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4대 비구니 도장으로 한성 도성밖의 네곳 승방이 손꼽힌다, 그 중의 한 곳인 두뭇개 승방인 미타사는 옥수동 달맞이봉 아래 위치해 있다.
달맞이봉 서쪽 기슭에 자리한 두뭇개 승방 미타사는 예로부터 미타사(彌陀寺)가 자리한 두뭇개는 뒤에 높은 산이 솟아서 좌우로 둘러싸고,
앞으로는 동호(한강)가 흘러 경치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래서 조선 중종 때부터는 독서당(讀書堂)을 이곳에 두고 젊은 관리에게 휴가를 주어 책을 읽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타사 주변은 아파트와 지하철역사가 들어서 사방이 막혀있는 형국으로 예전의 풍광을 기대할 수 없는 아쉬움이 가득한 곳이다.
사찰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미타사는 888년(신라 진성여왕 2) 현 금호동 골짜기에 비구니 대원(大願)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1115년(고려 예종 10)에 봉적(奉寂)과 만보(萬寶) 스님이 지금의 종남산으로 극락전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내용 외에 미타사 창건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즉 미타사는 고려말 조선초부터 종남산 동쪽 기슭 현 금호동에 있었는데,
이 부근에 있던 왕실 경영의 메주가마를 자하문 밖으로 옮김에 따라 이곳에 도적이 들끓었으므로,
지금의 자리로 절을 옮겨 종남산 미타사로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 · 고려 이래로 이곳에는 조그만 암자들이 있었는데 절 뒤의 산봉우리가 백명의 과부가 나타날 상이라는 풍수설에 따라,
비구니 사찰을 확장할 적절한 곳이라 여기고 조선 중기에 암자들을 합쳐 미타사라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1943년 안진호(安震湖) 스님이 편찬한 『종남산미타사약지(終南山彌陀寺略誌)』에 보면 미타사는 19세기 초반에 무량수전을 처음 지은 사실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곧 1827년(순조 27)에 쓰여진 「종남산미타사무량수전초창기(終南山彌陀寺無量壽殿初刱記)」에 보면
1824년 3월에 비구니 대원(大願)스님 이 무량수전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3년 만에 갑자기 입적하자 그 상좌인 환신(幻信) 스님이 뒤를 이어
1827년에 공사를 완료하고 절의 모습을 일신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사찰에서 전하는 888년(신라 진성여왕 2) 창건설은 조선후기에 있었던 일을 신라 말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봉적(奉寂)과 만보(萬寶) 스님은 1884년 미타사를 중건한 분들이기 때문에 현재 전하는 자료로서는 19세기 이전의 사실을 알 수가 없다. 1824년 이후 광복 전까지의 연혁은 대체로 『종남산미타사약지(終南山彌陀寺略誌)』에 의해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1862년(철종 13)에는 인허(仁虛)화상이 화주가 되어 조대비(趙大妃)의 하사금과 조진관(趙鎭寬)의 부지 기부로 극락전을 다시 짓고
기타 불전과 요사를 수리 하였다.
1873년(고종 10)에는 성흔(性欣) 스님이 불전과 요사를 고치고 개금단청 불사를 하였다. 1884년(고종 21)에는 제암(濟庵) 화상이 인허화상의 뒤를 이어
비구니 봉적(奉寂)과 취희(就羲) 등과 함께 대방을 새로 짓고, 남은 돈 엽전 1백량으로 안성군 대덕면 등의 논밭 11,550평을 매입 하였다.
1891년(고종 29)에는 비구니 신오(信悟) 등이 칠성각을 수리하였고, 1897년에는 비구니 만보(萬寶) 스님이 칠성전 개금 중수와 불화를 조성하였고,
1899년에는 묘정(妙淨), 응합(應合) 스님이 천태각을 수리하였다.1911년에는 원만(圓滿), 묘정(妙定) 화주를 하여 중종을 조성하였고, 1915년에는 괘불을 조성하였다.
1918년에는 비구니 조상종(趙尙鍾), 전경각(全敬覺) 등 여섯 비구니 스님이 함께 돈을 내어 양주군 별내면 산곡리의 토지 2,689평을 매입하였고,
1919년에는 주지 임돈형(林頓亨) 스님이 사재(寺財)를 이용하여 평택군 평택리 소재의 토지 1,106평과 시흥군 신동면 소재 토지 1,006평을 매입하였다.
1924년에는 주지 임돈형(林頓亨) 스님이 안성군 대덕면 신령리 소재 토지 1,630평을 사재(寺財)를 이용하여 매입하였다.
1926년에는 주지 응합(應合) 스님이 대중과 협의하여 대방(大房)을 중수하였고, 1928년에는 화주 선담(仙曇)과 응합(應合) 등이
극락전 앞에 칠층석탑을 세웠다.
1930년에는 주지 경각(敬覺) 스님이 봉향각을 중수하고, 사찰 부근 45평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1933년에는 주지 임돈형(林頓亨) 스님이 산신각을 중건하고 산신탱을 조성하였다.
1938년에는 주지 임돈형(林頓亨) 스님과 화주 성훈(性勳) 스님 등이 무량수전을 중수하였고, 허씨 광명심(光明心)이 이천군에 있는
논밭 5,842평을 헌납 하였다.
1940년에는 이천과 시흥의 토지 약 9천평을 헌납한 허씨의 공덕비와 비구니 임보윤 스님의 불망비를 세웠다.
이처럼 미타사는 1824년 이래로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중수를 하며 법등을 이어왔다.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19세 말엽에 만들어진 《경성오부도(京城五部圖)》에는 지금의 옥수동 부근에
해당하는 두모포(豆毛浦)에 니사(尼寺)가 있음이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곧 미타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광복이후의 미타사는 어떻게 변모를 해 왔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 부부가 이 절에 자주 다녀가기도 했다고 한다.
미타사 일주문이라할까? 아님 사천왕문이라할까?
사천왕이 문에 그려져있다. 절이 너무 허름하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미타사 본 법당인 극락전
극락전 현판
대세지 보살. 극락전 불단(極樂殿 佛壇) 관세음보살
나무를 깍아 만든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삼존불로 중앙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주존으로 모신 아미타불은 둥근 얼굴에 설법인(說法印)을 결하고 있는데, 머리에 비하여 어깨가 약간 좁다.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로 보관에 정병이 새겨져 있으며, 왼쪽의 관음보살은 보관에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다.
아미타불은 수명장수하고 극락왕생을 보장하며 자비를 베푸는 분이다. 관음보살은 자비의 화신(化身)으로 중생을 구제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분으로 광명이 모든 중생을 비추어 3도(途)를 여의고 위 없는 힘을 얻게 한다고 한다.
뒤에는 퇴락이 심한 후불탱이 걸려 있다. 삼존불의 머리에는 연꽃봉우리 등이 조각된 닫집이 가설되어 있다.
극락전 신중탱(極樂殿 神衆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을 신중탱이라 한다.
이 불화의 역할은 그 범위를 넓혀 참배자의 심성에 내재한 온갖 잡신을 쫒음으로써 인간심성에 청정함을 갖게하여 또 다른 호법(護法)의 길임을 깨닫게 한다.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그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한다.
감로탱화
법당 범종
범종의 용뉴
미타사(彌陀寺): 7층석탑(七層石塔)
극락전 앞에 조성되어 있는 석탑으로 칠층을 이루고 있다. 장방형의 지대석 위에 일곱개의 옥신(屋身)과 옥개(屋蓋)를 쌓은 석탑으로
세장(細長)하면서 단순하게 조성되어 있다.
옥신면에는 아무런 조식없이 테두리만 새겨졌다. 상륜부(相輪部)에는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寶珠)가 장식되어 있다.
상륜은 간략화 하여 연봉으로 보주를 표현하였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칠층석탑으로 1928년 화주 선담(仙曇)과 응합(應合) 등이 세운 것이다.
탑은 4각의 지대석 위에 바로 탑신과 옥개석을 올린 것으로 탑신에는 사면 모두 테두리를 조각하였다.
5층 탑신에는 우주를 조각하고 그 안에 사방불을 돋을새김 하였다.
미타사 독성전(彌陀寺 獨聖殿)
1899년 중수를 한 것이다. 안에는 소조독성상과 1975년 만봉(萬峰) 스님이 조성한 독성탱과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산신탱화
독송탱화와 나한상
미타사 봉향각(彌陀寺 奉香閣)
1930년 주지 전경각(全敬覺)과 화주 임보윤(林普允), 임돈형(林頓亨) 등이 중건한 것이다. 이 건물은 극락전과 용운암 요사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에는 '미타사봉향각중수기'가 걸려있다.
미타사 관음전(彌陀寺 觀音殿)
1884년(고종 21) 제암(濟庵)화상이 봉적(奉寂), 취희(就羲) 스님등과 지은 것이다.
건물은 미타사의 대방으로 극락전 쪽으로 향한 곳을 제외한 3면벽은 벽돌로 쌓여있으며,
안에는 관음보살좌상과 천수천안관음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 현판
미타사 천불전(彌陀寺 千佛殿)
1989년에 지은 것이다. 건물은 높다란 석조 기단위에 원형의 초석과 원형의 기둥을 올렸다. 어칸과 좌우의 기둥위에는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부재인 안초공을 끼웠는데 바깥에는 용머리를 안쪽으로는 용꼬리를 조각하였다.
창호는 모두 4분합문으로 활짝 핀 꽃살로 장식하였다.
건물의 외벽에는 돌아가면서 각 칸에 2단으로 구획하고 그 속에 『부모은중경』의 내용과 석가모니 전생이야기를 그려 장엄하였다.
그리고 정면에는 천불전(千佛殿) 편액과 6점의 주련이 걸려 있는데, 『화엄경(華嚴經)』권6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내용과 뜻은 다음과 같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부처님의 법신 법계에 충만하사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일체 중생 앞에 널리 나투시니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인연따라 나아감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고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언제나 이 보리좌에 앉아 계시네.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 광대한 서원의 구름 항상 다함이 없으시고
왕양각해묘난궁(汪洋覺海渺難窮) 드넓은 깨달음의 바다는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려워라
안에는 주존으로 금동석가여래좌상과 원불, 그리고 1990년에 조성한 석가모니후불탱과 신중탱과 1980년 조성한 범종이 봉안되어 있다.
미타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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