교(경?)조합우용삼근육량) 三…太王敎(敬?)造合杅… 三斤(삼…태왕교(경?)조합우…삼근)
延壽 元年 太歲在卯三月中(연수원년태세재묘3월중) …壽元年太歲在辛(…수원년태세재신)
太王敎(敬?)造合杅用三斤六兩(태왕교(경?)조합우용삼근육량) 三…太王敎(敬?)造合杅… 三斤(삼…태왕교(경?)조합우…삼근)
- 여기까지 서봉총의 유물들임 -
삼봉 정도전의 문집 : 三峯集(삼봉집) 시대 = 조선 18~19세기
고려 말 성리학자이자 급진개혁파 신진사대부로서 이성계를 추대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고 그 문물제도를 정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삼봉 정도전(1342년~1398년)의 문집이다. 문초에 대한 따뜻한 충정과 넓고 웅혼한 기백이 느껴지는 시문들과 함께,「조선경국전」등
국가 운영과 철학사상에 관한 깊은 식견을 담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전시품은 조선우기에 간행된 것이다.
향로 = 鐵製 銀入絲 香爐(철제은입사 향로) : 시대 = 조선 19세기
향로 = 鐵製 銀入絲 香爐(철제은입사 향로) : 시대 = 조선 19세기
연꽃가지 모양 손잡이 향로= 靑銅 連枝形 柄香爐(청동 연지형 병향로) 시대 = 고려 1077년
받침은 연잎, 노산은 연꽃 손잡이는 연꽃가지 모양으로 만든 향로이다. 연지형 병향로는 遼(요)나라에서 가장 먼저 제작 사용하였고,
그려에서는 11세기 후반경에 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향로의 받침에는 음각으로 "太康三年(태강삼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077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향로인 노산(연꽃) 받침은 연잎,
손잡이는 연꽃가지이다.
향로인 노산(연꽃)
장도집(몸에 지니는 작은 칼집) = 銀製 鍍金 粧刀鞘(은제 도금 장도초) : 시대 = 고려시대 鞘= 칼집 초
장도집(몸에 지니는 작은 칼집) = 銀製 鍍金 粧刀鞘(은제 도금 장도초) : 시대 =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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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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