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백양사 |
“물이 흐르는지, 마음이 흔들리는지 못(潭)은 다만 비출 뿐, 무명번뇌 없어”
사찰 입구, 지난 가을 화려한 잔치를 벌였던 잎들은 떨어지고 봄에 새롭게 난 단풍잎들이 이제 푸르른 녹음을 뽐내고 있다.
단풍과 설경 또한 초봄 벚꽃으로도 유명한 고불총림 백양사, 단풍이 좋은 곳은 녹음 또한 아름답다. 뜨거운 햇살도 울창한
나뭇잎을 뚫지 못한다. 나무그늘 터널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이어진 길을 따라가니 백암산의 바위봉우리인 백학봉이 눈에
들어온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사찰은 산 이름과 같은 백암사였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에는 하얀 양도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7일간 이어지는 법회가 끝나는 날 스님의 꿈에 하얀 양이 나타나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살고 있었는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극락으로 가게 되었다”고 말하며 절을 했다. 다음 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라고 고쳐 불렀다.백양사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총림(叢林) 중에 하나이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나무가 우거진 숲과 같다는 뜻이다. 백양사 주지 시몽스님이 추천하는 백양사 자랑거리는 ‘운문암’과 ‘쌍계루’다. 백양사에서 4㎞ 가량 떨어진 백학봉 아래 위치하고 있는 운문선원은 현대 한국불교 선종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양사는 고려 각진국사와 조선 진묵스님을 비롯해, 용성스님, 고암스님, 석전스님, 만암스님, 서옹스님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을 대거 배출했으며, 또한 선지식을 찾아 이곳에서 수많은 수행자들이 회상을 이루었다.
쌍계루는 일주문을 지나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누각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쌍계루는 남원 광한루, 진주 촉석루, 경복궁 경회루,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대동강 부병루와 함께 최고의 누각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 건립된 쌍계루는 백암산 백학봉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서 있다. 그 모습이 계곡물에도 그대로 비춰진다. 특히 가을철 단풍으로 붉게 장엄된 도량의 모습은 찾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정몽주, 이색,
정도전, 정철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앞 다퉈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 이렇게 모인 시는 400수를 넘어 누대를 장식하고 있다. 쌍계루를 지나면 사천왕문이 나온다. 모든 악귀와 잡신을 억압하여 정법도량을 수호하는 사천왕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종각과 보리수나무를 지나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 내부에 비천상, 용과 학등을 타고 있는 선인 등이 모빌처럼 천정에 매달려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건립된 대웅전은 건물 자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전통적인 건축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닫집 주변에는 비천상, 용과 학 등을 타고 있는 선인 등이 마치 모빌처럼 천정에 매달려 장엄되어 있다.
대웅전을 참배하고 나오는 길, 우연히 누군가의 통화를 엿들었다. “그냥 있어, 마음이 차분해 지네…. 너도 어서와.”
불자가 아닌 사람들이 절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아름다운 산세와 전통적인 한옥들로 이루어진 겉모습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까. 아님 2003년 입적하신 전 조계종 종정 서옹스님의 향기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어떠한 꽃향기도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니 전단수나 목향수, 화만수도 마찬가지네. 그러나 참다운 자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므로 모든 방향으로 참사람의 향기는 퍼져나간다.” 서옹스님의 <물따라 흐르는 꽃을 본다>에서
11] 해남 대흥사<사진> 북미륵암 위쪽 동삼층석탑 앞 바위에 앉아 두륜산이 살포시 감싸고 있는 대흥사를 내려다본다. 산안개가 움직일 때마다 사찰이 살짝 모습을 보였다가 이내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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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산봉우리가 만든 연꽃 속에서 살포시 앉아 계신 여래를 만날 수 있는 곳
한반도의 최남단, 땅끝 해남 두륜산,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두’와 중국에 하늘의 높이에 닿는 곤륜산의 ‘륜’이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큰 산이라는 의미의 한듬이 변형되어 대둔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두륜산은 주봉인 가련봉(707m)을 비롯해 노승봉 두륜봉 등 8개의 봉우리가 마치 연꽃처럼 펼쳐져 있다. 그 넓은 산이 만든 연꽃 속에 조계종 제22교구본사 대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16일 노승봉 아래 자리 잡은 북미륵암을 향했다. 대흥사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국보 제308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제301호 삼층석탑 등 두륜산에서 가장 유명한 성보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유난히 이른 무더위 때문에 아침 일찍 길을 나섰지만 몇 걸음 내딛자마자 땀이 온몸에서 솟구쳐 나온다. 심호흡을 해본다. 몸속에 더러움이 한순간에 씻겨 내리듯 상쾌함이 밀려온다. 북미륵암 위쪽 동삼층석탑 앞 바위에 앉아 두륜산이 살포시 감싸고 있는 대흥사를 내려다본다. 산안개가 이쪽저쪽으로 떠돌아다닌다. 대흥사가 살짝 모습을 보였다가 이내 사라져 버린다.
대흥사는 신라 정관존자와 아도화상의 창건설이 전해 오고 있다. 정확한 창건 시점을 밝히기는 매우 어렵지만 응진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이 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아 늦어도 통일 신라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
대흥사 대웅전
천불전에는 옥돌로 조성된 천불이 모셔져 있다. 경주에서 조성된 불상은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흥사로 이운됐는데,
도중에 폭풍을 만나 일본 나가사키현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대흥사는 크게 남원과 북원 그리고 별원의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이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등이 자리하고 있고 남원 뒤쪽으로 표충사와 동국선원 구역이 있다.
표충사(表忠祠)는 임진왜란 때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왜병을 무찌르는데 공로를 세운 서산대사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사당이다.
일대에 표충사 외에 조사전 의중당 요사 표충비각 강례재 호국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표충사’편액 글씨는 정조대왕의 친필이라고 전해지며 안에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뇌묵 처영대사 세 스님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의 꽃을 피운 초의선사로 또한 유명하다. 초의 선사는 39세 때인 1824년(순조24)에 일지암을 중건하여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40여 년간 이곳에서 독처지관(獨處止觀)을 했다. 스님이 일지암에서 유명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고, 선다일여의 가풍을 드날리며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같은 석학, 예인들과 교류하며 쇠퇴해 가는 차문화의 중흥을 도모하기도 했다.
남원의 중심 건물인 천불전에는 옥돌로 조성된 천불이 모셔져 있다. 경주 불석산에서 6년에 걸쳐 조성된 천불은 울산에서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둔사(대흥사의 옛 이름)로 향하던 중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일본의 나가사키현까지 닿았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법등을 이어오던 대흥사는 조선시대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면서 위상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다.
불교계 뿐 아니라 조정에서 또한 조선 중기 후 이 곳 대흥사를 중시하기 시작한다. 이후 풍담(風潭)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와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당시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조선시대 이 스님들의 존재는 오늘날 한국불교가 있게 한 큰 원동력과 같은 것이다.
두륜산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파란하늘이 나타난다.
대흥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12] 여수 향일암 |
망망대해 안개 걷히니 관세음보살 업은 거북 불국토로 가네… 금오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정경. 관세음보살을 태운 거북이가 경전을 싣고 용궁으로 향하는 형상이다.
향일암 관음전. 좁다란 관음동굴을 지나 관음전에 닿으니 청량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용왕전에는 관세음보살님을 주불로 모시고, 해상용왕과 남순동자님을 협시불로 모셨다
지난 6월29일 남부지방에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다. 여수 돌산도 앞바다는 잔잔하기만 하다. 아침 일찍 바다로부터 피어오른 짙은 안개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돌산도에는 속초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인 금오산 향일암(向日庵)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 원효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향일암은 원통암, 금오암, 책육암, 영구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워낙 유명한 일출명소인 탓에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으로 자리매김됐다.사하촌을 거쳐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좁은 바위틈을 두 번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자 비로소 향일암 경내에 들어섰다.
지난 2009년 겨울 화마가 휩쓸고 간 대웅전 자리에는 임시 원통보전이 조성되어 있다. 원통보전 뒤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솟아 있고 원통보전 앞마당 발밑에 푸른 남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화재 이후 불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어요. 기도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는데….”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전에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복원불사에 구슬땀을 흘리는 주지 스님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원통보전 뒤 50m 위쪽에 관음전이 있다. 좁다란 관음동굴을 지나 관음전에 닿으니 청량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관음전 옆에 관음보살상이 서 있고 참배객들은 저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향일암의 모든 전각은 동향이다. 대웅전 앞마당과 함께 관음전 인근도 일출이 장관이다.
바다는 거대한 호수같이 잔잔하다. 이따금 지나가는 고기잡이배가 곱디고운 물결에 작은 흔적을 남기지만 이내 사라져버린다. 관음전 아래에는 바다쪽으로 너른 바위가 있는 데 원효스님이 참선했던 장소라고 전한다. 고요한 남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삼매에 들었을 스님의 모습을 머리에 그려본다.
관음전에 참배하고 금오산에 오른다. 해발 360m의 높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향일암 일대의 절경을 한눈에 담기에 충분하다.
원통전 관세음보살 금오산 형상은 거북이가 경전(經典)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 향일암 아래 바다를 향해 솟아있는 거북머리 봉우리는 산을 오를수록 더욱 더 거북머리 형상으로 보여져 신기하다.
금오산 등반로 중간부터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바위들은 불법(佛法)을 담은 경전처럼 하나하나 무게감이 남다르다. 금오산은 용궁을 향해 경전을 싣고 향해가는 거대한 거북이 형상을 띠고 있다. 특이하게도 대부분 바위들이 거북 등껍질처럼
마름모 문양이 들어가 있다. “용암속에 있는 두가지 다른 성분이 굳어지면서 이런 문양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는 종무실장의 귀띔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관세음보살을 태운 거북이가 경전을 싣고 용궁으로 향하는 형상의 향일암.
불교에서 용궁은 대개 큰 바다 밑에 자리잡은 또하나의 불국정토를 뜻한다. 바다 안개를 거둬낸 금오산은 거대한 ‘반야용선(般若龍船)’이 되어 불국정토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듯 했다.
관음전 옆 관세음보살입상.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불자들이 있다.
“지난 겨울 화재 이후 불자들 발길이 뚝 끊겼어요. 기도 드리는데는 별 지장이 없는데…”
주지 스님의 안타까운 마음 묻어나는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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