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안면도 국사봉 유래

백련암 2009. 11. 14. 19:54

안면도 국사봉 유래

도력 높은 노스님 마을 재난을 구해내다

가뭄 든 해 산신당 당주 꿈속 나타나서   ‘산신에게 정성껏 제사’ 당부하고 사라져

 

마을사람들 노승 뜻 따라 ‘국사봉’ 명명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백화산에서 뻗어 내린 한 줄기 산맥이 해발 205m의 국사봉을 형성하고 있다. 몽산포를 지나

안면도로 이르는 길에서 만난 국사봉은 야트막한 산봉우리지만 예로부터 수목이 울창해 산짐승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곳 봉우리 서쪽 기슭에는 도력이 높은 당주가 ‘산신당’을 마련해 오랫동안 기도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도 국사봉 일대는 굵직한 소나무가 빽빽해 해풍을 받으며 등산을 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있다.

신령스런 기운이 서려 있는 국사봉의 유래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옛날 안면읍에서 서남쪽으로 20여리쯤에 위치한 국사봉 아래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산지기가 있었다.

당시 국사봉이 솟아 있는 백화산 일대는 수목이 울창해 노루와 사슴이 살았으며 약초가 가득한 아름다운 산이었다.

 

산지기는 국사봉 중턱에 돌로 제단을 쌓아 놓은 뒤 매일 아침마다 산 아래 황포(黃浦)에 가서 맑은 물로 목욕재계를 하고 옹달샘

에서 솟아나오는 맑은 물을 받아 제단에 올리고 기도를 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언제나 이 나라가 외세의 침략에 처하지 않게 해 주시어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옵

소서. 아울러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질병에 걸리지 않고 언제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산지기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이 마을 사람들은 전염병이 돌 때에도 이곳 제단에 와서 기도를 하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농사와 어업을 병행한 마을 주민들은 가뭄이 들 때 에도 이곳 제단에 와서 기도를 하며 기우제를 지내면 단비가 내려 풍년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세월이 지나면서 산지기가 죽자 돌로 만든 제단은 허물어졌다.

황폐해진 제단을 마을 사람들은 두고만 볼 수 없어 십시일반 화주를 해서 산신당을 짓고 사기(沙器)로 만든 말을 모셨다.

당주를 새로 모셔와 이곳에 거주하며 매년 봄과 가을에 성대한 제사를 지내며 나라의 안녕과 마을의 복을 기원했다.

이렇게 다시 태평성대가 찾아와 온 나라 백성들은 무탈한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국사봉 산신당도 평안했다.

이곳에는 당주가 기도를 하고 있으면 숲 속에서 사슴이 나타나 당주에게 다가와 먹을 것을 얻어가기도 하였다. 사슴은 당주를

무서워하지 않고 친구쯤으로 여기며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다.

사람과 짐승이 친구가 되자 하루라도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면 궁금해지는 사이가 됐다.

사슴이 나타나지 않으면 당주는 마음이 뒤숭숭했다. “이 친구가 왜 오질 않지? 혹시 사나운 짐승에게 해를 당하지는 않았을런지….”

 

그러다가 사슴이 나타나면 금세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퍼지면서 반갑게 안부를 전했다.

“그동안 어딜 갔었니? 네가 보이지 않아 얼마나 걱정했다고?”  당주와 사슴의 막역한 사이는 한동안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일어났다. 당주가 산신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급박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사슴이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당주가 있는 산신당 안으로 후다닥 숨어 들어왔다.

사슴이 부들부들 떨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너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야. 걱정하지 말거라 사슴아. 내가 보호해 주마.”  이렇게 말한 당주는 사슴을 산신당 깊은 고방(庫房)에 숨기고는 문밖을 살펴보았다.

 

밖에는 눈에 불을 켠 호랑이가 산신당 앞에서 두리번 거리며 사슴을 찾고 있었다.


당주는 때마침 피워 놓은 화롯불을 들고 나가 호령을 했다.

“이놈, 호랑아. 여기가 어디라도 무례하게 찾아와 먹을 것을 노리는 것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그리고는 화롯불을 호랑이에게 던졌다. “아이쿠!” 갑자기 습격을 당한 호랑이는 당황하며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당주는 사슴을 꺼내 호랑이가 물러갔다면서 안심시켰다. 그러자 사슴은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하지만 당주는 호랑이의 습격에

대비해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하고 방안에서 사슴을 보살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당주는 사슴과 잠을 자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다. 산신령이 나타나 자신을 꾸중하는 것이었다.

 

“어허, 이런 한심한 당주를 보았나.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호랑이를 쫓느라 다쳤는데도 보살피지도 않네.”

당주는 깜짝 놀라 “네? 제가 산신령님을 보살피지 않았다구요?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으니 소상히 말씀해 주세요.”

산신령이 다시 말했다.

“내가 며칠 전 너희들을 찾아 온 호랑이를 사기점골 뒷산으로 쫓아내다가 다리를 부러뜨렸으니 어서 가서 부러진 다리를 가져와

 고쳐 놓도록 하라.”


깜짝 놀란 당주는 휘장을 걷어내어 산신상에 모셔놓은 사기로 만들어진 말의 형상을 살펴보았다. “아니, 다리가 부러져 있네.

그렇다면 이 부러진 다리가 사기점골 뒷산 바위에 있다는 말인가?”

당주가 헐레벌떡 사기점골 뒷산 바위로 달려가 보니 과연 그곳에 부러진 말의 다리 한쪽이 있었다.

“그래, 산신령이 우리를 도와주었구나.”

당주는 산신당으로 다리를 가져와 원상태로 복원해 놓고 사슴을 찾았다.

“사슴아. 이제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어서 나와서 편안하게 쉬도록 하여라.”

당주는 고방문을 열어 사슴이 나오기를 권했으나 그 안 어디에도 사슴은 없었다. 깜짝 놀란 당주는 불을 켜보니 사슴뿔만 남아

있고 몸뚱이는 사라져 버렸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구나. 도대체 사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안고 당주는 몇 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을에는 심한 가뭄으로 인해 흉년이 들었다.

비 한방울도 오지 않아 논바닥이 갈라지고 인심도 흉흉해졌다.

 

봄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산으로 가서 칡과 풀뿌리를 뽑아 끓여먹으며 연명했다. 기우제를 지내도 도무지 하늘의 감응이 없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늘이 노하셨나?” 마을 사람들과 당주는 이제 서로 불신하기까지 했다.

 

서로 자기 잘못이 없다며 상대방의 불충으로 마을에 재앙이 오고 있다고 떠밀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당주의 꿈에 수염이 하얀 노스님이 나타났다.

“이보시게 당주. 일어나 보시게.” 당주가 깜짝 놀라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산신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입니

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노스님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닐세. 그동안 당주나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산신제를 소홀하게 지내서 이런 업보를 받은 것 뿐일세. 그러니 이제

라도 모두 힘을 모아 정성껏 산신제를 올리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일세.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네. 산신제를 올린 뒤 이 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러야 하네. 내 말 알겠는가?”

노스님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지자 당주는 잠에서 깨어났다.

당주는 현실같이 생생한 꿈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세하게 말했다.


“그래요. 그동안 우리가 서로에게 잘못을 떠밀면서 산신제를 소홀하게 지낸 것이 맞아요. 이제라도 모두 잘못을 뉘우치고

정성껏 산신기도를 올립시다.”

이렇게 해서 당주와 마을 사람들은 산신당에 제물을 올려놓고 정성껏 제사를 올리며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3일 밤낮으로 비자 내려 가뭄이 해결되고 풍년농사가 들었다.

그해 가을 마을사람들과 당주의 꿈에 다시 나타난 노스님은 “앞으로 이 마을은 복된 마을이 될 것이니라”고 예언을 해 주었다.

이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백화산 봉우리를 ‘도력 높은 스님이 상주하는 곳’이란 의미를 담아

‘국사봉(國師峰)’이라고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안=여태동 기자

 

찾아가는 길
1) 서울 방향에서 갈 때는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서산 나들목을 나와 태안을 지나 몽산포를 거쳐 안면도로 30여Km 들어가면

    된다.

2) 호남 방향에서는 홍성 나들목을 나와 안면도로 들어가면 된다.

참고 및 도움
안면읍 창기4리 김희식(83)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