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 보문사 | ||
눈섭바위 밑에서 보는 낙조는 서해의 절경이라 한다.
중생들의 귀의처 마애관세음보살 “서해에 물들다”
해수관음보살을 친견하러 바다를 건넌다. 길진 않다. 강화도 외포리선착장에서 10여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서해안의 작은 섬 석모도에 닿는다. 석모도에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 하나, 보문사가 있다. 짧은 뱃길이지만 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니 마음이 들뜬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에 입맛이 길들여진 갈매기떼들이 배 주위를 에워싸고 먹이를 기다리는 눈치다. 보문사는 석모도 석포리선착장에서 섬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다. 석모도에서 이정표를 따라 10km 남짓 이동하면 된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 금강산 보덕굴에서 수행하던 회정대사(懷正大師)는 이곳에 도착, 길지(吉地)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사찰을 창건했다고 한다. 사찰 뒤 산세가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인도 사자국의 보타낙가산과 흡사함을 발견, 산 이름을 낙가산(洛迦山)으로 짓고 사명은 불보살이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의 보문사(普門寺)로 명명했다. 이후 130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지만 여전히 중생들의 귀의처로 면모를 유지해오다 지난 1928년 마침내 새로운 변신을 했다. 사찰 뒤 절벽 눈썹바위에 조성된 마애관세음보살이다. 당시 주지 선주스님과 화주 화응스님이 조성한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은, 서해 쪽빛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아 자비로운 미소와 영험, 법력으로 사시사철 참배객들이 몰려오는 유명한 관음기도처가 됐다.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먼발치에 사찰 종각과 관음보살이 조성된 산 위 눈썹바위가 보인다. 뒤로 돌아 서면 시원한 서해 바다가 펼쳐 있다. 경내에 들어서니 새롭게 조성한 33관음보탑과 오백나한전, 와불전이 눈에 띈다. 몇해 전 찾았을 때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나한기도도량으로도 유명한 보문사.
사진은 23위 나한상이 모셔진 보문사 석실 법당.
보문사는 관음기도도량 뿐 아니라 나한기도도량으로도 유명하다. 회정대사가 보문사를 창건한 지 14년이 지난 649년 보문사 아래 동네 어부들이 바다에서 건진 인도의 22위(位) 나한상이 나한전인 보문사 석실법당에 모셔져 있다. 석실법당 앞에는 600년 된 향나무가 서 있다. 한때 300여 명의 수행자들이 정진하던 대가람임을 증명하듯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강암 맷돌’도 있다.
극락보전 앞에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33관음성지 제1호 보문사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극락보전 옆으로 마애관음보살을 향해 오르는 419계단 길이 있다. 몇해 전 인기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삼순이로 분한 영화배우 김선아씨가 이 계단을 한발한발 오르면서 이별한 연인을 그리기도 했다. 경주서 단체로 기도 온 불자들도 계단을 오르면서 “억수로 되다, 되…”라며 힘겨워 한다. 계단을 다 올라가서 옅은 미소로 맞아 주는 관세음보살을 보는 순간 고통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 정상에서면 덤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선경(仙境)같은 서해바다도 볼 수 있다.
살짝 흘렸던 땀이 바다 바람에 금세 씻겨진다.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마애불이 새겨진 암벽위로 눈썹처럼 덮고 있다. 당장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다. 높이 9.2m, 너비 3.3m인 마애불의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 너비 11척이 되는데 이는 관세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 )을 상징한다고 한다. 눈썹바위 그림자가 마애불을 반 정도 가렸다. 해가 저물수록 그림자가 올라간다. 바다 속으로 붉은 태양이 떨어질 무렵, 태양은 차가운 바위에 빨간 온기를 불어 넣는다. 관세음보살 미소도 환히 타오른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쇠북소리에 붉은 바다가 춤춘다.
강화도까지 오면 보문사 이정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30분간격으로 석모도 석포리행 배가 운행된다. 승객이 많으면 증편된다. 자가용 버스까지 배에 실을 수 있다. 석포리선착장에서 보문사까지 수시로 버스가 운행중이다. 보문사 (032)933-8271~3
일제강점기인 1938년 당시 한국불교를 대표했던 스님들의 노력으로 완공된 조계사 대웅전. 경복궁 근정전보다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사찰로서 대중포교의 구심점으로 성장했다. 이후 1938년 태고사로 개칭됐다 1954년부터 촉발된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조계사 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계사는 한국불교 발전과 중흥을 위한 불자들의 염원과 함께 한국불교사의 영욕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도량이다. 초창기 조계사는 작은 법당과 조계종 총무원 건물과 요사채 등 부속 건물이 전부였다. 주변 땅을 꾸준히 매입해 가면서 사찰 규모를 넓혀왔다. 들의 아픔을 돌봐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찰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시위를 벌이다 수배됐을 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머물 다 가기도 하고, 조계사가 운영하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선 날마다 300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서울 낙산어린이집 등의 산하 복지시설에 매년 3억330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공양 미 지원과 경로잔치 개최, 장소대여 등 유무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조계사 극락전에 봉안된 관세음보살. 조계사는 열린도량으로서 불자 뿐만아니라 내외국인에게도 산문을 활짝 열었다. 대웅전을 24시간 개방하고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새 신도 신행안내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누구나 손쉽게 조계사를 찾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소개하는 첨단 터치스크린 관광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국제포교사회와 연계한 사찰 안내도 실시한다. 주말마다 발우공양과 참선, 요가 등 한국불교문화를 체험하는 템플라이프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또한 몽골과 태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상담과 정기법회도 연다. 조계사는 한국불교를 알리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다. 명상과 참선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도를 반영해 시민선원을 열어 누구 나 손쉽게 참선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도심 속 열린도량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주문 뒤로는 조계사의 상징이며 서울시 지방문화재인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515.6㎡로 경복궁의 근정전보다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당시 한국불교를 대표했던 스님들의 노력으로 완공된 법당이다. 대웅전 앞에는 지난해 봉안된 8각10층 규모의 세존사리탑이 있다. 대웅전에선 스님들의 기도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따스한 봄햇살이 대웅전 문창살을 따사롭게 비춘다.
3] 화성 용주사
용주사 창건불사에 당대 최고의 명인들이 참여했는가 하면 불과 7개월 만에 불사를 완성한 것은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한다.
경기도 화성 송산동에 위치한 용주사는 남북의 직선 축 위에 대웅보전과 천보루, 삼문을 두고 대웅보전 앞마당 좌우에 ‘ㅁ’자
제향의식까지 100년 만에 복원했다.
용주사가 ‘효행원찰’로 불리는 근거다.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며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어머니란 의미로 관세음보살
정조는 장흥 보림사의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받아 읽고 통곡을 하게 된다. 그의 가슴을 울렸던 것은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끝없는 사랑이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유교에선 효로 이해했다.
하지만 효가 불교의 보은(報恩)사상을 만나면서 위에서 아래로의 대자대비한 은혜를 전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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