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동리산 태안사(谷城 桐裏山 泰安寺)
태안사(泰安寺) 하심이 무엇인지 몸소 배울 수 있어요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23호
태안사는 초창부터 한국 선종사찰의 중심이었고, 이런 모습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부속된 암자 또한 9곳에 이르는데, 천불전,
성귀암, 봉천암, 가은암, 명적암, 삼일암, 보현암, 계현암, 봉서암, 야은정사가 그들이다.
이들 중 천불전은 본 사찰 영역과 매우 인접해 있으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암자로 불리기보다는 본 영역의 일부인 것처럼
생각된다. 천불전은 본 영역 오른편으로 나있는 경사로를 따라 약 20m정도 오르면 넓은 영역이 나타나며, 이곳에 천불전, 산왕각,
요사가 건립되어 있다.
하심(下心)이 무엇인지 몸소 배울 수 있어요
깨달음은 보는 것도 아니고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사찰이 있을까요.
깨달음의 표상을 친견하는 우리들의 마음 자세를 가르쳐주는 적멸의 공간이 있습니다.
곡성 동리산 태안사(谷城 桐裏山 泰安寺)는 우리나라 선종이 처음 열린 아홉 산문 가운데 하나로 지금까지 법등이 꺼지지 않고 이어 내려 온 도량입니다.
1200년 동안 태안사는 수행공간의 쇄락과 전소의 아픔 등을 겪으면서도 오직 하나 지켜온 것이 있습니다.
용맹정진하는 수행스님들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경내 뒤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이 깨달음의 세계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즐기는 스님은 바로 혜철스님입니다.
스님은 이곳에 동리산문을 개창한 주인공입니다. 스님의 육신을 사라졌지만 법신은 적인선사조륜청정탑으로 남아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적인선사의 가르침은 하심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수행자든 일반 관광객이든 머리를 숙여야만 스님의 법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심을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배알문입니다.
적인선사의 적멸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배알문입니다. 배알문의 높이는 낮습니다. 머리를 숙여야만 적멸의 공간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만든 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배알문 속에는 산사의 길을 걸어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 가르치는 ‘할’이 담겨있습니다.
태안사를 참배하는 사람들은 꼭 적인선사의 깨침의 세계에 들어가십시오. 적인선사의 오묘한 가르침을 배울 수 없지만,
배알문에 담겨 있는 하심만이라도 가져온다면 여러분은 큰 수확을 얻은 것입니다.
꼭 보아야 할 것
1) 해회당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바라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지름이 92cm 되는 이 바라는 효령대군이 시주한 것이라고 합니다.
2) 적인선사조륜청정탑(적인선사 부도탑)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라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부도에 담겨있는 깨달음과 선사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온 아름다움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3) 6․25때 불에 타지 않은 전각은 일주문과 능파각입니다. 산사의 미는 바로 능파각안에 담겨 있습니다.
4) 선원이 들어선 자리 오른쪽 계곡안에는 신숭겸 장군을 제사하는 제단이 있습니다.
능파각 앞에는 6․25때 전사한 경찰 충혼탑이 높게 솟아 있습니다
5) 태안산 숲길은 가장 아름다우며 걷기가 가장 좋은 오솔길입니다.
오솔길에는 4개의 다리가 각각 화두를 품고 있으니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6) 새로 조성한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의 역할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대웅전 왼쪽 뒤편 언덕에는 따로 석축을 조성하고 공간을 만들어 최근에 삼성각을 건립했다. 또한 대웅전 오른편 적묵당 뒤로
또한 높은 석축을 사용해 공간을 조성하고 이곳에 약사전을 건립했다.
약사전 뒤로는 매우 높은 석축과 담장을 이용해 선방인 염화실을 만들었으며, 그 오른편으로 따로 석축을 쌓아 넓게 공간을 조성하고
이곳에 이 사찰의 창건주라 할 수 있는 혜철대사의 부도와 비를 모셨다.
계단을 따라 석축을 올아 배알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가능하다. 이 공간은 전체 태안사 배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찰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이 공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태안사(泰安寺)는 동리산 태안사사적(桐裏山 泰安寺史蹟)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2년(742년) 2월에 신성한 승려 세 분이 개창하였다.
그 뒤 혜철선사(慧哲禪師)가 당나라 서당지장(西堂地藏)에게 법을 전수받고 돌아와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동이산파를 이루었다.
고려시대에는 광자대사가 크게 고쳐지었다. 이 때의 절규모는 건물 총 40여동 110칸이었으며,
법당에는 높이 1.4m되는 약사여래철불좌상(藥師如來鐵佛坐像)을 모셨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의 원조인 도선국사도 태안사에 잠깐 머물러 혜철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태종의 둘째아들 효령대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고쳐지어 옛 가람의 규모를 되찾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또 한번의 피해를 입었다. 현재의 건물은 일주문과 능파각을 제외하고는 거의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된 건물들이다.
절 내에는 광자대사 탑과 비등 보물 3점, 지방문화재 3점이 있다.
대웅전(大雄展)
태안사지 편사에 의하면 광자대사 당시 태안사의 중심 건물은 금당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금당의 당주 또한 약사여래철조좌상(藥師如來鐵造坐像)이라 기록되어있어,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예불 대상 또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태안사의 중심 건물은 대웅전이라 현판을 걸었고, 그 예불 대상 또한 석가모니불로 바뀌어 있다.
원래 이곳에 있던 대웅전은 한국전쟁 당시 화재로 사라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다시 복원한 건물이다.
대웅전 주련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변시방중) = 불신은 보편하여 어느 곳에나 다 있고
三世如來一體同(삼세여래일체동) = 삼세 여래는 하나로서 같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 넓고 큰 원력은 결코 다함이 없으니,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 드 넓은 깨달음 바다의 묘함은 이르기 어렵고, 渺= 아득할 묘
究竟淸淨微妙法(구경청정미묘법) = 마지막 경지의 청정하고 미묘한 법으로
威光遍照利郡生(위광변조리군생) = 위엄의 빛 두루펴시어 뭍 중생을 이롭게 하네
대웅전 내에 지장단
왼쪽 벽면에는 지장탱화를 제작해 걸어놓았다.
신중단
오른쪽 벽면에는 신중탱화가 걸려있다.
중앙 본존불인 아미타불 우보처 지장보살, 좌보처 관세음보살
본존불로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모셨다.
법당
아미타불은 무한한 광명과 수명을 지닌 부처라는 뜻으로 무량수불, 미타불로 불리는 부처로 서방의 극락을 관장한다고 한다.
따라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같이 불단을 동향으로 안치해 참배자들이 서향을 하도록 꾸미는 경우도 있다.
또한, 좌우협시보살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후불벽 또한 본존불과 어울리게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한 극락회상도를 그려 놓았다.
현재 사용하고있는 범종
현재와 과거의 용두
천순명동종(天順銘銅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4호)
원래는 태안사 대웅전 안에 봉안하고 있는 종이다. 종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天順 元年 3월(세조3, 1457년)에 처음 주조되었으며,
이후 萬曆 9년 4월(선조14년, 1581년)에 파손되어 다시 만들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억불정책(抑佛政策)으로
불교가 많은 탄압을 받던 시기에 왕실의 도움 없이 사찰 불사의 일환으로 조성된 범종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한다.
종신 위에는 용뉴와 음통이 있다. 이전의 종에서 뚜렷하게 만들어져 있던 음통은 이종의 경우 많이 축소되어 그 크기가 작게 표현되어
있어 과도기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용의 조각은 매우 역동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각 부분이 모두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매우 화려하다.
상대의 조각은 매우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최상부에는 1단의 연꽃무늬를 돌출되게 만들어 놓았으며,
바로 아래 단에는 커다란 2겹의 연꽃무늬를 종 전체에 돌려 장식했다.
또한 그 아래에는 또 하나의 띠를 두르고 원형의 무늬와 더불어 원안에 범자를 새겨 넣었다.
총 4군데의 유곽을 만들었으며, 그 안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은 다음, 그 상부에 유두를 솟아오르게 달아 놓았다
하대 부분은 다른 종들과 다르게 종의 끝이 아닌 높은 위치에 만들어져 있고, 그 조각에 있어서 매우 화려한 당초무늬로 조각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서는 드물게 매우 화려한 조각을 갖추고 있고, 그 형태에 있어서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또한 여러 부분에서 과도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으며, 또한 종 외부에 명기를 남기고 있어 정확한 주조연대, 주조자, 시주자 등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는 한국 종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작품이다. = 퍼온 글
약사전 전경
약사전
높은 2단의 축대를 만들어 조성한 대지에 위치한 건물로 근래에 새로 지은 건축물이다.
약사전 편액
약사여래광불
염화실과 선원 전경
염화실
선원(禪院) = 선원(禪院)은 화두를 참구하시는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곳이다.
=선원에 씌여진 주련=
일입속중장세계(一粒粟中藏世界) = 한 알 좁쌀 속에도 삼천대천 세계가 감추어져 있으니
반승당내자산천(反升鐺內煮山川) = 반 되 들이 쇠솥에 산천을 달인 다네 鐺= 쇠사슬 당
향부비관팽다숙(香浮鼻觀烹茶熟) = 그윽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니 차는 이미 익었고
희동미간련구성(喜動眉間煉句成) = 기쁜마음으로 끙끙거리며 시 한 구절 지어보네
배알문(拜謁門)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보물 제 273호,
이 탑은 태안사의 개산조사라 할 수 있는 혜철(慧徹)대사의 부도이다.
적인선사 혜철은 신라 원성왕 1년(785년)에 태어나 경문왕 1년(861년)에 입적하였다.
따라서 이 부도는 적인선사가 돌아가신 86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는 현 태안사의 가장 높은 곳에 마련한 대지에 있으며, 부도 옆에 탑비가 부도를 바라보면서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부도 앞에는 계단을 마련하고 배알문(拜謁門)이라는 현판을 단 문을 두어 부도가 놓인 대지의 격을 높이고 있다.
부도는 지면에 바로 놓인 것이 아니라 기단을 마련한 위에 모셔졌다. 기단은 원래 가구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우주가 제 위치에 있지 않는 등, 많은 부분이 교란되어 있다. 또한 기단 주변으로 초석들이 위치하고 있어,
부도를 중심으로 한 부도전이 꾸며졌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기단 정면에 위치한 갑석의 형태가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계단을 설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
탑신은 팔각형 평면으로 아래에 비해 위를 약간 좁게 만들어 형태적인 안정감을 부여하였다.
기둥과 인방, 문비 등을 조각해 팔각형 평면의 목조건축을 표현하고 있다. 각 모서리에는 기둥을 새겼고, 상하에는 기둥을 연결하는 수평재를 조각했다.
아래의 것은 하인방이 분명하나 위에 있는 수평재는 탑신석 상면에서 아래로 약간 내려온 곳에 위치하고 있고
그만큼 기둥이 위로 솟아있어 창방인지 상인방인지의 구분이 모호하다.
또한 이 수평재 위에는 중앙에 기둥형의 부재 하나씩을 두었는데, 수평재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이 부재의 기능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탑신 정면과 후면에는 같은 모양의 문을 조각했다. 하인방에 의지해 기둥과 좀 떨어뜨려 문설주를 세웠고,
상부의 수평재와 좀 떨어뜨려 문상방을 걸어 장방형의 문틀을 만든 모습이다.
문설주와 문상방에는 양각(陽刻)된 선을 하나 더 그었고, 문설주와 문상방이 만나는 곳에는 사선(斜線)을 양각해 쌍사와 연귀맞춤을 연상시키고 있다.
문 중앙에는 자물쇠를 선각(線刻)으로 새겼다. 문 좌우에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했는데,
풍화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윤곽만 조각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나머지 두 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한 것과 마찬가지 수법으로 향로를 조각했다.
옥개석은 팔모지붕을 표현하고 있다. 옥개석 하부에는 각 모서리를 따라 추녀와 사래를 표현했고, 각 면마다 서까래와 부연을 촘촘히 조각해 놓았다.
서까래 아래쪽으로는 볼록한 부분이 1단의 쇠시리로 구성된 옥개받침까지 연속되고 있다.
이 부분의 모서리에는 살미로 보이는 부재가 양각되어 있다. 목조건축의 출목이 있는 공포대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붕 상면 역시 기와지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붕면은 반곡이 심한 편이며 내림마루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 기와골과 막새기와까지 모두 표현했다.
상륜부는 앙화(仰花), 복발(覆鉢), 3개의 보륜(寶輪), 보주(寶珠) 등 모든 부분이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있다.
이 탑은 신라말기에 건립되기 시작한 부도의 초기 작품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그 형태에 있어서도 너무 화려하거나
너무 거대한 것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조형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조각에 있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있어,
수수하면서도 당당한 초기 한국 부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 퍼온 글
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 정면모습
적인선사조륜청정탑 옆에 부도를 바라보며 세워진 비석이다.
훌륭한 선사의 부도에는 그의 일대기와 사상을 담은 탑비를 옆에 같이 세워두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를 통해
그 당시의 역사와 시대 상황 및 선사의 일대기를 알 수 있다. 탑비는 귀부와 비신, 이수로 구성되는데 적인선사탑비는 비신이 결실되어
없어졌으며, 현재 사내에 전해 내려오는 비문을 가지고 다시 복원해 놓았다.
귀부는 당당하게 앞발을 들어 무거운 비신을 당당히 버티고 있는 모양으로 조각했고, 등에는 매우 가는 선으로 거북의 등껍질을 표현했다.
귀부의 등껍질은 다른 탑비의 것과 다르게 끝부분을 단순히 원형으로 만 조각된 것이 아니라,
호형을 그리며 물결치듯이 마감되어 있어 독특하다 할 수 있다.
또한 비좌에는 구름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고, 그 상부는 연꽃으로 조각했다.
또한 꼬리는 말아 올리지 않고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
이수는 양편에 각각 2마리의 용이 구름을 사이에서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정면 한 중앙 두전(頭篆)에는 적인선사(寂忍禪師)라고 써넣었다.
배면 정면과 유사한 모양을 보이고 있는데, 4마리의 용이 구름을 배경으로 조각되어 있다. 정상에는 보주를 얹어 마감했다.
그런데 1941년에 편찬된 사적에서는 ‘1928년 중건 당시 광자 대사비의 이수를 옮겨와 적인 선사비의 이수로 사용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광자대사탑비의 이수와 바뀌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더욱 더 면밀한 조사 및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 퍼온 글임
지금도 표정에서 힘이 느껴진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뒷면
해회당
해회당은 네모꼴로 이어진 큰 건물로서, 고흥 능가사(稜伽寺)에서 처음 봉안되었던 금고(金鼓)가 마루에 걸려 있다.
요사체로 쓰고있다.
금고(金鼓)
혜화당 마루에 세워져 있는 금고는 1770(영조 46)년 능가사(楞伽寺)에서 주조된 것으로 절의 사적기에는 대지전에 두었던 것이라
적고 있습니다. 지름이 1m가 넘습니다. 금고는 반자(飯子)라고도 말하며, 쇠로 만든 북의 일종입니다.
보제루(普濟樓)
주불전 앞에 보제루를 두고 있다. 태안사의 경우는 외부에서 보제루의 측면을 돌아 진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었다.
현판은 “보제루(普濟樓)”라고 기록해 걸어두었으며, 내부에 또 다른 현판을 두어 “만세루(萬歲樓)”라 했다.
보제루(普濟樓)”라는 현판이 걸려있고(기록해있음), 내부에 또 다른 현판인 “만세루(萬歲樓)”라는 글이 있습니다.
예전 사진에는 무어라 쓰여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보제루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보제루 목어(普濟樓 木魚)
현재 태안사에는 사물을 완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절 안에 보물로 지정된 범종이 있으나 그 크기가 작아 따로 범종각을 만들지는 않았으며 운판이나 법고 또한 사찰 내에 존재하지 않고
있다. 오직 목어만이 보제루 한쪽에 걸려 있는데, 입에 보주를 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청색의 단청을 입혔고,
노랗게 색칠한 크게 부릅뜬 눈과 몸체에 표현된 지느러미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金鼓(금고) 혹은 쇠북
쇠북은 금속으로 만든 북으로 불전 사물과 같이 사찰의 행사나 대중을 집합시킬 때 쳐서 소리를 내는 불구(佛具)입니다.
징과 비숫하게 생겼으나 두 개 내지 세 개의 고리가 달려있는 점이 다르고,
한쪽 면만 사용할 수 있는 형태와 양쪽 면을 다 사용할 수 있는 형태가 있습니다.
명칭은 쇠북, 금고(金鼓), 금구(金口, 禁口) 반자(飯子) 등으로 불립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 졌던 금고가 가장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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