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 = 앙구리 마라. 끼사 고따미

백련암 2010. 6. 21. 01:02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① 앙구리마라

 

출가는 면죄부 아닌 참회 인연의 시작이었다                 [2010년 04월 28일 13:17 수요일]

 

부처님께선 35세에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후 45년간 수많은 대중들을 교화하셨다. 그 중에는 왕, 바라문, 장군은 물론 수행자, 학자, 상인, 천민, 살인자, 기녀에 이르기까지 지위도 연령도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고요한 눈빛에서 한량없는 위안을 얻었고 그 분의 말씀에서 삶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지는 초기불교 연구자인

이자랑 박사의 ‘붓다를 만난 사람들’을 통해 대중들의 눈에 비친 부처님의 새로운 면모를 격주로 전달한다. 편집자


 

붓다 만나 살인 멈추고 수행자로 거듭

 
인욕-정진하는 용기야 말로 참된 참회

 

 

‘잘 왔구나, 비구여(ehi bhikkhu).’
이는 불교승가에 구족계 의식이 아직 체계화되지 않았을 때, 새로운 출가자를 받아들이며 부처님께서 한 말씀이다.

초전법륜을 시작으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는 순간까지 이어진 45여 년에 걸친 교화 기간 동안, 인도 곳곳에서

갖가지 사연을 안고 방황하던 많은 이들이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입단 허락과도 같은 이 말과 함께

부처님의 따뜻한 품 안으로 들어왔다.

그 많은 수행자들 가운데, 특히 희대의 살인마에서 성자로 다시 태어난 ‘앙구리마라’ 비구의 극적인 이야기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 나락에 떨어져 허덕이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참회와 인욕을 통해 새로운 삶을 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이른 아침, 신통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스스로의 무지를 모른 채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없는가.’ 내버려 두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어 더 이상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로 빠져들지도 모를 이들을 염려하며 세상 곳곳을 살피던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근처 숲에서

피범벅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앙구리마라를 발견하셨다.

 “내가 가면 저 자는 출가하여 평안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가지 않는다면, 마지막 손가락 하나를 얻기 위해

어머니까지 죽이는 죄를 범하여 구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를 구해주자.”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앙구리마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다.

앙구리마라는 부처님 당시 16대국 가운데 하나였던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 주변에서 살인을 일삼으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던 흉적이었다. 그는 생물에 대해 무자비한 흉적으로, 날마다 살육을 저질러 항상 손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사위성 주변의 마을들은 점차 폐허가 되어 갔다. 앙구리마라란 손가락 목걸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을 죽여 그 손가락을 꿰어 목에 걸고 다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무슨 사연으로 앙구리마라는 이렇게 끔직하고 엽기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앙구리마라는 원래 코살라국 파세나디왕의 왕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각가, 어머니는 만따니였다.

그의 이름은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아힘사까였다. 아버지는 아힘사까에게 학문과 기예를 익히게 하기 위해

탁실라에 사는 한 바라문 밑으로 유학을 보냈다. 뛰어난 자질과 성실함으로 아힘사까는 스승과 스승의 아내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면학에 힘쓰고 있었는데, 이를 질투한 다른 제자들이 앙구리마라가 스승 몰래 스승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모함을 했다. 결국 음모에 넘어간 스승은 극도의 배신과 분노를 느끼며,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복수하고자 마음먹었다. 어느 날 스승은 아힘사까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힘사까야,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특별한 가르침이 있는데, 네게만 가르쳐 주마. 한 번 실천해 보겠느냐?” “물론입니다. 열심히 실천하겠습니다.”

스승이 일러준 특별한 가르침이란, 바로 천명의 남녀를 죽이고 그로부터 손가락 한 개씩을 모아 목걸이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아힘사까의 학업을 완성시켜 주는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말에 순간 망설였으나, 아힘사까는 학업을 완성시켜 진리를 깨닫고 싶은 마음에 스승의 말을 믿고

실천하기 위해 사위성으로 들어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칼을 휘두르고 손가락을 잘랐다.

이렇게 999명을 죽인 후, 마지막 한 명을 채우기 위해 사위성 근교의 한 숲에 숨어 있었다. 이 때였다.

부처님께서 그를 발견하고 만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가신 것은. 한 사람을 더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앙구리마라는 숲 입구에 서 있다가, 저 멀리 부처님께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옳거니 하며, 그는 칼과 화살을 챙겨들고 부처님의 뒤를 쫓았다. 한편, 부처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보통 속력으로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가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전속력으로 따라가도 앙구리마라는 부처님과의 사이를 좁힐 수 없었다. 한 때, 달리는 코끼리나 말조차도 쫓아가서 포획한 적이 있던 앙구리마라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기를 쓰고 쫓아가다 지친 앙구리마라는 멈추어 서서 소리쳤다.

“멈춰라, 멈춰라.” 
“앙구리마라여, 나는 멈추어 있다. 앙구리마라여, 너야말로 거기 멈춰 서거라.”
그러자 앙구리마라는 진리를 깨달아 진리를 공언하는 석자의 사문이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이렇게 물었다.

“사문이여, 너는 걸어가고 있으면서 멈추어 서 있다고 하는구나. 너는 멈추어 서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앙구리마라여, 나는 생물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일로부터 떠나 자비와 인욕을 성취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멈추어 서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너는 생물에 대한 자제가 없어, 살아 있는 것을 해치고

괴롭히며 자비와 인욕이 없다. 너는 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른다. 그래서 너는 멈추어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앙구리마라는 문득 제 정신이 들며, 그 동안 자신이 저질러온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앙구리마라는 후회하는 마음에 몸서리쳤다. 그리하여, 부처님 앞에 엎드려 진심으로 참회하며 출가의 청을 드렸다. 그런 앙구리마라를 부처님은 “잘 왔구나. 비구여”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제자로 받아들여 주셨다.

이후, 앙구리마라는 철저히 계율을 지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나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적 앙구리마라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 날 사위성으로 탁발을 나간 앙구리마라를 알아 본 사람들은 그에게 흙덩어리와 몽둥이, 돌 등을 던지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앙구리마라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발우도 깨지고 가사도 찢어졌다. 피범벅이 된 처참한 모습으로 앙구리마라는 간신히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저 멀리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참담한 모습의 앙구리마라를 보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앙구리마라야, 참고 견뎌야 한다. 네가 지옥에서 수년,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받아야만 할 업의 과보를, 너는 현세에서

받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도 감동적인 장면이다. 앙구리마라의 진정한 참회는 출가수행자로서의 삶과 함께 시작되었던 것이다.

오로지 일반인들의 존경으로부터 주어지는 보시물로 살아가야 할 수행자 앙구리마라에게 있어, 사람들의 핍박은 거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안겨 준다. 발우에는 쌀 한 톨도 주어지지 않고, 온갖 욕설은 쏟아지고, 이리저리 두들겨 맞아 피멍이 든

온 몸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할 것이다.

앙구리마라로 인해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를 알고 계시기에 부처님은 측은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반드시 그 상황을 감수하여 자신의 업보를 스스로 씻어버려야 한다며 앙구리마라를 채찍하고

계신 것이다. 부처님을 만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해서, 그래서 출가했다 해서 그가 이전에 지은 죄까지도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과의 만남, 그리고 출가는 앙구리마라가 참회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계기였을 뿐이다.

자신의 업보를 청산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며, 이를 위해 인욕하고 정진하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참회이다.

그 동안 자신이 무지하게 저질러온 행위가 얼마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큰 잘못이었는가를 자각하고, 이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앙구리마라는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훗날, 앙구리마라는 해탈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이런 시구를 읊었다. “이전에 나태했다 하더라도 지금부터 부지런히 정진

한다면,/ 그는 이 세상을 밝히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전에 지은 악업을 선으로 감싼다면,/ 그는 이 세상을 밝히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자랑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이자랑 박사는
동국대 인도철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초기불교교단의 연구-승가의 분열과 부파의 성립」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외국인 특별연구원을 거쳐 현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율장에 나타나 부동주에 관하여」, 「승가의 추방에 관하여-멸빈」을 중심으로 「소소계에 관한 논쟁」, 「승가화합의 판단기준에 관하여」 등 논문과 『나를 일깨우는 계율 이야기 』, 『인도불교의 변천』 등 저술과 번역서가 있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② 끼사 고따미

 

자식 죽음으로부터 생로병사 인연 깨닫다                  [2010년 05월 10일 16:07 월요일]

 

모진 시집살이 끝에 얻은 아들 죽자 방황,           인과 법칙 깨닫고 수행자로 다시 태어나..

 

 

부처님 당시, 북인도에 있었던 16대국 가운데 하나인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띠는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대도시였다.

끼사 고따미는 이 대도시의 한쪽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어느 한 가난한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보기에도 측은할 정도의 빈약한 인상과 체형을 지닌 탓에 그녀는 말라깽이(끼사) 고따미라 불렸다.

사춘기를 앞둔 어느 날, 그녀는 행복을 꿈꾸며 상인의 아들과 혼례를 올렸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부모는 그녀를 구박하며 학대했고, 남편 역시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는 여자에게는 사후, 천계의 문도 굳게 닫혀 있다고 여겨지던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난

이상, 그녀에게 있어 결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또한 결혼한 이상 그녀가 의지해야 할 대상은 남편과 시집 식구들뿐

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외면당하며, 끼사 고따미는 희망이라고는 없는 그저 막막하고 고된 날들을 보내야 했다.

왜 살아가는지, 언제까지 이 고통은 계속되는지, 정말 아무런 삶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하루 하루였다.

 

“가난한 집 딸” 이라며 구박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도 행복이 찾아왔다. 아들을 낳은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은 끼사 고따미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사랑스러운 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 주는 존재

였다. 무엇보다, 남성 위주의 고대 인도사회에서 아들의 출산은, 그녀를 사회적 존재로서 인정받게 해 주는 일이었다.

가장이 된 남자의 가장 큰 의무는 조상에 대한 제사의 지속을 위해 가계를 존속시키는 일, 다시 말해, 다음 가장이 될

남자아이를 생산하는 것이 최대의 의무였다. 그러나 이는 남자의 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여자에게 더 큰 역할을 요구하는

일이다.

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결혼해서 가계를 존속시켜 줄 아들을 생산하는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들을 낳은 여성은 이제 ‘아무개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이제 죽어 천계에 가서도 조상들 앞에 당당히 얼굴 들고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무를 잘 실행해 낸 끼사

고따미를 남편과 시부모도 예전과는 달리 대해주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들의 가문을 이어줄 아들을, 손자를 낳아준 아내

이자, 며느리인 것이다. 끼사 고따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을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키웠다. 아들의 존재가 곧 자신의 존재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아들이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삶에 있어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의 죽음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이 없는 자신의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화장터로 시신을 옮기려는 사람들을 밀치고, 그녀는 축 늘어진

아들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실성한 듯 마을로 뛰쳐나갔다. ‘좋은 약을 구하면 우리 아기는 분명 다시 건강해 질거야.’

너무 슬픈 나머지 아들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마을 곳곳을 헤매고 다니며 “혹시 우리 아기의 병을 낫게 할

약을 아시나요. 가르쳐 주세요. 제발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마을 사람들은 위로의 말도 못 찾은 채, 그저 눈물을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그 모습을 측은히 여기며

지켜보던 한 지혜로운 이가 “아드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모르지만, 아마 그 분이라면 약을 알고 계실 겁니다”라며,

부처님에게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끼사 고따미는 그 길로 부처님이 계신 제따숲으로 달려갔다.

“부처님, 우리 아기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알고 계실 거라 들었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가슴에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실성한 듯 절규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처님께서는 자식을 잃은 어미가 느낄

깊은 상실감과 비탄에 더할 나위 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셨다.

그녀를 구제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을에 가서 한 명도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

다시 말해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그 누구도 죽은 적이 없는 집으로부터 겨자씨를 얻어 온다면 네 너에게 그 약을 알려주마.” 끼사 고따미는 아기를 끌어안고 다시 마을로 달려갔다.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리며, 사람이 한 번도 죽어 나간 적이 없는 집을 찾아 미친 듯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런 집은 없었다. 발이 다 헤어질 정도로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런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다”

어느 덧 해도 저물고 주위는 캄캄해졌다. 망연자실하며 주저앉아있던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지금까지 나는 내 자식만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미 죽었구나.’

그 순간, 그녀는 아들의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그녀의

마음은 평상심을 되찾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집착해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이,

끝도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며 위안을 얻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 너무나도 빨리 찾아 온 아들의 죽음이기에 더 한스럽지만,

그 역시 생류가 지고 가야 할 운명인 것이다.

끼사 고따미는 소중하게 부둥켜안고 있던 아들의 시신을 묘지로 데려가 내려놓은 후, 부처님을 다시 찾았다.

“겨자씨는 얻어 왔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온 마을의 집들을 다 돌아다녔지만,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러하다. 끼사 고따미여,

너는 오직 네 아들만이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죽음이란 살아있는 모든 것이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니라.

죽음의 왕은 아직 바람을 이루지도 못한 모든 생류를 괴로움의 바다로 던져버린다. 마치 대홍수가 모든 것을 쓸어 가버리는 것처럼.” “부처님,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터득한 그녀는 출가자의 길로 들어섰다.  출가 후, 그녀는 열심히 수행하여 지혜를 완성했다. 혹독한 수행을 당연하다 여기며, 항상 초라한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의제일(粗衣第一)이라 불릴 정도였다.

출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녀는 어느 날 밤, 포살당에서 많은 등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조용히 앉아 명상하면서 등잔불이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아, 사람들은 윤회하며,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고 죽어가며 괴로움의 세계를 방황하고 있지만, 열반을 얻은 사람만은 그런 일이 없구나.”

끼사 고따미는 등잔에 불을 켤 때 불꽃이 크게 일어났다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존재하는 것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도리를

선명하게 알아차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향실에 앉아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생각을 아시고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거셨다.

“끼사 고따미여,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지만, 열반을 얻은 사람에게 이미 생사는 없다.

그러므로 열반을 알아야 한다.”그리고,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불사의 경지를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 보다,

설사 찰나의 삶일지라도 불사의 경지를 볼 수 있다면 이 보다 좋은 것은 없다.”

 

멀리 앉아 있던 끼사 고따미의 마음속에도 이 말은 전해졌고, 그녀는 모든 존재의 무상한 모습에 마음을 집중하고 열반을

체득하기 위하여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 결과,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붓다 만난 후 진리에 눈 떠

훗날 끼사 고따미는 이런 시구를 읊었다.


“저는 화살을 뿌리 채 뽑아버리고,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마쳤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라는 화살, 언제까지나 그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의 길을 완성한 것이었다. 자식의 죽음이라는,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참담한,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에 더욱 더 가혹한 현실 앞에서, 부처님은 끼사 고따미가 생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함으로써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었다.

진리를 꿰뚫어보는 지혜와 따뜻한 자비심으로 가득 찬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자식을 잃고 깊이 방황하던

한 어머니에서, 이제 삶의 진리를 통찰하는 훌륭한 수행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천년의 인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이란 허공 같아서  (0) 2010.06.22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 = 파세나디. 웁파라반나  (0) 2010.06.21
마음 과 의식  (0) 2010.06.20
  (0) 2010.06.20
생사가 급하고 급하다  (0) 201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