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 = 라훌라. 암바파리

백련암 2010. 7. 3. 02:52

[붓다를 만난 사람들] 5. 라후라(Rāhula)

 

자비·인욕 실천으로 아만심을 비워내다                         [2010년 06월 28일]

 

부처님 아들로 태어나 아홉살에 출가    숱한 난관 극복하고 십대제자로 성장

 

 
삽화=김재일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어 각자(覺者)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처님은 고향인 석가국의 카필라성을 찾았다. 전륜성왕이 되어 석가국을 번영시켜 주기를 바라는 아버지 슛도다나왕 그리고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불안한 눈길로 남편의 행보를 지켜보는 아내 야소다라를 뒤로 한 채, 이른 새벽 카필라성을 넘어 출가의 세계로 몸을 던졌던 그가 이제 붓다(buddha), 즉 깨달은 사람이 되어 고향땅을 다시 밟은 것이다.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많은 석가족 사람들이 부처님을 크게 환영하며 존경의 예를 표했다.

그러나 아버지인 슛도다나왕과 아내 야소다라 그리고 아들 라후라의 심경은 좀 더 미묘하고도 복잡했을 것이다. 명망 높은 성인이 되어 돌아온 아들, 남편, 아버지를 앞에 두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들에게 있어 부처님은 성인이기 이전에 여전히 변함없는 내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특히 아들 라후라의 마음은 더욱 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아버지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성인이라는 사실에 내심 자부심을 느꼈겠지만 한편으로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왠지 모를 거리감에 상심했을 것이다.

결국 부처님과 아들 라후라의 만남은 부처님이 카필라성을 방문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 이루어졌다. 야소다라가 아들 라후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라후라야, 저 분이 바로 너의 아버지이시다. 가서 네 유산을 달라고 하렴.”

라후라는 용기를 내어 부처님께 다가갔다. “아버지, 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라후라는 반복했다. “아버지, 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 그러나 부처님은 끝내 말없이 교외에 있는 니그로다 동산으로 가셨다.

자신이 출가를 결심하고 있을 무렵, 아들 라후라는 탄생했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고타마 싯다르타의 입에서는 ‘장애가 생겼구나, 속박이 생겼구나’라는 말이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가계를 이을 후계자가 생겼으니 출가하기는 더 쉬워졌지만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출가의 결의가 흔들릴 수도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이 말 때문에 아들의 이름은 ‘라후라(장애)’가 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결국 고타마 싯다르타는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출가의 길을 선택했고, 이제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부처님이 내린 결론은 아들 라후라를 출가시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가장 신뢰하는 제자인 사리풋타와 목갈리풋타에게 라후라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사리풋타는 아홉살인 라후라를 사미로 출가시키는 역할을 맡았고, 목갈리풋타는 출가 후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불교교단을 대표하던 훌륭한 두 제자에게 아들의 출가와 교육을 담당시켜 불법의 세계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부처님이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교단 최고의 스승에게 출가-교육

이후 라후라는 수행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왕족으로 고이고이 자라던 라후라에게 있어 수행은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더욱이 수행자로서의 자각이 아직 없어 라후라는 수행 생활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출가 초기에는 늘 주위사람들을 놀리거나 사소한 거짓말을 하곤 해서 라후라에 대한 주변의 평은 나날이 나빠졌다. 사리풋타와 목갈리풋타를 비롯한 장로비구들이 라후라를 훈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걱정하시던 부처님이 하루는 라후라의 처소를

찾아갔다. 라후라가 준비한 물로 발을 씻으신 부처님은 라후라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라후라야, 너는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아니요, 마실 수 없습니다.” “왜 마실 수 없다는 것이냐?” “발을 씻어서 이미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이 물은 원래 깨끗했지만 이제 발을 씻어 더러워져 마실 수 없는 것이니라. 너도 이 물과 다를 바 없느니라. 사람은 태어날 때는 누구나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때가 묻어 사악해지는 법이니라. 너는 사미계를 받은 사문으로서 수행에 정진하고 몸과 입과 마음을 바르게 유지해야 하건만 그렇지 못하니 이 발 씻은 물과 다름없구나.”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서있는 라후라에게 부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이 물을 내다버리고 그릇만 가져오너라.” 라후라는 시키는 대로 했다. 라후라가 가져온 그릇을 가리키며 부처님은 “라후라야, 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없습니다.” “왜 그러하냐?” “손발을 씻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너 역시 이 물그릇과 다를 바 없느니라.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수행을 게을리 하여 더러워진 너라는 그릇에 어찌 깨달음이라는 귀한 보물을 담을 수 있겠느냐?” 그 날 이후 라후라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수행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라후라에게 쉽게 벗어버리기 힘든 짐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라후라 스스로 자신이야말로 부처님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자만심을 버리기 어려웠다.

이를 간파하신 부처님은 “라후라야, 함께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때때로 너는 현자를 경시하지는 않느냐? 사람들을 위해 횃불을 밝히는 사람(사리풋타 장로)을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라후라는 대답했다. “경시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분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행여 라후라가 왕족 출신이자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자만심으로 인해 다른 수행자들을 경시하지는 않을까 항상 경계하며 가르침을 주셨던 것이다.

깡패 봉변 뒤 인욕 참의미 깨달아

다른 수행자들 역시 부처님의 아들인 라후라를 그저 평범한 수행자로 대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한때 라후라가 부처님과 함께 기원정사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에 많은 비구들이 찾아와 방이 부족하게 되었다. 승가의 질서는 법랍, 즉 출가한 후의 햇수에 따라 유지되므로 라후라는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던 방을 선배 비구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부처님이 거주하시는 향방(香房) 앞 복도에서 쭈그리고 자야했다. 이 모습을 본 수행자들 가운데는 부처님이 자식을 밖으로 내쫓고 자신은 편하게 방에서 자고 있다고 비난하는 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라후라는 부처님과 다른 수행자들의 보살핌과 가르침으로 인해 서서히 참된 수행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후라에게 참기 힘든 사건이 터졌다. 사리풋타를 따라 마을로 걸식을 나섰던 라후라가 길에서 한 무리의 깡패를 만나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하는 일 없이 걸식으로 편하게 사는 놈들이라 욕설을 퍼부으며 그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라후라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분노로 휩싸여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인 라후라를 보며 스승 사리풋타는 조용히 타일렀다.

“라후라야, 네가 진정 부처님의 제자라면 이런 때야말로 인욕해야 한다. 성내는 마음을 참고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더냐.” 마음을 가라앉힌 라후라는 부처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던 인욕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이 일을 전해들은 부처님께서는 “잘했구나. 라후라야, 바로 그것이 출가한 사람과 출가하지 않은 사람의 다른 점이니라. 참는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다”고 말씀하시며 라후라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다. 하루하루 다르게 수행자로 거듭나는 아들 라후라의 모습을 보며 부처님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비와 인욕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라후라는 수행에 더욱 더 정진하게 되었고 깨달음에도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홀로 앉아 고요히 선정을 즐기던 중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크게 기뻐하시며 ‘깨달았다는 아만심을 일으키지 말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정진 수행하라’고 당부하셨다.

만년의 어느 날 라후라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라후라’라고 부른다. 나는 두 가지 행운을 얻었다. 하나는 내가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내가 모든 도리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여기서 ‘부처님의 아들(putto buddhassa)’이란 말을 라후라가 단순히 부처님의 제자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부처님의 혈육으로서의 아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이리라.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어쩌면 더 험난한 수행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라후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아들이기에 불도에 입문하여 사리풋타와 목갈리풋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 지도를 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때로는 장점일 수도 또 때로는 단점일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불리며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힐 만큼 훌륭하게 성장한 라후라. 이는 스승이자 아버지인 부처님 그리고 주변의 현명한

스승들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 속에서 살려낸 라후라의 노력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큰 요인이었다.

소중한 아들에게 부처님이 가장 주고 싶었던 유산은 바로 물질적인 재보가 아닌 법이라는 재보였고 라후라는 훌륭하게 그 기대에 부응했던 것이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붓다를 만난 사람들] 6.암바파리

 

 

                  빛나던 미모, 세월따라 퇴색됨 보며 무상 깨달아                     [2010년 07월 12일]

 

                          인도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여인    창녀에서 위대한 성자로 이름남겨

 

삽화=김재일

 

부처님 재세 당시 활발한 교역으로 인해 화려한 도시문화가 꽃을 피우던 북인도에는 여기저기서 그 이름을 떨치며 활약하던

고급 창녀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미모와 눈부신 젊음, 게다가 뛰어난 기예까지 갖춘 이들은 고급 창녀로 이름을 떨치며

부와 명예를 얻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창녀가 아닌 노래와 춤 그리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그야말로 사교계의 꽃이었다.

 

그녀들과 하루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한 나라의 하루 세금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지만 수많은 남성들이

그녀들의 매력에 빠져 몰려들었다. 그 중에서도 한층 더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모든 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당시 대표적인 상업도시였던 왓지국의 웨살리에서 활동하던 암바파리였다.

 

태어나자마자 웨살리 교외에 있는 한 망고 숲에 버려졌던 암바파리. 그녀를 처음 발견한 것은 그 숲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아기를 데려다가 직접 키웠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망고를 의미하는 암바(amba)와 관리인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파라(pāla)의 여성형인 파리(pālī)를 붙여 암바파리가 되었다. 성장할수록 암바파리의 미모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빛나는 눈동자, 오똑하게 선 콧날, 도톰한 입술, 그리고 연꽃처럼 발그스름한 뺨, 게다가 요염함과 영리함까지 갖춘 그녀는

결국 모든 남성들의 연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그녀를 서로 차지하고자 몰려든 남성들 사이에서는 결투까지 벌어

졌고, 이대로 두었다가는 설사 누군가와 그녀가 결혼한다 해도 시끄러워질듯 하자 결국 재판관들이 상의해서 그녀를 이 도시

의 공인 창녀로 만들어버렸다.

 

출생 직후 망고 숲에 버려져

당시 상업도시에서는 손님을 유치할 목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미녀를 창녀로 만드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고급 창녀로서의

그녀의 명성은 왓지국을 넘어 이웃 나라에까지 퍼졌고, 온 나라의 왕자들을 비롯하여 돈과 명예를 갖춘 남성들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웨살리가 사람으로 넘쳐나고 번창하는 것은 연꽃과 같은 아름다운 용모에 기예까지 갖춘 창녀

암바파리 덕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곳 사람들에게 있어 부처님은 특별한 존재였다. 웨살리에 역병이 돌 때 부처님이 와서 구해준 인연도 있었다. 부처님도

마가다국에서 갠지스강을 건너 북쪽으로 가실 때면 항상 웨살리에 들러 설법을 하셨다. 열반이 멀지 않은 어느 날, 부처님께

서는 마지막 안거를 보내기 위해 웨살리로 오셨다가 암바파리 소유의 망고 숲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암바파리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다.

부처님으로부터 흔쾌히 승낙 받은 암바파리는 돌아가는 길에 웨살리의 귀공자들인 리챠비족과 마주쳤다.

이들은 암바파리에게 자신들이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초대할 수 있도록 양보해 달라고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다.

그러자 리챠비족들은 부처님을 찾아와 자신들의 집에서 내일 식사를 대접하겠노라 제안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미 암바파리와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하시며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셨다고 한다.

 

창녀와 귀공자, 이들 사이에 그 어떤 차별도 부처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훌륭한 음식을

대접한 후 암바파리는 말했다. “부처님, 저는 이 원림을 부처님을 위시한 수행승들의 수행 장소로 바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부처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암바파리는 우바이가 되어 이후 오계를 철저히 수지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훗날 암바파리는 비구니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녀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출가했는지 구체적인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출가한 아들 위마라 콘단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위마라 콘단냐는 암바파리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웨살리에 온 부처님에게 감복하여 비구가

되었다고 한다.

출가하여 성자의 경지에 도달한 아들의 설법으로부터 암바파리는 자신의 빛나는 미모도 언젠가는 무상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망고 숲에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가난한 관리인의 손에 클 수밖에 없었던

암바파리. 그러나 그녀에게는 타고난 미모가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남성들의 마음을 녹여버릴 수 있는 매력적인

미모는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자 최대의 재산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그녀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과 함께 빛나던 아름다움도 쓸쓸한 자취만을 남긴 채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다. 아무도 시든 꽃에 눈길을 주지 않듯이 젊음을 잃고 색 바랜 그녀를 돌아보는 남자는 없었다.

 

그 무관심한 표정 앞에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잃버렸다는 상실감에 절망의 나락에 빠져 방황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불법을 만난 암바파리에게는 부처님이 설하신 무상의 가르침을 확인하는 순간들일 뿐이었다.

 

불법 접한 후 지계의 삶 살아

여성출가자들의 고백과 회상을 담은 『테리가타』라는 초기문헌에는 훗날 암바파리가 머리카락, 눈썹, 눈, 코, 귓불, 치아,

목소리, 목, 팔, 손, 유방, 몸통, 허벅지, 무릎, 발, 전신.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는 신체의 열다섯 부분, 그리고 이 모두를 갖춘

전신의 노화를 생생하게 그리며 읊었다는 다음과 같은 절절한 시구가 전해진다.

 

“예전에 내 머리카락은 빽빽하게 우거진 숲처럼 핀이나 빗으로 잘 정돈되어 꾸며져 있었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여기저기 머리

가 빠져 휑합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내 눈썹은 마치 화가가 그린 멋진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주름이 잡혀 축 쳐져 있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내 눈은 보석처럼 빛나는 감청색으로 길고 가느다란 눈꼬리였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코는 매끄러운 봉오리처럼 아름다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탄력을 잃었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귓불은 잘 만들어진 팔찌처럼 아름다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주름이 생겨 축 쳐져 있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치아는 마치 파초 봉오리의 색처럼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부서져 마치 보리처럼 누래졌습니

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목소리는 숲 속의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뻐꾸기처럼 감미로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뚝뚝 끊어집니

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목은 잘 다듬어져 매끄러운 소라고둥처럼 아름다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구부러졌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손은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나무뿌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유방은 풍만하게 부풀어 올라 둥그렇고 균형이 잡혀있었으며 위를 향해 있었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물 빠진

피부껍질처럼 축 늘어져 버렸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몸통은 잘 다듬어진 황금의 판처럼 아름다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얇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을 뿐입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두 허벅지는 매끈한 발찌를 차고 황금으로 장식되어 아름다웠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참깨줄기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예전에 나의 두 발은 면을 채워 넣은 신발과도 같이 훌륭했지만 늙어버린 지금은 살갗이 트고 주름이 잡혀 있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이렇게 잘 모여 만들어진 나의 몸은 늙어 뼈만 앙상하게 남아 많은 괴로움만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그것은 도료가 벗겨

떨어져 나간 황폐한 집입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아들 콘단냐 법문에 출가 결심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과 지금의 늙은 모습을 몸의 각 부분에 걸쳐 세세히 대비시키며 그 무상함을 읊고 있는 이 시는

한 때 아름다움을 최고의 무기로 삼고 살아온 암바파리이기에 가능한 내용인지도 모른다.

 

그리도 아름답던 자신의 신체가 하루하루 그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암바파리는 누구보다 무상의 진리를 직시

하게 되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거짓은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리라.

더 이상 빛나는 외모는 없지만 이제 진리를 깨달은 성자로서 내면의 빛을 발하고 있는 암바파리.

 

아무 것도 없는 그녀에게 세속적인 삶의 문을 열어주었던 아름다운 외모는 그 모습을 바꾸어 나타남으로써 오히려 그녀를

세속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출세간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인도를 대표하는 미인으로 거론되는 암바파리, 진리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춘 그녀이기에 더욱 더

빛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