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 = 지와카. 말리카

백련암 2010. 8. 6. 02:39

[붓다를 만난 사람들] 7. 지와카

 

중생의 고통 자비로 보살핀 약왕보살

 

끝없는 노력으로 당대 최고 ‘의사’로 칭송,   이익 좇던 냉혈한서 아픔 함께하는 명의로

 

삽화=김재일

 

왓지국의 웨살리가 창녀 암바파리로 인해 크게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그녀를 능가하는

아름다움으로 자국을 번영시켜 줄 여인을 물색했다. 선발된 것은 청순미가 돋보이는 사라와티(Sālavatī)라는 여인이었다.

고급 창녀가 되는 교육을 받고 기예까지 갖추게 되자, 사라와티의 명성과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웨살리에 암바파리가 있다면 라자가하에는 사라와티가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녀의 존재감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라와티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임신 사실이 퍼지면 더 이상 남자들은 자신을 찾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명성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 모르게 아기를 낳아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태어나자마자 그 가엾은 핏덩어리는 작은 바구니에 넣어져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졌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 했던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 아기를 발견하고 멈추어 선 것은 다름 아닌

빔비사라왕의 아들 아바야 왕자였다. 아바야 왕자야말로 이 아기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기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왕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기는 살아 있느냐?” 아기를 살펴본 사람들이 대답했다.

 “예, 아직 살아있습니다.” 사람들의 이 대답은 그대로 아기의 이름이 되어 ‘지와카(살아있는)’라 불렸다.

자식이 없던 아바야 왕자는 지와카를 소중하게 키웠다. 자신의 아들인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왕자는 마치 친자식을 대하듯

귀여워했다. 그러나 부모를 그리워하는 지와카의 마음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일까.

성장한 지와카는 어느 날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아바야 왕자에게 물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그 어떤 얘기도 들을 수 없었다.

낙담한 지와카는 그저 왕가에 의존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불안과 회의를 느끼며 당시 교육의 중심지였던 서북인도의

탁실라로 의술을 배우기 위해 떠났다.

학업에 전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지와카에게 7년 과정의 교육이 끝난 어느 날 스승은 호미 한 자루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탁실라 근교에서 약재로 사용할 수 없는 모든 식물을 채집해 오너라.” 지와카는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약재로 사용할 수 없는 식물은

단 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가는 곳 마다 찾아보았지만 약재가 될 수 없는 식물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스승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지와카야, 훌륭하구나. 넌 시험에 합격했느니라.”

스승으로부터 약간의 여비를 받은 지와카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길을 떠났다.

그런데 도중에 사케타라는 곳에서 어느 장자의 아내의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 두통을 고질병으로 앓고 있었는데,

지와카는 단 한 번의 치료로 그녀의 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었다.

그러자 장자는 크게 기뻐하며 치료해 준 대가로 지와카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와카는 자신을 정성껏 키워준 아바야 왕자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픈 생각에 장자로부터 받은 돈을 모두

왕자에게 건넸다. 그러나 아바야 왕자는 사양하며 대신 라자가하에서 살아달라고 부탁한다.

아들과도 다름없는 사랑스러운 지와카를 그저 곁에 두고 바라보며 살고 싶은 아바야 왕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부탁이었다.

왕자의 청을 받아들여 라자가하에 머무르게 된 지와카는 치질을 앓고 있던 빔비사라왕을 치료한 후 왕궁의 주치의가 되었고,

이후 모든 의사들이 다 포기한 난치병을 거뜬하게 고치며 명의로서 명성을 높이게 되었다.

 

부처님-승단 주치의 자청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당시 최고의 명의 자리에 올랐으나, 지와카는 아직 기술이 뛰어난 의사일 뿐 병으로 고통 받는 병자에 대한

진정한 연민과 자비는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왕궁의 주치의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라자가하의 한 대(大)상인이 중병에 걸렸는데

모든 의사가 치료 불가능하다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빔비사라왕은 자신의 주치의인 지와카에게 그 상인을 치료하도록 했다.

지와카는 치료 조건으로 자신과 왕에게 각각 10만금이라는 거액의 보수를 줄 것, 그리고 환자는 처음 7개월 동안은 한 쪽 옆구리로,

그 다음 7개월 동안은 다른 쪽 옆구리로, 또 그 다음 7개월 동안은 똑바로 천정을 보고 누워 안정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환자가 그 요구를 받아들이자 지와카는 그를 침대에 묶고 두피를 절개하여 그 상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던 두 마리의 벌레를 끄집

어낸 후 상처를 꿰매었다. 그러나 환자는 도저히 한쪽 옆구리로 7개월씩이나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간신히 1주일을 버텼을 뿐이었

다. 하지만 그는 3주 후에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자 지와카는 “그때 7개월이라고 말해두었기 때문에, 그나마 1주일이라도

누워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뛰어난 의술로 병을 고쳐주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 병으로 고통 받아온

사람에 대한 배려나 연민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모습이다.

이런 지와카가 어느 날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다.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시던 부처님이 병이 나자, 시자 아난다가 빔비사라왕에게

청하여 지와카를 부른 것이었다. 치료가 다 끝난 후, 부처님은 병과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지와카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셨다.“지와카야, 육체의 병보다 마음의 병인 번뇌야말로 더 큰 병이니라. 병은 무엇보다 그 근본을 먼저 치료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의사는 자비심으로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 결코 이익에 집착해서는 안 되느니라.”

 

치료 받기 위해 출가자 급증

남다른 의술을 갖춘 지와카가 인간의 미묘한 심신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좀 더 적확한 치료를 하고, 또한

병자의 아픔을 곧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심을 갖춘 훌륭한 의사로 거듭나기를 부처님께서는 바라셨던 것이리라.

이 가르침을 들은 지와카는 크게 감복하여 부처님이야말로 의사 중의 의사, 의왕(醫王)이라 칭송하며 신심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와카의 의술 속에서도 빛을 발하게 된다.

지와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를 병자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즉, 환자의 몸에 나타난 각종 증세를 병이라는 괴로움으로 보고, 이 증세가 나타나게 된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함으로써 필요한 치료

법을 파악, 결과적으로 병의 치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그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지와카로 하여금 환자의 질병에 대한 좀 더 세심한 관찰과 성의 있는 치료를 하게 만들었다.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지와카는 진정한 ‘명의 지와카’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인격과 그 가르침에 크게 감복한 지와까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건강하게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위생상태가 좋을 리 없는 고대인도 사회에서 유행생활이나 공동체생활을 해야 하는 출가자들에게 있어 지와카는 정말 고마운 존재

였다. 부처님이 감기에 걸리셨을 때도, 데와닷타가 던진 돌로 발에 상처를 입으셨을 때도, 변비나 설사로 고생을 하실 때도 지와까는

성심성의껏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하도록 했다.

또한 부처님과 제자들이 분소의, 즉 공동묘지나 쓰레기장에서 주운 옷을 입어 질병에 걸리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부처님께

수행자들이 새로운 가사를 입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청했다. 부처님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셨고, 더러운 옷이라도 햇볕에 잘

말려 입도록 당부하셨다고 한다. 또한 뜬눈으로 밤새워 정진하다 눈먼 아누룻다를 치료하기도 했으며,

창병에 걸린 아난다를 치료해 병을 고쳐주기도 하는 등, 부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도 정성을 다했다.

그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지와카의 치료를 받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승가에 출가하는 사람들까지 출현할 정도였다.

당시 라자가하 주변에 나병이나 피부병과 같은 전염병이 돌자 치료받기 어려워진 일반인들이 지와카의 치료를 받기위해 무더기로

승가에 출가한 것이었다. 병이 나은 자들은 물론 그 즉시 환속했고 이로 인해 출가자들 사이에는 불신이 생겨 혼란스러워졌다.

이 사태를 염려한 지와카는 부처님께 중병을 지닌 사람은 병을 치료한 후 출가하도록 하자는 청을 올렸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서

구족계를 받을 때 건강 유무를 확인하는 이른바 신체검사와 같은 절차가 제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와카는 눈에 보이는 상처만을 기계적으로 치료하는 그저 의술이 뛰어난 의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지와카는 인간의 심신이 유기적인 관계에 있으며, 이를 잘 관찰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

내고 이를 올바른 방법으로 치유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는 병자가 안고 있는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고통 받는 병자에 대한 진정한 연민 없이는 실천 불가능한 일이다.

‘명의 지와카’. 그의 살아 숨 쉬는 의술은 생류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비심으로 생류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생명을 부여받은 것이었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8. 말리카

 

비천한 노예에서 왕비로 거듭난 자비의 화신

 

볼품 없는 외모마저 넓은 마음으로 극복
부처님께 귀의…‘백성의 어머니’로 칭송

 
삽화=김재일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티의 한 변두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말리화원. 당시 이름난 대부호이자 바라문이었던 야즈냐닷타 소유

의 화원으로, 흐드러지게 핀 말리꽃이 바람에 꽃잎을 흩날릴 때면 은은한 향기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낙원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곳에는 말리꽃을 손질하며 화원을 지키는 한 소녀가 있었다.

 

환상적인 화원의 모습과는 달리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이름은 카필라(Kapila). 야즈냐닷타 소유의 노예였던 그녀는 말리

화원의 옥의 티라고 느껴질 정도로 볼품없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노예로 태어나 가진 재산도 권력도 없는데다 타고난 미모도 없는 그야말로 살아가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기대어볼 만한 곳이

라곤 전혀 없는 처량한 신세였지만 그녀는 항상 간절히 꿈꾸었다.“어떻게 하면 노예 신분으로부터 벗어나 한 여자로 행복하

게 살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도시락을 챙겨 화원으로 향하던 그녀는 도중에 한 사문을 발견했다.

왠지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저 사문에게 이 밥을 보시하면 혹시 그 공덕으로 내게도 무슨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수행자에 대한 보시야말로 큰 공덕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카필라는 이 선행으로 인해 자신에게도 행운이 찾아

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던 것이다. 그녀는 노예라는 자신의 신분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사문에게 밥을 건넸다.

사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음식을 받아주었다.

 

한편 그녀가 말리화원으로 들어갔을 무렵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사슴의 무리를 발견하고 정신없이 뒤를 쫓다 일행과 헤어지게 된 왕은 우연히 말리화원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왕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한눈에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안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웃옷을 한 장 벗어 자리에 깔고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발을 씻으시겠습니까?’라고 물어 그리 하겠노라고 하자 연꽃잎에 물을 담아 와서 발을 씻겨주었다.

또 ‘마실 물을 준비할까요?’라고 물은 후 그리하겠노라고 하자 마실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는 왕을 편안하게 눕게 한 후

온 몸을 시원하게 안마해 주었다. 길을 잃고 헤매 다니다 지칠 대로 지쳐있던 왕은 피곤이 싹 풀렸다.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모든 것을 알아서 미리 대처해 주는 그 소녀의 현명한 처사에 감탄한 왕은 그녀의 주인인 야즈냐닷타

를 불러 고액을 지불한 후 처로 삼겠다며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갔다.

 

왕의 총애에도 항상 겸손

갖가지 장신구와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되어 궁전에 들어선 카필라는 그때서야 자신을 데려온 사람이 파세나디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카필라는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한 예의범절과 교양을 갖추기 위해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말리화원에서 왔다고 하여 말리카(Mallikā)라고 불렀다. 파세나디왕의 총애를 받으며 성숙함을 더해가던

어느 날 말리카는 왕의 500여 명의 여인 가운데 제1부인으로 선발되었다. 다른 여인들에 비해 모든 조건은 뒤떨어졌지만

세심하고도 배려 깊은 말리카의 언행과 배려 깊은 마음씨에 애정을 느낀 왕이 그녀를 선택한 것이었다.

어느 날, 사왓티가 한 눈에 다 내려다보이는 높은 누각에 오른 말리카는 지난날을 회상하다 생각했다.“한낱 노예에 지나지 않

던 내가 무슨 업보로 오늘 날 이와 같이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을까? 이는 필시 그 사문에게 밥을 보시한 공덕이리라.”

말리카는 옆에 있던 시녀에게 물었다. “혹시 이러이러한 모습의 사문을 너는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아마 부처님

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이 대답을 들은 왕비는 크게 기뻐하며 왕의 허락을 얻은 후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로 향했다.

빛나는 용모, 모든 감각기관을 제어하고 있는 듯한 평온함, 코끼리왕과도 같은 위엄, 청정무구한 모습…. 바로 자신이 지난

날 밥을 보시했던 그 사문이었다.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며 말리카는 부처님께 다가갔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했다.

 “부처님이시여, 같은 여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어떤 여자는 얼굴도 못생기고 가난하며 신분도 천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여자는 얼굴도 예쁘고 재산도 풍부하며 신분도 높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까?”

그녀에게는 인생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큰 문제이자 의문이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왕비가 되었으나 한때 그녀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못생긴 여자노예에 불과했다. 말리화원에서 꽃놀이

를 즐기는 고귀한 집안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바라보며 카필라는 수도 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무슨 연유로 나는 저 여인들

처럼 아름답지도 부유하지도 못하게 태어난 것일까? 나도 저 여인들처럼 아름다운 용모에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지금

정말 행복할텐데….”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화를 잘 내며 즐겨 사람을 괴롭히고 심한 잔소리나 꾸중을 늘어놓는 여자는 얼굴이 미워지느니라.

욕심이 많아 사문이나 바라문, 가난한 자, 노인 등에게 보시하지 않고 의복이나 음식, 마차, 향화, 장신구 등을 베풀지 않는

여자는 가난해지느니라.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는 여자는 신분이 낮아지느니라.”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해 항상 분노하며 남을 책망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그 감정이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외적인 아름다움도 정신적인 바른 변화와 실천을 통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또한 보시하지 않는 이는 더욱더 가난해지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는 이는 결코 스스로도 성공할 수 없다고 설하심으로

써, 자신밖에 모르는 인색한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앞으로 진보하는 길을 발견할 수 없음을 가르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말리카는 자신이 아름답지도 부유하지도 또한 고귀하지도 못하게 태어난 것은 전세에 이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는 성내는 일 없이 널리 베풀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인연공덕의 힘 삶으로 보여줘

“부처님이시여 왕궁에는 왕족 출신의 여자도, 바라문 출신의 여자도, 장자 계급 출신의 여자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들에게

주권을 행사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화내지 않겠습니다. 많이 번뇌하지도 않겠습니다. 이것저것 전해 들어도 집착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으며

본성을 잃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문과 바라문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도록 하겠습

니다. 질투심을 없애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바라며 공경, 존경, 예배공양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어지는 부처님의 설법을 다 들은 후 말리카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며 평생 우바이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고 오계를 수지했

다. 이후 말리카는 평생 신심 깊은 우바이로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성심성의껏 모셨다.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이간질, 왕의 총애를 차지하려는 여인들의 질투…. 자칫하면 말리카는 그 한 가운데서 오만하고 고집

스러우며 신경질적인 여인으로 변해갔을지도 모른다. 최고 권력자인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자만하

게 만들 수 있었고, 또한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주위 사람들의 갖가지 아부와 고자질은 그녀의 감정을 항상 동요시켰을 것이

다.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그녀를 속박하는 자신의 출신, 그리고 자신보다 너무나도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빛나는 외모….

이를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열등감도 그녀를 괴롭히는 큰 요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으로서의 삶을 발견한 말리카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현명하게 대처해 나갔다.

 

한 나라의 왕비인 만큼 말리카의 총명하고도 현명한 처사는 남편 파세나디왕에게도 영향을 미쳐 선정으로 이어지게 했다.

한때 파세나디왕은 주변의 잘못된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대희생제를 하고자 했는데 말리카는 왕의 어리

석은 행동을 깨우치며 부처님께 인도했다.

이때 목숨을 구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생명의 어머니, 생명의 은인’이라 칭송했다고 한다. 파세나디왕도 말리카 못지않

게 신심 깊은 우바새였으나 국정으로 바빠 부처님을 자주 찾아뵐 수 없었다. 이런 왕을 위해 말리카는 자신이 불법을 배워

틈나는 대로 알려드리겠다고 제안했다.

어느 날 자식을 잃은 사람이 찾아오자 부처님께서는 ‘애정이야말로 괴로움의 원인이니라’고 하는 가르침을 주셨다.

왕에게 이를 전하자 왕은 애정이 어떻게 괴로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왕에게

왕비는 알기 쉬운 예를 들며 설명했다.

 “왕이시여, 만약 제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왕은 어떠시겠습니까?” “너무 슬퍼 괴로움에 몸부림칠 것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왕이 저에 대해 애정이 없다면 슬프거나 괴로울 이유도 없습니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도 있는

것입니다.”

혹독한 계급사회에서 노예라는 제일 낮은 신분의 여자로 태어나 한 나라의 왕비에까지 오른 말리카. 부처님께 자신의 끼니를

공양한 인연이 정말 그녀에게 극적인 행운을 가져다주었는가 아닌가는 차치하고라도, 이를 계기로 이루어진 부처님과의

재회를 통해 그녀는 한 여인으로써 나아가 한 나라의 왕비로서 스스로도 행복하고 다른 이도 행복하게 하는 지혜로운 길을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이토록 아름답고 현명한 말리카이기에 평생 파세나디왕과 국민들의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또한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 후에 조차도 그들은 진정 애통해 했던 것이리라.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