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청하산 청운사
인간문화재 탱화장 스님과 넓은 연꽃밭을 만날 수 있는 절집, 김제 청하산 청운사
청운사에는 드넓은 연꽃밭이 길 떠나 지친 나그네를 위로해준다.
더운 여름날, 진흙 속 연꽃밭에서는 이슬을 머금은 맑고 깨끗한 연꽃이 행여 남이 볼세라 살포시 피어나기 때문이다.
청운사의 연꽃밭은 김제시를 통틀어 제일 크고 넓기 때문에 이곳에서 한여름밤의 무더위를 식힐 연꽃축제도 펼쳐지고 있다.
여름밤의 산사는 어느새 본래의 고즈넉한 적막을 벗어버리고 젊은이들이 환호하고 그들이 내뿜는 숨결과 함께 기쁨이 충만한 축제의
한마당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연꽃 축제를 베풀어 속인들의 발길을 절집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주지스님의 공력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청운사 도원스님은 자연의 연꽃을 그림으로 표현할 줄 아는 탱화장, 즉 전라북도의 인간문화재인 것이다.
때문에 청운사에 가면 연꽃밭에서 보았던 연꽃이 스님이 펼쳐놓은 화폭 위에서,
스님의 붓꽃에 의해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환희의 순간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갖게 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탱화를 그리는 탱화장 스님.
청운사에 가면 주지스님을 한번 뵙길 바란다.
목탁을 두드려 독경을 하는 스님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스님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절집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인 「청운사」는19세기 승려 보천이 단칸 초가집을 짓고 주석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청하산 자락에 자리 잡은「청운사」는 이후 1927년 한 주석 스님이 창건하여 이후 중창을 거듭하였으며
현재는 청하에 있는 유일한 사찰로 이 지역 신도들의 수행도량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운사」남쪽에는 2만여 평의 백련지가 있어 매년 연꽃이 피는 여름이면 하소백련축제가 열립니다.
절은 19세기에 보천 스님이 단칸의 초가집을 짓고 주석한 것에서 시작된다. 이후 사람들이 이곳의 샘물이 좋다하여 많이 찾았다고 한다.
그 뒤의 연혁을 살펴보면 1927년에 월인(月印) 스님이 초가법당을 3칸으로 늘리고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요사도 지었다.
1931년에는 초가법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절을 중창했는데, 이 법당이 곧 지금의 관음전이다.
1938년 벽운(碧雲)스님이 아미타불과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봉안했으며, 1959년에는 현재의 염불원 오른쪽에 있는 요사를 새로 지었다.
1970년에는 1927년에 지었던 요사를 헐고 그 자리에다 옛 만경현 동헌에 있던 건물을 매입해 옮겨와 대웅전을 삼았다고 한다.
1973년에는 종각과 범종을 봉안했고, 1990년 요사로도 사용되는 염불원을, 그리고 1992년에 미륵불을 봉안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말기 한 고승이 충청도에 있는 계룡산에서 바라보니 서광이 비치는 곳이 있어 보니,
김제평야의 모서리였다고 한다.
산세를 따라 내려오며 생각하기를 청하산(靑蝦山)이 보잘 것 없는데, 왜 이렇게 빛이 나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사찰을 짓고 불제자가 되어 중생들을 극락에 보내리라 마음먹고, 청운사를 건립한 뒤 매일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보천 스님은 생불의 신선만이 올 수 있는 청운사에 와서 자기 수도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불도의 연구와 실천을 위하여 좌선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잠기어 도로인 인력극한의 섭생으로
시련을 극복하여 불자가 되었다.
그 후 1925년 3월 10일 법당을 짓고 태고종에 속하였으며, 1927년 승려 월인(月印)이 초가 법당을 3칸으로 늘리고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요사를 지었다. 1931년 초가 법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절을 중창했는데,
이 법당이 지금의 관음전이다. <출처; 디지털김제문화대전>
무량광전(無量光殿)
청운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배치하였는데,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마찬가지로 아미타불을 서향을 바라보도록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여섯 개의 기둥에 걸린 한글로 쓴 주련(柱聯)입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신가요. 생각, 생각 끊임없이 간절하게 이어지고 마음속이 텅 비어 자신마저 사라질 때 가슴에는 꽃이 피고 일체병고 사라진다. 염불하고 참선하면 몸과 마음 정화되고 모든 번뇌 소멸되고 큰 깨달음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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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광전(無量光殿)안에 모셔져있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마찬가지로 아미타불을 서향을 바라보도록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신중단(탱화)
관음보살(觀音菩薩)
무량광전(無量光殿) 벽화 三經像觀(삼경상관) = 제 8관
극락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觀(관, 생각)하는 수행
彌陀身觀(미타신관) = 제 9관
아미타부처님을 觀(관)하는 수행
觀音身觀(관음신관) = 제 10관
관세음보살을 觀(생각)하는 수행
勢至身觀(세지신관) = 제 11관
대세지보살을 觀(생각)하는 수행
春, 生 시작(봄) 天上天下 唯我獨尊(천생천하 유아독존)
冬(동) 멈춤,
普觀堂生觀(보관당생관) 제 12관
마땅히 극락에 태어남을 觀(생각)하는 수행
夏 여름 성숙
杂觀三經觀(염관삼경관) = 제 13관
관음 · 세지 두보살이 아미타불의 보체로서 도움을 주는 것을 觀(생각)하는 수행
추 秋 가을, 소멸, 준비
上品上生觀(상품상생관) = 제 14관
극락의 상품에 태어남을 관(생각)하는 수행
發心 발심 좋은 생각 일으김
범종각(梵鍾閣)
대웅전(大雄殿)
자연석을 3단으로 높게 세운 자연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절집 양식이라기 보다 관아건물의 일종인 동헌양식의 건물이며 목조기와집이다.
이 대웅전 건물은 옛 만경현 동헌에 있던 건물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편액은 ‘대웅전’이라 붙어있고 주련은 5기가 걸려 있다. 문은 4분합문이고 빗살창으로 되어 있다.
석가모지불에 좌우보처인 문수 · 세지보살
대웅전에는 주존불인 석가모니불좌상을 비롯해서 좌우에 협시로는 문수보살과 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불기 1992년에 조성한 신중탱화
칠성탱화
대웅전 내부에 걸려 있는 불화는 석가삼존불상 뒤쪽에 모신 후불탱화를 비롯하여
불기 1992년에 조성한 신중탱화와 역시 같은 해에 조성한 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대웅전 벽화 = 수월관세음보살
대웅전 벽화
관음전(觀音殿)
목조기와집이다. 편액이 없고 주련도 걸려 있지 않으며, 단청도 칠해져 있지 않고 현재는 스님의 조실로 사용하고 있다.
관음전(觀音殿), 벽에는 "무형문화재의 집"이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탱화장(탱화)(유삼영) (幀畵匠(幀畵))』
무형문화재 탱화장은 청운사의 주지이신 청운도원 스님입니다.
종목 : 전북 무형문화재 제 27호, = 분류 : 무형유산 · 공예기술 · 목칠공예 · 칠공예 지정일; 2002. 04. 06
【탱화장】이란 = 탱화는 불교적인 소재와 교리를 경건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으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기술적 완성을 이루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대중적 기호에 맞는 민중미술로서 크게 성행하였다.
전라도 지역은 예로부터 의겸(義謙)스님을 비롯하여 천여(天如) · 익겸(益謙) 등 뛰어난 화승(畵僧)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기능보유자 유삼영은 만응(萬應)스님으로부터 탱화수업을 받은 이후 30여 년간 전라도 및 제주도에서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의 탱화는 각 부문에서 주제별 도상(圖上)에 필요한 초본(草本)으로 탱화를 조성하여 전통문화의 맥을 충실히 잇고 있으며,
필선(筆線)이 유려하고 안정적이며, 구성과 비례가 적절함이 특징이다. 특히 채색에 있어 전통적인 양선색(洋線色)과 색채(色彩)를 사용하여
전통문화의 맥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 = <출처; 문화재청>
대웅전 내부에 걸려 있는 불화는 석가삼존불상 뒤쪽에 모신 후불탱화를 비롯하여 불기 2992년에 조성한 신중탱화와 역시 같은 해에
조성한 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산신탱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그 밖에 만응스님과 아버님, 할아버지 모두 탱화를 그렸던 탱화장인이었는데, 그들의 사진이 모셔져 있다.
탱화를 그리는 금어비구 스님들로는 묵담스님(시봉)과 서울 예운스님 등 만봉스닙의 윗분이자 일섭스님 등을 들 수 있다.
관음전 옆에 조성되어 있는 미륵불(彌勒佛)인지 약사불(藥師佛)인지 잘 모르겠다.
범종각 지붕위 지장보살
범종각(梵鍾閣)
범종각은 주심포 형식이고 사모지붕을 하고 있다. 내외부에 단청이 칠해져 있고 내부에는 범종이 배치되어 있다.
부도전
부도밭에는 은암당(隱庵堂), 월인당(月印堂), 벽운당(碧雲堂) 등 세 분 스님의 부도탑이 있다.
사적비 1개가 서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도학에 심취해 있던 유형근(월인당)의 이야기,
박은암 화상이 계룡산 마루에서의 이야기 등을 시작하고 청운사와 관련해서는 불기 2435년에 월인당이 토굴을 보수하였던 것을 적고 있다.
요사겸 법당을 초가 3칸으로 짓고 청운사라 이름한 것이다. 이후 2500년 3월에 아버지 월인당과 모친 황씨 법계화 사이에서 장남 벽운당 창영이 태어났고,
2507년 9월에 관음전을 건립하였다. 2513년부터 2516년 3월까지 만경현 동헌 5칸을 뜯어 4칸집의 대웅전을 낙성하게 되었다.
이후 2533년 5월에 석조미륵대불을 조성하고 2510년 10월에 범종각과 범종을, 2511년 10월에 요사채를 준공하였다.
2522년 6월에는 폐사지의 6층석탑을 옮겨 왔고, 2524년 8월에 전통사찰을 등록하였으며, 2534년 1월 2층 요사채를 신축하고 번와와 단청을 하였으며,
2543년에 사적기를 조성하였다.
오층석탑 = 청운사 석가탑이라고 써 있다.
법당 앞에 있는 오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탑재가 있는데, 이것은 옥구군의 한 이름 없는 절터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탑재로는 옥개석과 탑신석의 일부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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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산 청운사 연화정토 하소백련지(靑蝦山 靑雲寺 蓮花淨土 蝦沼白蓮池) 표지석
청운사 하소백련지(靑雲寺 蝦沼白蓮池) 이정표
연 된장 간장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곳이다. = 영농조합에서 운영을 한다고 한다.
장냄새가 얼마나 구수하던지 향기로 유혹을하여 간장과 된장을 사오려고 하였는데 사람이 없어 그냥돌아왔다.
집에서 간장 된장 다 담가먹는데도 향기에 취해서 한번 사 먹어보려고 했다
하소백련지(蝦沼白蓮地)란 =
이곳 김제 청하에 위치한 2만여평의 백련재배지는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곳에 백련지(백연지)들이 위치하였다고하여
하소백련지(蝦沼白蓮地)라고 한다.
백련지 안에는 새우의 머리에 해당하는 위쪽으로는 조선말엽 고승 한분이 충청도 계룡산에서 바라보니 서광이 비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김제 평야의 모서리에 있는 청하면 대청리에 있는 청하산이 있어 여기에 사찰을 짓고
불제자가 되어 중생들을 극락에 인도하기로 마음먹고 건립했다는 전통사찰인 청운사가 있다.
※백련은 농약을 하면 말라 죽게 된다. 백련은 6월 말부터 ~ 8월까지 늦게는 9월초까지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며,
가장 절정시기인시기는 7월 10일경부터 ~ 8월 초순까지이다.
절은 오래된것 같은데 특별한것이 없고 대웅전 법당에 납골이 같이모셔져있는것 같다.
관음전이라고 쓰여있는곳은 관세음보살은 안계신다. 범종각이 조금 특이하게 낮은모습이며 아주 예쁘다.
◈찾아가는 길 =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대청리 91-2번지 청하산(靑瑕山)에 자리한 대한불교태고종 사찰이다.
☎ (063 - 543 - 1248) *네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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