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청평사 당나라 공주와 상사뱀

백련암 2009. 11. 12. 23:32

청평사 당나라 공주와 상사뱀

춘천 청평사에는 공주와 상사뱀의 설화가 애틋하다. 설화의 내용을 형상화한 동상. 있고  상사뱀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회전문. 보물 제164호로 지정돼 있다.

   

내생에서도 못 이룬 청년의 ‘슬픈 사랑’

 

 구렁이로 환생해 공주 온몸 칭칭감아

 

 청평사 문 들어오다 벼락맞아 ‘최후’  애틋한 사연 기려 탑 세우고 절 중창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74번지에 위치한 청평사.

소양댐 건설로 호수가 되어 배를 타고 가거나 양구로 우회해 갈 수 있는 청평사는 강원도의 오지사찰이됐다.

 

서기 972년 고려 광종 24년에 영현(永玄)스님(문수원기에 전하는 내용이며 동문선에는 영현(永賢)스님이라 표기하고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승현(承賢)스님이 창건했다고 기록돼 있다)이 개창해 백암선원이라 했다가 폐사됐다.

 

다시 1068년 고려 문종 22년에 이의가 중건하여 보현원이라 했다. 그의 아들 이자현은 벼슬을 버리고 보현원에서 수행에 전력해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친견하는 법력을 얻은 뒤 문수원(文殊院)으로 고쳤다가 후에 청평사로 불렀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도량이지만 사찰이름이 더욱 유명해진 연유에는 당나라 태종황제의 공주(원나라 순제황제의 공주라고도 한다)와 상사뱀에 얽힌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태종황제에게는 공주가 있었는데 그 미모는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다. 얼마나 미모가 출중했으면 그녀를 한번 보는

사람마다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공주에 대해 연정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공주는 위험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평민의 청년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은 공주의 외출을 못하게 하고 일체 잡인들의 출입을 별궁에 금지시켰다. 그러자 평민청년은 모든 음식을

전폐하고 오로지 공주에 대한 일념 때문에 나날이 야위어 가기만 했다.

 

백약이 무효했다. 이 청년은 몸져 누우면서 자신이 애타는 마음을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공주님을 한번만 보게 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고 말 거예요.”

“이 놈아, 어찌 어미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이냐. 네가 제정신이 아닌 게야.

이 나라에는 엄연히 법도가 있거늘. 어찌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본단 말이야. 빨리 공주님을 잊도록 노력해 보거라.”

 

열병처럼 깊어가는 공주에 대한 연정을 못 이긴 청년은 며칠 가지 못해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청년은 숨을 거두면서도 “내 죽어서도 공주님 곁에서 머물 것이야. 그래서 공주님께로 향하는 내 마음을 꼭 보여주고 말거야.

이 생에서 이루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라도 뱀이 되어 공주님 곁에 머물 것이야.”

 

청년이 숨을 거두자 그의 몸에서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더니 한 마리 뱀이 스스륵 빠져 나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니, 정말 우리 아들이 이 생을 하직했단 말인가?  아직도 살아 갈 날이 창창한데 어이해서 아비와 어미보다 앞서서 간단 말이

냐. 이 불효막심한 녀석아.”

 

그 청년의 부모는 대성통곡을 해 보았지만 이승과 저승을 연결할 수는 없었다.

 

얼마 후 궁궐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낮잠을 자던 공주의 몸에 느닷없이 구렁이가 몸을 칭칭 놓아주질 않았다.

깜짝 놀란 공주는 구렁이를 몸에서 떼어내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었지만 이미 생사의 영역을 넘어선지라 공주는 이 흉물스런 구렁이(상사뱀)로 인하여 시름만 깊어져

갔다.

 

상심이 깊어진 공주는 신라로 가서 정성껏 기도를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을 듣고  신라 땅을 돌아다니다가 청평사

인근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저물어 사찰 폭포 인근에 하룻밤을 유숙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인근 계곡에서 범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바로 위에 절이 있는가 봅니다.

내 잠시 사찰에 들러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올 것이니 잠시 몸에서 내려와 주시지요.”

 

그러자 구렁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던 공주의 청을 선뜻 들어 주었다.

구렁이는 사찰에 들어오지 못하고 잠시 바위에 똬리를 틀고 기다리겠다는 듯이 잔뜩 웅크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도 있구나.

 

내 몸에서 구렁이가 떨어져 나오다니…….”

 

공주는 날아갈 듯 하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청평사 입구 폭포로 향했다. “내 부처님을 친견하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어야겠어.

 

얼마나 오랫동안 내 몸에 구렁이가 붙어 있었는지 모르겠어.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고 싶은데 부처님은 들어 주실지 모르겠어.” 공주는 이윽고 사찰에 들러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부처님, 제가 전생에 어떤 업연이 있었는지 모르오나 이생에 이렇게 고통스런 날을 보내는 것을 보면 악행을 많이 저질렀을 것이옵니다. 이제 부처님 전에 깊이 참회의 절을 올리옵니다.

 

제게 닥친 이 엄청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가피를 내려 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공주는 대웅전을 나오는데 건너편 요사채에서

스님들이 모여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여러 스님들이 모여 법복과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아. 나도 스님들의 법복을 만들어 올리고 싶구나.

어디 한 번 해 보면 안 될까?”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가서 가위질을 하고, 이어 바느질을 쓱쓱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법당에서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딜 허락도 없이 함부로 가사불사에 손을 대는 것이요. 어서 물러가시오.”

 

공주는 물어나면서 “저는 다만 스님들이 만드시는 법복을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했을 뿐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스님의 야단을 맞은 공주는 얼른 몸을 추슬러 요사채를 빠져 나왔다.

 

이제 바로 앞에 있는 문(회전문)을 나오면 다시 구렁이를 만나야 하고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속박된 몸이 되고 말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 숙세의 업이 이렇게 가혹할 줄 몰랐다. 내 이 생에서 열심히 착한 일을 해서 다음에 만나는 생에서는 이처럼 고통 받지 않으리라.”  

 

밖에서 공주를 기다리던 구렁이는 조바심이 났다.

“공주님이 금방 오신다고 했는데 왜 이리 오시지 않지? 마중이라도 나가야 하는 건가?”

몹시 궁금해진 구렁이는 청평사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구렁이가 사찰 회전문을 나오는 순간 하늘에서 청천벼락이 쳤다.

 

“쿵-쿠쿵.” 순간 구렁이는 큰 벼락을 맞고 뒤집어지고 말았다. 이어 큰 비가 내리면서 삽시간에 청평사 아래는 물바다가 되었다.

구렁이도 큰 홍수를 따라 둥둥 떠내려가 버렸다.

 

깜짝 놀란 공주는 급히 구렁이를 찾아 내려가 보니 구성폭포에 죽어 있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 몰라도 참으로 서글픈

인연이구나.

 

아마도 당신과 나는 아득한 전생에 나쁜 인연을 맺었나 봅니다. 내가 당신과 만난 시간은 잠시이지만 생을 바꿔서까지 나를 괴롭

혔으니 착한 일을 많이 해 다음 생에는 서로 고통 받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공주는 구렁이를 정성껏 묻어 주고 청평사에 다시 올라가 부처님 전에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이 생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이 다음 생에까지 이으려 했으나 못된 구렁이로 환생한 업보에 이토록 고생을 한 것은 내가 지은

죄업이 크기 때문입니다.

 

부디 소녀와 인연 맺은 모든 사람들의 죄업을 참회하오니 넓으신 도량으로 헤아려 주십시오.”

 

공주는 간절히 기도를 하고 또 하면서 며칠 동안 참회진언을 염송했다.

기도를 마치자 사찰의 도력 높은 스님은 “이미 공주님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며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그렇습니다. 공주님. 소승은 이미 공주님과 구렁이가 수억 겁 동안 맺은 악연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절에 오실 때 그 고통을

알고 소승이 구렁이를 몸에서 떼어낸 것입니다.”

 

공주는 그제야 청평사에 도착하자 순순히 몸에서 떨어져 나온 구렁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군요. 큰스님께서 저와 구렁이의 업장을 녹여 주셨군요. 저는 이곳에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구렁이의 영가를 천도하고

평생 수행자로 살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공주의 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공주는 청평사를 위해 불사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공주의 의중을 전해들은

당나라 태종은 큰 금덩어리 세 개를 청평사로 보냈다.

이중 하나는 법당과 공주가 머물 숙소를 짓는데 사용하고 하나는 공주의 귀국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나머지 하나는 훗날 사찰을 고치는데 사용하기 위해 오봉산에 묻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내 구렁이가 죽은 구성폭포 위에 탑을 조성했다.

공주가 상사병에 걸린 청년과 생을 넘나들며 악연(惡緣)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회전문은 한국전쟁당시 모든 전각이 소실

됐는데도 불타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회전문은 보물 제164호로 지정돼 보존돼 있다.

 

청평사 계곡에는 공주가 목욕을 했다는 구성폭포와 공주탕은 현재도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춘천=여태동 기자

 

찾아가는 길 /

서울에서 경춘 국도를 타고 양구로 들어온다. 다시 춘천 방향으로 차를 돌려 오봉산을 거슬러 내려온다.

비교적 이정표가 잘 되 있으며 춘천 시내 외곽도로를 타고 양구로 들어오면 찾기 쉽다.

배를 이용할 때는 소양호 선착장을 이용한다. (033)244-1095

 

참고 및 도움: 춘천문화원 홈페이지, 청평사 안내판, 청평사 종무소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