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 = 파세나디. 웁파라반나

백련암 2010. 6. 21. 01:38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③ 파세나디(Pasenadi)

 

 권력의 뒤안길에서 진리 앞에 무릎 꿇다                                    [2010년 05월 24일 14:28 월요일]

 

붓다는 왕의 길 일러준 정신적 지주          권력남용·재물·쾌락 등 경계 당부

 

 
삽화=김재일

부처님 당시, 갠지스강 서북쪽에서 강대한 국력을 지니고 융성하고 있던

코살라국. 그 곳의 왕은 파세나디였다. 코살라국은 당시 16대국 가운데서도

특히 번영을 이룬 나라로, 경전의 묘사로부터 추측해 보건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으로 가득했던 곳이었다.

이런 대국의 왕이었던 파세나디는 어느 날, 세상에 붓다가 출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평소 출가 수행자들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고 있던 파세나디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를 찾았다.

그런데 왕의 눈에 비친 부처님의 모습은 예상과는 달리 너무 젊었다.

‘이 자가 정말 붓다일까?’ 내심 석연찮게 여기며 인사를 나눈 후, 왕은 당시 대중들로부터 널리 존경을 받고 있던 유명한 사문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조차

깨달았다고 말하지 않는데, 어찌 나이도 젊고 출가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고타마 당신은 깨달았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어리거나 작다고 깔보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될 것으로

무사, 뱀, 불씨, 수행승의 4가지를 예로 드시며, 어린 무사라 할지라도 무시

하면 가차 없이 공격을 당하게 되고, 어린 뱀도 물리면 죽을 수 있으며, 불씨도 능히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수 있고, 어린 수행자도 언젠가는 큰 깨달음을 얻어 각자가 될 수 있다고 설하셨다.

 

이 가르침을 들은 파세나디왕은 부처님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지혜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다.

 

인도 최고 강국의 대왕

그날 이후, 왕은 틈나는 대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했다. 권력의 남용과 오만, 여색, 재물이나 쾌락에 대한 집착,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등과 같은, 가진 자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온갖 유혹에 현혹되지 않도록, 부처님은 파세나디왕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세간의 지도자가 올바른 생각과 현명한 판단력을 지니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잘못된

그늘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부처님과 파세나디왕의 만남은 코살국의 백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던 것이리라.

 

한 번은 왕이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태어난 자 가운데 늙음과 죽음을 비껴간 자가 있습니까?” ‘불로장생’, ‘영생(永生)’모든 것을 다 가진 왕으로서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일이다. 실제로 역사상의 많은 왕들이 불로장생이나 영생을 꿈꾸며

희귀한 약초와 약을 구하고자 혈안이 되지 않았던가.

또 자신의 사후 관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을 고되게 했던가. 파세나디도 부족할 것 없는 자신의 삶에서 늙음과 죽음이라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제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부처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대왕이여, 태어난 자 가운데 늙음과 죽음을 비껴간 자는 없습니다.

아무리 재물과 곡식이 풍부한 권세 있는 귀족이라도 늙음과 죽음을 비껴간 자는 없습니다.

번뇌를 다한 아라한으로 생존의 속박을 끊은 해탈한 수행자라 하더라도 이 몸은 부서져야 하고 버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참다운 법만은 노쇠하지 않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축제의 날이었다. 파세나디왕은 온갖 장식으로 훌륭하게 치장된 흰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거리를 시찰하고 있었다.

왕을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저 멀리 한 건물의 창문에서 한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깐 왕을 보고는 곧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던 파세나디왕의 눈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들어왔다.

완전히 마음을 뺏겨버린 왕은 서둘러 왕궁으로 돌아와서는 대신에게 그녀의 신상 조사를 명했고, 그 결과

그 여인에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그를 데려오게 한 후 자신의 신하로 삼았다. 무언가 트집을 잡아 처형시키고 그의 아내를 빼앗으려는 속셈이

었다. 그녀에게 반해 버린 왕의 마음이 판단력을 잃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기를 느낀 이 남자는 열심히 일했고 좀처럼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참다못한 왕은 “이 보거라. 근처 강에 가서

하얗고도 파란 연꽃과 적토(赤土)를 가져 오거라. 만약 오늘 내 목욕 시간까지 대령하지 않는다면 너를 죽일 것이다”라는

억지스러운 명령을 내렸다. ‘하얗고도 파란 연꽃이라니...’ 공포에 질린 남자는 집으로 가서 도시락을 챙긴 후 강으로

뛰어갔다. 그는 밥을 조금 덜어낸 후 나머지를 먹기 시작했다. 마침 걸식자가 지나가자 덜어낸 밥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주먹은 물속에 던져 넣고 입을 헹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부근에 사는 금색의 용신(龍神)이시여. 부디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왕은 저를 처형하고자 찾을 수도 없는 하얗고도 파란 연꽃과 적토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제 식사의 일부를 걸식자에게 주었고, 또 물고기들에게도 주었습니다. 이 선행의 과보를 모두 당신에게 드릴

터이니, 부디 하얗고도 파란 연꽃과 적토를 강 속에서 찾아 주세요.” 남자가 이렇게 크게 3번 외치자,

이 목소리를 듣고 나온 용신은 그의 바람을 이루어주었다.

 

파세나디 악행 일깨우기도

한편 파세나디왕은 혹시 그가 진짜 하얗고도 파란 연꽃과 적토를 구해오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다가, 그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궁궐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 남자는 궁궐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다 근처 승원에 가서 지쳐

드러누웠다. 그 시각 왕은 내일 아침이 밝으면 그 놈을 죽이고 여자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어디선가 음침한 울림을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두려워진 왕은 사제를 불러 의논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사제는 혹시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말을 들을까 염려하며,

“대왕이시여. 큰일입니다.

당신의 생명에 위험이 닥쳐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두려움에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그럼 어찌 해야 하느냐?”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코끼리 100마리, 말 100마리, 암소와 수소 100마리씩, 산양 100마리, 양 100마리, 닭 100마리, 남자아이 100명, 여자아이 100명, 이 모두를 모아 희생제를 하면 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이를 끌어 모으기 위해 온 도시를 휘젓고 다녔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대지를 진동시켰다.

이 모습을 보게 된 말리까(Mallikā) 왕비는 “지금껏 다른 생류를 죽이고, 그 대신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까?”라고 왕의 잘못된 판단을 일깨우며,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할 것을 권유했다.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파세나디왕에게 부처님은 왕이 새벽녘에 들은 소리는 죄를 짓고 죽어 아비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온갖 악행 반복하고, 가진 재산 단 한 번도 베푸는 일 없이, 거대한 부를 지녔다 해도 그 모두를 쾌락에 다 써 버리고

세상 떠났구나.

지옥의 괴로움 받으면서 6만년이 지났구나.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이 괴로움의 끝은 어디인가. 분명 끝은 없으리라.

징조조차 발견할 수 없구나. 그도 그럴 것이 이 괴로움은 과거에 범한 악행의 결과 발생한 몸의 과보이니 만약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선을 행하고 계를 지켜 몸을 닦으리라.”

 

이 게송을 들은 파세나디왕은 남의 처를 갖고자 욕심낸 자신의 행동, 그리고 자신의 악행을 덮기 위해 하마터면 수많은 생물의 목숨을 빼앗을 뻔 했던 어리석음을 크게 뉘우치며 후회했다.
그리고 부처님께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그 밤만큼 길게 느낀 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잠들지 못하는 자의 밤은 길고, 지친 자의 길은 멀기만 하구나.
범부의 윤회 또한 길고 길구나”라는 게송으로 답하셨다. 왕궁에 못 들어가고 헤매다 승원에서 머물고 있던 그 남자는

파세나디왕의 악행을 일깨워준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자신도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부처님을 통해 파세나디왕은 헛된 욕망의 무상함을 깨닫고, 나아가 한 나라의 왕이기에 더욱 더 철저히 갖추어야 할 윤리적 삶에 눈뜨게 된 것이었다. 또한 파세나디왕은 세간의 지도자로서 승가라는 출세간 세계의 지도자인 부처님을 훌륭한

지도자의 모델로 여겼다. 왕과 왕이 싸우고, 귀족과 귀족이 싸우며, 심지어 부모와 자식이, 형제가 싸우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서로에 대한 존경과 화합을 강조하고 또 실천하며 살아가는 승가가 있었다.

최대의 권력을 지닌 자신 앞에서조차, 귀족들은 말을 가로막고 나서며 큰소리치건만,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실 때는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결코 권력이나 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세나디왕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국의 왕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깨달음을 얻은 지혜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중히 실천하고자 했던

파세나디왕. 그리고 그런 왕의 정신적 지주로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셨던 부처님.

훗날, 아들 비두다바의 모반으로 비참한 노후를 보냈던 파세나디왕은 사랑하는 말리까 왕비마저 잃은 어느 날,

비탄에 빠져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부처님을 찾았다.

몸을 숙여 부처님의 발에 입을 맞추는 그에게 부처님이 연유를 묻자, “부처님도 여든이시고, 저도 여든이네요”라고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고 한다.

한때의 영화를 뒤로 하고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쓸쓸한 노후. 왕으로서의 권력도 빛나는 젊음도 주변의 넘쳐나던 사람들도 모두 덧없이 사라져간 지금 이 순간, ‘진리’라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자신에게 아낌없이 주었던 부처님에게 진심으로

귀의하며,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④ 웁파라반나(Uppalavaṇṇā)

 

애욕의 실체를 꿰뚫어 속박에서 벗어나다                  [2010년 06월 14일 15:10 월요일]

 

남편의 외도 비관해 집 떠나 방황     집착서 비롯됨 깨닫고 승가에 귀의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실 때의 일이다.

소문을 들고 설법을 듣고자 몰려드는 사람들 틈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금방

이라도 쓰러질 듯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한 여인이 있었다.

저주받은 자신의 운명을 비통해하며 정처 없이 떠돌던 그녀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간다는 말을 듣고 합류한 것이었다.

삶에 대한 미련 따위 이미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깨달은 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기구한 삶을 살며 고통 받아야 했는지….

그녀가 죽림정사에 도착했을 무렵, 부처님께서는 이미 설법을 시작하고 계셨다. 저 멀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앉아계신 부처님의 모습이 보였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성을 좇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부처님께서는 그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듯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셨다. 부처님 발 앞에 엎드린 그녀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

“부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도대체 제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토록 비참한 불행을 두 번이나 경험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측은한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가엾은 여인아, 인간은 이 세상에 고통 받기 위해 태어났느니, 사람이 고통

받는 이유는 마음에 집착이 있기 때문이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 아집(我執), 이것이야말로 인간 고통의

원인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그녀의 뇌리에 지난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이름은 웁파라반나.

연꽃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피부색을 지녔다 하여 웁파라반나(연꽃색)라 불렸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 미모의 유래가 과거세까지 거슬러 올라가 말해질 정도이다.

환생할 때마다 보랏빛이 도는 청련의 꽃잎 안쪽과 같은 피부색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원을 세운 결과, 이생에서 이렇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사왓티의 어느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태어난 웁파라반나는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혼기가 찼을 무렵, 서인도 아반티국의 웃제니라는 도시에 사는 한 청년을 보고 첫눈에 반해 그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아름답고 상냥하여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웁파라반나, 그리고 성실하고 늠름하여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한 남편.

이 둘은 서로에 대해 깊은 애정을 느끼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임신한 웁파라반나는 당시 인도의 관습대로 산달이 가까워지자 출산을 위해 친정을 찾았다.

어느 덧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을 꼭 빼어 닮은 건강하고 예쁜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마치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딸과 남편 공유한 기구한 운명

그러나 행복은 더 이상 그녀 곁에 머물러주지 않았다. 임신한 아내를 걱정하며 틈나는 대로 처가를 드나들던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 남자를 어머니와 함께 남편으로 삼게 된 더럽고 저주받은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웁파라반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어머니와 딸이 같은 사람을 공유하다니…. 이 저주받은 운명이여, 더러운 그 숙연(宿緣)이여.”

깊은 절망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지만, 자신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딸을 버릴 수는 없었다.

또한 피를 이어받은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이 알려졌을 때 돌아올 비난과 고통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웁파라반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감내하기로 했다.

그녀의 남편과 어머니는 그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관계를 지속했고, 웁파라반나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며 7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그리고 딸이 일곱 살이 되던 해, 결국 그녀는 자고 있는 딸에게 이별을 고하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정처 없이 떠돌던 그녀가 도착한 곳은 베나레스였다. 지칠 대로 지쳐 길가에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한 것은 베나레스의

유명한 상인이었다. 따뜻한 마음을 지녀 평소에도 약자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왔던 그는, 웁파라반나를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간호했고, 덕분에 그녀는 원기를 회복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상인은 웁파라반나에게 청혼을 했고,

결국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더 이상 그녀의 인생에 없을 것만 같던 행복이 다시 찾아왔다.

남편은 오로지 그녀만을 바라보며 정성을 다했고, 웁파라반나도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지워가며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문득 문득 웃제니에 두고 온 딸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또 다시 불행이 그녀를 찾아왔다.

웃제니로 여행을 갔던 남편이 그 곳에서 만난 젊은 여자를 데려와 두 번째 부인으로 삼은 것이었다.

돈 많은 상인이 두 번째 부인을 둔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 아이가 자신이 예전에 웃제니에 두고 온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다시 웁파라반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그녀가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도 기구한 운명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길로 그녀는 또 다시 집을 나섰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이렇게 지금 부처님 앞에 서게 된 것이었다.

“사람이 고통 받는 이유는 마음에 집착이 있기 때문이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 아집,

이것이야말로 인간 고통의 원인이니라.”

웁파라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자신의 남편을 어머니와 공유하고, 다시 얻은 남편을 이번에는 자신의 딸과 공유해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두 남편, 어머니, 딸의 집착과 애욕이 만들어낸 상황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애욕과 집착이라는 그물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속박한 채 두려움에 떨어 온 지난 삶을 돌아보며, 그녀는 허탈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갈애는 목마른 자가 물을 원하듯이 격렬하고 끝없으며 강하다. 갈애는 인간의 이성도 지식도 모두 태워버린다.

이 갈애를 없애지 않는 한, 마음의 평화는 얻을 수 없고, 진정한 행복 또한 찾아오지 않느니라.”

그 날 설법회가 끝난 후, 웁파라반나는 자신의 과거를 부처님께 털어 놓으며 출가를 청했다.

부처님은 따뜻하게 그녀를 받아주셨다. 그녀는 열심히 정진했고, 출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모든

번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
“쾌락의 기쁨은 모든 곳에서 파괴되고, 무명이라는 암흑 덩어리는 산산조각 났다. 악마여, 알아라. 너는 산산이 부서졌다.”

사왓티라 불리는 화려한 도시 근처의 한 숲속. 웁파라반나는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사라나무 밑에 앉아 고요히 명상을

즐기고 있었다. 수면 위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꽃봉오리를 틔운 한 송이 연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를 향한

남성들의 시선은 뜨거웠다. 그런 시선들을 뒤로 한 채, 한적한 숲속에서 그녀가 홀로 앉아 명상에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비구니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너의 아름다움을 탐해 달려들 악한들이 무섭지 않느냐. 어찌 이리 홀로 앉아 있느냐?”

그녀의 명상을 방해하고자 악마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같은 악한이 수 천 명이 달려든다 한들, 내가 두려워할 듯 싶으냐. 나는 이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이제 내게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것은 없다.”

 

비구니 가운데 신통제일로 불려

어쩌면 이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자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애욕의 눈길.

악마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된 그녀에게 있어, 이제 그 무엇도 두려움이나 공포를 일으키며 자신을 속박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 있었다. 애욕으로 뒤엉킨 기구한 삶을 살며 고통 받았던 그녀이기에, 오히려 애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녀는 부처님의 비구니 제자 가운데 신통제일로 불릴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깊어

동료수행자나 재가신자들 사이에서 공경 받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빛나는 피부 안에 숨겨진 지혜의 빛이

애욕으로 뒤덮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훌륭한 수행자로 거듭난 그녀였지만, 또 다시 견디기 힘든

시련이 닥쳤다. 웁파라반나를 연모하던 한 청년이 그녀의 암자에 숨어 있다가 탁발하고 돌아온 그녀를 겁탈한 것이었다.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겁탈은 당했으나, 이미 애욕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그녀에게는 아무런 욕망도 없었기에, 이 사실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다른 수행자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이 일을 들은 출가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번뇌를 제거한 아라한도 정욕에 대한 만족감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문이 일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번뇌를 제거하여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애욕에 빠지는 일도 없고 정욕에 만족하는 일도 없다’고 하시며, 그녀에게 무죄를 선언하셨다고 한다.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끝없이 애욕의 희생물이 되었던 웁파라반나. 순탄치 못한 어두운 인생을 살며  처절하게 고통 받은

그녀이지만,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삶은 새로운 빛깔로 되살아났다.

기구한 삶을 살았기에 오히려 인간 고통의 실체를 여실하게 직시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은 웁파라반나. 그녀에게 있어 삶은

곧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