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밖 탑골승방의 비구니 청정도량, 미타사(彌陀寺)
예로부터 4대비구니 도량중에 제 1대 도량 탑골승방인 미타사(彌陀寺)
비구니 수도장으로 한성 도성밖의 네 곳 승방이 손꼽힌다 그중 탑골승방(보문동 미타사(彌陀寺)는 950년 고려 광종에 혜국국사가 창건하고 미타사(彌陀寺)라고 하였다. *1047년 고려문종때 돌탑을 쌓아 세우면서 탑골 승방이라고 하였다.
원래는 지금의 경동고교자리 였으나 일제때 강제로 현재 자리로 옮겼으며 단종때 왕비 송씨에 의해 중수하였다.
보문사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보문사 담장 이웃에 여법한 도량이 하나 있다. 사찰로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비구니들의 수행도량답게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 일대의 지명이 "탑골 승방"이라고 불리는 유래와도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타사는 탑골승방이라 통칭되는 이웃 보문종의 보문사와는 달리 조계종 사찰로, 동일한 지역에 있는 비구니사찰이면서도 역사적
전개 과정이나 현재의 성격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관심을 주고 있다.
이 절은 고려 초 광종 원년(950)에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절을 창건하고, 고려 초 문종 원년(1047)에 이 절에 석탑을 쌓자 이 근처를
탑골(塔洞)이라고 부르면서 미타사를 탑골 승방[塔洞僧房]이라고 칭하게 됐다. 따라서 탑골 승방은 인근의 보문사보다 미타사를 지칭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현재도 단하각 옆에 고려시대 탑이 전해져 그 신빙성을 더해 준다.
조선시대에 탑골 승방은 옥수동의 두뭇개 승방, 석관동의 돌곶이 승방<이곳은 청량리 청량사로 이름이 바뀜>, 숭인동의 새절 승방
(청룡사)과 함께 여승들이 거처하는 성 밖의 네 곳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보문동 미타사(彌陀寺)가 그 중 있는 것이다.
이후 충숙왕 원년(1314)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사찰을 중건하는데, 고려 때 고승(高僧)인 혜거국사와 혜감국사의 비문(碑文)에
미타사와 관련된 개창, 중창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고려시대 창건과 중창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이어서 조선 초 세조 3년(1457)에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에 의하여 미타사가 중수(重修)되는데, 이는 미타사 서쪽에 있는 숭인동의
정업원ㆍ동망봉ㆍ자지동천 등의 유적이 정순왕후와 관련 있음을 볼 때 그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말에 여러 차례 중수가 있는데, 순조 원년(1801)에 4차 중수되었으며, 헌종 2년(1836)에 운처(雲剔) 당인선사(堂仁禪
師)가 5차 중수하고, 1969년에 고봉선사(古峯禪師)가 6차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가람은 1969년 비구니 계주(季珠)가 고봉(古峰)의 도움으로 중수한 것으로, 옛 비구니 수행도량답게 정갈하고 단정한 가람을
보여주며, 수많은 비구니들이 거처했듯이 현재 사찰에는 법당보다 요사채가 많이 들어 서 있어 옛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미타사는 수행도량답게 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법회보다는 조용히 참선하고 기도드리러 오는 신도들에게 적합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미타사 입구(彌陀寺 入口)
미타사 일주문이면서 안쪽으로 불이문 현판이 걸려있다.
대웅전(大雄殿)
1990년대 자운스님께서 옛 법당을 헐고 새로 증축한 것으로 지하는 창고로, 1층은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며,
2층은 목조건물을 올려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앙불단에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ㆍ대세지보살상이 있으며, 그 뒤로 1873년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 불단에는 아미타후불탱과 동시기에 조성된 지장시왕탱과 신중탱이 있으며, 영단 쪽으로 1918년에 조성된 감로탱과 1931년에 조성된 현왕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 불구로는 1984년에 자원스님이 조성한 높이 94㎝, 구경 55.5㎝의 범종이 있으며, 어칸 측벽에 미타사의 역사를 기록한
미타사기가 걸려 있다.
대웅전 내부
중앙불단에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ㆍ대세지보살상이 있으며, 그 뒤로 1873년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좌측 관음보살ㆍ우측 대세지보살상<부처님 앉은자리에서 봄>
1984년에 자원스님이 조성한 높이 94㎝, 구경 55.5㎝의 법당용 종
신중탱화
지장시왕탱
사찰 초입에 관음전(觀音殿) 과 불이문(不二門)이라는 편액이 ㄴ자형의 건물에 나란히 있습니다.
현재 어칸에는 관음전 편액과 불이문 편액, 그리고 6개의 주련이 걸려 있다.
특히 불이문이라는 편액은 옛날 미타사에 있던 선방의 이름으로 미타사가 비구니의 수행도량이었음을 보여준다.
내부엔 중앙 천개와 불단을 갖춘 감실의 모습으로, 감실 내부에는 1993년에 조성한 금동관음보살좌상과 목각관음탱이 봉안되어 있다.
금동관음보살좌상과 목각관음탱
금동관음보살좌상뒤에 목각관음탱
관음전에 있는 범종
단하각(丹霞閣)
대웅전 뒤편 언덕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로 산신탱을 봉안하였는데, 이 역시 자운스님이 근래에 조성한 것으로
산신과 익살스러운 호랑이, 동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신과 익살스러운 호랑이, 그리고 동자
고려시대 석탑으로 알려진 미타사 6층 석탑
고려 초 문종 원년(1047)에 이 절에 석탑을 쌓자 이 근처를 탑골(塔洞)이라고 부르면서 미타사를 탑골 승방[塔洞僧房]이라고 칭하게 됐다.
미타사 석탑
고려시대 미타사 석탑 옆면
고려시대 미타사 석탑 대각선으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는 미타사 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6층의 탑신이 올라간 모습이다.
구조는 변형된 것으로 이중기단 위에 한돌로 만든 탑신과 옥개를 올리고, 그 위로 상륜을 올렸다.
부재는 원형이 아닌 다른 탑부재와 뒤섞인 모습으로, 5층까지는 석재가 같으나 6층과 상륜부는 석재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이 석탑이 있으므로 얼마전까지 보문동 일대를 [탑골], 이 절을 [탑골승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대웅전 벽화들 =
염화의미소<이심전심>
사라쌍수하곽시쌍부 = 늦게도착한 가섭에게 두 발을 관밖으로 내 놓은 것
6조 혜능대사이야기
부처님 일대기는 여러군데 있어 간략하게 올렸다.
설산 6년 고행
◈찾아가는 길
지하철 6호선 보문역에서 하차하여 1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다보면 보문사가 보인다. 일단 보문사가 있는 쪽으로 걸어 가다보면 보문사 가까이 가서
아주 작은 이정표가 보이면서 작은 언덕길이 나온다. 언덕길을 따라 3분정도 올라가다보면 절집인 미타사가 보입니다. 하단의 이정표
절 만자가 보이는 곳은 보문사입니다. 보문사 뒤쪽에 미타사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됨
'서울 경기 = 心 마음의 길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4대 비구니 도량 중 한 곳인 두뭇개승방 옥수동 미타사 (0) | 2014.01.03 |
---|---|
동대문 밖 탑골승방의 비구니 청정도량, 미타사 (0) | 2013.12.23 |
승가사를 읊은 시 = 호국보탑과 공덕비, 영산전, 적묵당, 사적비, 일주문 (0) | 2013.04.16 |
삼각산 중수 승가굴기(三角山重修僧伽?記) - 이예(李預)= 약사전, 승가대사상, 명부전, 산신각, 석조들. (0) | 2013.04.16 |
삼각산 제일의 비구니 선원, 승가사(僧伽寺) : 마애불좌상, 향로각, 대웅전, 부도, 범종각. (0) | 2013.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