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금산사 대장전 벽화
중국 선종 2조 혜가(慧可)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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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스님에 의해 시작된 중국 선종의 전통은 제2조 혜가(慧可, 487∼593)스님에게로 이어진다. 혜가스님의 속성은 희(姬)씨이며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부근 무뢰(武牢) 출생이다. 이름은 신광(神光)이라고 하는데, 이상한 빛이 방안을 비추는 것을 보고 태기가 있었는데, 이 일로 해서 신광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그러나 세속의 서적은 궁극적인 것이 아님을 알고 출가, 낙양 용문 향산사의 보정(寶靜) 선사에게 의지해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여러 곳의 강원(講院)을 두루 다니면서 대승과 소승의 불교를 공부하했다. 나이 32세가 되어 다시 향산사로 돌아와 종일토록 참선하면서 8년을 보냈다.
그래서 혜가스님은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달마스님을 찾아가 법의 가르침을 청하였다. 그러나 굴속에서 면벽(面壁)하고 있는 달마스님은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혜가스님은 당(堂) 안에도 들지 못하고 뜰에 서서 법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밤새도록 꼼짝도 안 하고 달마스님의 응답만 기다리고 서 있었다. 더구나 그 날 밤엔 눈이 내려 몸이 꽁꽁 얼었으나 혜가스님은 의연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대는 무슨 까닭에 나를 찾아 왔는가”하고 입을 열었다.
“법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달마스님은 위엄 있는 큰소리로, “너의 믿음을 바치라!”고 했다. 혜가스님은 지체 없이 예리한 칼을 뽑아 왼팔을 잘라 버리니 땅에서 파초잎이 솟아나 끊어진 팔을 받쳤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혜가단비(慧可斷臂)’ 일화이다. 달마스님이 낙양과 양자강 주변에서 교화를 펴다가 입적하자 혜가스님은 몸을 숨겼다.
배움을 구하는 스님들과 재가의 신자들이 그를 받들어 스승으로 모셨다. 혜가스님은 걸어갈 때나 머무를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언제든 마음이 진실의 경지와 일치되어 상대의 동향에 따라 가르쳐 지도했다.
마치 울림이 소리에 응하는 것처럼, 모든 사물에 관하여 깨달음을 알려주고, 행동을 통해 이해에 이르도록 해주었다. 묻혀버리고 만다.
업도에서 인연을 따라 중생의 궂은 일을 도와주며 헌신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 지방의 뜻 있는 사람들이 권했다.
“화상은 도가 높으신 분입니다. 굳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 업도에서 혜가스님은 34년 간 중생을 교화하다가 교학승(敎學僧)들에 의해 마법을 설한다는 이단 혐의를 받고 처형됐다. 선종이 중국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기까지에는 ‘불법을 위해서 몸을 던지는 ‘위법망구(爲法忘軀)’ 큰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고, 혜가스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가교(架橋)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던 것이다. 선의 등불은 이렇게 혜가스님의 헌신을 통해 후대로 전해졌다.
**혜가 승찬을 만나다.**
소림사에서 달마를 만나 의발을 전수받고 중국선종의 2조가된 혜가스님. 제자를 널리 구했는데
어느날 40세가 넘어 뵈는 거사 하나가 찾아와 불쑥 절하며..
승찬의 풍병은 오래지 않아 완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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