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보리암(菩提庵)
보광전 관세음보살
신중전
지장전
<사찰유래>
남해 금산(錦山) 가파른 길을 세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오르고 있었다.
그림같은 바위와 산 허리를 감싸고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구름들,
그 자유자재의 구름을 바라보며 산길을 오르는 세 스님은 이마에서 흘러 내리는 땀을 닦아 내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 여름의 더위보다 뜨거운 구도심이 있기에 바위너설을 돌고 비탈길을 오르는 것은 차라리 즐거운 구도의 행로였다.
"길은 험해도 오를수록 마음이 밝아집니다."
보월 스님이 먼 발치로 내려다 보이는 바다를 굽어 보며 말을 꺼냈다.
"관음진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 평탄할 수야 없겠지요."
"산 이름이 아니더라도, 오를수록 비단 같은 산자락들이 아름답군요."
보련 스님과 보배 스님도 맞장구를 치며 풍광을 찬탄해 마지 않았다. 산 이름은 원래 보광산이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대왕이 이 산에서 기도를 하고 창업의 계시를 받은 은공을 갚고자 신령님들에게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싸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왕업은 이루었으나 그 귀한 비단으로 산을 둘러 싼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 대신들과 의논을 하던 중 한 신하가 이름에
비단 금(錦) 자를 넣어 부르는 것이 산에 비단을 두르는 것보다 좋은 일이라 말해 산 이름이 금산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세 스님은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소망이 같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전생의 인연을 다시 잇는 기쁨으로 친근한 도반이 되었다.
세 스님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 마음을 환히 밝혀줄 미묘한 법문을 듣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수행자인들 그런 소원이 없겠는가. 그러나 세 스님의 우연한 만남은 서로에게 그 소망을 더욱 절절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어디로 가면 우리의 미혹번뇌를 씻어 줄 스승님을 만날 수 있을까?"
세 스님은 이같은 고민을 하다가 남해 보리암에서 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보리암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스승을 만날 인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세 스님의 마음자리에서 똑같이 일었던 것이다.
"스님 저곳이 보리암인가 봅니다."
보배 스님이 들어 보이는 손가락의 끝에는 제비집 같은 암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흰 바위 아스라히 솟아 있고 발치 아래로 뭉게구름 피어 오르는 산. 흰 구름 사이사이로 눈시리게 푸른 바다가 작은 섬들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품은채 널려 있었는 것이 지척인 듯 가깝게 보였다.
그 절경의 한 가운데 위치한 암자를 보는 순간 세 스님은 환희심이 솟았다. 보월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 암자에서 기도를 하면 우리들 소원은 반드시 성취 될 것이야."
암자에 도착한 세 스님은 방 하나를 얻었으나 다리를 쉴 겨를도 없이 법당으로 향했다.
좁은 법당이지만 정결한 단 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의 자애로운 미소를 대하는 순간 해아릴 수 없이 넓고 넓은 바다 한 가운데 둥실
올라 선 느낌이었다.
"저는 이토록 자애로운 보살님의 미소를 본 적이 없어요."
"우리도 그 미소를 닮아야 하겠지요. 보살의 미소는 중생의 근심을 녹이는 훈풍 이어야 하니까요."
보배 스님과 보월 스님이 관음보살상을 바라보며 덕담을 주고 받는 사이로 보련스님이 들어 섰다.
"제가 이 관세음보살님의 내력을 알고 있는데 들어 보시렵니까."
의아해 아는 두 스님을 번갈아 바라보며 보련 스님은 옛 이야기 한토막을 꺼냈다.
"보리암의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지요. 산 이름이 태조대왕에 의해 바뀌는 사이 절 이름도 보리암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 절은 저 아득히 먼 가야국의 초창기에 인도 아유타국에서 돌 배를 타고 온 허황후가 창건 했으며 이 관음보살님과 저 아래 3층석탑은
허황후가 가져 온 것이란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사람들은 신라대의 원효대사가 창건 했다는 말을 더 믿고 있답니다.
절을 창건하고 이곳에서 수행을 하던 원효스님은 어느날 사시예불을 모시고 법당을 나오다가 멀리 바다에서 찬란한 광채가 솟아 오르는
것을 보았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스님들의 시선도 바다 먼 곳으로 옮겨 지고 있었다.
바다를 지나 산으로 치켜부는 바람 줄기들이 바닷빛 그대로 푸르러 시원했다. 보련 스님은 다시 얘기를 계속했다.
"마을에서 올라와 절일을 돕고 있는 사람에게 '저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세존도 근처일 것 같다고 답했는데 스님은 그 섬의 이름 또한
부처님의 명호이니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으리라 짐작을 했겠지요.
원효스님은 지체없이 빛이 발하는 곳까지 4백리 뱃길을 나아갔는데 두개의 큰 구멍이 있는 바위 섬 앞에서 다시 이상한 배 한척을 발견
했답니다.
사람은 타지 않았는데 바다위에 홀로 떠 있는 배는 돌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 안을 들여다 보니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답니다.
스님은 그 상자를 풀었는데 일곱겹으로 곱게 포장되어진 상자 속에 아담한 관음보살상이 있어 절에 모시게 됐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보살님께서 그때 원효스님에게 나투신 그 보살님이십니다."
세 스님은 얘기를 마치고 다시한번 지극 정성으로 관음보살님께 3배를 올렸다. 보련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들은 더욱 환희심이
났고 자신들의 소망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란 확신이 더욱 깊어졌다.
세 스님은 그날 저녁부터 기도에 들었다. 해지는 시간부터 다시 해가 뜨는 시간까지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는 정근을 하며 자신들
의 소망이 성취되길 기원했다. 졸음이 오고 다리가 아파왔지만 기도는 쉼이 없었다.
자정이 넘으면 잠시 마당에 나와서 천천히 걷다가 바다를 향해 다시 정근기도를 했다. 관음보살님은 이미 산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그 자애로운 미소를 드리우고 계시므로 어느쪽을 향해 기도를 하건 상관이 없었다.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을 머리에 이고 세 스님이 기도를 하는 그 절절한 시간들은 가끔 허공을 갈라대는 별똥별의 순간적인
행로가 아니면 영원히 멈춰져 있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밤을 도와 기도를 마치고 나면 낮에는 잠시 눈을 붙이거나 일천팔십번 절을 하는 고행으로 정진력을 돋우었다.
스님들은 기도를 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됐다.
"우리가 정작 만나야 할 스승은 이미 우리 곁 가장 가까운 곳에 와 계시는 것이 아닐까요."
보월스님이 그 깨우침의 가닥을 먼저 풀어 놓았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참된 스승을 찾는 것은 어떤 대상으로서의 스승을 만나고 못만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먹고 자고
기도하고 별을 보고 해와 달을 보는 그 일상들이 모두 스승임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생각마저 이렇게 닮아가니 얼마나 좋은 인연인지 모릅니다. 저도 정근을 하고 절을 하면서 이미 나 스스로가 나의 스승
이며 관음보살님과 제불보살님이 나의 스승이며 온갖 만물들이 내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 어찌하여 형상의 스승을 찾고자 갈망했던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세 스님은 굳이 대상으로서의 스승을 찾아 나서는 일은 부질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기도는 계속했다.
"이곳에서 기도를 마치고 또 다른 좋은 도량을 찾아 가도록 해요.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는 기도를 마치고 의논하도록 하고요.
혹 우리의 기도가 헛되지 않다면 오늘 밤 부처님께서 새로운 도량을 일러 주실지도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삼칠기도를 회향하기 전날 스님들은 이같이 뜻을 모았다. 마지막 날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기도를 해 정진력을 갈무리 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 스님은 약속이나 한 듯 삼경 무렵에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스님도 들었느냐"고 물었다.
기도를 하는데 스님들의 귀에 은은한 소리가 들렸왔던 것이다.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듯한 그 소리의 은근함에 세 스님은 문 밖으로 나왔고 다시 그 소리가 들리는 곳을 좇아 어둠을 헤치고 달려갔다.
절아래 바위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연화도로 가거라. 연화도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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