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 = 목갈라나, 야소다라, 데와닷타

백련암 2011. 6. 24. 23:58

[붓다를 만난 사람들] 27. 목갈라나

초기불교교단 안정·발전 위해 헌신한 신통제일

 

 

산자야 제자서 앗사지 비구 만난 후 출가


사리풋타와 더불어 부처님 2대 제자 칭송

 

 

지혜제일 사리풋타와 더불어 부처님의 2대 제자로 꼽히는 목갈라나. 목갈라나는 라자가하의 북쪽에 위치한 코리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코리타(Kolita). 인근 마을에 사는 사리풋타와는 어릴 적부터 함께 뛰놀며 자란 죽마고우였다.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목갈라나는 유복한 청년기를 보내며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16세의 어느 날 친구 사리풋타와 함께 산정제(山頂祭)를 구경하러 가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일까. 넘쳐나는 인파로 축제의 흥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두 사람은 똑 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참으로 화려한 축제로구나. 하지만 100년 후에는 무엇이 남으리….’


그 어떤 행복도 아름다움도 시간이 지나면 한 순간 꿈처럼 저 멀리 사라질 수밖에 없는 무상한 것임을 느낀 것이었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의지하여 수행할 스승을 찾다가 당시 라자가하에서 크게 번영하고 있던 산자야의 교단으로 들어가게

된다. 누구든 먼저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을 인도해 주자는 약속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열심히 수행 정진했다.

그러나 산자야의 교설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던 그들은 낙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라자가하에서 우연히 앗사지(Assaji)라는 비구를 만나 불법을 접하게 된 친구 사리풋타와 함께 목갈라나는

부처님을 찾게 된다. 한편, 저 멀리 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본 부처님은 “저 두 사람이야말로 내 제자 가운데 신통·지혜제일이 될 것이다”라 예견하시며, 캇사파 형제 위에 앉게 하셨다고 한다. 이를 보고 캇사파의 제자들 가운데 불만을 터뜨리는 자도 있었으나, 부처님은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특별하다고 하시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셨다. 이후 두 사람은 항상 부처님의 좌우를 장식했다. 오른쪽에는 지혜제일의 사리풋타가, 왼쪽에는 신통제일의 목갈라나가 앉았다. 이 둘은 서로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결코 상대방을 견제하거나 비방하는 일 없이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며 수행에 힘쓰는 그야말로 최고의 도반이었다.

 

이교도 폭행으로 생 마감해

 

온화하고도 순수한 성품을 지닌 지혜로운 수행승 사리풋타와는 달리, 목갈라나는 행동형의 전통적인 수행승이었다. 아마도 서로 다른 성격이기에 두 사람은 더욱 더 서로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한때 부처님께서 아마라키원에 계실 때였다. 안거를 끝낸 목갈라나와 사리풋타는 각자 500명의 비구를 데리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찾았다. 안거 기간 동안 잘 지내셨는지 안부도 묻고 그 동안 못 들었던 가르침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먼저 와 있던 비구들과 나중에

도착한 비구들 사이에 그만 싸움이 발생하고 말았다. 부처님은 각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였던 목갈라나와 사리풋타의 부덕을 꾸짖으신 후 그곳으로부터 떠나도록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훗날 부처님은 두 사람에게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사리풋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500명의 비구를 버리고 홀로 조용한 곳에 가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한편 목갈라나는 대답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비구들의 분열을 막을 수 있을까 궁리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목갈라나를 칭찬하시며 사리풋타에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너를 의지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하셨다고 한다. 대조적인 두 사람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목갈라나의 신통력은 출중한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6신통이라 하여 원하는 장소에 자유롭게 출현할 수 있는 신족통, 사람들의 미래의 운명을 예견하는 천안통,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천이통, 다른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타심통, 자신이나 타인의 과거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숙명통, 그리고 세계와 인생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인 누진통든다. 깨달은 자는 누구든 이 6가지 신통력을 갖추게 된다고 하는데, 목갈라나는 특히 뛰어난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엄지발가락을 가지고 제석천이 사는 궁전을 흔들어대기도 하고, 동원정사 건축의 감독을 맡아 9개월 만에 완성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목갈라나가 지닌 신통력 때문이었을까. 후대의 전승에서는 그가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우안거가 끝나는 날 비구들에게 공양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어느 날 신통력을 사용하여 죽은 어머니가 있는 장소를 찾던 목갈라나는 아귀의 세계에서 먹을 것이 없어 뼈와 살이 말라붙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놀란 목갈라나는 곁으로 다가가 먹을 것을 주려 해보지만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음식은 불이 되어 버려 결국 어머니가 먹을 수는 없었다. 목갈라나는 크게 울며 슬퍼했다.

그리고 부처님을 찾아가 사정을 고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너의 어머니의 죄업은 너무나도 뿌리 깊은 것이라 너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신들 역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16명의 비구를 공양한다면 그 위신력에 의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킬 수 있을 것이다”고 하셨다.

부처님의 지시대로 하자 목갈라나의 어머니는 그 날 일 겁에 걸친 아귀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누진통 이외의 신통력에 대해서는 남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다. 부처님의 만년, 사캬족의 멸망을 눈앞에 했을 때

목갈라나는 신통력으로 이를 막자고 제안한다. 이전에 어머니의 고향인 사캬족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어머니의 비천한 혈통을 둘러싼 내막과 이를 모욕하는 발언을 들은 코살라국의 비두다바왕은 부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자마자 부처님의 고향인 사캬국을 공격하고자 했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비두다바는 어느 날 군을 일으켜 카필라왓투로 향했다. 이른 아침 세상을 관찰하다 이를 알게 된 부처님은 카필라왓투의 교외에 있는 마른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고 계셨다. 부처님의 뜻을 안 비두다바는 차마 사캬국을 공격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비두다바는 부처님을 무시하지 못한 채 군을 돌려 코살라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국 왕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네 번째 공격을 감행한다. 이때 목갈라나는 부처님에게 제안했다.


“신통력을 써서라도 사캬국을 지켜야 합니다. 철로 된 바구니로 사캬국을 완전히 덮어버리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부처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석가국 사람들이 쌓은 업의 과보를 누가 대신 받을 수 있단 말이냐.”
아무리 훌륭한 신통력으로도 업으로 인한 과보는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영가 천도 우란분절 제도화

훗날 목갈라나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업의 과보를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과거세의 업의 과보로 인해 이교도로부터 폭행을 당하여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목갈라나는 사리풋타와 더불어 초기불교교단의 안정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부처님은 당신이 설법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이 두 제자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게 하였고, 교단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이들로 하여금 수습하게 했다. 그 유명한 데와닷타의 파승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비구들을 설득하여 사태를 수습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불교교단의 발전을 시기하는 다른 종교가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갖가지 신통력으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갈라나의 존재는 매우 불안하고 달갑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목갈라나는 니간타파 사람들의 계략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신통력으로 여러 세계를 방문한 후 돌아온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좋은 세상에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이교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악처에 태어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이교도의 신도 수는 현저하게 감소했고, 격분한 이교도들은 악한을 보내 목갈라나를 죽이고자 했다. 몇 번은 신통력을 써서 사태를 피했지만 결국 이들에게 붙잡힌 목갈라나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폭력을 당하게 된다.
거의 죽도록 맞아서 누워있는 목갈라나에게 달려간 사리풋타는 말했다.


“벗이여, 그대는 신통제일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법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 자리를 피하고자 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맞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자 목갈라나는 대답했다.


“나는 전생에 부모를 괴롭힌 적이 있다네. 이제 그 과보를 받은 것뿐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게나.”
목갈라나는 전생에 자신의 처의 말에 넘어가 눈먼 양친을 숲으로 데리고 가서 죽이는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이 악업으로 인해 그는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이제 마지막 생을 맞이하며 폭력으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업의 과보라는 것을 알지만, 피투성이가 되어 눈앞에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에 사리풋타는 괴로웠다.


“우리는 함께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자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이제 깨달음도 얻었네. 이제 함께 입멸해도 좋지 않겠는가.”

 

부처님을 찾아 간 사리풋타는 그 뜻을 고하며 허락을 구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부처님은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께 작별 인사를 고한 사리풋타는 고향인 나라다마을로 가서 친척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고 조용히 입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떠난 2주 후, 목갈라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입멸했다. 위대한 두 거목을 잃은 부처님 역시 그들의 입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28. 야소다라

 

남편 향한 그리움 깨달음의 정열로 승화시키다
 

싯닷타의 아내…아들 라후라 출가 후 자신도 귀의
스스로에 엄격·참회하며 살아 구참괴제일로 불려

창문 밖으로 카필라왓투 거리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거리에서 탁발을 하고 있는 한 수행승을 향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이별인사 한 마디 없이 자신과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버렸던 남편의 등장에 그녀의 마음은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아내 야소다라이다.


일설에는 그녀의 이름을 밧다캇챠나(Bhaddakaccānaā), 혹은 라후라의 어머니라는 의미에서 라후라마따라고 부른다.

그녀는 사캬족 인근에 있던 콜리야족 숫파붓다왕의 딸이었다. 부처님의 종족인 사캬족과 콜리야족은 같은 종족으로부터 나온 밀접한

관계로 콜리야족 역시 소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양족 간에는 예로부터 혼인이 성행했는데 부처님의 생모였던 마야부인, 그리고 양모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역시 콜리야족 출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사캬족의 왕자 싯닷타에게 시집온 야소다라는 라후라라는 귀여운 아들도 얻었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출세간적인 삶을 동경하는 남편 싯닷타 때문에 시아버지 숫도다나왕과 함께 속을 태워야했다.

싯닷타의 마음을 돌려보려 부단히도 애썼지만 끝내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채, 결국 어느 날 새벽 남편은 마부만을 데리고 카필라성을 넘어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마부와 말만이 성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마부에게 대신 쏟아내며 울부짖었다.


“어떻게 왕자님을 남겨두고 너만 올 수 있단 말이냐.”   어린 아들의 얼굴이 눈에 밟히지도 않았단 말인가.

나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 무엇이었던가. 야소다라의 가슴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싯닷타를 보아왔던 그녀였다. 이별의 방식은 너무나도 매정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마음 한 구석에서 남편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느끼며 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맹서한다.


“오늘부터 그 분의 수행이 끝날 때까지 나는 결코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화장하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거나, 맛난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그 분과 똑같이 산과 들에 머무는 고행자처럼 생활하리라.”


부처님 성도 때까지 고행생활 자청


그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12년, 남편이 깨달은 자가 되어 고향을 방문한 것이었다.

아들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수차례 사신을 파견하여 초청의 뜻을 밝힌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즉시 아라한이 되어 버렸고, 자신들이 왜 파견되었는지 그 임무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왕이 마지막으로 보낸 것은 깔루다이였다. 숫도다나왕 신하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릴적 부처님과 소꿉놀이 친구였다. 그는 부처님의

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지만, 결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제자들과 함께 카필라왓투를 찾게 된 부처님은 도착한

다음 날 거리에서 걸식을 했다. 바로 이때였다. 애증이 교차하는 미묘한 심정으로 야소다라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남편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한 성인이었다. 보름달처럼 빛나는 얼굴, 코끼리와도 같은 우아한 걸음걸이, 둥글고 부드러운 목 줄기, 사자와 같은 강인한 턱, 황금색으로 빛나는 피부…. 깨달음을 얻은 남편은 외모에서부터 이미 보통 사람과는 다른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스러운 징표로 가득 찬 부처님을 바라보며 야소다라는 온 몸으로 감동과 존경의 전율을 느꼈다.


그날 왕궁에서는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한 공양이 이뤄졌다. 부처님이 공양을 마치자 왕궁의 여인들이 부처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그 가운데 야소다라의 모습은 없었다. 시녀들이 그녀에게 나아가 부처님을 만날 것을 권했지만 야소다라는 “만약 나에게 덕이 있다면 왕자님께서 스스로 나를 만나러 오실 것이다.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부처님은 2명의 제자를 동반하고 그녀의 처소를 찾았다. 놀란 그녀는 황급히 엎드려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갖다 대며

경의를 표했다. 오랜 세월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들 라후라와 함께 꿋꿋하게 살아 온 며느리에 대한 측은함이었을까.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숫도다나왕은 부처님께 말했다.


“야소다라는 당신이 가사를 입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가사를 입고, 당신이 하루에 한 끼만을 먹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한 끼만을 먹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큰 침대에는 눕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너덜너덜한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침대에

눕고, 당신이 화환이나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도 그것들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등 정말 수행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이를 들으신 부처님은 야소다라는 왕녀가 아니었던 전생에도 이미 몸을 잘 지켰던 여인으로 왕녀인 현생에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시며 그녀의 덕을 칭찬하셨다고 한다. 부처님이 카필라왓투를 방문한지 7일째 되는 날, 야소다라는 아들 라후라에게 말했다.   “라후라야, 저 분이 바로 너의 아버지이시다. 가서 네 유산을 달라고 하렴.”


찾아와 유산을 달라는 아들 라후라를 부처님은 출가시켰고, 야소다라는 사랑하는 라후라를 그렇게 존경하는 남편의 곁으로 보냈다.

아들 라후라가 출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인 숫도다나왕마저 저 세상으로 가 버리자 그녀는 부처님의 양모였던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를 따라 불제자가 되었다. 야소다라는 생각했다.


‘내 남편은 출가해서 일체지자의 지위에 올랐으며, 내 아들 역시 출가해 그의 곁에 머물고 있다. 내가 집에 머문들 무엇하리.

나 역시 출가해 사왓티로 가 부처님과 내 아들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그녀는 부처님과 라후라 가까이에 있는 비구니절에 머물렀다. 가까이서 부처님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그녀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잘 단속했다. 비구니가 된 후 그녀는 자신을 반성하는 일에 매우 엄격하여 불제자

가운데 구참괴제일(具愧第一)이라 칭해졌다. 이는 부처님과 라후라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이를 항상 참회하며

부끄럽게 생각할 줄 알았기에 붙여진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출가 후의 야소다라의 생활을 말해주는 전승은 별로 없어 그녀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 어렵다.


단, 다음 전승을 통해 한때 왕녀로서 살았던 그녀가 고된 출가자의 삶에도 불구하고 아들 라후라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로

인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남편·아들 근처서 평생 수행정진


한때 부처님이 사왓티 근교에 머무르고 계실 때였다. 야소다라는 복통을 앓게 되었다. 라후라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건만 그녀는 나갈 수가 없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라후라는 어머니인 야소다라의 처소로 들어와 “뭔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제가 돕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야소다라는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설탕을 뿌린 망고즙을 마시면 복통이 가라앉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걸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처지이니, 어디서 그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라후라는 자신이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다며 일어섰다.


그 길로 라후라는 자신의 화상이자 따뜻하고 세심한 성품의 사리풋타를 찾아갔다. 화상과 제자는 세간의 부모 자식과 같은 관계였으니, 아마도 개인적인 일을 상담하기에는 사리풋타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사리풋타 앞에 서니 망설여졌다.

입 안에서 도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채 라후라는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사리풋타는 물었다.
“라후라야,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느냐?”


라후라는 대답했다.
“저의 어머니가 지금 복통을 앓고 있습니다만, 설탕을 뿌린 망고즙을 마신다면 곧 나을 것입니다. 어찌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측은하게 여긴 사리풋타는 “걱정하지 말거라. 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며 라후라를 위로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사리풋타는 라후라를 데리고 사왓티로 들어가 라후라를 기다리게 한 후 파세나디왕을 찾아갔다.

사리풋타가 온 것을 안 파세나디왕은 자리를 마련하고 앉기를 권했다. 마침 그때 화원을 지키고 있던 한 병사가 맛깔스럽게 익은 망고를 바구니 가득 담아 왔다. 왕은 망고껍질을 벗겨 설탕을 뿌린 후 스스로 으깨서 장로의 발우에 담아주었다. 사리풋타는 서둘러 일어나

라후라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에게 드려라.”


라후라가 주는 망고즙을 먹자 야소다라의 복통은 가라앉았다. 한편, 파세나디왕은 사리풋타가 자신이 준 망고즙을 먹지 않고 어디론가 가지고 간 것을 이상히 여겨 부하에게 그가 누구에게 망고즙을 주었는지 알아오라고 했다. 사리풋타의 뒤를 밟은 부하는 자신이 목격한 모든 상황을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생각했다.


‘만약 부처님이 가정생활을 하고 계셨다면 부처님은 전륜성왕, 라후라 사미는 태자, 야소다라 장로니는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지배권은 그들 밑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도 그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출가하여 우리들 가까이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내 어찌 모른 척 하리.’  그리하여 이후 파세나디왕은 야소다라를 위해 망고즙을 계속 보내주었다고 한다.

 

성인을 남편으로 둔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것이었을지 야소다라의 일생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야소다라는

그릇이 큰 여인이었던 것 같다.

그 큰 그릇 안에 자신의 고된 삶을 모두 풀어놓은 채 밖으로 그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남편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깨달음에 대한 정열로 바꾸어 정진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여인이었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29. 데와닷타

 

부처님 시해 시도…승가 분열 획책한 시대의 악인
 

아난다·우파리와 출가…신통력으로 혹세무민

명예·재산 등 세속적 욕심 버리지 못하고 자멸

 

부처님 만년,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캬족의 멸망, 그리고 데와닷타의 반역이다. 친척과 관련된 이 두 가지 사건은 연로한 부처님의 마음을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게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특히 데와닷타의 반역은 승가의 분열뿐 아니라, 당시 승가 최고의 외호자였던 빔비사라왕까지 죽음으로 몰고 갔던 불행한 사건이었다.


데와닷타의 출신에 관해서는 전승마다 다르다. 남전에 의하면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 부부의 연을 맺었던 야소다라의 남동생이라고

하며, 북전에 의하면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아난다의 동생 혹은 형이라고 한다.

어느 전승에 의하든 데와닷타가 부처님과 친인척 관계였음은 분명하다. 데와닷타는 부처님이 성도 후 고향 카필라왓투를 찾았을 때,

아누룻다, 밧디야, 아난다, 바구, 캄빌라, 그리고 우파리와 함께 출가했는데, 함께 출가한 자들이 아라한이 되거나 다른 과(果)를 얻었던 것에 비해 그는 그저 세속적인 신통력을 얻는데 그쳤다고 한다.


데와닷타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던 것 같다. 부처님 만년, 데와닷타는 마가다국의 왕자였던 아자타삿투에게 접근하여 그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했고, 데와닷타의 신통력에 반한 왕자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며 날마다 많은 공양을 바쳤다.

다른 수행승들은 데와닷타가 부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런 모습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계셨다. 데와닷타의 마음속에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야망이 언젠가 불러일으킬 재난을 미리 알고 계신 듯, 부처님은 데와닷타를 부러워하는 비구들에게

설하셨다.


“명예와 재산을 탐하는 세속적인 욕망은 부질없는 것이니라. 그 욕망이야말로 결국은 자신을 파괴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출가한지 얼마 안 되어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지 못한, 혹은 어리석은 비구들은 그 가르침의 진의를 깨닫지 못한 채 데와닷타를 동경하며 추종했다. 한편, 아자타삿투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데와닷타는 드디어 감추고 있던 속내를 드러냈다.


“왕자님은 부왕인 빔비사라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저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승가의 지도자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아자타삿투와 반역행위 계획


마침 앙가국에 대한 세금 부과 문제로 부왕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고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왕자의 마음에 데와닷타의 제안은 불을

질렀다. 게다가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까지 전해들은 왕자의 마음은 소용돌이쳤다. 이렇게 왕자의 마음을 동요시켜 놓은 후,

어느 날 데와닷타는 부처님에게 제안을 던졌다. 라자가하에서 빔비사라왕을 포함한 대중에게 설법하고 계신 자리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연로하셨으니 앞으로는 은거하여 편안한 생활을 즐기시고 비구 승가는 제게 물려주십시오.

제가 승가를 통솔하겠습니다.”
참으로 당돌한 제안이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데와닷타야, 나는 사리풋타나 목갈라나와 같은 훌륭한 제자들에게조차 승가를 맡길 생각이 없다. 하물며 너처럼 다른 사람의 침을 6년이나 먹고 산 비열한 인간에게 승가를 맡길 듯싶으냐.”
이는 데와닷타가 아자타삿투에게 붙어 6년 동안이나 아첨하며 보시물을 받은 것을 비유한 말씀이었다. 많은 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한 데와닷타는 부처님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었다.


한편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현시갈마(顯示磨)를 실행하도록 지시하셨다. 현시갈마란 데와닷타의 본성이 이전과 지금이 다르니, 그의 말이나 행동을 불법승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승가 차원에서 갈마를 통해 결의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사리풋타에게 라자가하로 가서 이 사실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라고 지시하셨다. 사리풋타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라자가하로 들어가 데와닷타가 전과는 달리 이제 불교승가의 비구가 아니라는 것, 즉 데와닷타의 언동은 불교와는 무관한 것임을 사회적으로 현시했다고 한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승가의 지도자가 되고픈 야망에 부처님에 대한 원한까지 더해진 데와닷타의 마음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말로 해서 안 된다면 강제로라도 승가를 빼앗아야겠다고 생각한 데와닷타는 아자타삿투를 찾아갔다.


“왕자님, 부왕이 장수한다면 언제 왕자님이 왕위에 오르겠습니까. 어쩌면 그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때입니다. 부왕을 죽이고 당신이 마가다국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저 역시 부처님을 제거하고 승가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데와닷타 못지않게 권력욕이 강했던 아자타삿투는 부왕을 죽일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일설에 의하면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날카로운 검을 지니고 왕궁에 들어갔다가 대신들에게 잡힌 아들 아자타삿투에게 빔비사라왕은 스스로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권력의 무상함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또한 그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아자타삿투는 부왕을 철탑에 유폐시키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한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아자타삿투는 마가다국의 왕이 되었고, 어느 날 데와닷타는 그를 찾아가 부처님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머리를 맞대고 모의한 끝에 두 사람이 생각해낸 살해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먼저 한 사람이 가서 부처님을 암살하고, 이어 두 사람이

앞의 암살자를 죽이고, 이어 네 사람이 앞의 두 사람을, 이어 여덟 사람이 앞의 네 사람을, 이어 열여섯 사람이 앞의 여덟 사람을 죽인다. 마가다국에서 이미 최고의 존경을 받고 있던 부처님을 살해하고 소문이 퍼질 경우 벌어질 사태를 감당하기 두려웠던 아자타삿투와

데와닷타가 범행 흔적을 없애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실패하고 만다. 최초의 한 사람이 부처님을 살해하고자 다가갔을 때 그는 그만 부처님의 위력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경직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부처님은 그런 그를 위해 법을 설해 주셨고, 그는 죄를 뉘우치며 우바새가 되어버렸다.

그를 찾기 위해 갔던 다른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부처님께 교화되었다. 이런 식으로 결국 마지막 16명까지 모두 뉘우치고 우바새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데와닷타는 부처님을 해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스스로 산위에 올라가 큰 돌을 굴려 떨어뜨려

부처님을 죽이려 했지만 돌은 도중에 부서졌고, 작은 파편이 부처님의 발가락에 닿아 이로 인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을 뿐이었다.


빔비사라왕 죽음으로 몰아넣어


라자가하에서 유명한 나라기리라는 포악한 코끼리를 조련사에게 부탁하여 부처님이 탁발하러 지나가시는 거리에 풀어놓게 했지만

이 역시 실패였다.

코를 치켜들고 양쪽 귀와 꼬리를 곤두세운 채 달려오는 미친 코끼리를 부처님은 자비심으로 마주하셨고, 그 위력과 자비심에 의해

코끼리마저 순한 양처럼 부처님 앞에 발을 구부리고 앉아버린 것이었다. 데와닷타가 이성을 잃고 온갖 사건을 꾸며대는 사이,

데와닷타가 부처님을 해치려한다는 소문은 라자가하 성 안에 퍼졌고 사람들은 그에 대한 공양을 멈추었다.

데와닷타는 더욱 더 분노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데와닷타가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묘안은 승가 분열이었다. 부처님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 그는 고칼리카, 카타모라카팃사카, 칸다데위야풋타, 그리고 사뭇다닷타의 4명에게 다가가 부처님에게 다섯 가지 주장을 함으로써 승가를 분열시키자고 제안한다.

다섯 가지 주장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평생 삼림주자(森林住者)로 살아야 하며 촌락에 들어가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둘째, 평생 걸식자(乞食者)로 살아야 하며 초대를 받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셋째, 평생 분소의자(糞掃衣者)로 살아야 하며 거사의를 받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넷째, 평생 수하주자(樹下住者)로 살아야 하며 지붕이 있는 곳에 다가가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다섯째, 평생 생선과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며 이를 먹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데와닷따의 예측대로 부처님은 이와 같은 엄격한 생활양식을 실천하고 싶은 자는 실천해도 좋지만 실천하고 싶지 않은 자는 청식이나 거사의, 그리고 청정한 생선이나 고기의 섭취 등과 같은 완화된 생활양식에 따라도 좋다는 3가지 점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데와닷따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데와닷따는 사람들에게 “부처님께 5사를 청했지만 허락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5사에 의해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알린 후, 자신을 추종하는 500여명의 비구들과 함께 가야시사로 떠났다고 한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데와닷타의 파승을 수습하기 위해 뒤따라 나섰다. 그러자 데와닷타는 이들도 자신을 추종하여 온 것으로 착각하고 기뻐했다. 그리고는 저녁 무렵 비구들에게 설법하다 피곤해지자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대신 설법을 맡기고는 잠시 수면을 취했다. 그 사이 이들은 데와닷타를 따르는 500여명의 비구들에게 지금 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가를 설했고, 이에 법안을 얻은 비구들은 그들을 따라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잠에서 깨어난 데와닷타는 비구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실망하여 피를 토하며 그 후 9개월 동안 병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혹은 부처님에 대한 원망이 점점 깊어져 손톱에 독을 바르고 부처님을 해칠 기회를 노리다가 결국 그 독에 중독되어 심한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타오르는 탐진치의 불길을 끄지 못한 채 결국 그 불길에 스스로 타 죽고 만 데와닷타. 그에 관한 대부분의 전승은 이렇듯 지독한 악인

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악인’이라는 단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인물이다. 무슨 이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