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불사(石佛寺. 화엄종)
백제 최대의 화려하고 장엄한 석불광배가 모셔진 사찰,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사찰이다. 이곳 사찰에는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연동리 화강암 석불과 백제시대에 가장 크고 화려하며 장엄한
석불광배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유명하다. 그렇기에 석불사에 모셔져 있는 백제시대의 불상을 보기 위해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몇 년에 한번씩
이 불상과 인연을 맺고 이에 대한 공부가 되는 만큼씩 자주자주 찾게 된다.
석불사가 위치한 익산은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미륵사와 사자사 등을 창건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석불을 보면 당시 백제의 영화와 힘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세울 수 없는 엄청나게 큰 광배를 지닌 불상을 세우기 위해
백제인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인가? 이 불상과 아름다운 광배를 보면 백제인의 불심(佛心)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석불사의 불상의 광배는 높이 3.26m로서 삼국시대 최대의 규모이고, 현존하는 백제시대 화강암 석불 중에서 최대이다.
머리부분을 어색하게 복원한 것이 안타깝지만 불신과 좌대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한편 이 석불은 인접한 태봉사에 백제시대 석불이 존재하고 있어서 이 지역의 백제 불교가 익산지방으로 전파된 경로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그만큼 석불사의 석불은 백제 당시의 교통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절의 연혁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석불사라는 절 이름은 1963년 이후에 이곳에 모셔진 거대한 화강암 석불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끊어진 석불광배를 다시 세우고 이곳에 미륵전이라는 작은 법당을 지어 법등을 새롭게 이어가면서 석불이 있기 때문에 그냥 석불사라고 불렀을 뿐
본래의 절 이름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석불은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져
이 석불의 조성시기인 7세기 초가 바로 현 석불사의 창건연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석불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약간의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7세기 전반의 양식으로 보고 있어서 석불사의 창건도 바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도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이시기는 백제 무왕의 왕궁성·미륵사의 창건 등 익산 경영의 시기와도 일치된다고 할 수 있다.
이후의 연혁도 잘 알 수 없는데, 단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 가운데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기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까지는 법등을 이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더 정확히 언제 폐사되었는가를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들의 등문양을 통해 살펴보면 미륵사지에서 순청자와 상감청자와 함께 출토되는
기와의 등문양과 같은 것이 출토되고 있어서 12~13세기 무렵에 폐사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까지 법등을 이어오던 석불사는 폐찰된 후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불상 뒤에 거대한 광배가 끊어지면서 석불의 목도 떨어져나간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1963년에 광배를 다시 세우고 불두도 새로 만들어 붙인 후 주변에 작은 보호각 형식의 법당을 지어 석불사 라고 했다.
일주문 겸 금강문(一柱門 兼 金剛門)
일주문에는 일붕 서경보 스님이 쓴 ‘미룩산석불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금강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금강역사상의 그림이 좌우에 그려져 있다.
일주문 밖에는 1884년(고종 21)에 세운 '군수김준병이 내세불망비'가 서 있다.
오층석탑
대웅전 전경
내부에는 보물 제45호로 지정된 석불좌상과 광배를 비롯해서 왼쪽에는 지장삼존상으로서 지장보살좌상과 시왕과 도명존자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석가삼존상으로서 석가여래불좌상을 중심으로 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있다.
불화는 왼쪽에 지장시왕탱이 있고, 오른쪽에 석가후불탱을 비롯해서 신중탱, 제석천룡탱 등이 있으며 괘불함과 소종, 법고도 있다.
이러한 관음·세지보살상과 지장상은 근래에 봉안되었다. 불화 가운데 제석천룡탱은 1908년에 봉안되었고 나머지 탱화는 근작들이다.
법당 밖에는 동종이 배치되어 있고, 석등 2기가 놓이고 앞쪽으로 5층석탑이 있다.
지장삼존상으로서 지장보살좌상과 시왕과 도명존자
백제의 당당한 그 모습 완전한 입체불인 보물 제 45호인 석불사의 석조여래좌상(益山 蓮洞里 石造如來坐像)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석불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백제 시대의 아주 귀중한 석불좌상이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益山 蓮洞里 石造如來坐像) : 보물 제 45호 = 석불사의 옛 지명은 鳳林寺(봉림사) 이다.
이 불상은 머리만 없어졌을 뿐 불상을 올려 놓는 대좌, 머리나 등의 뒤에 빛을 둥글게 표현한 광배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백제 석불좌상이다.
불상의 높이가 156cm나 되고 당당한 어깨, 균형잡힌 몸매, 넓은 하체 등에서 소박한 활력을 나타내고 있지만 손가락을 구부린 두 손과 팔,
각진 무릎등에서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느끼게 한 통견의 법의와 □ 형의 옷 주름 등은 세련된 기법으로 조각되었다.
거대한 광배나 큼직한 대좌가 장중하고 소박한 모양이지만 옷자락을 드리운 상현좌의 주름이나 연꽃, 불곷 같은 광배무늬 등은 상당히 정교하다.
이 석불 좌상은 장중하면서도 세련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600년경의 백제 석불상이다(18 B. C. ~ 660)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益山 蓮洞里 石造如來坐像) : 보물 제 45호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석불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백제 시대의 아주 귀중한 석불좌상이다.
머리 부분을 제외한 몸체 높이는 156cm이며, 광배의 높이는 326cm인 화강암 불상으로 머리 부분은 최근에 만들어 붙인 것으로 원래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춘 이 석불좌상은, 왼손의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중지와 무명지를 구부려 다리에 올려놓은 특이한 손모양(手印)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의 머리는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태안의 마애불이나 서산 마애불의 뒤를 이어 나타난,
완전한 입체적 석불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거대한 몸체의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묵직한 체구와 더불어 두발이 드러나지 않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견고한 다리 부분은 안정감 있는 자태이다.
불신을 휘감은 법의는 통견(通絹)으로 몸에 밀착되어 있으며, 배 모양의 거신광배(擧身光背)는 중앙에 원형의 두광(頭光)을 따로 마련하고,
이 안에는 16엽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그 둘레는 방사선으로 퍼진 특징적인 두광(頭光)을 갖고 있다.
신광(身光)은 凸선으로 구분하고 그 밖에는 장식적인 불꽃무늬를 배경으로 일곱 구의 화불(化佛)을 새겨 놓았다.
이와 같은 광배는 삼국시대 금동삼존불의 광배와 흡사한 것으로, 이 불상의 제작 시기는 7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연동리사지는 198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가 되었다. 조사 결과 이 절터는 동서 13.8m, 남북 12.8m의 정방형에 가까운
금당(金堂)만을 둔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로 4개소의 높은 기둥은 굴립주(掘立柱)를 사용한 건축 구조는
우리나라 사원건축에서 처음 보이는 것으로 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폐사된 시기는 고려시대인 12-13세기경으로 보인다.
석가삼존상 : 석가여래불좌상을 중심으로 세지보살과 관음보살
신중탱화(신중단)
범종각(梵鐘閣)
1994년에 새로 지은 종각은 1칸 규모로서 원형의 연꽃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하고 구조는 이익공 형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사모지붕이다.
여기에 최근 만든 대형범종과 함께 운판이 걸려 있으며, 한쪽에는 대형 쇠솥이 놓여 있다. 그 옆쪽으로 수각이 근래에 세워져 있다.
↓
산신상과 함께 산신탱·
삼성각 안에 벽화 나한 상
치성광여래상과 청동여래좌상
1935년에 그려진 칠성탱화
진묵대조사(震默大祖師)
삼성각
안에는 치성광여래상과 청동여래좌상이 있고 목조나한상과 목조 동녀상 및 산신상과 함께 산신탱·칠성탱·독성탱 2축 등이 모셔져 있다.
1935년에 그려진 칠성탱을 제외한 나머지 불상·불화는 대부분 근래에 봉안되었다.
수각(石造) = 범종각 옆에는 석조가 있어 맑은 약수가 흘러나온다. 근래에 세워져 있다.
발굴유구(發掘遺構)
◈찾아가는 길
*KTX 용산역에서 승차 익산역하차 익산역에서 시내버스 33번, 39번, 60번, 60-1번 을 이용 석불사거리 하차함.
*금마에서 함열 행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으며, 연동리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전라남북도 = 心 산사 길없는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산 = 심곡사(深谷寺) : 백제 미륵사지의 전통을 잇는 심곡사 (0) | 2013.03.07 |
---|---|
태봉사(胎峰寺, 태고종) = 백제 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는 사찰 (0) | 2013.03.06 |
익산 = 왕궁리 오층석탑 . 동, 서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0) | 2013.03.06 |
달마산 도솔암 (0) | 2012.10.20 |
미황사(美黃寺) = 일주문, 삼성각, 후원, 달마상, 부도암, 부도군, 석조, (0) | 2012.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