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교훈이있는 글

[스크랩] 부처님 생애 와 팔상도

백련암 2018. 8. 6. 23:46

부처님의 생애를 팔상도 중심으로 설명

 

들어가는 말

佛敎는 말 그대로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란 불타(불타:Buddha) 즉, 깨달은 사람(覺者)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소질과 성품이 있는데 이를 佛性이라 한다.

저마다 불성을 간직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

* 부처님의 생애를 알고 그 삶대로 사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는 한 인간이 진리를 깨쳐 부처님이 되는 길을 보여준다. 우리가 불자로서 본받아야 할 삶의 모범은 바로 부처님의 생애를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생애를 배우는 것은 불교에 입문한 후 그 조교의 삶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부처님이 된 삶을 따르기 위한 것이다.

중생이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부터 우리도 부처님 같이 수행 정진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것이다. 불교를 믿고 행하는 것은 결국 “부처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 같이 살고 싶은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생애는 다시없는 인생의 귀중한 나침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금부터 약 2,600년 전, 인도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카필라(Kapila)국 사캬(Sakya:釋迦)족의 정반왕과 왕비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고 성은 고타마(Gotama:최상의 소)였고, 출가하기전의 이름은 싯달타(Siddartha)이다. 고타마 싯달타가 출가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Sakyamuni)즉 釋迦族 出身의 聖者라고 불렀다.

불타는 시종일관 모든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으므로 올바로 수행·실천하여 깨달으면 바로 부처가 된다고 설파하셨고, 그 모범을 보이셨다. 그러기에 우리 범부·중생은 불타의 행적과 그 언행을 그대로 배우고 스스로 수행·정진하여 깨치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은 불타의 행적과 실천적 언행이다. 그러기에 불타 이래 그 제자들과 역대 조사들이 그 어른의 행적·언행을 엮어 모아서 불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전으로 받들어 배우는 모든 불경 내지 각국의 불서는 다 불타의 행적 그 자체로, 그에 대한 해설·부연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불타의 말씀은 경장이요, 그 실행은 율장이며, 이에 대한 해설·논의는 논장이 되어, 이른바 삼장이 성립된 것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인도와 중국 내지 한국에 걸쳐, 이 삼장을 꿰뚫어 가장 훌륭한 불타의 생애, 탁이한 행적을 재편하여 그 어른의 완벽한 일대 전기로 완성한 것이 바로 '불타전기(佛陀傳記)'이다. 이를 요약하여 '불타(佛陀)'라 하거니와,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구성한 것이 곧 '팔상(八相)'이라 하겠다. 이 팔상(八相) 중심의 불전(佛傳)을 가장 효율적으로 조직·표현한 것이 이른바 '불전문학(佛傳文學)'이다. 모든 불경이 다 빛나는 문학이라 하거니와, 그 중에서도 여기 불전문학이 가장 빼어난 분야라고 알려졌다. 그것은 세계 최대의 서사문학이요, 최상의 장편소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전문학은 달리 팔상문학이라 부르는 것이 더 선명하리라 본다. 기실 불전은 팔상으로 구성·표현되었을 때 가장 정확하고 문학적이기 때문이다. 이 팔상은 확대되면 팔만대장경으로 통하지만, 요체만 잡으면 한자어 8귀로써 족하다. '도솔래의(兜率來儀)', '비람강생(毘藍降生)', '사문유관(四門遊觀)', '유성출가(逾城出家)', '설산수도(雪山修道)', '수하항마(樹下降魔)', '녹원전법(鹿苑傳法)', '쌍림열반(雙林涅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팔상은 그 기본구조가 완성·유형화된 이래, 각개 불교국의 불전인식과 그 사상·신앙의 권법·전통이 되어왔다. 그러기에 이 팔상문학은 능소능대하여 나라마다 각기 다른 경전·문학 형태로 찬성·전개되었으며, 인도의 ≪불소행찬(佛所行讚)≫이나 중국의 ≪석가보(釋迦譜)≫, 한국의 ≪월인석보(月印釋譜)≫ 등이 그 전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팔상문학은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다워 팔상계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등으로 유통·연행되고, 나아가 팔상계 신앙·민속 등으로 전승·파급되기도 하였다. 이 팔상문학 중에서 가장 출중하고 의미 심증한 것이 바로 불타의 탄생신화이다. 이 탄생신화는 불타 전기의 출발점이요, 팔상문학의 중심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탄생신화는 팔상구조에서는 '비람강생(毘藍降生)'에 해당된다. 불타는 전생의 무한공덕으로 도솔천의 호명보살이 되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해서 중생을 제도하리라 서원을 세우고, 백상(白象)을 타고 하강하여 인도 정반왕의 마야 부인의 태중에 자리한다. 이미 부처의 경지에 이른 보살은 태중에서 수행·설법하며 태어날 때를 기다린다. 마침내 날달이 들어, 마야 부인이 비람원에 가서 무우수 가지를 잡고 산기를 느끼는 순간, 우협으로 탄생하니 4월 8일이다. 태자의 모습을 나투니, 연꽃이 솟아 그 꽃을 밟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는, 좌우수(左右手)로 천지를 가리키며, '천상천하에 나 홀로 높다.'고 사자후를 토한다. 이어 삼계가 다 고해니 이를 다 편안케 하리라고 인자한 서원을 세우니,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가 가장 밝아진다. 이에 구룡이 향수를 뿜어 씻기고, 제석 범왕이 천의를 입혔다.

탄생신화는 불전문학, 즉 팔상문학 중의 핵심부분으로서 신성·장엄한 종교성을 천명한다. 불교의 개창과 대승불교의 일체 종지를 인간 중심으로 선언한 것이다. 나아가 이것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문학·예술로 승화 표현됨으로써, 그 의미와 권능은 극대화된 것이라 하겠다. 해마다 부처님이 새롭게 거듭나시는 말에, 이 탄생신화의 선언적 권능을 통하여 부처님의 행적을 실천적으로 본받아 마침내 우리 스스로 성불하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1.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 석가모니가 과거에 쌓은 공덕으로 도솔천왕으로 머물다 부처님이 되기 위해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주요 부분을 보면, *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태자로 태어나기 전의 전생(前生)을 나타낸 부분으로 소구담(小瞿曇)의 시절에 도적으로 몰려 말뚝에 묶인 채 활을 맞는 장면.

* 흰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여러 천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의 뱃속으로 들어가는(入胎) 장면.

* 마야부인의 꿈에 흰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부인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장면.

* 마야부인이 정반왕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왕은 바라문에게 해몽을 부탁한다. 이때 바라문이 마야부인께서 성인(聖人)을 잉태했음을 알려주는 장면.등이 있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은《과거(過去) 현재인과경(現在因果經)》에 보이는 바와 같이 석가(釋迦)가 이미 보살육도(菩薩六度)의 행(行)을 마치고 도솔천상(兜率天上)에서 염부주하생(閻浮洲下生)의 시기가 왔음을 천인중(天人衆)에 고(告)하여 도솔천궁(兜率天宮)으로부터 백상(白象)을 타고 내강(來降), 마야부인(摩耶夫人)의 몸에 입태(入胎)하는 내용(內容)이 공통(共通) 화제(畵題)로 되어 있다.

통도사(通度寺)의 팔상도(八相圖)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서는 맨 위쪽 월륜(月輪)안에 백상(白像)을 타고 내강(來降)하는 보살상(菩薩像)과 이를 에워싸고 기악(伎樂)을 연주하며 시종(侍從)하는 모습의 천중상(天衆像)이 묘사(描寫)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단(下段) 좌측(左側)에 마야부인(摩耶夫人)이 여러 시녀(侍女)를 거느리고 잠든 모습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몽(胎夢)을 묘사(描寫)한 것이다.

중간 우측(右側) 의자에 마주 앉아 있는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의 모습이 있고, 하단(下段) 오른쪽에는 2구(軀)의 신장(神將)이 성(城)을 외호(外護)하고 있다. 건물(建物)이나 수지(樹枝)의 표현기법(表現技法)은 1728년작(年作) 쌍계사(雙谿寺) 팔상도(八相圖)에서와 같이 간략한 표현이 아니라 세밀(細密)하고 색채(色彩)가 풍부한 표현(表現)이다.

 

2.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통도사 팔상전) : 카필라국은 히말라야 남쪽 기슭의 초목 지대에 자리한 조그만 왕국으로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이웃에는 코살라와 마가다와 같은 큰 나라들이 있어 위협을 받고 있었으나 비교적 풍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주요 부분을 보면, * 출산을 위해 마야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난다. 이를 여러 천신들이 보호하고 있는 장면.

* 태자가 태어나자 하늘에서 아홉 마리 용(龍)이 물을 뿜어 씻기고 여러 천신들이 기뻐하는 장면. * 부처님께서 사방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왼손으로 하늘을,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라 외치는 장면.

* 아시타선인이 태자의 관상을 보고 장차 성장하여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거나 아니면 출가하여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장면 등이 있다.

카필라국의 정반왕은 석가 족의 후예로서 용감하고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부인인 마야 왕비가 늦도록 슬하에 왕자가 없자 걱정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커다란 흰 코끼리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데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지고 있었다. 흰 코끼리는 마야왕비에게 다가와 엎드려 절을 하고는 왕비의 옆구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당시의 많은 예언가들은 "성인이 태어나실 꿈이다. 왕자님이 태어나실 꿈이다.'라고 하였으며, 온 나라 백성들도 장차 태어날 왕자를 생각하면서 기뻐하였다.

마야 왕비는 태아를 위하여 더욱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다. 아이를 잉태한 후 마야 왕비의 신상에는 예전에 몰랐던 지식이나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되는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말을 하는데 막힘이 없고 논리가 정연해져서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느덧 모든 백성들의 기대 속에 따스한 봄이 되고 왕비의 산달이 다가 왔다. 마야부인은 해산 일이 다가오자 당시의 관습에 따라 하산을 하기 위해 친정인 코올리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화창한 봄날, 왕비를 태운 가마 행렬이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때마침 예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며 왕비를 맞았다.

마야 왕비는 무우수(無憂樹)나무의 신비스런 향기에 끌리어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갑자기 진통이 일면서 산기를 느꼈다. 왕비는 침착하게 장막을 치도록 시녀들에게 이른 뒤 오른손을 뻗어 무수우 나무의 동쪽 가지를 잡고 아기 왕자를 낳았다. 그 날이 바로 음력 사월 초파일이다.

인류의 스승이시며 중생의 어버이신, 거룩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셨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며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자후를 토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여기서 태자가 외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종종 독불장군이라는 식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의미는 태자가 도솔천에서 내려온 일생보처보살로서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는 의미이며 동시에 깨달음을 구하는 모든 중생 하나하나가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지혜의 외침, 생명 존엄의 선언이다.

태자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 오색의 감로수로 태자의 몸을 씻어 주었다. 땅은 은은히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신들이 내려와 차례로 예배드리며 이 세상 가장 존귀한 분의 탄생을 축복하였다.

정반왕은 태자의 이름을 '고타마 싯달타'라고 지었다. 왕자의 앞날이 마음먹은 대로 만사 형통하라는 축원이 깃든 이름이었다. 태자가 태어나자 서른 두 가지의 서응(瑞應)이 생겨났는데 땅이 평평해지고, 길과 거리가 저절로 깨끗해졌으며, 마른나무에서 꽃과 잎이 피어나고, 저절로 기이하고 단 과일이 났으며, 땅 속에 묻혀 있던 보배들이 저절로 튀어나오고, 해와 달과 별이 모두 멈추고, 온갖 질병이 모두 나으니 이는 부처님의 탄생으로 인해 풍요롭고 맑은 세상이 이루어지고, 죽음의 존재가 생명을 회복하며, 감추어졌던 가치와 진리가 나타나고, 해와 달이 멈추고 같이 시간이 한계 즉, 무상을 초월하는 일대 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태자를 데리고 신묘에 참배를 하자 신묘의 여러 신상들이 모두 거꾸로 넘어지므로 모든 대중이 이에 놀라며 태자의 거룩한 덕에 천신들도 귀명한다고 하면서 태자를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이라고 하였다. 이는 신들마저 조복을 받는 참된 인간 해방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태자가 태어난 지 닷새가 되자 히말라야로부터 당시 유명한 수도자였던 아시타 선인이 내려와 태자를 뵙고자 했다. 백 살이 넘은 아시타 선인은 백발의 흰 수염을 한 신선의 모습으로, 그의 눈은 지혜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타 선인은 태자의 얼굴을 살펴보고난 후 슬피 우는 것이었다. 불길하게 생각한 정반왕이 연유를 묻자 아시타 선인은 태자의 앞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왕자님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훌륭한 상호(相好)를 갖추고 태어났습니다. 왕자님은 훗날 성장하셔서 전 인도를 통일하여 덕으로써 다스리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으시면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늙어 부처님의 출현을 뵐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정반왕은 싯달타 태자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길보다는 장차 자신의 왕위를 계승하여 훌륭한 왕이 되기를 바랐다. 훌륭한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의 일이었다. 태자를 낳은 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어머니를 잃은 태자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의 양육을 받으면서 총명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성장하였다. 그리고 정반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 딸라 아들이 출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태자의 성 밖 출입을 막고 호화로운 궁궐에서만 머물게 하였다.

 

3.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 태자는 어느날 교외에 있는 동산으로 놀러가기 위해 마부에게 마차의 채비를 시켰다. 곧 보배수레를 타고 동산으로 향해 가는데, 길을 가던 중에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고 얼굴은 주름지고 허리는 꼬부라져 지팡이를 짚고 힘없는 걸음으로 숨을 헐떡거리는 노인을 보았다.

이 같은 모습을 보고 태자는 갑자기 울적하고 슬퍼져 놀이에 갈 생각이 사라져 버려 궁중으로 돌아와 깊은 사색을 하게 되었다.

“저러한 늙음의 괴로움은 내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정반왕은 생각에만 잠겨있는 태자를 지켜보고는 더욱더 궁전안에서의 쾌락을 누리도록 하였으며, 그 아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애썼다.

그 후 태자는 다시 마부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장식해서 성밖을 나갔다가 도중에 한 병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몹시 쇠약한 몸에 배가 부었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었는데 혼자 더러운 오물더미 위에 누워 있었으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으며 심한 고통으로 못내 고통스러워 하며 말도 하지 못했다.

풍요롭고 화려한 성(城) 안에서만 자라던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실상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기까지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주요 부분을 보면, * 동쪽문으로 나간태자가 노인을 보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늙고 추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다.

* 남쪽문으로 나간 태자가 쓰러져 있는 병자(病者)를 보고 육신의 고통에 대해 깨닫는 장면이다. * 서쪽문으로 나간 태자가 상여(喪輿)를 보고 삶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해 깨닫는 장면이다. * 북쪽문으로 나간 태자가 기품이 넘치는 수도자를 보고 출가(出家)를 결심하는 장면 등이 있다.

또 어느날 태자는 마부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장식해서 타고 동산을 향해 놀러가다가 도중에 한명의 사문을 만났다. 그 사문은 법의를 입고 발우를 들고 오직 땅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태자는 마부에게 이 사람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마부는 “이 사람은 사문입니다” 대답하고는, 사문이란 모든 은혜와 사랑을 끊고 집을 떠나 도를 닦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감각기관을 잘 제어하며 바깥 욕망에 물들지 않고 자비스런 마음으로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습니다. 괴로움을 당해도 슬퍼하지 않고 즐거움을 만나도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잘 참는 것이 마치 대지와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태자의 마음은 설레이기 시작했다.

“이 길이야말로 내가 찾던 길이다. 이 길을 가기로 하자!”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궁전으로 돌아왔다. 이 같은 광경을 보고 성안으로 돌아 온 태자는 올바른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으로 더욱 깊은 사색에 머물렀다.

정반왕은 온갖 방편을 써서 풍류로서 태자의 그 마음을 즐겁게 하여도 모두 헛된 수고로움이었다. 그럴수록 태자는 번뇌를 벗어버리고 맑고 깨끗하게 혼자 살면서 도를 구하려는 마음은 더욱 늘어만 갔다.

 

4.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통도사 팔상전) : 성을 넘어 출가하시다.

수행자를 만난 후 태자의 인생관은 점차 변모되었고, 마침내 부왕에게 출가하여 수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정반왕은 크게 놀라 온갖 말로 희유를 하였지만 태자의 결심은 추호의 변동이 없었다. 결국 부왕은 태자에게 왕위를 이을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세워 같은 석가족인 이웃나라 콜리성의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을 시켰다. 결혼을 하면 마음이 돌아설 것

이라는 부왕의 생각도 해탈의 길을 찾으려는 태자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하였다.

마침내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자 태자는 모든 사람이 잠든 한밤중에 마부 찬다카를 깨워 애마 칸타카를 타고 카필라의 성벽을 뛰어넘어 동쪽을 향하여 어둠을 뚫고 달렸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니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오분율>

왕궁이 멀어지자 태자는 말과 마부를 돌려보내고 값비싼 옷을 벗어 사냥꾼의 낡은 옷과 바꾸어 입고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깎은 위 당시의 유명한 수행자들을 찾아 외롭고 힘든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왕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쇼다라와 아들 라훌라마저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 날이 태자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다.

싯달타 태자는 결코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고심한 끝에 이 출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병듦의 고통이 없고, 늙음의 고통이 없고, 온갖 구속과 장애에서 벗어나 근심과 걱정과 번뇌가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구현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서 출가한 것이다. 이 때부터 싯달타 태자는 수행자 고타마라고 불렸다.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의 유명한 수도자들을 찾아 인도 남쪽의 신흥 공업국가인 마가다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훌륭한 종교가들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그가 가르치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라는 수행을 배웠는데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해 버렸다. 다시 그는 다른 스승인 웃다카 라마풋타에게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을 배웠지만 그 경지 역시 곧 도달해 버렸다. 수행자 고타마는 스승에게서 배운 선정을 통해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 곁을 떠나 독자적인 수행을 시작하였다.

 

5,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 태자가 출가해 설산(雪山)으로 들어가 궁궐로 돌아오라는 청을 거절한 채 설산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주요 부분을 보면, * 태자가 출가 후 화려한 옷을 벗어 놓고 스스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자 제석천이 가사를 받치는 장면.* 머리를 깎고 풀방석에 앉아 수행하고 있는 태자를 신하들이 찾아와 궁궐로 돌아 갈 것을 간청하고 있다. * 머리 위에 새가 둥지를 틀 정도로 움직이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는 태자에게 천녀들이 공양을 하고 있다. * 출가 후 6년간의 고행으로 심신이 쇠약해진 태자가 중도(中道)의 진리를 깨닫고 강에 들어가 몸을 씻은 후 수자타가 바치는 우유죽을 받아 먹는 장면. 등이 있다.

 

6.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 석가모니께서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선정(禪定)에 들자 부처님의 성도(成道)에 위협을 느낀 마왕 파순이 여러 가지 비술로 방해하는 모습과 석가모니가 마군들을 항복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주요 부분을 보면, * 선정 중인 부처님께 마군들이 금강보좌에서 내려가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병 움직이기 내기를 하는 모습이다. 병을 움직이기 위해 마군들의 힘쓰는 모습이 매우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하기 위해 마왕이 열비(悅妃), 희심(喜心), 다미(多媚)의 세 미녀를 보내 노래와 춤으로 유혹하였으나 부처님이 명상에서 깨어나 한번 웃으니 세 미녀가 갑자기 추한 노파로 변해버린 장면. * 세 미녀의 유혹에 실패한 마왕이 1억 8천의 마군을 이끌고 가서 폭력으로 부처님을 항복시키려는 장면이다. 마왕은 보검을 들고 코끼리가 끄는 수레 안에 앉아 있다.

* 마군의 방해를 물리치고 정각을 이룬 부처님이 선정(禪定)한 손을 풀어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지신(地神)에게 증명토록하는 모습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으로 나타내었다. 옆에는 항복한 마군들이 엎드려 빌고 있는 장면 등이 있다.

 

7.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통도사 팔상전) : 진리를 설하시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깨달음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다고 한다. 당시 부처님의 심정은 이렇게 전해진다.

 녹원전법상(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장면) :* 무상전각을 이루신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최초로 불법을 설하시는 장면들이 상·하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 상단에는 노사나불의 모습을 보이신 석가삼존이 처음으로 화엄경을 설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 하단에는 세존께서 녹야원에 이르러 교진여 등 5인의 비구에게 고·집·멸·도의 사제법문을 설교하는 장면,

* 수달다 장자가 아사세 태자의 동산을 사서 기원정사를 건립하고자 하는 장면,

* 흙장난을 하고 놀던 어린이들이 부처님께 흙을 쌀로 생각하고 보시하자 부처님이 이것을 탑으로 바꾸는 장면 등이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또 남들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상응부경전》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에게 진리를 깨우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한다. 범천의 간청에 따라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하고 이렇게 알린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첫 설법은 이렇게 중도와 사성제 등을 설하여 연기의 이치를 가르치셨다. 이것을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이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로 비구(比丘)의 시초이다.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잡아함경> 이것을 전도(傳道)선언이라 한다.

10대 제자의 한 분인 사리불과 목련이 제자 250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과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 지 몇 년 후에 고향인 가필라국에 가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교화하고 역시 10대 제자가 된 아난과 라훌라, 아나율, 우팔리 등의 제자를 출가시켰다. 십대제자란 《유마경》에 언급되는 말로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수승한 능력을 가진 열분의 제자를 말하는데 지혜제일 사리불(舍利弗), 신통제일 목건련(目 連), 두타제일 마하가섭(摩訶迦葉), 천안제일 아나율(阿那律), 해공제일 수보리(須菩提), 설법제일 부루나(富樓那), 논의제일 가전연(迦 延), 지계제일 우팔리(優婆離), 밀행제일 라훌라(羅 羅), 다문제일 아난다(阿難陀)등의 열 분의 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 열 분의 제자들은 불법의 홍포와 전수는 물론 교단의 유지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분들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깨달으신 뒤부터 입멸할 때까지 45년 동안 중인도 지방을 유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했다. 부처님은 수행자와 재가자, 귀족과 평민, 노에를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셨다.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깨달음에는 빈부귀천이 없기 때문이었다.

 

8.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 쿠시나가라 니련선하(泥蓮禪河)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서 80세의 생애를 마치고 열반에 든 모습을 그린 장면이다.

 * 사라쌍수 아래에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서쪽을 향해 오른팔을 베고 누운 후 열반에 든 부처님을 나타내었다. 열반상을 중심으로 여러 제자·보살·신중들이 둘러싸고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 다비일(茶毘日)에 부처님의 관에 불을 붙였으나 전혀 타지 않다가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뒤늦게 도착한 가섭이 관 옆에서 비통해 하자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실상을 보이는 모습이다.

* 가섭의 예배가 끝난 후 화장을 하자 불이 타오르며 불사리(佛舍利)가 수없이 떨어져 이를 받아 모으는 장면. * 다비에 참석한 각국의 국왕들이 불사리를 서로 가져가려 다투자 성연(性烟)바라문과 돌로나(突路拏)바라문의 중재로 사리를 여덟 등분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탑을 세웠는데 이를 근본팔탑이라하며, 나중에 인도 아쇼카왕에 의해 다시 팔만사천탑(八萬四千塔)으로 건립된다.) 등이 있다.

 

맺는 말

부처님은 어떤 분일까? 부처님은 단순히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신분이 아니다. 모든 중생을 깨치고자 서원을 세우고 수억 겁을 거듭나며 수행을 닦은 분이다. 그러나 그 분의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남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나 오늘을 사는 발심수행자! 여러분 우리들의 모습이다. 부처님은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기위해 천상의 영화를 버리고 이 땅으로 내려 오셨다. 그 분이 태어난 곳은 호화찬란한 궁중대궐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길가의 동산 이다. 그래서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가신 인류의 위대한 스승! 부처님의 탄생은 그 자체가 중생의 삶에서 함께 하시겠다는 뜻이다.

불자들은 중생을 위해 일생동안 헌신하신 부처님을 기리고 그 삶을 본받아야 한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쉼 없이 정진하는 것,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을 닮는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의 그늘진 곳,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곳에 동참하여 대비수고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불자의 자세이다. ......................................정법 합장

출처 : 正法 스님 일과 修行 이야기
글쓴이 : 正 法 원글보기
메모 :

'감동과 교훈이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저녁의 시 / 김 춘수  (0) 2013.11.08
비움   (0) 2012.10.02
틀니 (TV동화 행복한 세상 책에서)   (0) 2012.09.06
지혜로운 삶을 위한 지침  (0) 2012.09.06
두 눈을 가린 스승  (0) 201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