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덕숭총림 수덕사▲대웅전(국보 제49호) -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 | ||
▲대웅전 왼편에 있는 관음바위. 관음보살이 현신해 수덕사 중창불사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바위 위쪽과 아래쪽에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위쪽에 관음전이 위치하고 있다.
바위 속 숨겨진 ‘수덕각시’ 전설에서... 중생을 찾아온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백제의 혜현(惠現)스님은 오로지 <법화경>을 외우는 것을 과업으로 삼고 쉼 없이 기도 정진했다. 스님은 삼론(三論)을 연구하여 오묘한 뜻을 깨치고 사람들에게 불경을 강론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법을 구하고자 혜현스님을 찾았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바로 이 혜현스님이 공부하고 법을 설했던 곳이 덕숭총림 수덕사다.
지난 2008년 가을 수덕사 대웅전 건립 700주년 법회에서 1000여 명의 스님들이 한목소리로 <법화경>을 독경한 것도 혜현스님을 기리고 스님의 뜻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법화경>은 ‘대승경전의 꽃’이라 불린다. 관음신앙 또한 <법화경> 안에 담겨 있다.
지난 4월28일 덕숭산은 짙은 안개에 묻혀 있었다. 봄비치고는 제법 빗방울이 굵었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듯이 대웅전 앞 경내에는 연등이 끝도 없이 달려 있었다.
1308년 지어진 수덕사 대웅전은 한국 최고(最古)의 대웅전이다. 고려시대 목조건축물로 조형미가 뛰어나 한국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점하는 성보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진다. 측면 가구의 짜임새 연등천정, 도리와 도리 사이의 우미량, 화반등이 목조건축의 멋을 한 껏 부렸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중 특이하게 백제적 곡선을 보이는 목조 건축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대웅전 왼편 백련당 뒤에는 거대한 바위가 사연을 안고 있다.
백제시대 창건된 수덕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퇴락했다.
▲범고각의 법고와 고대, 법고에는 주악비천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중창불사가 불가피하던 그 때, 한 젊은 여인이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자청했다. ‘수덕각시’라 불리는 여인은 뛰어난 미모까지 갖춰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여인을 사랑한 신라 부호의 아들 ‘정혜’는 불사가 원만 성취된 후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수덕각시’의 얘기를 듣고 가산을 보태 10년 불사를 3년 만에 끝냈다고 한다. 마침내 낙성식 날 ‘정혜거사’가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수덕각시’는 갈라진 바위 속으로 사라지고 버선 한 짝만 남겼다. ‘수덕각시’는 다름 아닌 불사를 돕기 위해 현신한 관음보살이었다.
이후 그 바위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각지에 퍼져, 찾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전한다.
※만공스님이 조성한 관음입상, 정혜사 바로 아래 위치해 있다.
수덕사는 근대 한국 불교의 중흥지로 꺼져가는 선풍을 진작시킨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가풍을 간직한 선지종찰(禪之宗刹)이다.
수덕각시 이야기는 자칫 기복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더 이상 구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불자들의 심원 따라 근래에 관음상을 봉안했다.이유야 어찌됐던 불사에 큰 역할을 한 ‘정혜거사’는 무상을 느끼고 산마루에 절을 짓고 정혜사라고 했다. 정혜사에는 능인선원이 있다. 경허ㆍ만공스님 뿐 아니라 근현대 많은 선지식들이 정진했던 선원이다.
수덕사에서 덕숭산 정상 방면으로 계곡 따라 이어진 돌계단 길을 800여m 오르면 정혜사가 있다.
정혜사 바로 아래 만공스님이 조성한 관음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돌계단 하나하나 천천히 오르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속세를 여읜 곳, 속리산 깊은 품에서
중생을 굽어보는 미륵대불의 ‘자비미소’
553년경 인도에서 공부한 신라 의신(義神)스님이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절터를 찾아다니던 중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발길을 멈췄다고 한다. 아름다운 절경과 비범한 기운이 서려 있는 이곳에 절을 짓고 법(法)이 머물렀다(住) 해서 법주사다.
법주사는 팔상전과 미륵대불로 상징되는 미륵신앙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륵도량으로 또한 유명한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율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진표율사의 법을 받은 영심대사가 스승의 명을 받고 속리산에 길상초가 피어있던 곳에 법주사를 창건하고 점찰법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 후 조선 초.중기에는 60여동의 건물과 70여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도 조계종 제5교구본사로서 충북의 으뜸사찰로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법주사는 현재 미륵대불 개금불사와 원통보전 복원불사로 경내가 분주하다. 금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높은 전나무가 사천왕문 앞에 서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그 유명한 팔상전이 정면으로 보인다. ‘자비미소’ 미륵대불이 왼편에 서 중생을 살피는 눈빛으로 굽어보고 있다.
팔상전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향하다 보면 왼편에 복원불사중인 원통보전이 나온다. 관음보살을 달리 원통대사(圓通大師)라 부르기도 한다. 원통이란 널리 통하여 두루 막힘이 없는 것, 즉 궁극적 깨달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복원불사로 원통보전에 있던 관음보살상은 현재 새로 지은 가건물에 임시로 모셔져 있다. 목조로 조성된 관음상은 높이 2.8m로 머리에는 아름다운 보관을 썼다.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일품이다.
대웅보전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 걸작 쌍사자석등이 있다. 국보 5호,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석등이다. 사자의 조각은
매우 정교하여 크고 둥그런 눈, 머리의 갈기, 몸체의 근육 등이 마치 살아 있는 느낌이다. 올해 서울시청 앞 봉축장엄물도 바로 이 석등모양을 하고 있다.
미륵신앙 도량으로 출발한 법주사는 신라 때 창건했을 무렵에는 대웅보전이 아닌 미륵부처님을 모신 용화보전이 도량의 중심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웅보전은 기록에 의하면, 1624년(인조2년)에 중건하고 이후 잦은 중수를 거듭했지만 조선 중기 양식을 잘 갖추고 있어 보물 제915호로 지정됐다. 2층 건물 구조로 562㎡(170평)의 내부에는 우리나라 소조불상 중 가장 큰 5.5m 규모의 삼존불이 봉안돼 있다.대웅보전 앞에는 두 그루의 보리수가 심어져 있다. 깨달음을 서원하는 중생들의 바람을 담은 연등들이 ‘깨달음의 열매’라도 되는 양 보리수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법이 머무는 속리산 법주사, 햇살에 붉은 연등이 환하게 타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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