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템플스테이와 부처님이야기

33관음성지를 찾아서= 해인사, 직지사, 고운사

백련암 2010. 9. 10. 22:19

19] 합천 해인사

 

 

 

법보종찰 해인사 대적광전.

 

고고한 수행가풍 천년세월 면면히…

홍류동 계곡마다 “관세음보살…”

 큰비가 지나갔다. 처서를 닷새 앞둔 지난 18일 가야산을 관통한 물줄기가 홍류동 계곡으로 세차게 흘려 내렸다.

 ‘첩첩산을 호령하며 미친듯이 쏟아지는 물소리에(狂噴疊石吼重巒) 사람의 소리는 지척 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네(人語難分咫尺間)…’

 

고운 최치원(857~?)이 시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는 홍류동 계곡길 농산정 옆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시다.

이 시를 짓던 당시 우암도 지금처럼 큰비가 다녀간 후 홍류동 계곡을 찾았으리라.

홍류동 계곡 10리길을 따라 올라가면 해인총림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다.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는 마음이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말한다.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소나무의 청량한 향기는 해인삼매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찾는 이들의 마음을 맑게 깨끗하게 씻겨준다.

 

삼보종찰 중 하나인 해인사는 ‘법보종찰(法寶宗刹)’로 불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팔만대장경이 이 곳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해인도 = <사진>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 

 

팔만대장경으로 통칭되는 고려대장경은 세계기록유산에, 고려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에 각각 등재되면서

법보종찰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있다.

해인사는 사시사철 500여 명의 스님들이 정진하는 종합수행도량이다. 해인사에는 현재 20여 곳이 넘는 산내암자와 남서부 경남

일원의 130여 곳에 말사를 두고 있다. 또한 해인사 일원은 사적 및 명승 제5호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일주문을 지나 노거수들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길을 따라 오르면 천황문 역할을 하는 봉황문이 나온다. 봉황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구화루가 정면에 나오고 그 옆 계단을 다시 오르면 대적광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에 김영환 장군의 문화훈장추서 및 호국추모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김영환 장군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비행단 참모장으로 편대를 이끌고 가야산에 은신해있던 인민군 1개 대대를 섬멸하기 위해 나섰다가 이들의 주둔지인 해인사를 폭격

하라는 미군의 명령을 거부, 가야산 능선에 폭탄을 투하하고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보존한 인물이다.

                                       

장경각

 

대적광전 아래마당에 비로탑과 석등이 서 있고 양 옆으로 궁현당과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전각은 승가대학 스님들이 정진하

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적광전에는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부처님 바로

옆에 관세음보살님도 모셔져 있다. 대적광전 바로 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대장경을 봉안한 세계문화유산인 장경각이 있다.

장경각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 절대적인 요건인 적정습도와 자연통풍이 조절되도록 상당히 과학적으로 지어졌다고 알려졌다.  

 

                     <사진> 대적광전 뒤 장경각으로 오르는 계단길(사진 왼쪽). 대적광전에 봉안돼 있는 관세음보살(사진 오른쪽).

 

장경각에 오르면 가야산에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 해인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고고한 수행가풍이 천년세월 면면히 이어져온 청정수행도량인 해인사. 땅의 기운이 해동제일이며 깨달음의 산이란 뜻을 가진

가야산 700m고지에 위치한 해인사는 언제 가도 한국불교 상징도량이자 우리나라 대표적인 불교성지로 손색이 없다.  

 

20] 김천 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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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왼편에 자리한 관음전. 소나무 가지 사이로 관음전 현판이 살며시 보이고, 전각 중앙에 봉안된 관세음보살이 찾는 이를 맞는다.

 

아도화상 손끝서 탄생한 蓮華世界를 만나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한 이후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만한 길상지

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했다. 직지사(直指寺)의 창건설이다. 그렇듯 직지사는 1600년 한국불교 역사와 그 세월을 함께 해온 천년

고찰이다. 지난 8월18일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김천 직지사를 찾았다.

 

황악산 직지사를 향하는 길. 제철 맞은 탐스러운 김천 포도가 보란 듯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계곡 길을 따라 직지사 입구에 도착하

니 제일 먼저 거대한 일주문이 맞이 한다. ‘동국제일가람 황악산문(東國第一伽藍黃嶽山門)’이라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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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고목들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 황악산 직지사란 현판이 달린 일주문, 금강문, 대양문, 천왕문을

지나면 만세루가 나오고 만세루 아래 계단을 오르면 두 개의 삼층석탑과 대웅전의 모습이 보인다.

 

무더운 날씨에도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웅전을 둘러보면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들어가

셔도 됩니다.” 지나가던 스님이 미소를 띠며 친절한 안내를 해준다. 대웅전에 들어선 ‘초보불자’들은 어설프지만 눈치껏 다른 사람들

을 따라하며 정성껏 부처님께 절을 올린다.

 

직지사 대웅전은 신라시대의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으나 고려 이후 조선 초기, 적어도 정종대까지는 2층 5칸의 특수한 건물

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임진왜란때 소실됐으나 선조 35년(1602) 중창됐다.

현 건물은 이로부터 150여 년 후인 영조 11년(1735) 중건됐으며 2008년 보물 제1576호로 지정됐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삼불상을 장엄한 후불탱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약사불회도(藥師佛會圖)

아미타불회도(阿彌陀會圖) 등 3점은 보물 제670호이다.

 

또한 대웅전 안에는 아름다운 채색으로 장엄된 벽화들이 눈에 띈다. 용을 타고 있는 백의관음보살, 문수동자, 구름위의 선인들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 왼편에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관음전 현판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잠깐 계단을 오르니 전각 중앙에 자리한 관세음보살이 찾는 이를 맞는다.

 

인사를 올린 후 성보박물관으로 향한다. 1996년에 문을 연 직지성보박물관은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 북부지역인 김천, 상주, 구미,

문경, 예천 등지의 여러 절에 전해오는 불교문화재를 보관, 전시, 연구하는 불교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도리사 금동육각사리함(국보 제208호)을 비롯한 수많은 성보들이 전시되고 있다. 아름다운 성보를 감상하며 잠시 무더

위를 잊는다.

직지사에는 1200㎡(362평) 규모의 현대식 시설 만덕전이 있다. 만덕전에서는 행자교육원을 비롯 각종 산림법회가 봉행된다. 일제강

점기와 한국전쟁기를 거치면서 다소 침체된 모습을 보이던 직지사는 근래에 들어 대대적 중창불사를 거치면서 한국 불교의 중심도

량으로 내실을 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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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전경

 

산문을 나서는 길에 안내소에 있던 한 보살님이 신기한 것이 있다며 안내를 해준다. 새가 씨앗을 날랐는지 상수리나무 위에 백합과

의 맥문동이라는 꽃이 피어 있었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생명이다. 누군가의 작은 정성이 깃든 자비의 씨앗들이 뿌려져 처처에

관음보살 화신이 꽃으로 피어나니, 삼라만상 부처 아닌 것이 없음을 새삼 깨우친다.  

 

21] 의성 고운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ㆍ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는 고운사의 큰법당이며 1992년도에 완공된 50평 규모의 전각이다.  대중의 조석예불과 사시불공 등

모든 의식과 법회가 이루어지는 고운사 신앙의 중심지이다. 법당안에는 신중단과 조사진영을 모신조사단, 선망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영단이 있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ㆍ대세지 보살을 모시고 있는 법당은 현재의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유서깊은 전각이다.

극락전에 모셔진 불보살님

 

의상스님과 최치원의 만남이 빚어낸 仙境

남안동 IC를 빠져 나와 10여 ㎞를 달리면 고운사에 다다른다. 고운사 입구에는 연밭이 있다. 꽃잎을 다 잃은 연밥들이 연못위로 빠끔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연못 건너편엔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를 숲으로 조성한 ‘법계도인림’이 조성되어 있다. 의상스님이 광대무변한 화엄사상의

요지를 210자의 게송으로 압축한 것으로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한 일승(一乘)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이라는 뜻이며 <삼국유사>

에는 ‘법계도서인’ ‘화엄일승법계도’ ‘화엄법계도’ ‘일승법계도’ ‘법성도’ ‘해인도’ 등으로 기록되고 있다.

법계도 모양의 길에 나무를심고 숲을 조성한 ‘법계도인림’을 따라 54번 꺾인 곳을 들어가다 보면 중앙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지막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데 이는 사바세계 그대로가 부처님 세계임을

의미한다.

‘법계도인림’을 거쳐 산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1000년 넘게 내려온 숲길은 산뜻한 공기로 마음까지 청량하다. 파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소나무들 사이로 비쳐오는 햇살은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명승지에 있는 다른 절처럼 번잡하지 않아

고운사는 좋다. 고찰 가운데 드물게 관람료를 받지 않아 공연한 시비를 할 필요도 없다. 사찰 입구에는 식당과 가게가 하나도 없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사진> 고운사 일주문.

사찰의 입구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이다.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주문을 꼽으라면 고운사의 일주문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의 이름은 원래 높을 고(高)자를 붙인 고운사(高雲寺)였다.

신라 말 불교와 유교, 도교에 모두 통달한 최치원이 여지대사, 여사대사 등과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조성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어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었다. 의상스님과 최치원은 7~9세기 세계의 중심이었던 당나라

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최고 인텔리’였다. 따라서 고운사는 1000년 전 불교와 유학의 최고 권위자가 창건하고 주석했던 도량으

로 중요성이 남다르다.

                                                        <사진> 신라말 대표적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조성한 가운루.

 

의상스님이 창건한 고운사는 화엄사상(華嚴思想)과 함께 대유학자로 존경받는 최치원 사상의 정수를 간직한 도량이다.

의상스님과 최치원이 비록 200년의 시간차를 두고 고운사에 머물렀지만, 선지식과 학자의 만남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추앙받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켰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1km 거리의 천년송림체험로를 걸으면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주문으로 손꼽히는 작은 규모의 고운사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을 조성할 당시 원목을 그대로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일주문에서 합장 반배를 하고 경내로 들어선다.

일주문을 지나면 계곡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가운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운루의 본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였고 우화루의 본래 이름은 우화루(羽化樓)였다. 누각 아래로는 계류가 흐르고 뒤로는 산과

구름을 접하는 정토의 세계가 참배객을 기다린다. 번잡한 세속을 떠나 마음을 내려놓기에 적격이다. 죽어서 가야산의 신선이 되었다

는 최치원과 밀접한 인연을 간직한 고운사는 도교적 이미지로 가득한 절이다. 뒷산의 명칭도 뭉게구름을 뜻하는 등운산이고, 최치원

이 세웠다는 가허루나 우화루 역시 도교의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체들을 뜻한다. 그 만큼 이곳은 아름다운 선경에 가깝다.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나면 왼편으로 극락전이 보인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대세지 두 보살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현재의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유서깊은 전각이다.

법당에 들어서서 관세음보살을 명호해 본다.

종무소 건물을 지나서 대웅전이 나오고 뒤로 등운산((騰雲山) 봉우리가 원만하고 풍만하게 펼쳐져 있다.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대웅보전을 지나면 도선국사가 조성한 보물 제246호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는 약사전이 나온다.

균형 잡힌 몸매와 인자한 상호,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9세기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이다.

고운사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신다.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석불(보물 제246호)은 균형잡힌 몸매와 인자한 상호, 비교적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운사의 모든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 (여기 상호는 약사여래가 아닌 석조석가여래좌상 이라 합니다)

<사진> 보물 제246호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으며, 손상이 거의 없는 완전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머리, 얼굴, 신체, 옷주름, 대좌, 광배 등에서

8세기의 불상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9세기의 특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약사전 맞은편에 명부전이 자리하고 있는데 명부전은 사후에 인간이 심판받는 장소를 형상화한 곳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대왕과 그 권속들이 조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약 300년 전에 세워진 법당이다.

죽어서 저승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다시 종무소 쪽으로 가다보면 사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건물이 하나 있다. 최초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연수전’

으로 현재의 건물은 고종이 새로 지었다.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던 곳으로 절에선 볼 수 없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사진> 고운사 연수전.= 연수전으로 들어가는 문 만세문 (태극문양이 뚜렷하고...........)

 

올해가 마침 호랑이띠 해라서, 참배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호랑이 벽화’가 눈에 띄었다. 보는 사람의 눈을 따라서 호랑이 눈동자

가 따라오는 신기한 벽화다. 보수 당시 철거하지 않고, 본래 벽화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식당 벽면에 옮겨 놓았다.

 <사진> 고운사 호랑이 벽화.

 

고온 다습한 날씨로 번성한 하루살이들이 참배하는 내내 괴롭힌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계속 손으로 하루살이떼를 쫓으며 걷다보니 다시 일주문으로 나온다.

법계도를 나오는 것처럼 부처님 세계를 나와 다시 부처님 세계로 들어선다.

<사진>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 모양으로 조성한 숲길 ‘법계도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