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가지치기를 마친 겨울 감나무 앞에서
수행은 스스로 행하는 ‘가지치기’
암자 한 켠 구석자리에 패어놓은 장작은 혼자 머무는 거사가 익숙한 솜씨로 주변 산 언저리에서 간벌한 것이다. 톱으로 적당한 크기로 잘랐고 시간날 때마다 도끼로 패 놓았다. 잘 말린 후 쌓아서 지붕까지 해달았다. 비나 눈으로부터 젖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 지붕 처마에도 고드름이 열려 있다. 마당 한 구석엔 채 다듬지 못한 거친 통나무가 부담스럽게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언제 와도 도량은 늘 깔끔하다. 밭두둑 끝 언저리의 대나무는 혼자서 푸른 잎을 달고서 삭풍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수 십개의 까치밥을 달고 있는 감나무 아래에는 잔가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스스로 가지치기를 한 까닭이다.
삐뚤빼뚤 해도 꼭 해야 하는 가지치기
따끈한 방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 며칠을 뒹굴거렸다. 이 맛에 토굴살이를 원하는 모양이다. 누구도 간섭하는 이 없고 또 굳이 찾아서 해야 할 일도 없다. 그저 머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다. 결국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 자체도 일이라고 느끼는 시점이 그 무렵인 까닭이다. 그것이 권태로워 또 몸을 움직일 만한 일거리를 찾는다. 몸세포가 휴식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면서 뭔가 소일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찾아도 없으면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늘 바쁨에 익숙한 생활이라 한가함이 오히려 불편한 까닭이다.
급기야 눈길은 마당의 정원수에 꽂혔다. 가지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삐죽삐죽 삐져나온 것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배시시 몸을 일으켜 창고로 갔다. 필요한 연장을 챙겼다. 장갑도 꼈다. 묵은가지는 그대로 두고 새로 올라온 가지를 중심으로 대충 높이를 맞추어 잘라주면 된다고 들었다. 잔가지와 겉가지는 물론 때로는 본줄기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어깨너머로 들었고 또 건성으로 대충 배운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잠시 마루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내가 자른 나무를 거리를 두고서 바라보니 이건 가지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거의 맨손으로 뜯어놓은 것 같은 수준이었다. 들쭉날쭉 제멋대로다. 사다리 위에서 곡예를 하며 애써 자른 것은 보기에 더 민망했다. 차라리 그대로 둔 것만 못하다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필요 없는 가지 선택’ 쉽지 않아
도심 신작로에 서있는 은행나무 가로수들도 그랬다. 간판이 제대로 안보인다는 이유로, 혹은 가로등에 걸려서, 그것도 아니라면 전깃줄 전화선 때문에 등등 갖가지 이유로 몰골 사납게 가지가 부분부분 제멋대로 잘려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대로 두는 것만이 나무를 사랑하는 일은 절대로 아니다. 설사 과일나무라고 해도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린 경우 가지가 휘면서 결국 찢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가지를 쳐주고 열매도 미리 따주어야 한다. 유실수가 아니더라도 이것을 제대로 하지 않게 되면 급기야 소복하게 쌓인 눈에 의해 찢어지는 고통스런 가지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그걸 일러 사람들은 고상하게 설해목이라고 불러주긴 해도 나무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나무들 가지치기’는 스스로 욕심 버리는 것
어쨌거나 불필요한 가지는 잘 구별한 후 제대로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가지가 불필요한 것인가 하는 판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건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무가 원하는 가지치기와 사람이 원하는 가지치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일이다. 어쨌거나 불필요한 나무가지를 잘라내듯 우리의 삶에도 가지치기는 수시로 필요하다. 스스로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결국 남에 의해 가지치기를 당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단순해진 겨울산은 군데더기가 없다. 모든 나무들의 가지치기가 끝난 탓이다. 마지막엔 잎까지 털어버렸다. 오가는 이조차 없는 겨울산에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일 없는 것을 으뜸으로 삼아야 제격이다. 어떤 작가는 감나무는 스스로 가지치기를 한다고 노래했다. 스스로 욕심을 다룰 줄 아는 까닭이다. 수행이란 것도 알고보면 저 감나무처럼 스스로 가지치기를 해 마치는 일이다.
상락강산수엽공(霜 落 江 山 樹 葉 空)
천암수죽야생풍(千 巖 修 竹 夜 生 風)
눈서리 내린 강산에 나뭇잎마저 비워 버렸는데
천 길 바위 곁 긴 대나무엔 밤바람이 일어나네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원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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