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본사와 사찰 벽화 이야기

조계종단 교구 본사들 = 신흥사, 월정사,법주사

백련암 2010. 7. 2. 01:41

대한불교조계종 제 3교구 본사 신흥사

 

 

雪嶽山 新興寺 由來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雪嶽洞) 설악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653년(신라 진덕여왕 7) 자장(慈藏)이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라 하였다. 698년(효소왕 7) 불탄 뒤, 701년 의상(義湘)이 중건하고

이름을 고쳐 선정사(禪定寺)라 하였다. 선정사는 1000여 년을 번창하다가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으로 9층탑이 파괴되었고,

1642년(인조 20) 불이 나서 완전히 없어졌다.  1644년 연옥(連玉) · 혜원(惠元) · 운서(雲瑞) 등이 중창을 발원하던 중, 어느 날 세 스님은 똑같이

소림암 (小林庵)으로부터 나타난 신인(神人)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오래도록 3재(三災)가 범하지 않을 것이라 일러주는 꿈을 꾸고,

선정사 옛터에서 아래쪽 10리 지점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신흥사라 하였다.

1647년 대웅전을 짓고 1661년(현종 2) 해장전(海藏殿)을 지어 《법화경》 등의 판본을 두었으며, 1717년(숙종 3) 불탄 설선당(說禪堂)을 다시 짓는 등

불사(佛事)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남아 있는 당우로는 극락보전·명부전·영산전·보제루· 천왕문·일주문·불이문·적묵당·설선당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삼층석탑과 청동시루, 범종,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5호인 경판 277매,

사천왕상 등이 있다. 부속암자로는 내원암(內院庵)·안양암(安養庵) 등이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은 현종 5년(1664)년에 세운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명부전에는 부처를 도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셨고, 보제루에는 휴정 등

고승 60여 분의 영정을 모시고있다. 1400여년 전 ‘향성사’시절의 범종은 한국전쟁 때 총상을 입은 뒤 수리하여 보존 중이다.

 

 *설악산 신흥사 교통편 =  1. 동서울종합터미널(2호선 강변역)에서 원통, 양양, 속초행 고속버스(3.4번 승강장)이용

다른 터미널과는 달리 외설악의 초입인 물치삼거리(설악산 입구)와 낙산사에 정차하는 버스노선이 있다. 

속초 터미널까지 가지않고 물치 삼거리에서 하차하면 외설악의 관문인 설악동 소공원까지 가는데 40분 ~ 50분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2. 속초시내에서 신흥사까지 시내버스는 10분마다 운행한다. 30분소요

 

                    항공편 =  김포공항 ~ 양양공항 사이를 왕복운행하는 항공편이 하루 2회씩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4교구 본사 월정사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이었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하게 된다.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그 뒤로 유동보살 -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 연등불(燃燈佛)에게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당시의 이름 - 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신효거사와 또 범일 국사의 제자였던 두타승 신의 스님이 자장율사가 초가를 지었던 터에

다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이후로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던 이 암자는 수다사(水多寺) - 진부면 수항리에 있던 절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 의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로 차츰 규모가 커졌다.

그 무렵의 월정사는 금당 뒤쪽이 바로 산인 특수한 산지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금당 앞에 탑이 있고 그 옆에 강당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남북자오선(南北子午線) 위에 일직선으로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을 세운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다르다.

 

월정사 버스교통편 = 서울동서울터미널( 2호선 강변역) = 진부 시외버스터미널 하차(종점하차) = 월정사 정류장 = 월정사

                                2시간 30분소요    배차시간 30~40분

 

 

 대한불교조계종 제 5교구 본사 법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그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고려 숙종이 1101년 그의 아우 대각국사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도 이곳에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碧巖)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1624년에 중건된 대웅전, 1605년에 재건된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1624년에 중창된 능인전(能仁殿)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고 이밖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조사각·사리각, 선원(禪院)에 부속된 대향각· 염화실· 응향각이 있다.

 

또한 법주사의 중심법당이었으며 장육상(丈六像)을 안치했었다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이곳에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조성 도중 요절했다는 시멘트로 된 미륵불상이 1964년에 세워졌다. 1986년 이를 다시 헐고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 철확(鐵鑊: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

있다.

 

속리산 법주사 교통편 = 기차 ktx  = 서울역 출발 = 대전역 하차  소요시간 55분

                                     1. 새마을 = 영등포 출발 = 대전역 하차  소요시간 1시간 50분

                                        대전역에서 = 대전시외버스터미널(30분소요) = 속리산행(1시간 30분소요)


                                    2. 새마을 = 영등포 출발 =  조치원 하차  소요시간 1시간 10분

                                       조치원역에서 = 청주시외버스터미널(1시간소요) = 속리산행버스 승차  =   법주사 하차(1시간 30분소요)


 ★ 청주시외버스 1일 = 26회 첫차 = 06/40분  막차 = 20/40분

 ★ 대전 시외버스 1일 = 11회 첫차 = 06/30분   막차 = 20/10분   동대전 터미널이 따로 있는지 확인해 볼 것

 ★ 매월 음력 16일 철야기도 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