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 부처님의 향기

낙산사 홍련암

백련암 2012. 6. 9. 11:59

= 낙산사 홍련암=

 

낙산사는 1342여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관세음보살님의 진신을 친결하려는 수 많은 기도불자님과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의상대사는 낙산의 관음굴(觀音窟)을 찾았다. 그는 지심으로 기도하여 관음보살을 친견했고, 그리고는 낙산사를 창건했다.

의상 스님은 기도를 통해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한다. 낙산사는 강화도 보문사와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관음성지로서, 1천년동안 국민들의

애환을 함께하여 왔다

 

예전에 의상법사가 처음 당나라에서 돌아와서 대비진신(大悲眞身)이 이 해변의 굴 속에 계시기 때문에 낙산(洛山)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대개 서역에 보타낙가산(寶陀洛伽山)이 있는데, 여기서는 소백화(小白華)라고 하고 백의대사(白衣大士)의 진신이 머무는 곳이기에 이를 빌려서 이름한 것이다.

의상은 재계(齋戒)한 지 7일 만에 좌구(座具)를 물 위에 띄웠는데, 천룡팔부(天龍八部)의 시종이 그를 굴 속으로 인도하여 들어가서 참례함에 공중에서

수정염주(水精念珠) 한 벌을 주기에 의상은 이를 받아서 물러 나왔다.

동해룡(東海龍)이 또한 여의보주(如意寶珠) 한 벌을 주기에 의상은 이를 받아서 물러 나왔다. 다시 7일 동안 재계하고서 이에 진용(眞容)을 뵈니,

“이 자리 위의 꼭대기에 대나무가 쌍(雙)으로 돋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佛殿)을 짓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법사가 그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땅에서 대나무가 솟아났다. 이에 금당을 짓고 소상(塑像)을 봉안하니, 그 원만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질이 엄연히

하늘에서 난듯했다. 대나무는 다시없어졌으므로 바로 진신이 거주함을 알았다

 

 =홍련암=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 36호

 

의상대사가 동굴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연꽃위의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로,

홍련암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676년(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수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의 전각은 2002년에 중건된 것으로

관음굴이있는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진, 흔치 않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변 3칸이며 앞뒤의 지붕 형식이 다른 불전으로 전면은 팔작지붕, 배면은 맞배지붕형식이다.

불전 내 바닥에 난 구멍의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 관음굴을 볼 수 있다.

 

<유래>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장소로서, 또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석굴 안에서 기도하던 바로 그 장소로서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의 서울인 경주(慶州)에서부터 멀리 이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푸른 새[靑鳥]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다.

이윽고 7일후 바다 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의상대사는 드디어 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 푸른 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觀音窟)이라 불렀다고 한다.

 

홍련암 가는 길

 

 

연하당

 

 

홍련암

 

홍련암 관음보살

 

 

신중탱화

 

법당내 벽화(파랑새)

 

관음보살

= 법당내에서 본 관음굴 =

불전 내 바닥에 난 구멍의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 관음굴을 볼 수 있다.

 

 

홍련암 중건공덕비와 공중사리탑비

 

= 공중사리탑비=

낙산사(洛山寺): 공중사리탑과 탑비(空中舍利塔 塔碑)

이 공중사리탑을 조성한 인연은, 1683년에 홍련암에서 도금불사를 거행할 때 문득 방안이 서기(瑞氣)로 가득 차더니 공중에서 영롱한 구슬이 탁자 위에

떨어졌다고 한다. 스님들이 그것을 들어보니 유리처럼 광채를 내었다.

스님들이 기뻐 말하기를 “이 같은 상서로움이 옛날에도 두 번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세 번째니 얼마나 반가운가”라고 말했다.

이에 석겸스님 등이 이 탑을 쌓고 그 구슬을 봉안했는데 그 공사가 무려 9년이나 걸렸다.

그리고는 탑이 완성된 이듬해 수춘거사(壽春居士)라는 문사(文士)를 초빙하여 그 유래를 탑비(塔碑)에 적었는데,

이 탑비는 현재 홍련암 옆에 있다. 한편 이 공중사리탑이 자리한 곳은 풍수에서 말하는 이른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으로서 길지(吉地)라고 전한다.

 

 

▶낙산사 해수관음보살의 여러모습들◀

 

  이자리에 서서보면 경치가 장관이다 저 멀리 의상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