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인제 백담사 창건이야기

백련암 2009. 11. 13. 00:08

인제 백담사 창건이야기 

백담사 극락전

 

극락전 아미타불(중앙) 좌측(관세음보살) 우측(대세지보살)

 

 

극락전 법당 = 대청봉에서 100번째 연못자리에 세워졌다는 백담사

 

“대청봉에서 100번째 연못에 절을 세워라”

    

사찰화재 빈번하자 주지스님 꿈으로 산신령 계시

 

현재 자리로 옮기자 300여년간 화마피해 안 입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 690번지에 위치한 내설악의 명찰인 백담사(百潭寺)는 일제시대때 독립운동을 주도한 만해스님의 수행처로 유명하다.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는 백담사는 예로부터 사람이 좀처럼 찾기 힘든 구중심처의 수행 도량이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운수납자가 천리를 멀다하고 이곳을 찾아 깊고 맑은 계곡물에 속진의 번뇌를 털어내고  깨달음을 얻는 선불장(選佛場)으로 이름이 높았다.

                                                                              

만해스님이 저술한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해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했다고 한다.

이후 1772년(영조51년)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용대리로 이전해 백담사로 개칭됐다.

‘백 번째 연못자리에 세웠다’고 해서 불린 백담사의 창건설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백담사는 원래 강원도 낭천(狼川, 지금의 화천)땅에 북금사(北琴寺)라는 이름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포수들이 짐승을 잡으러 자주 들리는 등 불도에 어긋난 일을 저질렀다. 이 모습을 보자 주지스님의 고민은 늘어만 갔다.

“부처님 도량에 왜 자꾸 사냥꾼들이 몰려와 살생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렇다면 정녕 이 자리는 불도를 닦는 자리로 마땅하지 않다는

말이 아닌가? 걱정이로고….”

북금사 주지스님은 날마다 부처님 전에 기도할 때마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살생을 저지르지 않게 해 달라’는 발원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지스님은 마침내 큰 결단을 내렸다.

“도량을 옮겨야겠어. 이 자리는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할 자리가 되자 못해. 매일 저 피비린내 나는 살생의 현장을 목도하기에는 인내심의 한계가 왔어.” 그리하여 북금사 주지스님은 짐을 꾸려 인제군 한계리로 향했다.

“이왕 옮길 거면 모든 물건을 하루밤에 다 옮겨야지.” 인근의 소 달구지를 동원해 짐을 싼 북금사 주지스님은 춘천시를 지나고 양구를 지나 밤새도록 걸어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도착했다.

“그래, 이곳이야. 저 높은 산들이며 계곡을 보니 정진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는군.” 짐을 풀던 스님은 깜짝 놀랐다.

 “아니, 청동화로는 어디 갔을까? 절구는 어디갔지?” 절에서 부처님께 향을 꽂던 화로가 없어지고, 곡식을 찧어 음식을 만들던 절구통이 없어진 것이다.

결국 이 물건을 떨어뜨린 곳인 춘천시 한 마을은 ‘절구골’이란 지명이 생겼고, 청동화로가 떨어진 곳은 ‘청동골’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한계리에 부처님 사리를 모실 탑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살생의 화를 면하니, 화마(火魔)가 절을 매번 삼켜버리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무슨 방도는 정영 없는 것인가?”

그랬다. 어렵사리 옮겨온 한계사에서는 매번 화재가 발생하더니 몇 년사이에 다섯차례가 되었다.

“정말 큰일이로구나. 무슨 방도를 찾을 수가 없단 말인가? 내 오늘부터 산신기도에 들어 그 해법을 꼭 찾고 말겠다.”

주지스님이 산신기도에 들어가 100일째 되던 날 현몽을 통해 응답이 왔다.

긴 백발에 수염이 성성한 산신령이 도포를 입은 체 말을 타고 주지스님 앞에 스르륵 나타났다. “스님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왔소.”

“네? 저의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구요.

당신은 누구신데 그 어려운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오?”  “나는 설악산의 산신령이오.

스님이 자리를 정한 절터는 화기(火氣)가 강해 불을 피할 수 없는 자리오. 그러니 매번 화재가 발생해 큰 피해를 입는 것이오.

그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니 절터를 옮겨야 하오.”

그리하여 주지스님은 한계사를 폐하고, 인제군 용대리 암자동으로 절을 옮겨 영추사(靈騶寺)라고 불렀다.

꿈에서 말을 탄 산신령의 이름을 따서 신령 령(靈)자에 말 먹일 추(騶)자를 써서 지은 사찰명이었다.

 

“이제는 화마에서 벗어나겠지.”

이렇게 안심을 한 주지스님의 바람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절을 옮긴 지 얼마되지 않아서 다시 큰 화재가 발생해 사찰을 전부 태워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산신령이 일러준대로 절을 옮겼는데도 자꾸 불이 나니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낙담에 빠져 있던 어느날 스님의 꿈에 다시 산신령이 나타났다. “이 보시오, 주지스님!”

시름에 지친 스님은 꿈에서조차 대답할 기력도 없어 힘없이 말했다. “이제는 너무 지쳤버렸어요.

절터를 옮겼지만 계속 일어나는 화재에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으니 소납은 이제 부처님 곁을 떠나야 할 인연인가 보오.”

그러자 산신령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당신은 훌륭한 스님이 될 수 있소.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당신의 수행력을 가늠해 보기 위한 불.보살들의 시험과정이었소. 이제 내 말을 잘 듣고 행하면 다시는

화마로부터 피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오.”

“산신령님, 그렇다면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요?”

“내일 동이 트거든 설악산 대청봉으로 올라가 보시오. 그곳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100번째 되는 연못자리에 터를 잡고 사찰을

세우시오. 그리고 절 이름을 ‘백담사’라고 하시오.”

산신령이 사라지자 꿈에서 화들짝 깨어난 주지스님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날이 새기가 무섭게 설악산의 최고봉 대청봉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내설악 계곡에는 크고 작은 연못(潭)이 아련히 줄을 잇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연못을 계속 세어가던 스님은 용대리에 발길을 멈췄다. “저기다!” 100번째 연못자리에 눈길이 멈춰졌다.

인부를 동원해 연못자리를 메운 뒤 절을 세우고 백담사(百潭寺)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그러자 백담사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백담사사적기>로 추정해 볼 때 이때가 조선 세조2년(1457)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때부터 영조 48년(1772)까지 300여년 동안 화재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조51년(1775)에 화재를 만나고 다시 재건해 심원사(尋源寺)로 불리다가 정조 때 백담사로 다시 개명한다. 이후 일제시대와 6.25전쟁 때 불탄 뒤 재건되기도 했다.

현재 백담사에는 당대의 걸출한 시인지자 선승인 오현스님이 주석하며 만해스님의 사상을 선양하고 있으며 무금선원과 기본선원이 자리해 한국불교의 정맥을 이어가고 있다.

 

 인제=여태동 기자  

 

 

 

 찾아가는 길 /

1) 승용차를 이용하면 서울-양평-인제-용대리 길을 이용하면 된다. 서울에서 약 3시간 30분 소요된다.

2)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강릉-양양-속초를 거쳐 미시령 터널을 이용해 인제로 들어와 용대리로

    들어온다. 용대리 백담사 입구에서 사찰까지는 약 7Km이며 마을버스나 도보로 입장이 가능하다.

    (033)462-6969

 

 참고 및 도움 /

   백담사 안내 팜플릿, 백담사 홈페이지 및 사적기, 백담사 템플스테이팀장 진묵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