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과 영혼의 말씀

수첩을 펼치면서= 법정스님

백련암 2010. 4. 22. 18:04
수첩을 펼치면서

연말이면 행사처럼 아궁이 앞에 앉아서 편지도 태우고

사진도 불태워 없애고 불필요한 기록들도 불 속에 던져버린다.

기록이란,..

특히 우리처럼 단순 명료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인 연장은 불필요하다.

태워버리고 나면 마치 삭발하고 싶은 의욕이 솟는다.

『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의 마음도 찾아 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아 볼 수 없으며,

또한 현재의 마음도 찾아 볼 수 없다."

찾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이 마음을 가지고
어디에 매어두어야 한단 말인가.
찾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텅텅 비워버려야 한다.

텅 빈 데서 비로소 메아리가 울린다.

어디에도 집착이 없는 빈 마음이 훨훨 날 수 있는 자유의 혼을 잉태한다.

거울에 사물이 비치는 것은 거울 자체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만약 무엇이 들어가 있다면 거울은 아무것도 비출 수 없다.

그것은 거울일 수가 없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