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본 부처님 탄생 내력
성속 결합, 희생후 재생, 소우주 창조
신화적 구조 속에서 석가의 현세출현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압축한 팔상도(八相圖) 가운데 탄생과 관련된 그림이 두 점을 차지한다.
제1도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은 부처님이 마야부인의 몸에 잉태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고,
제2도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은 출생 직후의 과정을 담고 있다. 팔상도는 하나의 화면에 시공간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장면이
펼쳐져 있어 순서에 따라 그 전개과정을 읽어나가는 묘미가 크다.
통도사팔상도를 텍스트 삼아 탄생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본다.
제1도 ‘도솔래의상’은 4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졌는데 상단좌측의 ‘구담귀성(瞿曇貴姓)’에는 부처님이 현세에 태어나게 되는 고타마
(구담) 집안의 내력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보면 기둥에 묶여있는 한 인물을 향해 군사들이 활을 겨누고, 또 다른 인물이 그들을
향해 구름을 타고 황급히 내려오고 있으며, 그 아래쪽의 정자 안에는 두 아이가 각기 적색.백색 용기 속에 앉아 합장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모초의 의마왕이 아우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고타마라는 선인(仙人)의 성(姓)을 이어 산속에 살았는데, 어느날 군사들이 그를 도둑
으로 오인해 나무에 묶고 활을 쏘았다.
선인이 신통력으로 이를 보고 날아와 흘러내린 피를 취해 진흙으로 뭉쳐 2개의 그릇에 담아놓고 기원하였다.
열 달이 되자 두 그릇의 피는 각기 남자와 여자가 되었고, 이후 후손이 이어져 사자협왕에 이르러 4명의 태자를 두었는데 첫째아들이
바로 석가의 아버지 정반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석가가 현세에 태어날 집안은 세속의 왕과 탈속의 선인이 결합해 이루어졌고, 고난과 희생을 거쳐 탄생한 후손이 남녀 한 쌍인
점은 새 우주의 열림을 상징한다.
곧 성속의 결합, 희생 후의 재생, 소우주의 창조라는 신화적 구조 속에서 부처님의 현세출현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상단우측에서 하단좌측을 잇는 ‘승상입태(乘象入胎)’와 ‘마야탁몽(摩耶託夢)’의 두 장면은 석가의 전생인물인 호명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품을 향해 하강하는 모습을 그렸다.
과거 오랜 선업의 공덕으로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중이던 호명보살이 중생구제를 위해 인간계에 태어나게 되면서, 어느 곳에 태(胎)를 잡을지 신중히 골라 바로 고타마 집안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하단우측의 ‘정반성왕(淨飯聖王)’은 마야부인이 왕에게 꿈이야기를 한 후 바라문에게 해몽을 듣는 모습을 담았다.
제2도 ‘비람강생상’에는 탄생을 둘러싼 내용이 다섯 장면에 담겨 있다. 상단중앙의 ‘수하탄생(樹下誕生)’과 ‘지천지지(指天指地)’는
마야부인이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오른쪽 옆구리로 출산하는 모습과, 갓 태어난 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옮긴 뒤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사자후로 탄생게를 외치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처럼 갓태어난 아기가 스스로의 존귀함을 선언하는 파격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설정은, 한량없는 전생을 거듭하며 중생구제의 큰 뜻을 안고 현세에 태어났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이다.
이후의 내용은 탄생불로 좌정한 부처님에게 천상에서 아홉마리 용이 물을 내뿜어 몸을 씻어주는 ‘구룡관욕(九龍灌浴)’과, 궁으로 돌아오는 ‘종원환궁(從園還宮)’을 거쳐, 정반왕이 아시타 선인에게 태자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듣는 ‘선인점상(仙人占相)’으로 마무리된다.
선인은 태자가 세간에 머물면 이상적인 왕이 되고, 출가하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이후 정반왕은 태자의 출가를 막기 위해 외부세계와 차단한 채 부족함 없는 삶을 제공하지만, 그의 풍요함과 안락함이 완벽할수록
그러한 삶을 뿌리치고 깨달음의 길을 택한 석가의 위대함은 더욱 빛나는 것이었다.
[불교신문 2719호/ 5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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