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과 함께 모든 시비는 사라지고...
6년동안 도솔암에서 수행한 후 청담스님 등의 권유로 태백산을 내려온 나는 지리산 쌍계사에서 한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비구승단(比丘僧團)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이승만 대통령 이 4*19로 물러나게 됨에 따라, 한동안 움츠리고 있던
대처승들이 일어나 불교계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불똥은 쌍계사 에까지 번졌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며 쌍계사를 점령하려는 대처승들에 밀려 우리는 화엄사로 옮겨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화엄사 또한 안전지대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대처승들과 매일같이 싸울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부처님의 제자는 열심히 수행을 해야 한다. 기도로써 이 도량을 지키자.
부처님께서는 이곳을 틀림없이 정법(正法)의 땅으로 보호하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7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므로 밤에만 기도를 했습니다.
저녁예불이 끝나면 정성껏달인 작설차 한 잔을 4사자석탑에 올리고 기도를 시작하여 새벽예불 때까지 '서가모니불'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그때 나는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을 치면서 '서가모니불'을 불렀습니다.
살구나무 목탁은 아주 연하면서도 듣기 좋고 멀리까지 울려퍼지는 특징이 있었으므로,
내가 치는 목탁소리는 구례읍 가까이의 마산면에까지 울려퍼졌다고 합니다.
마침내 기도 회향일인 7일째 새벽, 나는 '서가모니불'을 부르며 무아지경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지장암 노스님과 젊은 스님들이 올라와서 나에게 예배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정말 장하십니다. 스님의 기도에 부처님께서 감응하셨음인지 큰방광이 있었습니다.
그 빛이 이쪽에서 솟아 멀리 천은사 쪽으로 높이 높이 뻗어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염불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방광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트기의 꼬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같은 것이 탑 위에서 천은사 쪽으로 뻗어가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화엄사 밑의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예배를 하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스님, 오늘 새벽에 탑 주위에서 하늘로 치솟는 방광이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적이 어찌 그냥 생겨난 것이겠습니까?
저희들은 오직 스님의 도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스님, 부디 이 화엄사에 오래 머물러 계십시오.
옳은 스님만 계시면 화엄사는 틀림없이 자리가 잡힙니다. 저희들도 스님을 모시고 열심히 이 절을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화엄사는 대처승과의 싸움이 없는 조용한 절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낮에는 토종벌들이 4사자탑으로 몰려들어 새까맣게 탑을 감싸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님들이 통을 만들어 바가지로 이 벌들을 받았더니 3통 분이나 되었으 며, 이후 토종벌들은 많은 꿀을 스님들께 제공했습니다.
기도 끝의 방광은 화엄사를 무쟁(無諍)의 수도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행자에게는 먹을 것이 저절로 찾아든다"는 옛말 그대로. 당시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던
우리에게 토종벌들까지 스스로 날아와 보약 공양을 올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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