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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암 = 약사여래의 숨결이 가득한 사찰 만월암(滿月庵)

백련암 2013. 3. 19. 14:32

약사여래의 숨결이 가득한 사찰 만월암(滿月庵)

 

도봉산 만장봉 아래 커다란 바위를 지붕삼아 지은 작은 암자가 하나 자리한다. 신라시대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을 뿐 어디에도 절의 역사가 전하지 않는 작은 토굴이다.

그렇지만 만월(滿月)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만월암은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의 맑고 깨끗한 현실에서의 만월세계(滿月世 界)라 할 수 있다.

이곳 만월보전에 조선시대 모든 중생의 아픔과 괴로움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조성한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 來)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이름 모를 수 사람들은 이곳 깊은 산 속 바위틈에 나투신 약사여래의 불신에 의지하며 힘든 나날을 이겨 나갔고,

오늘날도 그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만월암에는 육신의 병은 물론이고 마음의 병까지도 온화하게 어루만져 주셨던

약사여래의 숨결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다.

 

도봉산 만장봉(萬丈峰) 중턱에 위치한 만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화엄종의 개조(開祖)인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현재 전하는 자료가 없어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이후 만월암은 보덕굴(普德窟)이라는 참선도량으로 알려져 오다가 1940년에 이르러 여여거사(如如居士) 서광전(徐光前)에 의해 중창 되었다.

근래에는 혜공스님이 2002년에 법당과 요사로 사용하는 만월보전을, 2004년에는 산신각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인 조계사의 직할사찰임

 

만월암석불좌상 (滿月庵石佛坐像)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121호  시대 = 조선

서울특별시 도봉구 만월암에 모신 불상이다. 만월암은 현재 석굴법당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벽에 불상을 만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어

석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여기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만들어진 시기는 1700년대 전후로 여겨지며 연대의 하한은 1784년이다.

아담한 얼굴의 이 불상은 사람키에 가까운 높이, 단정한 체구, 양 어깨를 감싸며 입은 옷 등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후기의 뛰어난 석불상으로 여겨진다.

만월암 만월보전(滿月庵 滿月寶殿)

커다란 바위 아래에 자리한 만월보전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ㄱ자형 구조로 2002년에 지은 것이다.

또한 이 전각은 만월암의 주 법당이면서 유일한 요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바깥에는 만월보전 편액과 만월선방이라는 편액이 같이 걸려있다.

 

안에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는 약사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근래에 조성한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불화로는 1969년에 조성한 석가모니후불탱과 신중탱, 사천왕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만월암 석불좌상(滿月庵 石佛坐像) :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21호

만월보전의 주존으로 봉안되어 있는 이 석불은 아담한 얼굴에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왼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으며,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의 법의에 보이는 옷 주름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자세히 볼 수 없으나 예전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석굴법당의 석벽에는 많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 가운에서도 "건륭사십구년육월일불상개금시…(乾隆四十九年六月日佛像改金施)"란 명문이 있어 1784년에 불상을 개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상의 조성연대는 개금시기와 불상양식을 감한다면, 이보다 앞선 1700년대 경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석불좌상의 높이는 78cm이며, 현재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어있다.

 

 

석불좌상(石佛坐像)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21호 시대= 조선후기<표지글>

만월보전이라는 현판이 있는 석굴안 법당에 봉안된 이 석불좌상은 표면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갸름하고 양감이 풍부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단아하며 불신(佛身)위에는 대의를 통견식(通肩式)으로 입었고

오른손은 무릎위에 살짝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다리위에 올려놓았는데

보주를 들고 있어 현재 약사여래로 신앙되고 있다.

 

굴의 벽면에는 "건륭49년(1784년)에 새겨진 개금명문이 있어 이석불좌상의 하한을 짐작할 수 있으며 불상의 양식으로 미루어 볼 때

대략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명문이 있는 조선후기 석불로서 매우 중요한 예라고 하겠다.

 

 

   

 만월암  석불좌상 좌우 협시불상

 

 

 망월암 본존불

 

 

산신탱

 

 

신중단 

 

 

재미있는 "바위" 이야기 = 일명 인절미 바위

일명 인절미 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는 화강암의 일종으로 박리작용에 의해 풍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리작용은 암석의 표면이 양파껍질처럼 떨어져 나오는 현상으로 그 원인은 가열과 냉각에 의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암석은 한낮 햇빛에 의해 가열되고 밤에는 냉각되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지만,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가열의 효과는 암석의 표면에 집중됩니다.

가열로 인해 팽창하는 표면층은 일정한계를 넘으면 압력에 의해 표면이 벗겨지는데 이것이 박리현상입니다.

 

인절미 바위가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서서히 박리작용이 일어나도록 불편하시더라도 탐방로를 위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알리고 갑시다 표지팻말 인용>

 

 

 

 

고산앙지(高山仰止) : 바위글씨<표지팻말인용>

계곡 건너로 보이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1700년(숙종 26년) 7월에 곡운 김수증(金壽增, 1624~ 1701년)이 쓴 글씨입니다.

고산앙지(高山仰止)란 시경(詩經)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 라는 뜻입니다.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국립공원 표지석

 

 

 

 

◈찾아가는 길 = 지하철

   지하철 1호선, 7호선 = 도봉산역 하차 (도봉산입구입니다) 

 

도봉주차장 → 상가 → 도봉매표소 → 광륜사 → 왼쪽 → 약수터 → 도봉서원 → 도봉대피소 → 오른쪽 길 → 갈림길의 공터 → 오른쪽 길(만월암 표지석 있음) → 돌계단 → 만월암(도봉매표소에서 산행 60분 정도 소요)

 

매표소를 통과해서 100m 정도 가면 광륜사에 있습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포장된 길을 따라 600m(15분 정도) 걸어가면 도봉서원에 이른다.

포장된 길은 여기서 끝나고 문사동계곡 초입에서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산을 오르다 보면 도봉대피소 앞 갈림길에 보인다.

왼쪽(서쪽)은 천축사와 마당바위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북쪽)은 만월암과 자운봉으로 가는 길임.

오른쪽 길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르다 보면 석굴암을 지나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으로 이어진 길과 만월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옴.

그러면 만월암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커다란 바위아래 자리한 만월암에 닿는다.

 

우리는 망월사역에서 망월사쪽으로해서 포대능선과 포대정상을 찍고 자운봉쪽으로 가다 넘 늦은것 같아 만월암쪽으로 내려왔는데 만월암 쪽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없음 여기서 자운봉을 갈 수도 만장봉을 갈 수도 있은데 완전 깔닥입니다.  

위험한 길임 바위로 이루어졌으며 음지쪽이라 그런지 눈도 안 녹아 한 1m정도 눈이 얼었다 녹은것이라 미끄럽고 위험해 아이젠을 신고 내려왔음

*발목이 안좋으신분들은 이길로 가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