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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백제 의 미소

백련암 2012. 4. 2. 00:5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백제 의 미소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雲山面) 용현리의 가야산 절벽에 새겨진 백제시대의 마애불상. 국보 제 84호, 시대 = 백제 후기

 

서산 마애삼존불은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 후기에 조성된 마애불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되고 뛰어난 불상으로

1958년 발견되었다. 당시 해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표정으로 바뀌는 "백제의 미소"라 불리우던 사산마애삼존불은 보원사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1962년 제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정확한 명칭은 "磨崖如來 三尊像<마애여래 삼존상>"이다. 이곳은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의 길목이므로,

향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애불을 조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마애불은 618번 지방도로변의 "고풍저수지" 가 끝나면서 시작되는 "용현계곡"의 깊숙한 곳 한쪽 벼랑바위에 새겨져 있다.

 

국보 제84호. 높이 본존상 280㎝, 보살입상 170㎝, 반가상 166㎝. 중앙의 본존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주(寶珠)를 든 보살입상이,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협시하고 있는 특이한 삼존형식이다.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과거를 상징하는 보살이신 제화갈라보살*

 

보주를 들고 있는 보살상은 머리에 일월식(日月飾)이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 양쪽에 화문이 있으며 높이 솟은 보관 윗부분

의 중앙에는 돌기처럼 튀어나온 술장식이 있고 양쪽으로 띠가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천의는 양팔에 걸쳐져 U자형으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군의(裙衣)의 윗부분에는 한번 접혀서 늘어진 주름이 보인다.

제화갈라보살은 흔치 않은 보살로 석가에게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준 과거불인 연등불의 보살일 때 이름이며 웃음이 역시 일품이다.

 

연등불은 과거불<過居佛>이며 석가가 보살 일때 연등불이 지나가는 길이 질은 것을 보고 석가가 자기 머리를 풀어서 밟고 지나가게

한 바 석가에게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준 부처이다.

이 보살의 티 없이 맑은 웃음도 역시 다른 부처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상이다.

 

*흔히 보관에 화불이 있다하여 관음보살이라고도 하나 법화경 사상에 의하여 제화갈라보살로 봄이 옳다고 한다.

 

 

 

  

좌측 반가사유상으로 협시보살은 미래 보살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현재>와 제화갈라보살인<과거>와 반가사유상인 협시불로 미래보살이 조각되어있다.

반가사유상도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상체는 벗었고 허리 아래에만 군의를 입고 있다.

 

미래불인 미륵반가사유상은 당시 유행하던 풍조가 모두 바짝 마른 형태이지만 여기에서는 통통하게 살이 찐 모습이 생기찬 소년적인 체구로 특이하며

이러한 세부처늬 배열은 이곳 밖에 없다고 한다.

반가사유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상은 시무외(施無畏=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하여 베푸는 인상,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해 물건 주는 시늉을 하고

있는것을 말함) ·여원인(與願印)의 입상으로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얼굴은 네모나며 눈을 크게 뜨고 밝게 미소짓고 있다.

당당한 체구에 법의는 통견으로 입고 있는데 가슴이 깊게 벌어져 사선으로 표현된 내의와 띠매듭이 보이고, 끝자락은 어깨 뒤로 넘겨져

몸의 중심으로 U자형의 둥근 옷주름이 늘어지고 있다. 양감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늘어지고 있는 법의의 표현이 매우 자연스럽다.

 

전체의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해 백제 특유의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큰 눈과 함께 도톰한 볼과 입술은 전체 조각과

어울려 빛의 방향에 따라 환하게 미소짓는 것 같은 신비로운 형상을 한다.

 

양 옆의 보살과 함께 천진스런 표정들이 한결 같이 백제불상조각에 예술적 극치를 이루었다고 평가 받는다

 

이와 같은 도상적 특징은 7세기 전반의 보살상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조각수법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약간의 환미감마저 느껴진다.

 

삼존상은 모두 보주형의 두광을 갖고 있는데 협시상의 경우는 내구에 단판 연화무늬 만이 장식되어 있는데 반해 본존의 경우는 외구에 화염무늬와 화불이

유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좌는 3상이 모두 단판연화좌이다.

 

인근에 있는 태안마애삼존불상 (泰安磨崖三尊佛像)보다는 다소 늦은 조각양식이 보이므로 7세기초에 조성된 상으로 추정되며,

백제조각의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 교역로의 중심지였던 태안반도와 백제의 수도인 부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과의 접촉이 빈번했던 지리적

요충지에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마애불의 미소는 조석으로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아침에 보이는 미소는 밝은 가운데 평화로운 미소입니다.

 계절 중으로는 가을날의 미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어느 시인은 '강냉이가 익었거든 자셔도 좋소' 라고 읊었지만 강냉이 술이 붉어질 때 마애불의 미소는 더욱 신비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가을해가 서산을 넘어간 직후에 보이는 잔잔한 모습입니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장돌울 쥐고 집어 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이러한 제작수법은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으로 전승되었다. 좌·우협시보살의 도상이 다른 보살상과는 다른 봉지

보주관음보살상과 상현좌의 반가사유상으로 백제의 독창적인 도상의 특색을 지닌다.

 

삼존불에 표현되어 있는 상호에 배어 있는 깊고 환한 미소와 생동감 있는 얼굴· 백제 와당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럽고 넓은 연꽃무늬·

율동적인 불꽃무늬의 두광· 통인의 두툼한 손·통견의 대칭적인 옷주름·부드럽고 풍만한 연화좌·애교스러운 반가사유상 등은

백제 석조미술의 백미 아니 우리나라 석조미술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꼽힌다.

 

 

감격하여 눈물이 납니다. 같은장소에서 찍은 사진인데 빛에 따라 얼굴이 돌아가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왼쪽을 보는 듯하고

 

이 부처는 조각솜씨도 뛰어 나지만 진가는 웃음에 있다.

활짝 웃고 있는 유쾌한 얼굴은 독특하고 참신한 개성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쾌활한 장장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여유로운 표현을 학자들은 당시 백제가 국력의 신당으로 외국과 교역을 많이 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얼굴은 중국의 북제불상에서 관련성을 찾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백제적으로 발전된 새로운 형태이며

자비무한하고 순진무구한 백제불교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지게 한 것도 백제인의 특이한 솜씨이다.

또한 목이 짧고 삼도가 없으며 복련 대좌위에 서 있고 두광의 원안에는 연꽃, 밖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보주형광배이며,

불꽃 안에 3구의 화불이 조각되었다.

 

서산 마애불 일명 백제의 미소 : 국보 제 84호, 시대 = 백제 후기

오른쪽을 보는 듯 하고

 

이 모습은 정면을 향아고 있습니다. 빛이 막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본존불 불상의 두광(頭光)은 원 안에 단판 연꽃이 새겨져 있는 형태이고 광배는 전체적으로 보주(寶珠)형이다.

*광배중심에는 연꽃이, 둘레에는 화염문이 양각되었다. 양 어깨를 가린 포복식 법의를 입었으며 안쪽에는 속옷 매듭이 보인다.

*옷 주름은 앞에서 U자형이 되고 옷자락에는 Ω형의 주름이 나 있다.

*왼손은 약지와 새끼 손가락을 구부려 못 자락을 쥐는데서 유래했다는 여원인(與願印)을 오른 손에는 시무외인(施無畏印= 부처가 중생

 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하여 베푸는 인상,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해 물건 주는 시늉을 하고 있다.) 으로 하여

 불입상(佛立像)의 관례였던 통인(通印)을 취하였다.

*단순화 되었으나 부드럽고 세련된 옷주름이 자연스레 흘러내리며 두툼한 복련 연꽃 대좌위에 서 계신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 높이 93cm, 석조 / 고려중기시대

이 석조불좌상은 원래 보원사지 금당지의 뒤쪽에 있었던 것을 서산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전각입구에 옮겨 놓았으나, 2005년 3월에 분실하였다

 

 

 

 

산신각

 

 

 

*산신각 뒤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이곳 바위에 마애불이 있다는 사실은 인근 사람들은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지만 문화재 관계자들은 몰랐다

그래서 가까운 보원사터에 있는 석조물들을 일찍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마애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던중

1959년 4월 오랫동안 부여 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 선생님이 보원사터에 유물조사 온 길에 마애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사람들에 의하면 이 비석은 그분이 써 놓은 글귀라고 한다. 그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한다.

 

 

 

 

 

 

 

나의 마음 : 개인적으로 찾아가기가 어려워 단체를 따라갔다왔으나 쫓기듯한 진행으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도 없고 자세히 볼 시간도 없어 아쉬웠다

아쉬운대로  기본적인 것만 찍어왔다. 여름쯤에 다시 대중교통으로 찾아갈 생각이다.

예전에 불교에 대해 잘 알지못할 때 한 겨울에 찾아갔었는데 그때와는 전혀 다른모습으로 변해있다  그 당시엔 벌판스러웠다고나 할까?... 

그 땐 관리사무실도 없었던 같았는데 지금은 화장실도 있고 여러가지로 길도 계단으로 잘 닦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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