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본사와 사찰 벽화 이야기

조계종단 교구 본사 = 동화사, 은해사. 불국사

백련암 2010. 7. 4. 00:37

9. 대한불교조계종 제 9교구 본사 동화사

 


1. 중생의 병을 고치는 약사여래 근본도량 팔공산 동화사

동화사 사적비(桐華寺 寺跡碑)에의하면, 신라소지왕 15년(493) 극달화상(極達)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흥덕왕 7년(832)에 心地대사가 중창할때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 하여 桐華寺라 이름을 고쳤다고 전한다

 

2.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표율사로부터 영심(永深)대사에게 전해진 필간지를 심지대사가 받은뒤 팔공산에 와서 던져 떨어진곳에

절을 지으니 이곳이 바로 동화사 첨당(籤堂) 북쪽우물이 있는곳이 었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상의 두 가지 창건설 가운데 신라 흥덕왕 7년(832)心地 대사가 중창한 시기를 사실상 창건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동화사는 창건 뒤 현재의 대가람으로 정비되기까지 여러 차례 중창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동화사신라말인 934년 영조(靈照)선사, 고려 명종 20년(1190) 지눌보조(普照)국사, 고려 충렬왕 24년(1298)홍진(弘眞)국사에 의해

각각 중창 중건되었다.  보조국사는 호국불교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동화사 중창에 크게 공헌하여 동화사와 염불암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또 고려 말기 대표적인 고승인 홍진 국사는 동화사를 하안소(下安所)로 삼고 대규모 중창을 이루었다.


현재 해탈교 건너편에 국사를 기리는 부도가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는 선조 39년 (1606) 유정(惟政)사명대사, 숙종 3년(1677) 상숭(尙崇)대사,

 영조 8년(1732) 관허(冠虛), 운구(雲丘), 낙빈(洛濱), 청월(晴月)대사 등이 각각 중창 중건하였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조선조 영조 때 중창한 건물들이다. 

지난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의 낙성을 전후해 동화사의 많은 당우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찾아가는길 = 대중교통 이용시
• 기차 동대구역 하차 나와서 → 10분정도 도보이동→ 파티마병원→ 급행1번이용(45분소요)→ 동화사
• 서부정류장→ 지하철1호선(안심방향)→ 아양교역 하차→급행1번(35분소요)→동화사
• 북부정류장→ 시내버스이용 구)한일국장 도착→ 급행1번(1시간소요)→ 동화사
 


 

10. 대한불교조계종 제 10교구 본사 은해사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淸通面)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이며 은해사는 조선 31본산(本山) 경북 5대 본산이자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809년(신라 41대헌덕왕 1) 혜철국사(惠哲國師)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 라고도 한다.

신라의 진표율사는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一道銀色世界 如海重重)" 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후 1270년(고려 원종 11)홍진국사(弘眞國師)가 중창·확장하였는데, 1275년 충렬왕 때 원참스님이 중건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1485년 성종 16년에 죽청스님과 의찬스님이 묘봉암을 중창하였으나, 1545년(조선 인종 1)에 큰 화재가 발생해 사찰이 전소 되었다.

 이듬해 1546년(명종 1)에 나라에서 하사한 보조금으로 천교화상(天敎)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그리고 법당과 비석을 세워 인종(仁宗)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하였다.

 

1563년(명종 18)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 묘진(妙眞)이 중건했고, 1589년(선조 22)법영대사(法英) ·의연(義演)·광심(廣心)

세 승려의 원력(願力)으로 다시법당을 현재의 자리에 크게 중창하고 사찰의 규모를 확장하는 일대 불사를 이루어 대 가람이 되었다.

그후 임진왜란이 있었지만 1651년 (효종 2년)에 각 전각들이 단청 불사를 시행한 기록으로 보아  왜란을 격으면서도 큰 피해는 입지 않은 듯 하다.

1712년 (숙종 38년)에는 은해사를 종친부에 귀속시켰고, 1714년에는 사찰입구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를 심었다.

지금의 은해사앞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때에 심어진 것으로, 3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 들이다.

1761년 천왕문을 세우고 1772년에는 자암스님이 대웅전 불상을 개금하였으며 도봉스님이 영산전과 시왕전의 불상을 개분했다.

영조는 왕자시절에 이 은해사를 잘 수호하라는 완문을 지어 보낸 일이 있었다.

이것은 영조 등극후에 어제완문이라 하여 이절을 수호하는데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1847년(현종 13)에 또다시 은해사 창건이래 가장 큰불이 났다. 이때의 화재는 너무 가혹한 것이어서 극락전을 제외한 천여 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그러자 인종의 태실 수호사찰이며 영조의 어제수호 완문을 보관하고 있는 사찰인 은해사를 중창하고자

당시 영천 군수 김기철이 300궤미의 돈을 박봉에서 털어내 시주했으며, 대구감영과 서울 왕실의 시주가 계속 답지하였다. 

그리하여 수만냥의 재원을 확보하여 3년여간의 불사 끝에 헌종 15년 1849년에 중창불사를 팔봉(八峰)·해월(海月) 두 승려가 중수하여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대웅전과 보화루, 불광의 삼대 편액이 김정희의 글씨로 채워졌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과 설선당(說禪堂)·심검당(尋劒堂)·종루·보화루(寶華樓)·독성각·승당·요사채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영산전(居祖庵靈山殿), 보물 제486호인 백흥암극락전수미단(百興庵極樂殿須彌壇),

보물 제514호인 운부암청동보살좌상(雲浮庵靑銅菩薩坐像), 보물 제790호인 백흥암 극락전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60여 점의 문화재와 24동(棟)의 건물이 있다.

 

찾아가는길 =  경부선(영천역) 하차 → 영천버스터미널 앞 → 은해사 行 노선버스

기차여행 =     경부선(동대구역) 하차 → 하양 行 시내버스→하양버스터미널 앞 → 은해사 行 노선버스

                   경부선(하양역) 하차 → 하양버스터미널 앞 → 은해사 行 노선버스

 

 

11. 대한불교조계종 제 11교구 본사 불국사

 

 

무영탑


불국사 창건
5천년 장구한 세월동안 발전해온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그 후 751년(경덕왕 10)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다른 기록인, 《불국사 사적(事蹟)》에는 이보다 앞선 눌지왕(訥祗王)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祠)되었다 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칸, 무설전(無說殿) 32칸,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던 장대한 가람의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찾아가는길 = 기차여행 = 새마을 영등포출발~ 경주역 하차 (ktx=없음 소요시간 4/30반)

 1) 대중교통이용 =  경주시내에서 불국사까지 자주 다니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시면 되고

경주역과 버스터미널에서 불국사행 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