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상원사와 꿩의 보은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치악산에 위치한 상원사.
치악산 남쪽 봉우리인 남대봉 바로 아래 위치한 이 사찰은 설악산 봉정암과 지리산 천왕봉 아래 법계사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자리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신라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선사가 창건했다는 상원사는 산 이름이 유래한 꿩의 보은설화가 탄생한 사찰
로 유명하다. 원래 가을 단풍 빛이 아름다워 붉을 적(赤)자를 써 적악산이라 불렀는데 꿩의 보은설화로
인해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죽음으로 은혜 갚은 꿩 기려 치악산으로 불러
의성 사는 선비 과거길 나섰다가 구렁이에게 잡아먹히는 꿩 구해
경상북도 의성에 사는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출발했다.
“내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여 우리 가문을 일으켜 세울 것이야.” 이 선비는 집안 대대로 불심(佛心)도 강했다.
그래서 유학자의 집이면서도 인근 고운사를 비롯한 사찰을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도 했다.
과거에 합격하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선비는 험준한 죽령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의성 땅을 출발한지 10여일이 지났다. 선비는 굽이굽이 적악산 기슭을 걸어가다가 괴성에 깜짝 놀랐다.
숲 속에서 꿩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어디 짐승이 죽어가는 소리 같았는데….”
선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덕배기 구릉지에 소나무 숲에서 바람이 “쏴아~”하고 불어왔다. 그 아래 잔솔밭에 무슨 동물이
퍼덕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지. 분명 짐승이 누구에게 잡아먹히는 모양인데….” 선비는 발걸음을 급히 재촉해 현장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커다란 비단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몸집이 큰 구렁이는 꿩의 몸을 칭칭 감고 대가리를 벌여 통째로 꿩을 삼킬 태세였다. 구렁이는 곧바로 꿩을 먹어버릴 것 같았다. 깜짝 놀란 선비는 소리를 쳤다.
“이놈, 구렁이야. 이 세상 모든 미물은 태어날 때부터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올 때는 원하는 바가 있어 오는데 너는 어이하여 이런 동물을 살생하려 드는 것이냐. 지금 당장 꿩을 놓아주지 않으면 너에게 큰 화를 입게 하겠다.”
◈‘꿩의 보은’ 설화를 새긴 목판으로 범종각에 걸려 있다.
이렇게 소리쳐도 구렁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선비는 등짐에서 활을 꺼냈다.
과거길이라지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도적떼의 극성에 못 이겨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호신용 활이었다.
활시위를 당긴 선비는 곧바로 구렁이의 몸을 향해 쏘았다. 화살을 맞은 구렁이는 꿩을 감고 있는 몸을 비틀면서 그만 죽고 말았다. “내 너를 죽이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의 무모한 살생의지가 업보로 다가와 그렇게 된 것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아다오.
부디 다음 생에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부처님의 법을 만나 착한 업을 쌓길 바란다. 나무아미타불!”
선비는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길을 재촉했다.
산속의 해는 일찍 지는 법. 선비는 어둑해진 산중에서 인가를 찾아보았으나 사방이 어둑했다. “이거 큰일 났군. 어디 머물 데가 없을까.” 선비가 겨우 찾아낸 집은 어느 이름 모를 암자였다.
“누구 없습니까?”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선비는 하는 수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상하게도 흰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왔다. “나는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입니다.
길을 가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이곳 숲 속을 헤매게 됐습니다.
누추한 곳도 좋으니 하룻밤만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시오.”
선비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여인은 아무 말 없이 허름한 헛간채로 안내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여인은 저녁밥을 차려다 주었다. “고맙소.” 감사의 인사를 한 선비는 맛있게 저녁밥을 먹고 고단한 몸을
뉘였다. 한참을 잤을까. 선비는 몸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몸을 뒤척이려 해도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한 선비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자신의 몸을 커다란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었다.
암 구렁이 보복에 죽을 위기 맞자 암·수 꿩이 범종 울려 원결 풀어내
“이게 무슨 일이냐. 아무리 미물이라도 어찌 인간에게 이렇게 무엄하게 대할 수 있단 말이냐.”
선비는 호령을 했으나 구렁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않겠느냐. 나는 오늘 낮에 네가 죽인 구렁이의 부인이다.
네가 내 남편을 죽였으니 이제 내가 너를 죽여야겠다.”
그때서야 선비는 사태를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선비답게 행동하다가 최후를 맞겠다고 각오하고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래. 내가 그 구렁이를 해쳤다. 하지만 그 구렁이는 불교에서 금지하고 있는 살생을 하려 했기 때문에 내가 벌을 내린 것이야. 나 역시 구렁이를 죽일 마음은 없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야.”
구렁이는 혀를 날름거리면서 선비를 잡아먹으려 다가왔다. 죽기를 각오한 선비는 구렁이에게 말했다.
“내 이미 너에게 잡아먹힐 각오는 돼 있다. 하지만 너의 사연도 기구해 보이니 그 이야기나 들어보자.”
구렁이는 순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나는 전생에 이 절 주지스님이었다. 그러다 이 절에 종이 없어 범종불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 불사를 하는 도중에 물욕이 생겨 시주금의 일부를 개인용도로 사용했어.
부득이 범종불사는 해야 했기에 적은 비용으로 종을 만들었지. 그런데 종을 만들어 놓고 쳐 보니 소리가 나질 않았어.
그 업보로 다음 생에 구렁이로 태어나게 되어 버렸지.”
선비가 말했다. “참으로 너의 신세도 딱하기도 하구나.
네가 그 무거운 업보에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이냐.” 구렁이가 대답했다. “있기는 하지만 아주 어렵다.
누구라도 저 소리 나지 않는 범종을 소리가 나게 울린다면 나는 구렁이의 몸을 벗고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어.”
구렁이는 이어 선비에게 제안을 했다. “너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도 하구나. 하지만 너를 용서할 순 없다.
그렇다면 네가 날이 밝기 전에 이 절 뒤에 있는 종루에 종소리가 나게 해 다오. 그러면 너도 살 수 있고 나도 인간의 몸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야.”
선비는 구렁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날이 밝자 선비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활 통을 매고 절 뒤뜰로 나갔다. 과연 구렁이가
이야기한대로 종루가 있고 그 끝에는 종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종루는 얼마나 높은 지 눈에는 손톱 끝 만큼으로 보였다.선비는 첫 번째 화살을 힘껏 당겼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종루에도 못 미치고 떨어져 버렸다.
첫 화살은 종에 미치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두 번째 화살을 당겼다.
첫째 화살보다는 멀리 날아갔으나 종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신중을 기한 선비는 세 번째 화살을 당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범종 위를 지나쳐 버렸다. 크게 낙담한 선비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절 뒤편 종루에서 희미하게나마 종소리가 세 번 울려 퍼졌다. “데 엥. 데 엥. 데 엥.”
구렁이도 깜짝 놀랐다. 분명 종루에서 들여온 종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구렁이의 몸은 서서히 형태를 바꾸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선비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날이 밝자 선비는 종소리가 난 종루로 달려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낮에 자신이 구해준 꿩(까투리)과 그의 남편(장끼)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로 죽어 있었다.
“그래. 낮에 본 그 꿩이 분명해. 이들이 나의 목숨을 살렸구나.”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적악산은 꿩이 보은(報恩)을 한 산이라 하여 꿩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원주=여태동 기
찾아가는 길 /
1) 고속버스나 열차로 원주까지 간다. 원주에서 제천 방면 직행버스를 타고 신림면에 도착한다.
신림―성남리(상원사 입구)간은 완행버스를 이용한다.
2) 승용차로 갈 때는 중부고속도로 호법 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서서 22km 남짓 달리면 신림 나들목에 이른다. 이곳에서 나와 주천방향으로 1.7km
가면 치악산국립공원 입구와 상원사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들어오면 상원사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2시간30분 거리를 산행해 올라오면 상원사다. (033)746-1608
참고및 도움: 상원사 홈페이지, 상원사 주지 경덕스님, 상원사 공양주 박후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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