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김제 구렁이와 흥복사의 전해오는 설화

백련암 2018. 10. 26. 19:00


     

흥복사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미륵불                                                                                     석조미륵입상




김제  구렁이와 흥복사

「구렁이와 흥복사」의 주요 모티프는 ‘흥복의 가렴주구’, ‘흥복 아내의 선행’, ‘흥복의 개과천선’ 등이다.

김제현감이었던 흥복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는 관리였다.

그런데 그 아내의 선행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자 개과천선하여 흥복사를 중건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불사연기전설이다.

「구렁이와 흥복사」는 당시 관리들이 일삼던 무자비한 횡포를 풍자한 설화라고도 할 수 있다.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익산방향으로 가다보면 길가에 흥복사라는 절이 있다. 절의 정확한 주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263번지다.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승가산이라고 하는데 원래의 사명(寺名)이 산 이름으로 됐다. 산은 높지 않다. 고작 해발 50m이므로 숲이라 해야 적절하다.

절은 들판 가운데의 솔나무 숲에 기대고 있다. 여기에다 4차선 도로가 절 옆으로 바짝 붙어 지나가고 있는데,

절을 표시하는 이정표라든가 국도변에 상가광고판처럼 나붙은 절 간판 때문에 절이 다소 허접스럽게 보이지만 절의 유래를 보면 고찰 중의 고찰이다.

 절은 백제시대에 지어졌다고 전해 온다.


고구려 승려 보덕화상이 650년에 승가사라는 이름으로 절을 지었다.

보덕화상은 고구려 보장왕때 승려로 왕에게 수차례 간하여 불교부흥을 주장했으나 끝내 듣지 않으므로

부득이 백제땅으로 내려와 승가사를 지었다.

보덕화상은 이 곳에서 주로 열반경을 연구하면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해냈다고 한다.


절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만다.

그 후 1625년 흥복(興福)이라는 욕심쟁이 관리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이 절을 중창했기에 흥복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흥복사라는 절 이름이 흥복이라는 속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것도 재미있거니와

이와같은 절이름을 얻기까지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그 동안에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흥복이에게 기이한 일이 생겼다.

그가 들판을 지나 동네로 가는 다리에 이르렀을 때 큰 먹구렁이를 발견했다.

구렁이는 머리를 치켜들고 금방이라도 덮칠듯이 혀를 날름거리며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다리 밑으로 사라졌다.
너무나도 놀란 흥복이는 허겁지겁 다리를 건너 동네 주막으로 갔다.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는 졸음에 겨워 잠이 들었다.

꿈속이었다. “네 이놈 흥복아.” 노인이 나타나 소리를 쳤다.

“나는 네가 들판 다리가에서 보았던 구렁이다. 너의 악업(惡業)으로 너와 내 모습을 서로 바꿀 때가 되었는데

너의 부인 때문에 업을 벗어나지 못해 원통하다.”


부인이 무슨 일을 한 것일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흥복이가 집으로 돌아오자 부인이 달려와 흥복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첩을 죽여주세요. 굶주리고 있는 주민들이 너무 가여워 곡간의 곡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희안한 일이다. “꿈속의 노인 말이 맞구나.” 흥복은 부인에게 말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참 잘하셨소. 부인. 부인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흉측한 구렁이가 되었을 뻔 했소.”
흥복은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주면서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부처님이 도우셨습니다.”
흥복은 전 재산을 쏟아부어 불타 없어진 승가사를 다시 지었다.

후세사람들은 이 절을 흥복이가 지었다고 해서 흥복사라 불렀던 것이다.  


흥복사 중창이야기는 1980년에 세운 ‘승가산 흥복사 사적비’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현재 이 절 안에는 대웅전, 관음전, 미륵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사천왕문과 공양집(奈舍)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관음전은 지은 지가 비교적 오래 되었으나 나머지는 모두 1976년 이후에 새로 지었다.

관음전 오른쪽에는 높이 265m의 관음보살 상이 세워져 있는데,

무릎 아래가 없고 얼굴 부분이 너무 커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


절 안에는 설천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물이 나지 않는지 우물 두껑이 덮여져 자물통으로 잠겨 있다.

설천은 약수로 유명하다. 이 물을 마시면 포악하거나 거친사람도 온순한 성격이 된다고 한다.
절 안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신단목(神壇木)은 수령 500년이나 됐다.



♣♣♣ 또 다른 전설이야기

흥복사 사천왕문


흥복사 사천왕



흥복사 목조삼존불좌상(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김제군 백산면에 가면 올망졸망한 야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산마다 소나무가 빼빽히 들어서 사철 이름 모를 산새들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그런 야산 하나에 고구려의 고승(高僧) 진덕대사(晉德大師)가  창건한 승가사(僧伽寺)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유재란(丁酉再亂)때 불타 없어지고,  1625년(조선 인조(仁祖) 3년)에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김제에 흥복이라는 욕심 사나운 원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흥복이는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남이 가진 좋은 물건은 기어코 제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금은 두 배로 거두어들이고 날마다 기생들과 어울려 술타령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니 나랏일은 뒷전이었습니다.


요즘 귀신들은 뭘 먹고 살지? 백성의 피로 사또를 안 잡아가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벼락은 두었다 뭐하는 거야, 그런 놈에게 떨어뜨리지 않고

백성들은 모이기만 하면 흥복이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흥복이는 백성들의 입방아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원망의 소리가 커질 수록 백성을 못살게 주어짰습니다.


사또, 백성들의 원성이 큽니다. 이제 제발 나랏일을 돌보십시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는 거요, 네게도 생각이 있으니 내가 하는 일에 상관하지 마시오.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죄를 지으면 벌을 받기 마련입니다. 제발 마음을 바로 쓰십시오.

흥복이의 아내는 날마다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흥복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내는 절을 찾아가  부처님께 남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헛수고였습니다. 흥복이의 나쁜 마음은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심한 가믐으로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배고픈 백성들은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욕심많은 흥복이는 곡간에 가득 쌓여 있는 쌀을 한 톨도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줍시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알게 뭐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요.

흥복이의 아내는 남편이 멀리 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좀처럼 자리를 비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다리던 때가 왔습니다. 남편이 나랏일로 이웃 고을에 간 것입니다.


어서 가서사람들을 불러 오너라 서둘러야 한다. 흥복이의 아내는 머슴들을 시켜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뼈만 앙상한 백성들이 동헌 앞마당에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곡간문을 열어라, 쌀을 나누어 줄 것이다.  마님, 사또가 아시는 날이면 살아남지 할 것이옵니다.

뒷책임은 내가 질 것이니 어서 시키는대로 하거라.  곡간문이 열렸습니다,

흥복이의 아내는 곡간에 가득 쌓아 있던 쌀가마를 남김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님은 선녀시옵니다. 하늘같은 은혜 평생 잊지 않겠사옵니다.

사또가 오기 전에 어서 돌아들 가시오, 마님 , 옥체를 보중하십시오, 

동헌 앞마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뿔뿔이 흩어져 갔습니다.

시골 장날 같았던 동헌은 다시 고요 속에 묻혔습니다.


이때 사또 흥복이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들판을 건너 갯다리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건너는 다리가 아니었지만 몸이 으스스하고 추운기 마저 들었습니다.   - 내가 고뿔이 들었나, 

이런 생각을 하며 아무 생각없이 다리 밑을 바라본 흥복이는 까무러치듯 놀랐습니다.

다리 밑에 전봇대만큼 커다란 먹구렁이가 머리를 치켜들고 금방이라도 흥복이를 덮칠 것처럼 혀를 날름 거리고 있썼습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흥복이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지만 마음 뿐 도무지 말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자석에라도 달라 붙은 듯 두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 흥복이를 노려보던 먹구렁이가 또아리를 풀고 풀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그제서야 발이 움직였습니다.

  흥복이는 다리야 날살려라 하고 냅다 뛰었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이랑 긴 논밭을 지나 주막 앞에 다다랐습니다.

옷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습니다. 휴우, 살았다.

여기서 좀 쉬어가야지 흥복이는 땀에 젖은 옷을 벗으며 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주모가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사또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을 찾으셨습니까?   지나가다 들렸다.  

목이 타는 구나 술상이나 봐 오너라.   예,   사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모가 술상을 차리러 간 사이에 흥복이는 벽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흥복이를 감쌌습니다.

눈꺼풀이 납덩이처럼 무거웠습니다. 

네 이놈, 흥복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느냐?  

머리에 구렁이 탈을 쓰고 검정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흥복이는 질겁을 했습니다.

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조금 전 네놈이 보았던 구렁이 이니라,

구- 구렁이라고요?  그렇다. 이제 이 탈을 내대신 네놈이 써야겠다. 네가 지은 죄값이니라.

할아버지가 머리에 쓴 구렁이 탈을 벗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렁이 탈이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억울하다.

네 놈의 부인이 이 탈을 벗지 못하게 만들었구나!  죄 많은 네놈과 모습을 바꿀 때되었는데, 억울하다 억울하다……

안됩니다, 전 구렁이 탈을 쓸 수 없습니다.  흥복이는 그 할아버지가 금방이라도 구렁이 탈을 씌울 것 같아 몸부림을 쳤습니다.

사또,  정신차리십시오. 사또!   엉?  후우,

꿈이었구나!   좋지 않은 꿈입니까?   몸부림을 치시던데. 


입맛이 씁쓸하여 술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흥복이는 곧바로 동헌으로 가 아내를 불렀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이렇게 생각한 흥복이의 아내는 하얀 소복으로 갈아입고 흥복이 앞으로 가 무릎을 끓었습니다.

손에는 백팔염주가 들여있었습니다.


어인 일로 소복을 입고 무릎을 끓는 거요? 

소첩을 죽여 주십시오. 굶주리는 백성들이 가여워 사또의 허락도  아니 아니 받고 곡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잘 하셨소, 일어나 앉으시오.  예?   그말이 진정이십니까?

흥복이의 아내는 꿈인지 생시인진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흥복이가 달라져도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렇소 그간 내가 너무 나빳소, 나를 용서하시오.

부인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는 흉칙한 구렁이가 되었을거여,

구렁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흥복이는 자기가 겪은 일을 낱낱이 아내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흥복이의 아내는 염주를 들고 합장을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도우셨습니다. 사또께서는 부처님을 섬기시십시오.  그러리다.

이제부터라도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부처님의 뜻에 따라 베풀며 살겠소.

그 일이 있은 후 흥복이는 열성으로 불도(佛道)를 닦는 한편 전 재산을 털어 불타버린 승가사를 다시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승가사를 흥복이가 지은 절이라 흥복사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