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곶이 승방 청량사(석관동에 있었으나 지금은 청량리 청량사로 바뀌었다. (서울의 유일한 4대 비구니도량 중 한 곳)
청량사(淸凉寺)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1동 61번지 천장산(天藏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전통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비구니 도량입니다. 신라말엽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청량사는 누가 언제 건립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문헌에서 보이는 청량사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의<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예종 12년 고려중기 거사불교(居士佛敎)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이자현(李資玄)이 절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4대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한 돌꽂이 승방이 바로 이 곳이다. 원래 청량사와 돌꽃이 승방은 별개의 절이었으나 1895년 일제의 조선강점흉계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황후의 능인 홍능이 조성케되자 홍릉자리에 있던 청량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고, 때마침 돌꽂이 승방도 사세가 기울어져 두 절이 병합되었다고한다. 청량사는 한말에는 도성 사람들이 자주 몰려와 쉬던 휴양지였고, 일제 치하로 나라가 어려웠을 때는 많은 애국지사, 고승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과 불교운동에 앞장선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한때 청량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1939년 7월 12일에 한용운 선생의 회괍연이 이곳에서 조촐하게 열렸다고 한다. 같은시기에 불교계 학자인 박한영(朴漢永)도 이절에서 기거했으며, 대방에 걸린 청량사 현판글씨는 박한영의 글씨로 전해진다. 청량사는 회한의 역사 속에서 위법망구(爲法忘軀)의 불심으로 도량을 가꾸어온 비구니대중스님들을 보듬어 안고 오늘도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원행으로 도심 속에 회향하고 있다.
청량리 도심의 숲속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세상사에 지친 시민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떡전사거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서 걷다보면 마치 청량사 이정표처럼 육교가 저만치 보인다.
육교에 쳐진 청량사 어린이 행복 템플스테 글이 보인다.
대한불교조계종이란 표지석문과 그 옆면으로 조각되어 있는 금강역사입니다.
청량사(淸凉寺)의 입구엔 천왕문 대신 금강역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청량사(淸凉寺)
청량사 대법전(大法殿)입니다. 전각 앞면에는 청량사라는 편액을 걸고, 뒷쪽에는 대법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대법전 건립 부도탑
대법전이라고 쓰여있는곳 앞 마당에 세워진 청량사 대법전 건립 부도탑이라고 합니다. 왼쪽으로는 극락보전이 있습니다.
비구니 묘길 장동일 송덕비(比丘尼 妙吉 張同日 頌德碑)
極樂寶殿(극락보전)
청량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지붕위의 중앙부분에는 질병통이 올려져 있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목조로 된 아미타여래입상과 관음보살입상, 대세지보살입상인 아미타삼존불과 아미타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답니다.
탑골승방에 대한 역사를 보다가 비구니 도량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많이 알려진 탑골승방에는 4대 비구니 도량이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고하여
청량사, 있고라고 나와 있어 다른 3곳은 다 갔다왔는데 청량사 즉 돌곶이 승방
너무도 아담하고 깨끗하며 예쁘게 꾸며 놓은 주변이 극락보전과 너무 잘 어울린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모든 전각들을 굳게 잠겨져 있다는 것이 좀 아쉽다.
주변에서 청소하시는 보살님께 물어보니 스님께 말씀드리면 열어주신다고 하시는데 지금 열쇠를 갖고 계신 스님이 절에 안계신단다.
그말은 즉 안 열어주겠다는 말로 듣고 더 이상 말을 안했으며 왜 이렇게 해 놓았느냐고 하니 사정이 있으니 묻지말라고 한다.
대체 무슨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꼭꼭 숨겨놓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極樂寶殿(극락보전) 벽화
극락보전 벽화로는 부처님의 일대기인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쌍림열반상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는 열반 장면 · 석가가 가섭에게 발을 보이는 장면 · 다비장면 · 여덟 왕이 사리를 나누는 장면 등이 등장하지만,
청량사에는 사라쌍수(沙羅雙樹)아래서 열반에 든 석가를 중심으로 보살들과 제자들이 애도하는 장면만이 그려졌다.
보관(寶棺) 위에서는 석가가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옆으로누어 열반에 들었으며,
열반한 석가 주위에는 슬픔에 가득 찬 보살과 제자들을 포함한 여러 성중들이 모여 있다.
바로 사는 길을 가르치는 모습 [녹원전법상]
설대화엄전법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석가가 화엄경을 설하는 내용이다.
녹원전법은 석가가 녹야원에 가서 교진여를 포함한 다섯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는 장면이다.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모습 [수하항마상]
수하항마상(水下降魔相)은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던 싯달타 태자가 마귀를 항복히키고 성도하는 장면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태자가 수행하는 중 마왕 파순(波旬)이 미녀인 딸 셋을 보내 태자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고행을 행하면서 구도의 길로 나아갔던 모습 [설산수도상]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에는 산을 배경으로 설산에서 6년간 고행을 하는 태자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인간의 고정 관념을 깨고 출가하는 모습 [윤성출가상]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은 싯달타 태자가 성을 나가 출가하는 장면이다.
성안의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고 태자의 명을 받은 마추 차익(車匿)이 태자의 말인 건척을 데려오고 있으며,
태자가 탄 말 발굽을 천인들이 받쳐 들었다 태자가 성을 나가는 장면에는 차익이 천인의 손을 붙잡고 따라 나서는 모습도 표현되어있다.
인간의 근본 고통을 체험하는 모습 [사문유관상]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싯달타 태자가 네 성문에 나아가 인간의 고통을 살피는 장면이다.
중앙의 성문을 중심으로 네 장면으로 나누어져있다.이야기는 동→남→서→북의 순서로 전개된다. 태자는 동문에서 백발노인을 만나고
[東門路逢老(동문로봉노)] 남문에서는 병든 사람을 마나게되며[南門□□病□] 서문에서는 장례행렬을 보게 된다[西門路觀死屍(서문로관사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나면서 [北門得遇沙門(북문득우사문)] 출가를 결심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 [비람강생상]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은 룸비니동산에서 싯달타 태자가 탠행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을 그리고 있다.
마야부인이 무우나무(無憂樹, 무우수) 가지를 붙잡자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는 모습[樹下誕生相(수하탄생상)]
나무아래에 연꽃이 저절로 피어나고 태자가 연꽃을 따라 일곱 걸음을 옮기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는 장면[四方七步指天口(사방칠보지천구)]이 있다.
땅에서 4개의 연못이 솟는 장면과 하늘에는 아홉마리 용이 몰려와 태자를 목욕시키는 장면[구용토수관목신(九龍吐水灌沐身)]이
표현되어야하는데 없다.
도솔천에서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모습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兜率天)에서 보살로 머물고 있던 미래의 싯달타 태자가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태중에 드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상단에는 둥근 광배 안에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護明菩薩)이 있다.[衆象入胎 (중상입태)]. 마야부인에게 인도하고 있다.
하단에는 궁전 안에 비스듬히 앉아 잠이 든 마야부인이 있다.
그녀의 머리 위쪽으로 호명보살의 무리가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에게 입태하고 있다.[摩耶託夢]
山神閣(산신각) 七星閣(칠성각)
극락보전 가는 길목에는 칠성각(七星閣)이 있습니다. 산신각과 칠성각을 병행하여 사용되고 있는데 앞쪽에서 바라보면 커다란 바위가
당우를 받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山神閣(산신각) 七星閣(칠성각)
山神閣(산신각) 七星閣(칠성각)의 뒤편에 그려져 있는 벽화
탱화수준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無量壽殿(무량수전) 벽화에는 부모은중경과 심우도가 함께 그려져 있다.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끝까지 염려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위해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은혜
원행억념은(遠行億念恩)
멀리 떠나면 걱정해 주시는 은혜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은혜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마른자리 아기 뉘고 젖은 자리 누우신 은혜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시는 은혜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해산함에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불설 대보부모은중경도(佛說大報 父母恩重經圖)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품에 품고 지켜주시는 은혜
심우도(尋牛圖)
우리나라 십우도는 중국 송나라 때 보명(普明) 스님의 심우도(尋牛圖)와 곽암 스님의 십우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이 두 종류의 그림이 함께 그려졌으나 최근에는 곽암 스님의 십우도가 법당벽화에 주로 그려지고 있다.
심우도는 소를 찾는 과정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깊고 심오한
선종(禪宗)의 사상을 담고 있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 세상에 나아가 중생을 제도한다.
저작거리로 들어가 중생을 돕는다.(포교 중생제도를 위하여 거리로 나선다.)
이웃과 함께 티끌 속에서 뒹굴며 자비의 손길을 뻗친다. 반야 지혜에서는 한 치도 떠나지 않는다. 보살의 중생교화이다.
露胸跣足 入廛來(노흉선족 입전래) = 가슴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뛰어든 시정거리
抹土塗灰 笑滿顋(말토도회 소만시) = 흙재가 묻었어도 하하하, 환희 웃는 얼굴
不用神仙 眞秘訣(불용신선 진비결) = 신선의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은 쓰지 않아도
直敎枯木 放花開(직교고목 방화개) = 봄이면 고목 가지에 꽃이 만발하구나.
9.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래자리로 돌아오다.
도원으로 돌아가다.(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
본래 청정한 자기 본심에서 눈을 뜨면 보이는 청산녹수(靑山綠水)가 모두가 비로 실상(實相) 그대로이다.
앞서 원의 여덟 번재 단계와 이 아홉 번째 단계는 내외(內外) 관계, 표리(表裏)관계이다.
返本還源 已費功(반본환원 이비공) =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무척 공을 들였구나.
爭如直下 若盲聾(쟁여직하 약맹롱) = 어찌 곧바로 장님 귀머거리 됨과 같으랴
庵中不見 庵前物(암중불견 암전물) = 암자에 살았어도 코앞의 장관을 보지 못하였네.
水自茫茫 花自紅(수자망망 화자홍) = 물이 절로 흐르고 꽃이 절로 붉은 걸
8.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과 소가 모두 없다.
사람도 소도 모두 다 잊다. 어떤 경우에도 그 순간 목동은 소와 자기가 둘이 아님을 안다.(소도 사람도 본래 空 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깨달음의 단계이다. 시작과 끝이 없다. 미세한 망상번뇌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분법 세계가 깨져 범부와 성인, 중생과 부처,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다.
반야 지혜의 완성을 원으로 표시한다. 생멸이 사라진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단계에서 조사(祖師)의 관문(關門)을 통과하였다.
鞭索人牛 盡屬空(편삭인우 진속공) = 채찍과 밧줄, 사람과 소가 모두 없네
碧天遼闊 信難通(벽천요활 신난통) = 푸른 하늘이 멀고멀어 소식 전하기 어려움이여.
紅爐焰上 爭容雪(홍로염상 쟁용설) =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어찌 눈송이를 용납할까
到此方能 合祖宗(도차방능 합조종) = 여기에 조사 마음과 계합하여 통하네.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소는 이제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려하지 않는다. 본래의 자기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騎牛已得到家山(기우이득도가산) = 소를 타고 본향으로 돌아오니
牛也空兮人也閑(우야공혜인야한) = 소는 간 곳 없고 사람은 한가롭다.
紅日三竿猶作夢(홍일삼간유작몽) = 해가 석 자나 떴는데도 늦잠을 자니 오히려 꿈이려니
鞭繩空頓草堂間(편승공돈초당간) = 소용없는 고삐와 채찍은 초당간에 던져두노라
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온다. 소가 길들여졌음을 안 목동은 소의 등에 올라 앉아 집으로 온다.
騎牛迤廬欲還家 (기우이려욕환가) = 소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려하는데
羌笛聲聲送晩霞 (강적성성송만하) = 강적의 피리소리 저녁노을에 퍼진다.
一拍一歌無限意 (일박일가무한의) = 한박자 한노래에 무한한 뜻 담겼으니
知音何必鼔唇牙 (지음하필고진아) = 노래의 뜻 안다고 말할 필요 있겠는가!
구멍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이제 내가 내 마음을 타고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 간다는 것이라네
5.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이다.
목동은 소를 길들이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는다. 그러자 마침내 소는 주인의 뜻을 따르게 된다.
소의 코뚜레를 잡고 길들여 소가 많이 순해졌다. 심신은 수련에서 한치를 떠나지 않는다.
鞭索時時 不離身(편색시시 불리신) = 채찍과 밧줄을 잠시도 늦출 수 없음은
恐伊縱步 入埃塵(공이종보 입애진) = 남의 밭에 들어갈까 염려한 까닭이다.
相將牧得 純和也(상장목득 순화야) = 길들여진 소가 상통하여 순화되니
鞭鎖無拘 自逐人(편쇄무구 자축인) = 채찍을 들지 않아도 절로 주인 따르네
4. 득우(得牛) = 소를 얻다.
목동은 소르 ㄹ붙잡는다. 그러나 소는 목동을 따라오려 하지 않는다. 도망치려고도 하고, 난폭하게 덤벼들기도 한다.
소를 붙들어 얻었다. 거친 번뇌 습기를 떨치기 위해 가행(가행) 정진을 시작한다.
渴盡精神 獲得渠(갈진정신 획득거) = 정신을 통일하여 소를 붙들었으나
沈强力壯 卒難除(심강력장 졸난제) = 제멋대로인 야성은 금방 없애기 어렵네.
時有纔到 高原上(시유재도 고원상) = 어떤 때는 높은 언덕으로 훌쩍 뛰어갔다가
又入煙雲 深處居(우입연운 심처거) = 또 다시 안개속으로 깊이 숨어 버리네.
3. 견우(見牛) = 소를 보다
소 발자국을 발견한 목동은 소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소를 찾는다. 그는 얼마 후 마침내 자기의 잃은 소를 보게 된다.
그 때의 희열.
멀리서 소를 언뜻 본다. 알음알이로 깨닫는 해오(解悟)의 단게이다. 어떤 사람은 오해해서 진짜 깨달은 줄 알고 기고만장한다.
黃鶯枝上 一聲聲(황앵지상 일성성) = 나무에 앉은 꾀꼬리는 꾀꼴꾀꼴 노래하고
日暖風和 岸柳靑(일난풍화 안류청) = 강변의 푸른 버들은 봄바람에 춤추네
只此更無 回避處(지차갱무 회피처) = 지금 이 자리에서 달리 회피할 곳이 없는데
森森頭角 畵難成(삼삼두각 화난성) = 삼삼한 소의 머리는 무슨 수로 그릴까.
2. 견적(見跡) = 소의 발자취를 발견하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목동은 소가 살아있음을 알고 소를 찾을 수 있다는 기쁨에 젖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의 발자국은 결코 소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소 발자국을 보고 소를 찾은 양, 도중에 안도해 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목적을 향해 가다가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쉽게 안주하듯이 말이지요.
1. 심우(尋牛) = 자기의 본심인 소를 찾아 나서다.
태만한 목동은 소가 도망간 줄도 모르고 놀이에 열중해서 소를 챙길 지혜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문득 놀이에서 깨어났을 때
목동은 자신의 소가 도망 갔음을 안다. 이것은 바로 구도자에게 있어서 발심(發心)이다.
목동은 소를 찾아 길을 나선다.
소를 왜 잃어버렸는가 하는 원인에 대한 규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먼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찾아나서는 것이 급선무이지요.
마치 화재가 났을 때, 방화범은 누구이며 피해액은 얼마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우선 불을 꺼야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우도(十牛圖)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 한 것으로, 심우도(심우도) 또는 목우도(목우도)라고도 한다.
대개는 소와 소치는 동자가 등장하며 때로는 소와 스님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소는 인간의 본성에, 목동은 수행자에 비유된다.
심우도를 쓴 곽암사원(廓庵師遠 志遠[지원] 확암으로도 발음)스님은 서장을 쓴 대혜종고(대해종고, 1089년 ~ 1163년 75세)
스님과 연배가 비숫한 동시대인이며 그 외에 뚜렷이 알려진 바가 없다.
청량사 꽃살문
잘 다듬어진 장대석의 기단 위에 연화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올렸으며, 전면에는 4분합의 꽃살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2분합의 꽃살문을 달았습니다.
청량사 꽃살문
청량사 꽃살문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無量壽殿)은 1991년 김동숙(金東淑) 비구니 스님의 원력으로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무량수전(無量壽殿)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앙으로 좌우에 관음보살좌상, 대세지보살좌상 등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탱화는 아미타후불탱화 비롯해 신중탱화와 감로탱화가 있습니다.
잘 다듬어진 장대석의 기단 위에 연화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올렸으며, 전면에는 4분합의 꽃살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2분합의 꽃살문을 달았습니다.
무량수전(無量壽殿)앞 계단밑에 있는 小 연꽃
무량수전(無量壽殿)의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三層石塔)
설선당(說禪堂)
설선당은 현재 대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해 석가모니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설선당에서 바라보니 돌계단 위로 주불전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이 보입니다.
※▶무량수전의 우측 언덕에는 비문이 새겨진 돌비석이 서있습니다. "무량수전창건불사회향발원문"이라고 새겨져 있네요.<돌비석>
◈찾아가는 길 = 지하철 버스
1호선 청량이 역 하차 1번출구로 나옴 = 롯데백화점 쪽으로 나와 우측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다보면 = 떡전 사거리라는 이정표가 나옴=
고대라는 이정표도 함께 있음 고대쪽으로 길을 건넘<좌회전 순복음 강북교회> 조금 가다보면 한신아파트 건물이 보이고 또한 육교도 보인다.
여기서 육교로 올라가 우회전해서 조금만 가다보면 바로 청량사가 나타남
*버스는 청량리 역에서 05번버스가 있는데 정확하지가 않아 걸어갔음 걸어서 10분정도 소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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