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템플스테이와 부처님이야기

33관음성지를 찾아서...= 금산사, 내소사, 선운사

백련암 2010. 5. 19. 12:13

7] 금산사

금산사 야경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미륵전의 북쪽 높은 대지에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다.

또한 이 계단의 중앙에 보물 제26호인 부도가 1기 있어 그 형태에 따라 석종형(石鐘形) 부도라고 부른다.

방등계단의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이러한 예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 와개성의 불일사(佛日寺) 등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유산이다. 불교의 정신을 대표하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는 으뜸으로서 계를 지킴은 불교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이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에서 방등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편 방등계단의 성격을 도솔천(兜率天)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인 금산사에는

미륵의 하생처로서 미륵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하여 미륵상생신앙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결국 금산사는 미륵상생신앙과 하생신앙을 조화롭게 겸비하였다는 신앙적 성격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탑 뒤에 보이는것이 보물 제 26호인 석종형(石鐘形) 부도이다.

 

보물 제 26호인 석종형(石鐘形) 부도

미륵전부처님 

부처님오신날 이틀 전에 찾은 금산사, 봉축준비가 한창이다.

599년 백제 법왕때 창건된 금산사는 이후 진표율사에 의한 6년여의 중창으로 대가람이 되었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일체생명 보듬은 ‘어머니산’에 나툰 미륵부처님

   

                        천년세월 중생과 함께 하네

   

모악산으로 향하는 길엔 호남평야가 펼쳐졌다. 이제 막 모내기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겨울을 보낸 논에 흙을 잘게 부스는 써레질을

마쳤다. 논은 이제 못자리에서 이사 올 모를 위해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있다. 넓은 평야 위에 높게 솟아오른 모악산. 그 산에서 생성되는 물이 농부들에겐 젖줄이다. 마른 땅을 적셔주는 생명수이자 여린 생명을 보듬어주는 어머니다. 산의 옛 이름은 ‘엄뫼’ ‘큰뫼’다.

‘엄뫼’는 의역하면 ‘어머니산’이란 의미의 ‘모악산(母岳山)’이다. 큰뫼는 음역한 ‘큼’과 의역한 ‘뫼’를 합쳐서 ‘금산(金山)’을 말한다.

미륵신앙 근본도량인 금산사(金山寺)는 어머니산 서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금산사 원통전, 사십이수관음이 모셔져 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인 서기 599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진표율사는 12세 때 금산사의 숭제법사에게 출가한 후 변산의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수행을 한 후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에게 계법을 전해 받았다.

스님은 금산사로 돌아와 중창불사를 시작,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이때가 경덕왕 21년인 762년부터 혜공왕 2년인 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비로소 대가람으로 중창된 금산사, 더욱이 스님이 이룩한 미륵신앙의 토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미륵전 

  

금산사를 찾던 날, 전날 온 비로 해탈교 아래 개울에는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철철철 흘러넘치는 계곡물 소리를 벗 삼아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까지 걷는다. 보제루 아래 계단을 올라서 가람의 중심에 서면 거대한 사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정면에 있는 대적광전과 오른편에 위치한 미륵전 왼편에 대장전과 명부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규모를 보니 1725년 남악선사가 개설한 화엄대법회에 무려 1400여 명의 대중이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국내 유일한 3층 목조 건축물, 국보 제62호인 금산사 미륵전은 금산사의 상징이다. 진표스님이 세운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1635년(인조13) 수문스님이 재건했다. 건물 내 외벽엔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다. 미륵전 내부는 겉모습과 달리 하나의 통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대한 규모의 미륵불과 협시불이 모셔져 있다.

본존은 높이가 11.82m이고 삼존불 중의 협시는 8.79m에 달한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 장육전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미륵전은 특이하게도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이라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뜻한다. 서기 981년에 완성된 보물 제25호 오층석탑을 비롯해 26호 방등계단, 27호 육각다층석탑, 22호 노주(露柱), 828호 석등, 24호 혜덕왕사진응탑비, 28호 당간지주, 23호 석련대 등 귀한 성보가 가람 가득이다.“사람들은 모두들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있어 자식이 어버이 공경하듯 하고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듯 하며 말과 행동이 지극히

겸손하다.…” <미륵대성불경>에 묘사된 미륵부처님이 다스리는 세상의 모습이다.

불기 2554년 부처님오신날을 회향하면서 미륵부처님의 마음을 되새긴다.

 

금산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8]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부터 600여 m 이어진 전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지친 심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다.

   파랑새로 화현한 관음보살의 손끝에서

 

  천년 기품 담긴 명품으로 태어나다

사진작가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은?’이라고 물으면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한국의 8대 명승지인 변산반도 남쪽의 내소사가 그곳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이틀 앞 두고 찾은 내소사는 북적이고 있었다.

사찰 입구에 관광버스 수십 대가 서 있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유구한 사찰의 역사 못지않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이 있다. 바로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 600여 m 이어진

전나무 숲길 터널이다. 700여 그루의 높게 솟은 전나무가 만들어 주는 터널 길을 걸으면 특유의 맑은 향기에 도시에서 지친 심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아담한 천왕문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큰 연등과 찾는 이들을 반겨주는 메시지가 달려 있다. 천왕문을 나선다. 진정한 내소사의 아름다움이 하나 둘씩 느껴진다. 크지 않은 마당엔 수령이 1000년이 된 20m 높이의 느티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고 짜임새 있는 가람구성으로 답답하지 않은 느낌이다.
느티나무 뒤쪽에 봉래루 또한 내소사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문살에 연꽃과 국화꽃을 조각한 대웅전.

봉래루 밑 계단을 겸손히 오르면 내소사 가람건축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변산(邊山)의 바위능선을 따라 유연하게 뻗은 처마가 아름답다. 조선 인조11년(1633)에 건립된 대웅보전은 높게 쌓은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단층 팔작지붕으로 돼 있다. 창건당시 화려했던 단청은 사라졌지만 본연의 나무색은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보물 제291호 내소사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와 우측에 대세지보살과 좌측에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철못을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어진 대웅보전에는, 호랑이가 화현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도편수로, 관세음보살이 파랑새로 화현해 내부의 단청과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웅전 단청은 미완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화공과 약속을 지키지 않은 동자승 때문이라고 한다. 화공은 단청을 시작하면서 100일 동안에는 절대 내부를 들여다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동자승은 그러나 화공과의 약속을 어기고 만다. 99일째가 되는 날 창구멍을 뚫고 대웅전을 들여다보니, 파랑새가 붓을 들고 단청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새는 붓질을 멈추고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변산 능선을 따라 유연하게 뻗은 처마가 아름다운 내소사 대웅전.


대웅보전의 문창살 또한 유명하다. 강화 정수사, 논산 쌍계사와 더불어 아름다운 문살로 손꼽힌다. 연꽃과 국화꽃을 조각해 화려한 문살은 신기하게도 대웅전 내부에서 보면 단정한 마름꼴 살 그림자만 비친다. 대웅보전에서 빠트리지 말아야 할 곳이 또 있다. 본존불 뒤에 조성된 백의관음보살상이다. 두 손을 모으고 올려다보면 따스한 미소를 답을 주는 듯하다.

내소사 뒤 봉우리는 관음봉(425.5m)으로 의상봉(508m)과 함께 변산을 이루고 있다. 능가산이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관음봉을 뜻한다.

등산로를 따라 관음봉 아래 사거리에 오르면 내소사 전경이 펼쳐지고 조금 더 발품을 팔아 재백이 고개에 오르면 아름다운 변산과 시원하게 펼쳐지는 서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부안=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9] 고창 선운사

 

대웅전 보물 290호

 

주존이신 비로자나불

 

선운사 대웅보전은 조선후기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290호로 지정됐다.

대웅보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오른쪽에 약사불이 봉안돼 있다.

 

“부처님 계시던 도솔천이 어드메냐

 

삼세제불, 선운산 도솔계곡에 나투었네”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넓고 하얀 마당이 눈부시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 고승 검단(黔丹)선사가 창건했다. 선운사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자,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숯과 돌을 가져와 큰 못을 순식간에 메웠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쳤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 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쳤다.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하고,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을 ‘검단리’라고 불렀다. 검단선사의 창건이야기 뿐만 아니라 선운사에는 온통 이야기 거리로 가득하다.

 

대웅보전 뒤쪽에 천연기념물 제184호 동백나무 숲이 있다. 선운사가 동백을 조경한 이유는 화재 예방 때문이었다. 불에 강한 동백나무를 심어 산불로부터 법당을 보호하고자 함이었다. 동백나무 숲은 선운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미당 서정주의 시와 송창식의 노래 덕분에 더 친근하다. 선운사 동백꽃은 애달픔의 극치로 표현돼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으로 인식됐다.

 

대웅보전 앞에 자리한 만세루는 대웅보전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누구나 선운사 인근 차밭에서 따낸 차를 즐길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벽과 도리마다 이곳을 찾은 문인들이 남긴 오래된 작품들이 붙어 있다.

기둥하며 서까래, 보 등이 전혀 가공되지 않고 특유의 휘어짐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한 일본 건축가가 아름다움에 감탄해

만세루를 향해 삼배했다고 한다.

만세루 앞에 위치한 보물 제290호 선운사 대웅보전은 조선후기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다. 웅장한 대웅보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약사불을 모셨다.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 후벽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관세음보살이 있다. 연화대좌에 앉아서 기도객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관음보살이 하얀 벽에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1980년대 선운사 노스님들은 사찰을 찾은 신도들에게 꼭 관세음보살님께 안내해 주었다.” 주지 법만스님이 살짝 귀띔해 주었다.

성보박물관에는 보물 제279호 금동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한 적이 있는데, 이때 영험함을 보인 사실로 인해 더욱 널리 추앙받고 있다.

1936년 여름에 도난 후 일본으로 넘어 갔다. 이 후 몇 차례 소장자가 바뀌는 동안 지장보살이 이 들의 꿈에 나타나 “도솔산에 다시 보내라” 메시지를 전하고 이를 지키지 않자 소장자들의 집에 액운이 닥쳤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마지막 소장자가 고창경찰서에 연락해 당시 주지스님과 경찰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도난 당한지 2년 만에 다시 모셔오게 되었다.

1500년 동안 불법을 전파한 선운사는 힘찬 선운산의 산세처럼 굳건히 이 자리를 지켜왔고, 불보살 한 분 한 분 당호 곳곳마다 역사가 담겨져 있다. 한 여름 밝은 햇살처럼 사시예불 소리가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선운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