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신라 금관이야기 = 경주 노동동의 신라 금령총 금관(新羅 金鈴塚 金冠)

백련암 2015. 5. 8. 11:55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알려진 고대사회의 금관은 합해서 10점밖에 안되며, 그 중 신라금관 6점과 가야 금관 1점을, 그것도 가장 완벽한 것을

우리가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올 것으로 예견한다면, 우리나라는 글자 그대로 "금관의 종주국"이라 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학계는 금관과 전혀 상관없는 19세기 시베리아 샤먼의 철제 巫冠(무관)에서 금관이 기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일 신라 금관이 시베리아 무관에서 기원했다면,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가 번쩍거리는 5세기의 금제 왕관이든지,  신라 금관이 19세기 이후의

소박한 철제 무관이든지 둘 가운데 하나는 참이어야 하는데도, 어느 것도 참일 수 없는것이 분명한데 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거듭하고 있고,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답니다.

 

최근에는 금관이 왕관이 아니라 조잡하게 만들어진 부장품으로서 주검의 얼굴을 가리는 데드마스크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금관이 머리에 쓰는 관모인지, 얼굴을 가리는 가면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결국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시베리아 무관을 본받은 것으로 해석하여 민족적 창조력을 부정할 뿐 아니라, 금관을 왕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한갖 조잡한 부장품으로 격하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더 기막힌 것은 이러한 두 주장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들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라 금관

1921년 9월 어느 날, 경주 노동리 봉황대 주변에서 자그마한 주막을 운영하던 박씨는 장사가 무척 잘되자 주박을 늘리기로 작정하고

뒤뜰의 나지막한 언덕을 파기 시작하자 고색창연한 황금빛 금관이 나왔는데, 이것이 1500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금관총 금관으로,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를 몰라서 그저 金冠塚(금관총)이라 하였으며,

 

3년 뒤 역시 봉황대 아래의 민가 사이에 있는 무덤을 조사하다가 두 번째 금관이 발견되었는데 금관에 매달려있는 특이한 한 쌍의 금방울을

보고 무덤 이름을 金鈴塚(금령총)이라 지었으며,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어느 날, 역시 봉황대 서편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무덤에서 세 번째 금관이 나왔으며, 당시 스웨덴 왕세자의 신분으로

아시아 지역을 탐방하고 있던 고고학자 아돌프 6세가 마침 발굴 현장에 함께하였으며, 그의 이 뜻 깊은 발굴동참을 기념하기 위해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瑞典(서전)의 첫 글자와 鳳凰(봉황)의 첫 글자를 따서 무덤을 瑞鳳塚(서봉총) 이라 이름 하였답니다.

 

그 후 1973년에 天馬塚(천마총) 및 1년 뒤 皇南大塚(황남대총) 북분에서도 금관이 출토되었으며,  그밖에 도굴되었다가

압수된 경주시 교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금관도 한 점 더 있습니다. 모두가 왕릉 급 무덤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되고 있으며,

학계의 추산으로는 경주 일원에 150여기의 큰 무덤이 있는데, 그 중 이미 발굴된 것은 약 30기에 불과 하므로,

앞으로 또 어떤 무덤에서 얼마만큼의 금관이 더 쏟아져 나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답니다.

 

 

◈경주 노동동의 新羅 金鈴塚 金冠(신라 금령총 금관)◈

금관초이 발견 된 후 3년 뒤 역시 봉황대 아래의 민가 사이에 있는 무덤을 조사하다가 두 번째 금관이 발견되었는데 금관에 매달려있는

특이한 한 쌍의 금방울을 보고 무덤 이름을 金鈴塚(금령총)이라 하였다.

 

 

金鈴塚 金冠(완성된 금관, 금령총) = 보물 제 338호    시대 = 신라시대

 

 27cm, 밑지름 15cm, 보물 제 33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관의 垂下飾(수하식)에 금제 방울이 달려있어서 금령총이라고 명명하였다.

대륜(臺輪)의 전면에 출행자(出字形) 3조와 좌우에 녹각형(鹿角形) 각 1조씩의 입식(立飾)을 세우는 신라계 금관의 기본형을 따르고 있다.

입식의 끝은 모두 보주형(寶珠形)이고 출자는 4단이며 표면에는 영락이 있을 뿐 곱은 옥(曲玉[곱옥])달지 않은 간단한 양식이다.

입식(立飾)과 대륜(臺輪)의 가장자리에는 두 줄의 점렬문(點列文)이 있으며 대륜에도 곱은옥의 장식은 없다.  

수하식(垂下飾)은 여러개의 가는 고리를 3단으로 연결하고 한 쪽에는 옥이 상감된 금방울을 달았다.

또 긴 수식(드리개)이 있는데 금사슬에 금실로 영락을 촘촘히 꿰매 달았고, 그 옆에 거의 같은 형식의 짧은 수식이 있어 모두 3조로 구성되었다.

 

 

금령총 출토 방울

금관 드리개의 윗부분에 달려있는 방울

금령총에서는 금관과 금허리띠를 비롯한 말탄 사람토기와 배모양 토기 등 다양한 상형토기가 출토되었다. 금관과 금허리띠의 크기가

작은 편이기때문에 어린 왕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특히 금방울이 출토되어 "금령총"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금관의 좌우의 나뭇가지 모양부분

금령총금관 (金鈴塚金冠) : 보물  제338호     시대 = 신라시대

금령총금관(金鈴塚金冠)은 지금까지 발견된 금관 중에서는 가장 작고 간단한 형식으로, 높이 27㎝, 지름 15㎝의 금관이다.

중앙 정면과 그 좌우에 山자형 장식을 4단으로 연결하고 가지 끝은 꽃봉오리형으로 마무리 했다.

山자형 장식의 좌우에는 사슴뿔 장식 가지 2개를 붙였다. 관 테와 5개의 가지에는 모두 같은 장식이 되어 있다.

표면 아래·위에 두 줄로 된 점무늬를 찍고, 그 사이에 나뭇잎 모양의 원판을 달아 장식했다.

관 테의 좌우에는 귀고리 형태의 드리개(장식)를 달았다.

이 금관은 다른 금관에서 볼 수 있는 옥 장식이 없고, 금으로만 이루어진 점이 특징이다.

 

 

드리개(수식) 없이 왕관의 모습만 = 金鈴塚 金冠(완성된 금관, 금령총) = 보물 제 338호

나뭇가지 모양을 한 금태

 

 

 

金鈴塚 金冠(완성된 금관, 금령총) = 보물 제 338호

金冠(금관) : 시대 =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으로 관테 위에 나뭇가지와 사슴 뿔 모양의 세움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라의 금관은 황남대총 북분 단계에 완성되며 국가의례 또는 장송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과

사슴뿔 모양 장식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성이 있다.

 

 

   

금령총 방울과 드리개

금관 드리개의 윗부분에 달려있는 방울

 

 

金製銙帶(금제과대) 허리띠  : 보물 제338호   시대 =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금령총(金鈴塚)에서 출토된 허리띠로 띠꾸미개는 모두 23매이다.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드리개는 여러개의 금판을 이어서 만든 것이 7줄,

연필 모양 장식 2줄, 곱은옥 4줄 등 모두 13줄이다.

다양한 형태의 드리개는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했던 여러 가지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 대구 과 : 허리띠(혁대)의 두 끝을 마주 걸어 잠그는 자물단추를 말함

 

 

金製銙帶(금제과대) 허리띠  

 

 

金製銙帶(금제과대) 허리띠  

금판을 이어서 만든 것이 6줄, 연필 모양 장식 2줄, 곱은옥 4줄 등 모두 12줄만 정밀사진이다.

 

♣♣♣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들 중 그 작품성이 상당히 뛰어난 국보 제 91호로 지정된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탄 사람 토기(기마인형)"가 있다. 이 토기는 간략하면서 중요한 특징들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신라의 말 갖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면서 작품으로서 주인공의 심정을 너무 잘 묘사하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 외에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여러 상형토기들을 볼 수 있는데 냇를 밝힐 등잔, 무덤의 주인을 저승으로 인도하는그리스 신화의 장면같은  

배 모양의 토기 등에서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을 살펴볼 수 있다.

 

 

말탄사람 토기(騎馬人物形土器[기마인물형토기]) : 국보 제 91호   시대 = 삼국시대(신라) 6세기   출토 = 경북 경주 금령총

<주인의 모습>

 

 

말탄사람 토기(騎馬人物形土器[기마인물형토기]) : 국보 제 91호   시대 = 삼국시대(신라) 6세기   출토 = 경북 경주 금령총

<주인의 모습>

 

 

   

말탄사람 토기(騎馬人物形土器[기마인물형토기]) : 국보 제 91호   시대 = 삼국시대(신라) 6세기   출토 = 경북 경주 금령총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1쌍의 토기 중 주인의 모습이다.

 

말등에 둥근깔대기와 가슴에는 액체를 따를 수 있는 긴 대롱이 있고 속이 비어 있어 주전자와 같다.

중앙박물관에 있는 유물 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저승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무덤 주인의 모습과 심경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무덤 주인의 담담하고 무표정하면서도 비장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표정한 무덤속 주인의 표정

 

 

말탄사람 토기(騎馬人物形土器[기마인물형토기]) : 국보 제 91호   시대 = 삼국시대(신라) 6세기   출토 = 경북 경주 금령총

<하인의 모습인 토기>

 

   

말탄사람 토기(騎馬人物形土器[기마인물형토기]) : 국보 제 91호   시대 = 삼국시대(신라) 6세기   출토 = 경북 경주 금령총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방울을 흔들며 주인의 영혼을 인도하는 하인의 모습이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어깨에 짐을 메었으며 오늘손에는 방울을 들고 있다. 금령총에서 출토될 당시 앞쪽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주인을 표현한 토기와는 달리 말갖춤을 간단하게 갖추고 있다. 약간은 가벼워 보이면서도 주인과 함께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는 하인의

비장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배모양 토기(舟形土器[주형토기]) : 삼국시대 중 신라 6세기   출토지 = 경북 경주 금령총

굽다리 위에 올려진 배로 앞뒤에 달개가 달려 있는 다른 배에 비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배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듯 편안한 모습이다.

 

배모양 토기, 6세기 경주 금령총, 사공이 앉아서 노를 젓고 있다.  남자는 귀가 크고 혀를 내밀고 있으며 성기가 크게 드러나 있다.

배는 영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기는 수단으로 여겼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으로 나오는 5개의 강에 있는 뱃사공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며,

중앙아시아 지역광의 교류 등을 통해 비숫한 내세관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