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템플스테이와 부처님이야기

33관음성지를 찾아서= 월정사, 밥흥사, 구룡사

백련암 2010. 11. 16. 00:55

28] 평창 월정사 

월정사 일주문

 

팔각 구층탑

 

신라의 보천태자의 유지에 따라 동대는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관음신앙의 중심도량으로 법맥을 이어 오고 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東臺에 올라 1만 관음보살을 친견하다.

 

636년 당나라에 간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가사와 발우, 불사리를 받았다. 신라 땅 오대산에 1만 문수보살이 상주한다고 들은 스님은 신라로 돌아와 홀로 오대산을 찾았다. 그곳에서 7일간 머물렀지만 문수보살을 만나지 못하고, 사리만 모셔놓고 하산했다. 그 때 스님이 머물렀던 곳이 지금의 오대산 월정사이다. 이후 유동보살의 화신이라 전해지는 신효거사가 이곳에 머물렀고 범일국사의 제자 신의스님과 유연스님이 크게 중창했다.
 
일주문을 지나 ‘천년의 숲길’이라 불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1km 남짓한 숲길엔 가을이 완연하게 물들어 있었다. 청량한 가을향기가 온몸을 깨운다.
 
천왕문을 지나 적광전으로 향한다.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석탑은 높이 15.2m로 우리나라 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크고 아름답다. 대표적인 고려시대 석탑으로 꼽힌다. 석탑 앞에는 공양을 올리는 모습으로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보살상이 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서 희견보살은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하여 8만4000기의 사리탑을 세웠고 탑 앞에서 자신의 두 팔을 태우며 7만2000세 동안 사리탑을 공양했다고 전한다.
 
이같은 내용을 형상화한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이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성보박물관은 ‘대한민국 명장 찻사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석조보살좌상과 산내암자인 육수암에 모셔져 있던 금동육수관음보살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53호)을 친견한 후 월정사를 빠져 나와 동대 관음암으로 향했다.
 
오대산(五臺山)의 오대는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적멸보궁이다. 각 대에는 진신이 언제나 머물러 있는데 그 중 동대에 관음보살이 상주하고 있다. 월정사를 지나 지장암 입구 건너편으로 동대 관음암 표시석과 함께 산길이 나타난다. 2km 정도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대 관음암에 닿는다.
 
 신라의 보천태자는 임종직전 이렇게 당부했다. “동대에는 마땅히 관음방을 두어 원상관음과 함께 푸른 바탕에 1만 관음상을 그려 봉안하며, 스님 다섯 분을 모시고 낮에는 금광명경과 인왕반야경, 천수주를 독송하게 하고 밤에는 관음예참을 염하게 하라. 그리고 그 결사의 이름을 원통사라 하라.”
 
<산내암자인 육수암에 모셔져 있던 금동육수관음보살좌상.> ▶
 
태자의 유지에 따라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대는 관음신앙의 중심도량으로 법맥을 이어 오고 있다. 1만 관음보살을 떠올리며 가파른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랐다. 관세음보살을 명호하다보니 어느새 관음암이다. 소리가 멎었지만 귓전에선 여전히 울린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월정사=김형주 기자

 

29] 영월 법흥사 

 

신라 자장율사가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한 법흥사 적멸보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작은 토굴과 사리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사자산에 깃든 관음보살 미소

“세상 시름 내려놓고 본래 마음 찾길…”

법흥사 가는 길. 웅장한 사자산과 눈 맞추며 청정한 법흥계곡을 따라 달린다. 구불구불한 좁은 길은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면서 더 깊숙이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주변 분위기는 몇 해 전 흥행했던 한국영화 ‘웰컴투 동막골’과 흡사하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아니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의 순수한 삶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 속 동막골이 바로 법흥사 주변이다. 법흥사에 다다를 무렵, ‘아…정말 전쟁이 터져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딴 세상이다.


법흥사 가는 길. 웅장한 사자산과 눈 맞추며 청정한 법흥계곡을 따라 달린다. 구불구불한 좁은 길은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면서 더 깊숙이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주변 분위기는 몇 해 전 흥행했던 한국영화 ‘웰컴투 동막골’과 흡사하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아니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의 순수한 삶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 속 동막골이 바로 법흥사 주변이다. 법흥사에 다다를 무렵, ‘아…정말 전쟁이 터져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딴 세상이다.

 

                            

                                                                            징효대사 보인 탑비 보물 제 612호.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남쪽 기슭.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 운제사에 모셔져 있는 문수보살의 석상 앞에서 7일간 정진기도 끝에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등을 전수받아 이곳 사자산에 불사리를 봉안하고 창건된 ‘적멸보궁’이다.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이름처럼 법흥사에 들어서면 청정한 기운이 도량 곳곳 스며있다. 법흥사 입구에서 보궁으로 이어지는 500m 소나무숲길은 절경이다.

             

                                                         <사진> 보궁으로 이어지는 소나무숲길은 절경이다.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양식의 목조건물이다. 기와의 입막새에 법(法)자가 씌어져 있고, ‘소화(昭和) 8년 11월 준공’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다. 이는 1934년 법흥사의 기와를 굽고 새로 지었다는 뜻이다.

적멸보궁 내부에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훈수(薰修)’라는 제목의 현판이 있다. ‘불기 이천구백육십육년 기묘 시월 일일’이라고

명기돼 있어, 1939년 중수됐음을 알 수 있다.

적멸보궁 뒤편에는 자장율사가 불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작은 토굴과 사리탑이 있다. 적멸보궁 안에서도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사리탑을 보고 참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보궁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고 법흥사 극락전에 들어서니, 웃음을 머금은 관세음보살이 반긴다. 세상 시름 전부 내려놓고 청정한 본래 마음 찾아가라는 자비로운 미소다.

법흥사 유적은 옛 흥녕선원(법흥사의 전신)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적멸보궁과 사리탑, 자장율사의 토굴뿐만 아니라 흥녕사 징효대사 보인탑(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흥녕선원지(강원도 지정기념물 6호)가 있다. 종이가 없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도 남아있다.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제242호로 지정된 까막딱다구리도 유명하다.

법흥사는 산세가 깊고 교통이 불편해서 자동차 없이는 찾아가기 어렵다는 말이 많다. 고민 끝에 법흥사는 차량서비스를 시도했다. 서울 조계사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잠실 롯데월드 등에서 한 달에 네 차례(음력 1일, 9일, 15일, 27일) 법흥사까지 운행하는 버스제를 실시한다. ‘웰컴투 법흥사’다.

 

30] 원주 구룡사 

 

 

보광루 아래 계단에 오르니 금당인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광루 누각층에서 바라본 구룡사 내경.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구룡사 ‘굽이 굽이 금송길’

 

대웅전 오른편 뒤편에 위치한 관음전.

 

신령스런 거북과 아홉 용 전설 어우러져

 

치악산 구룡사. 천년 묵은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아홉 바다 영험한 용이 구름을 풀어 놓는 형상이다.

서기668년(신라 문무왕8) 의상대사가 절터에 머물고 있던 아홉 마리의 용을 물리치고 창건했다. 창건설화는 아홉 마리 용과 관련 있지

만 지금은 ‘거북 구(龜)’자를 쓴 구룡사(龜龍寺)로 쓰고 있다. 그 이유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구룡사의 사세(寺勢)가 많이 기울어지면서 빚어졌다. 한 도승이 나타나서 ‘절의 운을 지켜주는 거북바위의 혈맥을 끊었기 때문’이라면서, 거북을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

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구룡사 매표소를 지나 구룡사까지 900m의 사찰 길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명품 소나무숲길’이다. 그것도 궁궐에서 사용하던 금강송들이 즐비하다. 치악산 주봉인 비로봉(1228m)까지 오르면 더욱 좋겠지만 구룡사까지 향하는 짧은 숲길에도 숲 향기가 풍겨 몸과 마음이

청량해진다. 맑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구룡사 일주문인 원통문이 나온다. 부도밭을 지나 숲길을 지나 오른다. 국사단을 지나니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에 띈다. 계절이 지나 잎을 모두 잃었지만 웅장함만은 여전하다.

경사지에 석축을 쌓아 조성된 가람이다 보니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한다.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 위로 보광루가 보인다.

보광루 아래 계단에 다시 오르니 금당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 천불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지은 격조 높은

목조 건축물이었지만 지난 2003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다행히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원통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마지막 불국토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보광루는 3면은 막혀있으나 누각층은 대웅전 마당 방면으로 개방되어 있다. 누각에 들어서면 창을 통해

아름답게 펼쳐지는 치악산을 마주할 수 있다.

대웅전 오른편 뒤쪽 언덕 위에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다. 관세음보살님께 참배하고 돌아서니 아침 햇살을 받은 산능선이 겹겹이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 빼곡하게 솟아 있는 나무들은 이제 거의 모든 나뭇잎을 버렸다. 월동준비를 마친 듯 했다.

버림으로써 새로운 잎과 꽃을 피울 수 있다. 비우지 못한 욕심을 내려놓으며 가만히 읊조린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