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템플스테이와 부처님이야기

33관음성지를 찾아서 = 기림사, 불국사, 통도사

백련암 2010. 10. 17. 08:57

22] 경주 기림사

기림사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1000개의 눈으로 중생들의 고통을 보고 1000개의 손으로 중생을 구제한다.

 

 

관세음보살 품은 자비의 빛,

 

함월산 달빛으로 물들고…

 

불국사 석굴암이 자리하고 있는 토함산을 지나 동해바다로 향하다 보면 달을 머금은 뜻을 지닌 함월산(含月山)이 나온다. 남쪽으로 토함산과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 운제산과 같은 능선이 이어져 있다. 토함산에 불국사 운제산에 오어사처럼 천년고찰이 자리하고 있듯 이 곳 함월산도 그 유명한 기림사를 품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은 경주 남산 용장골에서 7년간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곳에 있던 사당이 1878년(고종 15) 기림사로 옮겨졌다.

 

 

기림사는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天竺國) 광유(光有)스님이 창건, 임정사(林井寺)라고 부르다가 원효스님이 확장, 중수하고

기림사로 개칭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머물던 가장 대표적인 승원 중 하나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고 한다.

 

태풍 곤파스의 수도권 상륙소식으로 어수선하던 지난 1일 오후 기림사를 찾았다. 태풍이 몰고 온 먹구름 탓인지 오후5시경 날씨는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발길을 서둘렀다. 일주문을 지나 경사로를 5분여 오르니 사천왕문이 나온다.

찾는 이들을 무섭게 내려다보는 사천왕들 모습에서 이제 어린시절 느꼈던 두려움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덧 든든한 호법신장으로 든든한 마음을 선사해준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한다. 사천왕문을 나서니 정면으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전각에 탄성이 절로 난다.

화려한 단청은 긴 세월에 녹아버려서 나무 고유의 색만이 남아 있다. 나무의 형태대로 약간 휘어진 기둥과 나무창이 고목에 아름다운 패턴을 더해주는 듯하다.

 

대적광전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958호 기림사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진남루 옆으로 돌아 서면 기림사의 본전인 대적광전과 약사전이 정면으로 왼편으로 응진전이 자리하고 있다. 전각으로 둘러싸인 마당 가운데 작은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전각들로 둘러싸여 있는 기림사 대적광전 앞마당에 서면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전각마다 모셔져 있는 불보살들에게 긴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정성껏 절을 하고 기도를 올렸으리라. 화려하게 장엄된 단청 대신 사람들의 극진한 마음이 각 당호와 불보살님을 은은하게 입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경내는 오후가 될수록 적요해져 간다. 대적광전으로 향한다. 연화장세계에 머물면서 대광명을 발하며 법계를 두루 밝히는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옆으로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 협시하고 있다.

 

대적광전은 보물 제833호로 소조삼존불은 보물 제958호, 삼존불에서 나온 진신사리와 복장유물은 보물 제959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적광전 왼편 계단을 오르면 삼천불전과 관음전 등 새로이 조성된 전각들이 있는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다.

성보박물관과 사육신 중 1명인 매월당 김시습 사당도 절 위쪽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관음전에는 수없이 많은 중생의 고통소리를

보고 들어야 하기에 1000개의 눈을, 숱한 중생들에 손을 내밀어 구제하기 위해 1000개의 손을 가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삼천불전 앞 향나무 옆에서 서서 기림사 뒤편에 달빛을 품는 함월산의 부드러운 산세를 살펴본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법당 안이 점점 밝아진다. 관세음보살에서 발하는 자비의 빛이 달빛처럼 함월산 자락에 고요하게 퍼져나간다.

 

 

23] 경주 불국사 

관음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무영탑                                                                                       연등꽃이핀 무영탑

 

불국사

신라 장인이 빚어낸 불국토를 가다

 

‘경주’라 하면 단연 불국사다. 연간 가장 많은 참배객들이 찾아가는 불국사. 수학여행의 추억이 깃들어 있고 신혼여행지로도 손색없다. 신라 천년수도 경주에 자리 잡고 있는 조계종 제11교구본사로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바로 불국사다.

 

석굴암 부처님

<삼국유사>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기리며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김대성이 이 불사를 미처 완공하지 못하고 죽자 국가 차원에서 30여 년만에 원만히 불사를 회향했다고 알려져 있다.

불국사는 부처님의 화엄장엄세계인 불국토를 현세의 사바세계에 화현시킨 열정적인 신앙의 완성체이다.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의 미와 완성도 높은 훌륭한 불교예술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평일에도 불국사 곳곳에는 많은 참배객들로 붐볐다. 특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곳저곳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저들끼리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오래전 학창시절이 절로 떠오른다.

부지런히 문화재 안내판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기록하는 ‘모범생’도 적지 않다.

 

일주문을 지나 오솔길을 걷다 보면 불국사를 상징하는 국보 23호 청운교와 백운교를 처음으로 만난다.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다리 아래 사바세계에서 다리 위로의 부처님의 세계를 이어주는 의미를 갖는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이들 다리는 예전에 연못 위에 조성돼 있었다. 연못 수면에 반사된 아름다운 다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대웅전으로 향한다.

 

불국사에서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물이 있다. 회랑이다. 회랑은 불국사 중심인 대웅전과 극락전, 무설전을 에워싸고 있다. 궂은 날씨에도 경내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귀중한 성보들을 보위하는 느낌이다. 회랑을 따라 대웅전 앞쪽으로 이동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웅장한 모습으로 참배객을 반긴다. 교과서와 관광안내책에서 흔하게 봤던 두 탑이지만 눈앞에서는 그 거대한 장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국보 20호 다보탑과 국보 21호 석가탑은 같은 높이(10.4m)다. 두 탑은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탑으로 구현한 모습이다.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불국사서 가장 높은 전각인 관음전으로 향한다. 황금돼지가 숨겨져 있는 무설전 뒤쪽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불국사의 웅장한 전각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관음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참배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관세음보살 미소가 무엇을 말하는지, 어린 학생들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면서 천진한 몸짓으로 합장을 올린다.

 

 

24] 양산 통도사 

 

 부처님 진신사리서 비롯된 法燈 천년 넘게 海東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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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자장율사가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통도사 금강계단.

 

일주문 옆에 놓인 아치형 돌다리 주변 계곡 풍경이 아름답다.

 

중노전에 위치한 관음전은 조선 영조 때 조성됐다.

 

낮엔 아직 덥지만 산사엔 조금씩 가을향기가 깃들어 있다. 지난 9월29일 불지종찰 영축총림 통도사를 찾았다. 평일인데도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관람객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절로 향하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관광객 대신 법복을 입은 보살님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각 당우는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통도사를 왜 국지대찰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통도사는 신라 때 창건됐다. 당나라에 건너가 수도를 하던 자장율사는 부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자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를 받들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사리를 모실 절을 창건하기로 결심한 스님은 문수보살께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물었다. “동국에 부처님을 모시도록 하라”는 답을 얻었다.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나, 신라의 어느 곳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스님은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 보냈다. 얼마 후 돌아온 오리의 입에는 한 송이 칡꽃이 물려져 있었다. 자장율사는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것이 부처님의 뜻임을 깨닫고 흰 눈이 쌓여 있는 한 겨울에 칡꽃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영축산 아래 연못에 칡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통도사를 세웠고 1000년 넘게 법등을 이어 오고 있다.

 

통도사는 크게 상.중.하노전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나서면 영산전과 극락보전 약사전 석탑이 있는 하노전 구역에 들어선다. 이 구역에는 아침저녁 예불의식에 사용되는 사물이 있는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하노전에서 불이문을 지나면 멀리 대웅전이 탑 뒤로 보이고 중노전의 일부인 관음전의 측면 모습이 보인다. 이곳 중노전에는 관음전 이외 대광명전과 용화전 봉발탑 등이 있다.

 

용화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관음전은 영조 원년(1725)에 초창되었다. 관음전에 봉안된 관세음보살님이 자비로운 표정으로 중생들을 살펴보고 있다. ‘한 떨기 홍련이 해동에 있으니 푸른 파도 속에 신통을 나투네. 엊저녁 보타산의 관자재보살이 오늘아침 도량 중에 강림하셨네.’ 관음전 주련에 있는 내용으로 소동파의 누이 소소매가 섬으로 유배됐을 때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해 섬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이다.

 

관음전 앞에는 관음전보다 오래된 커다란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관음전을 지나서면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는 상노전 구역이다. 국보 290호인 대웅전 안은 기도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다. 대웅전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향해 유리문이 나 있다.

 

대웅전 참배 후 통도사의 상징인 금강계단을 찾았다. 자장율사가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이곳에 봉안되어 있다. 금강계단 주변을 돌며 석가모니부처님의 명호한다.

 

다시 일주문을 빠져 나와 시탑전을 올랐다.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면 탑이 나오고 12개의 큰 법당과 80여 전각이 있는 거대한 통도사 전경과 영축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관세음보살의 따사로운 품처럼 푸근한 영축산에 국지대찰 통도사가 살포시 안겨 있는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