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 = 캇사파 3형제, 챤나, 우파리

백련암 2011. 11. 10. 01:04

[붓다를 만난 사람들] 36. 캇사파 3형제

 

1000명 제자 둔 배화교도, 불법에 무릎을 꿇다
 

불의 신 숭배했던 마가다국 원로 바라문
제사도구 버린 후 삭발하고 삼보에 귀의

 

사르나트에서의 초전법륜과 베나레스에서의 야사 및 그 친구들의 교화. 이들에게 전도선언을 하신 부처님은 그 길로 자신은 마가다국의 우루웰라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우루웰라는 깨달음을 얻기 전 부처님께서 6년간 머물며 고행을 했던 곳이자 깨달음을 얻은 곳

이기도 하다. 60여명의 제자를 거느리며 이제 막 승가의 기초를 형성한 시점에 부처님이 다시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구체적인 사정은 알 길 없지만, 이곳에서 이루어진 부처님과 캇사파 3형제의 만남을 통해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부처님, 3500가지 신통력 보여


당시 우루웰라마을에는 캇사파 3형제라 불리는 자들이 민중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캇사파 3형제란 ‘캇사파(Kassapa)’라는 성을 가진 고령의 3형제, 즉 장남 우루웰라 캇사파(Uruvela Kassapa), 차남 나디 캇사파(Nadī Kassapa), 막내 가야 캇사파(Gayā Kassapa)를 말한다. 이 3형제는 모두 바라문 출신의 종교가로 우루웰라는 500명, 나디는 300명,

가야는 200명으로 도합 1,000명의 제자를 거느린 대규모 종교 집단이었다. 바라문의 전통에 따라 베다를 읽으며 불을 절대적으로

신성시하고 존중하여 불의 신인 아그니에게 제사지내는 이른바 배화교도(拜火敎徒)였다.


출가해서 머리를 땋고 산야에 머무르며 고행을 하는 이들은 불을 섬기며 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특별한 주력(呪力)의 소유자들로 마가다국과 그 동쪽에 위치한 앙가국의 백성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도 이들에게 큰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이 우루웰라로 들어가 처음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캇사파 3형제 가운데 맏형 우루웰라 캇사파의 처소였다. 이로 보아 부처님의 우루웰라 방문 목적은 이들의 교화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루웰라 캇사파의 처소를 찾아간 부처님은 그 곳에 있는 성화당(聖火堂)에서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청하신다.

성화당이란 불을 모셔놓은 방 혹은 불씨를 보존해 두는 방을 말한다. 그러자 우루웰라는 “뭐 상관없지만, 그 화당에는 포악하기 그지없는 무시무시한 독룡(毒龍)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해칠지도 모릅니다”라며 저지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괜찮으니 걱정 말라며 계속 부탁했고, 거듭 세 번에 걸쳐 거부하던 우루웰라는 할 수 없이 승낙한다.

이렇게 해서 성화당에 들어간 부처님은 그 곳에 풀을 깔고 앉으셨다. 결가부좌한 채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생각을 면전에 모았다.


겁도 없이 성화당에 들어온 것도 화가 나는데 게다가 침착하고도 굳건한 모습으로 선정에 들고 있는 이 자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독룡은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연기를 뿜어댔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 독룡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셨다.


“나는 이 독룡의 피부나 살, 근육, 뼈, 골수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나의 불로 이 자의 불을 소멸시켜야겠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연기를 뿜어내셨다. 이를 본 독룡은 분노에 휩싸여 스스로를 불태우며 불을 뿜어냈다. 부처님도 화계삼매(火界三昧)에 들어 불을 뿜었다. 부처님과 독룡, 이 둘이 불꽃에 휩싸이자 성화당 안은 마치 불타고 있는 것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우루웰라 캇사파와 그 제자들은 중얼거렸다.
“아, 그 잘 생긴 사문도 독룡에게 죽임을 당했구나.”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성화당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부처님이었다. 마력을 잃어버린 듯 힘없고 초라해 보이는 작은 뱀 한

마리가 담겨져 있는 발우를 우루웰라 캇사파에게 내밀며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캇사파여, 이것이 그대의 독룡이다. 이 독룡의 불꽃은 나의 불꽃에 의해 소멸되었다.”


우루웰라 캇사파는 부처님의 신통력에 내심 깜짝 놀랐지만, 결코 자신의 주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 깔보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처님의 신통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는 부처님에게 이곳에 머물 것을 제안한다.

부처님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루웰라 캇사파의 수행처 근처에 있는 숲에서 지내시며 이후로도 갖가지 신변을 보여주셨다.


어느 날 밤, 사대천왕이 숲 전체를 밝히며 부처님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부처님께 예를 갖춘 후 사방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불기둥과 같았다.

이 모습을 기이하게 보고 있던 우루웰라 캇사파는 다음 날 아침 부처님께 어제 숲 전체를 밝히며 와서 사방에 서 있던 그 불기둥과 같은 자들은 누구였냐고 묻는다.

부처님으로부터 이들이 사대천왕이었다는 소리를 들은 그는 부처님의 위력에 다시 한 번 놀랐지만 역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또 어느 날이었다. 우루웰라 캇사파는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는 곳에 가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캇사파여, 나는 할 일이 있으니 먼저 식당에 들어가 계시오. 잠시 후에 뒤따라가겠소”라고 하시며 그를 먼저 보내셨다. 하지만 우루웰라 캇사파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 이미 부처님은 잠부나무의 열매를 따가지고 와서 앉아계셨다.


그는 부처님의 신통력에 감탄했지만 여전히 속으로는 자신이 더 우수한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를 눈치 챈 부처님은 또 다른 신통력을 보이셨다. 우루웰라 캇사파의 제자가 불을 붙이기 위해 장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장작이 쪼개지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은 우루웰라 캇사파에게 “캇사파여, 제자들을 위해 장작을 쪼개주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가 마음대로 하시라고 대답하자마자 500개의 장작이 순식간에 쪼개졌다. 이어 500명의 제자들이 불을 지피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불을 지필 수가 없었다.

부처님은 이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장작에 불을 붙였다. 불을 끌 때도 결국 부처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도 부처님은 3500여 가지나 되는 신통력을 보이시며 우루웰라 캇사파의 마음을 움직여갔고 결국 그는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부처님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부처님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캇사파여, 그대는 500명의 제자를 이끌고 있는 스승입니다. 그대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스승의 결정에 맹목적으로 따른 귀의가 아닌, 그들 스스로 진정 원하여 승가의 일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신중하고도 따뜻한 부처님의 배려였다.

즉시 우루웰라 캇사파는 제자들을 소집했다.
“나는 저 위대한 사문 곁에서 청정한 수행을 하고자 한다. 너희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해라.”


대중에게 “부처님은 스승” 선언


그러자 제자들은 말했다.
“캇사파여, 우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 위대한 사문에게 믿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희들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루웰라 캇사파와 그 제자들은 제사도구 등을 모두 네란자나 강물 속으로 던져버린 후 머리카락을 자르고 불제자가

되었다.


한편, 네란자나 강의 하류 쪽에 머물고 있던 나디 캇사파, 그리고 이 보다 더 하류에 머물고 있던 가야 캇사파는 형의 제사도구가 강물에 흘러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염려하며 우루웰라 마을을 찾았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이들은 자신들도 제자 500명을 데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도합 1000명의 제자를 얻은 부처님은 이들을 모두 이끌고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로 향하셨다.

그리고 몰려든 대중 앞에서 우루웰라 캇사파에게 “부처님은 나의 스승이시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이다. 부처님에게는 일체지(一切智)가 있지만, 나에게는 없다”라고 선언하도록 하셨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심을 얻고 있던 노(老)바라문의 선언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를 제자로 만든 젊은 사문에게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부처님은 육신통(六神通)이라는 능력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부처님이 신통력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자신의 친족들이 몰살당할 위기의 순간, 목갈라나가 철로 된 바구니로 사캬국을 완전히 덮어버리자는 제안을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신 부처님이었다. 그만큼 신통력의 사용에 신중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캇사파 3형제의 귀의와 관련해서는 3500여 가지의 신통력을 사용하셨다고 한다.

왜일까. 그것은 이들을 설득하는데 있어 신통력보다 더 유효한 수단은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주력에 의존하며 그것이 전부라 생각해 왔을 종교가들이다. 이들 앞에서 논리적인 설법이나 주장을 펼쳐놓아 보아야 별 효과가

있을 리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중요시하는 주력으로 맞섬으로써 자신들의 주력이 별 거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 판단하셨던 것이리라.


여하튼 이렇게 해서 불교교단은 일시에 큰 성장을 이루게 된다. 당시 모든 종교가들이 모여 활동하던 마가다국에서, 그것도 최고의 존경과 인기를 구가하던 종교가와 그 제자들을 모두 흡수해 버림으로써 부처님은 단시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부처님과 카삿파 3형제의 만남 속에는 부처님의 이런 의도가 담겨 있었고 멋지게 성공을 거두었다.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세상에 펼쳐가고자 하는 부처님의 적극적인 의지, 그 의지가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이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37. 챤나

  

싯다르타 출가 지켜보며 삭발염의 발원한 마부

 

 

아만심으로 장로마저 무시…승단불화의 원인
부처님 끝없는 자비에 잘못 깨닫고 용맹정진

 

 
                    

 

부처님의 10대 제자, 그 가운데서도 2대 제자로 꼽히며 부처님과 동료 수행자들로부터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던 것은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였다.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 챤나는 달랐다. 챤나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종종 비방했고 본인들을 앞에 두고 당돌한 충고까지 서슴지 않았다.


“나는 부처님이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을 때 함께 했던 사이요. 부처님과는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란 말이요. 아시겠소?

그런데도 당신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부처님의 최고의 제자인양 행세하는데, 앞으로는 주의하시오.”


그랬다. 챤나는 싯다르타태자가 카필라성을 넘을 때 함께했던 마부였다.


출가를 결심하고 때를 기다리던 싯다르타태자는 어느 날 새벽 “지금이야말로 세속을 떠나 위대한 출가를 감행할 때”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가서는 “거기 누가 있느냐”라고 묻는다. 마침 문지방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던 챤나는 대답한다.


“챤나입니다.”
“이제 나는 세속의 삶을 떠나 위대한 출가를 감행하고자 한다. 내게 말 한 마리를 준비해 다오.”


태자의 명을 받은 챤나는 마구를 가지고 마구간으로 갔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마구간에서는 기름등이 향기롭게 타오르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속에서 태자의 애마 칸타카를 발견한 챤나는 마구를 채운다. 전승에 의하면 사냥이나 유원지에 갈 때의 느낌과는 달리 더없이 튼튼하게 채워지는 마구의 느낌에 칸타카는 태자의 출가를 직감했고 기쁨을 억누를 길 없어 소리 높여 울었다고 한다.

그 목소리는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웅장했지만, 태자의 출가를 방해할 것을 우려한 신들이 그 소리를 들리지 않도록 하여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리풋타·목갈라나에게도 비난


챤나가 칸타카를 데리고 오자 싯다르타는 칸타카에 올라타 성을 나선다. 챤나는 칸타카의 고삐를 쥔 채 조용히 따라갔다.

얼마나 갔을까. 눈앞에 강이 나타났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챤나에게 물었다.


“이 강의 이름은 무엇이냐?”
“왕자님, 아노마라고 합니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나의 출가 역시 지고(至高)한 것(아노마)이 될 것이다”며 칸타카의 등에서 내려 은빛으로 빛나는 모래언덕에 서서 말한다.
“챤나야, 너는 내 장신구와 칸타카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가거라. 나는 출가하려 한다.”


챤나가 “왕자님, 저도 출가하고 싶습니다”라며 함께 할 뜻을 보였지만, 싯다르타는 거절하며 “챤나야, 부모님께 내가 무사함을 전해다오”라고 부탁했다. 챤나도 더는 어쩔 수 없어 예를 표한 후 발걸음을 돌렸다. 전승에 의하면 칸타카는 싯다르타와 챤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아, 이제 더 이상 주인님을 만날 수 없단 말인가”라고 슬퍼했고, 싯다르타가 챤나에게 모든 것을 주고 출가자의 모습으로 저 멀리 사라지자 슬픔을 참지 못한 채 울부짖다 가슴이 찢겨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33천(天)의 주처에 칸타카라는 이름의 천자(天子)로 재생했다고 한다.


챤나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상황이었다. 왕자님이 떠나버렸다는 슬픔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왕자님의 애마이자 자신이 아끼던 칸타카까지 떠나버린 것이다. 챤나는 쏟아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며 왕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그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특히 태자비인 야소다라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챤나에게 대신 쏟아내며 울부짖었다.


“어떻게 왕자님을 남겨두고 너만 올 수 있단 말이냐.”


그 후 몇 해가 흘렀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어 카필라성을 다시 찾았고 이때 챤나는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다.

드디어 소원을 이룬 것이었다. 그런데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할 때 함께 했다는 기억은 그에게 자부심을 넘어 교만심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입단 후 그의 교만은 나날이 심해졌고, 사리풋타나 목갈라나와 같은 훌륭한 수행자들까지 깔보며 멋대로 행동하게 된다.

챤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의 종족인 사캬족도 아닌 사리풋타나 목갈라나가 부처님의 신뢰를 받으며 주변으로부터 마치 후계자

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수행자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챤나를 불러다 조용히 타이르셨다. 교만한 챤나였지만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렬했기에 그는 공손하게 부처님의 충고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 뿐…. 또 다시 챤나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비방하고

다녔고 직접 충고를 늘어놓기도 했다. 부처님은 또 다시 불러다 주의를 주셨다. 이렇게 부처님의 충고와 챤나의 악행이 반복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챤나의 언행은 개선되지 않았다. 부처님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부처님 역시 자신의 출가를 도왔던 챤나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챤나가 열심히 수행하여 하루 빨리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처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단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날마다 일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챤나의 언동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심지어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뻔뻔스러워졌다. 다른 수행자들이 아무리 잘못된 행동이라 말하며 충고해도 챤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기는커녕, 다른 수행자들을 경멸하고 질문을

받아도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거나 침묵을 지키며 대꾸하지 않는 등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수행자들을 곤란하게 했다.

챤나 비구는 율을 어겨 갈마를 통해 힐문 당하는 자리에서도 “누구에게 죄가 있는가? 무엇이 죄인가? 어디에 죄가 있는가? 어찌하여

죄인가? 당신들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라며 반론을 거듭했다. 궤변을 늘어놓는 행동을 문제 삼자 이번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어뇌타계(異語惱他戒)’가 제정되기도 한다. 이어(異語)란 질문이나 충고에 대하여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으로,

방금 전에 한 말을 다시 뒤집어 다른 말을 늘어놓거나 궤변을 설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챤나의 행동은 바일제죄의 대상으로 정해져 금지되었지만, 그는 조금도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은 채 이전처럼 행동하며 다른 스님들을 난감하게 했다.

사실상 바일제죄란 본인의 참회만 있다면 언제라도 출죄(出罪)할 수 있는 것으로 강력한 제재력은 없다. 챤나는 정말 승단의 골칫덩어리였던 것이다.


일체 대응않는 ‘범단법’ 첫 대상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쇠한 부처님의 입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아난다는 고민하다 이렇게 묻는다.
“부처님,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는 챤나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스스로 그렇게 존경하는 부처님의 충고에도 나쁜 행실을 고치지 못하는 챤나이다. 부처님이 입멸하신다면 그의 악행이 더 심해질 것은 자명한 일. 아난다는 앞날이 걱정된 것이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아난다야, 내가 입멸한 뒤에도 만약 챤나가 계속 계율을 어기는 등 나쁜 행동을 한다면, 장로들은 찬다에게 범단법(梵壇法, brahmadaṇḍa)을 실행해라.”


범단법이란 평소 다른 비구들을 무시하고 거친 말과 행동을 일삼거나 율을 어겨 징계갈마를 받으면서도 그 갈마에서 이루어지는 정식 힐문에 대해서조차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여 다른 스님들을 괴롭힐 경우 부과되는 갈마이다. 바로 이 챤나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아난다가 범단법의 내용을 묻자 부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챤나 비구가 마음대로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그러나 비구들은 그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훈계해서도 안 된다. 교계해서도 안 된다.”


부처님이 챤나를 위해 내린 극약 처방은 ‘대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챤나가 무슨 말을 떠들어대든 대꾸도 하지 말고 잘못을 일깨워주기 위해 가르침을 주고자 애쓸 것도 없다는 의미이다. 승단의 규율도 지키지 않고 지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챤나. 동료수행자들은 더 이상 그를 승단의 구성원으로 대우해 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일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결코 그를 쫓아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왜일까?


“부처님, 챤나는 거칠고 난폭한 성질을 지녔습니다”라며 주저하는 아난다에게 부처님은 많은 비구들의 힘을 빌려 함께 챤나의 죄를 물으라고 하신다. 부처님의 입멸 후, 아난다는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챤나 비구를 찾아가 범단법을 실행했다. 그러자 챤나는 당황하며 “아난다 존자여, 이는 저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수행자들이 제게 말을 걸어주지도 않고, 훈계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니….” 너무나도 큰 절망감에 챤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실신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챤나는 그 동안 자신의 행동을 깊이 참회했고,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의도가 빛을 발한 것이다.


잠든 처자식의 얼굴을 뒤로 한 채 출가의 길을 나서야만 했던 싯다르타의 단호하지만 고독했을 그 여정을 함께 했던 챤나. 그는 분명

부처님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 기억으로 인해 챤나의 마음속에 한때 교만심이 독버섯처럼 자랐지만, 부처님의 부재와 마지막 남긴 극약 처방은 그에게 혜안을 열어주었다. 부처님과의 만남, 아니 챤나의 경우는 오히려 부처님과의 헤어짐이 더 절실하고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38. 우파리

 

신분의 한계 극복하고 지계제일로 거듭나다

                                            

  이발사 출신의 하층민... 석가족 귀족 쫓아 출가

철저한 지계행.... 1차 결집서 율 송출 역할 맡아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사성계급이라는 엄격한 신분제도 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바라문교의 사제계급 브라흐마나, 왕족 크샤트리야, 상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평민 바이샤, 그리고 이들 세 계급을 섬기며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노예 수드라, 이 4종의 신분 가운데 어느 신분에 속하는가에 따라 삶은 크게 달랐다. 특히 노예계급인 수드라 출신은 평생 가난하고 비참한 삶 속에서 차별받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율 제정될 때마다 암송·실천

 

하지만 부처님은 세속에서의 신분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최상층인 브라흐마나 출신이든 최하층인 수드라 출신이든 기꺼이 승가의 일원으로 차별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치 여러 개의 강이 있지만 이들이 흘러가서 대해(大海)에 이르면 이전의 강

이름을 버리고 그저 ‘대해’라는 이름으로 불리듯이, 승가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사람은 불교의 출가수행승으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차별받으며 한 많은 삶을 살던 수드라 계급의 사람들에게 있어 부처님의 이런 자비가 얼마나 가슴 깊이 와 닿았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테라가타’에는 부정물(不淨物), 즉 사람들의 대소변을 청소하는 천한 직업을 갖고 있던 수니타(Sun-I ta)라는 비구가 읊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전해진다.

 

“나는 천한 집에 태어나 그 비천한 가업을 이어 부정물을 청소하는 가난한 사람이었다네. 사람들은 나를 꺼렸고 싫어했다네.

그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비난하고 조롱했다네. 나는 마음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각자이신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둘러싸여 마가다국의 수도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네.

내가 짐을 풀어두고 예배하려 다가가자 그 분은 나를 자비롭고도 연민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셨네. 나는 부처님의 발에

예배를 올리고 그 분의 얼굴을 우러러보며 이 일체생류 가운데 최고자이신 그 분에게 출가를 허락해 주십사 청을 올렸다네.

그러자 연민의 마음으로 모든 세간을 보신 부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네. ‘잘 왔구나, 비구여.’ 그것은 바로 나의 수계가 되었다네.”


정(淨)과 부정(不淨)의 관념이 강했던 인도인에게 있어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기피의 대상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그 부정한 기운이 자신에게 옮겨 붙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런 인식 속에서 수니타가 받았을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잘 왔구나, 비구여’라고 말씀해 주신 부처님을 수니타는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승가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비구 가운데에도 수니타처럼 하층계급 출신의 자가 있었다. 바로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평가되는 우파리이다. 원래 우파리는 부처님의 출신 종족인 석가족의 궁중 이발사였다.

이발사는 사성계급 가운데 제일 하층에 속하는 수드라다. 석가족은 자신들이 크샤트리야 계급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고, 또한

아만심이 강하고 교만했다고 전해지는데, 만약 정말 그랬다면 우파리의 삶도 고달팠으리라 추측된다.


여하튼 이런 우파리가 석가족의 명문가 자제들과 함께 출가하게 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 부처님의 득도 소식을 들은 석가족 청년들은 앞을 다투어 부처님 밑으로 출가하고자 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그것도 강렬하게 출가를 원한 것은 아누룻다였다. 아누룻다는 자신의 출가를 완강히 거부하는 어머니를 납득시키기 위해, 당시 석가족의 왕이라 불리며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있던 친구 밧디야를 설득해 함께 출가하기로 한다.

 

한편 이들의 출가 소식을 들은 아난다와 데와닷타, 바구, 캄빌라가 합류함으로써 전부 6명의 양가집 자제들이 출가를 하게 된다. 우파리는 평소 이들을 모시던 이발사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그 6명은 출가 길에 우파리를 동반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출가할 때 머리를 자르는 일이라도 거들게 할 셈이었던 것일까. 여하튼 카필라국의 국경 근처에 이르자 이들은 몸에 걸치고 있던 갖가지 장신구를 벗어 상의에 싼 후 그것을 우파리에게 주면서 말했다.


“우파리여, 너는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거라. 적지 않은 재산이 될 것이다.”
석가족의 귀공자 6명이 모두 풀어놓은 장신구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값비싼 것들이었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은 우파리는 저 멀리 떠나가는 그 6명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문득 우파리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저 분들은 모두 석가족의 명문가 자제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집도 지위도 재산도 버리고 저렇듯 당당하게 떠나고 있다.

분명 멋진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가야겠다.’
우파리는 받은 것을 길 가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쳐둔 후 걸음을 재촉하며 6명의 뒤를 쫓았다. “누구든 원한다면 가져가시오” 라는 표시였다.


아누룻다를 비롯한 6명의 석가족 청년, 그리고 우파리가 향한 곳은 말라족의 영역인 아누피야라는 마을이었다. 부처님을 만난 이들은 예를 올린 후 출가의 뜻을 밝혔다. 부처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승가에 들어오는 순간 세속에서의 지위나 신분, 나이 등은 모두 의미가 없어진다. 오로지 법랍(法臘)이라 하여 수계식을 먼저 받은 사람이 선배가 되는 구조였다.


따라서 하루라도 먼저 출가한 자에 대해 나중에 출가한 자는 선배로서의 예를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7명 가운데 누구를 가장 먼저 출가시켜야 하는가. 약간의 동요가 있은 후, 6명의 석가족 청년들은 제안한다.


“우파리를 가장 먼저 출가시켜 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까지 매우 교만했습니다. 여기 있는 우파리는 오랫동안 그런 저희들을 잘 섬겨왔습니다. 부처님, 부디 그를 가장 먼저 출가시켜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부터 그를 장로로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례하겠습니다. 그것에 의해 저희들은 지금까지의 교만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속에서 천대받던 우파리를 선배로 모심으로써 자신들의 교만심을 제거하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해서 이발사 우파리는 여래의 법과 율에 의해 살아가는 승가의 정식 구성원, 그것도 다른 6명의 공경을 받는 장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청정한 생활로 승단의 존경


평생 남의 머리를 잘라주며 살던 우파리였다. 수드라였기에 베다를 비롯한 그 어떤 학문적 소양을 쌓을 자격도 또한 기예를

닦을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오며 몸에 베인 그만의 좋은 습성이 있었다. 부처님은 이를 간파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우파리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도 아란야에 들어가 수행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아란야란 인적이 드문 한적한 장소를 말한다. 홀로 명상하기 좋았기 때문에 콘단냐나 마하캇사파 등과 같은 비구들은 아란야에서의 수행을 매우 즐겼다. 그런데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우파리야, 아란야에서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라. 인적이 드문 곳에 머문다는 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고, 홀로 산다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니라. 특히 아직 정심(定心)을 얻지 못한 비구에게 있어 삼림은 그의 마음을 위축시킬 것이며, 들판은 그의 뜻을 뺏을 것이다. 너는 하지 말거라.”
“왜 다른 수행자들은 가능한 수행을 나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일까.”
시무룩한 얼굴로 서 있는 우파리에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우파리야, 예를 들어 여기 하나의 큰 연못이 있다고 하자. 한 마리의 큰 코끼리가 찾아와 그 연못에 들어가 등을 씻고 귀를 씻는다. 참으로 보기만 해도 즐거운 광경이다. 그런데 멀리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마리의 토끼, 혹은 고양이가 그 즐거운 모습에 이끌려 코끼리가 떠난 후 연못 속에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쪽 발을 연못에 넣는 순간 갑자기 두려움을 느껴 뛰어나오고 말았다. 무슨 이유이겠느냐. 코끼리의 신체에 비해 그들의 신체는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우파리의 수행에 대한 열정은 가상하지만, 아란야에서의 수행은 그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신 것이었다. 대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파리야, 너는 승가 안에 머물러라. 승가 안에 머무르고 있으면 너는 항상 안온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우파리가 승가 안에 머물며 자신의 장점을 살린 것은 바로 계율의 수지였다.

성실하고 섬세한 우파리는 율이 제정될 때마다 귀 기울여 들었고 또 철저하게 실천했다. ‘테라가타’에는 계율수지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전해진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게으름피우지 말고 청정한 생활을 하는 좋은 친구들과 사귀어야 한다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승가 안에 살면서 총명하게 계율을 배워야 한다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마음에 새겨 마음이 산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네.”

 

부처님이 그에게 승가에 머물라고 하신 것은 우파리의 이런 근기를 통찰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수드라 계급으로서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을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려놓았던 우파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 우파리는 지계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왕사성결집에서 당당히 율을 송출하는 큰 역할을 맡을 정도로 모든 수행승들의 귀감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