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템플스테이와 부처님이야기

33관음성지를 찾아서 = 범어사. 신흥사, 낙산사

백련암 2010. 10. 28. 00:52

25] 부산 범어사 

 

금정산의 정기가 모여 있는 곳이라 누구나 간절히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진 관음전 안은 항상 기도객들로 붐빈다.

 

일주문 중 최초로 보물로 지정된 범어사 조계문은 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를 잘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년을 마르지 않은 금빛우물에 나툰

관세음보살, 중생의 서원 들어주시네

 

선찰대본산 부산 범어사(梵魚寺)를 찾았다. 금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범어사는 부산광역시라는 거대 도시 안에 있으면서도 산사의 깊은 내음을 간직하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8년(678)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는 화엄십찰 중 하나다. 범어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동국여지승람>에는 ‘금정산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물이 항상 가득 차 마르지 않는

금빛우물(金井)이 있다’고 전한다. 범어사라는 이름은 책에 나온 바, ‘범천에서 내려온 물고기가 그곳에서 놀았다’고 하여 범천의

범(梵)자와 물고기 어(魚)자를 합쳐 지었다고 한다.

대다수 사찰이 역경 속에서 자리를 지켜왔던 것처럼 범어사 역시 신라시대부터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위의를 잃지 않고 굳건히 법등을 이어 왔다. 구한말 범어사 주지였던 성월스님은 당대의 고승 경허스님을 조실로 추대하면서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이라 명했다. 이후 동산스님이 주석하면서 범어사 금어선원을 비롯 산중에 9개의 선원이 운영될 만큼 한국 근대불교의 선풍을 드날렸다.

범어사가 조계종 청정수행풍토의 근간이 된 연유다.

범어사는 천년고찰답게 귀한 성보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일주문 중 최초로 보물로 지정된 범어사 조계문(보물 제1461호)이다. 석조기둥과 짧은 목조기둥 4주를 세워 3칸으로 구성한 범어사 조계문은 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를 잘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을 지나면 깊은 숲속에 들어 선 느낌이 든다. 곧게 뻗은 전나무들이 길 주변에 솟아 있고 뒤로 대나무 또한 길을 감싸고 있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서 계단에 오르면 보제루와 마주한다. 법당을 마주보는 보제루 주변엔 여름불교학교 참석차 이곳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기왓장에 그린 천진한 그림들이 널려져 있다. 서툴고 어설픈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솔직담백한 서원들을 보노라면 순수한 동심에 빠져 웃음이 절로 난다.

보제루를 돌아서면 범어사의 중심으로 들어선다. 계단위로 대웅전이 보이고 마당엔 삼층석탑과 당간지주가, 왼편으로 금어선원

입구와 미륵전, 비로전이 자리하고 있다.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250호)은 신라 흥덕왕 때 조성된 것으로 아름다운 통일신라시대

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보수과정에서 사리장엄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일제강점기에 넣어 둔 유리병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1930년대 일제가 삼층석탑에 기단부를 증축하는 과정에서 1층 탑신에 있던 사리함과 불상 등을 빼돌린 뒤 대신 유리함을 넣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범어사는 최근 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한 불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웅전(보물 434호)으로 향한다. 대웅전 중심엔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보물 1526호)이 모셔져 있다. 삼존불은 석가모니불과 미륵불, 연등불로 과거 현재 미래 부처님이다. 대웅전 우측엔 자비로운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관음전이 위치하고 있다. 관음전 안엔 기도객들로 가득 찼다. 금정산의 정기가 모여 있는 곳이라 누구나 간절히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내려가는 길에 노보살님 한 분을 차에 태웠다. 매일 관음전에 온다는 그 보살님은 “작년에 손자가 좋은 대학에 갔는데 올해는 손녀딸이 시험을 본다”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기도처를 찾는다고 했다. ‘보살님의 정성이 관세음보살님에게 전해지리라’ 운전하는 내내 그렇게 기도했다.

 

26] 속초 신흥사 

 

 

통일대불 모습. 뒤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한국의 3대 명산, 설악산(1708m).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버금간다. 사계절 눈이 쌓여 신성하고 숭고하다. 설악산이라고 설경만 아름다우랴. 눈 내리는 겨울 전 설악산은 오색찬란한 단풍으로 입산객을 사로잡는다.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 맑은 계곡과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는 삼라만상의 온갖 생명에 환희감을 선사한다.

 

설악산은 이처럼 수려한 산세 속에서 생사를 걸고 치열하게 정진해온 수행자들의 서릿발 같은 선풍이 곳곳에 스며있다. 이곳에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 바로 신흥사다. 지난 10월25일 조계종 제3교구본사 신흥사를 찾았다. 단풍이 절정에 달한 신흥사 일대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단풍나들이를 나온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신흥사 입구 3km 무렵부터 차량이 막혀 한참동안 차가 멎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걷기를 선택했다. 차에 내려 땅을 밟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과 울긋불긋 물든 가을 산을 바라보며 신흥사를 향해 걸어가는 길, 사람들 표정이 점점 환해진다.

 

설악산 입구에 다다를 무렵 길가에 삼층석탑이 서 있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보물 제433호 향성사지 삼층석탑이다. 신라 자장 율사가 창건한 향성사(香城寺)가 지금의 신흥사이다. 창건 무렵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698년(효소왕7) 화재로 가람이 전소한 후 현재의 내원암 자리에 신정사를 세웠고 이 후 1644년에 지금의 자리에 신인(神人)이 길지를 점지해 주었다고 한다. 사찰이 흥(興)하게 되었다는 의미의 신흥사가 중창됐다.

 

설악산 공원에서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면 1987년부터 10년에 걸쳐 조성된 14.6m 높이의 청동통일대불이 아름다운 설악산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바라면서 조성된 통일대불 뒷편엔 내원법당이 있다. 통일대불 안쪽에 위치한 이 법당에는 일체 중생을 보살피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통일대불을 지나 신흥사 본전으로 향한다. 세심교를 지나면 돌담사이로 경내를 잇는 사천왕문이 보인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거대한 누각이 나타난다. 법고와 목어가 보존돼 있고 특히 네 벽에 시판(詩板)과 추사의 친필이 있어 유명한 보제루다. 보제루를 지나 계단에 오르면 신흥사의 본전 극락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방정토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아미타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는 극락보전은 1647년(인조25) 건립돼 대웅전이라 이름 붙였다 후에 극락보전으로 바뀌었다. 1977년 일부 보수했지만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돼 있다. 극락보전을 참배하고 나오니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눈이 부시다. 차가운 바람이 잠시 멈췄다.

가을 단풍이 불타는 설악산엔 관세음보살의 따사로운 자비햇살이 환희롭게 빛나고 있다. 
 

27] 양양 낙산사

 

▲자비로운 표정으로 사바세계를 바라보고 선 해수관음보살상.

 

 

낙산사 전경일부와 석양의 해수관음보살

 

▲ 의상대

 

▲홍련암 앞 바닷가  

 

▲낙산사 홍련암

2005년 낙산사가 자리한 오봉산을 뒤덮은 거대한 화마도 홍련암을 덮진 못했다.

 

낙산사의 중심법당인 원통보전과 칠층석탑.  

 

중심법당인 원통보전관세음보살과 칠층석탑.

 

 

홍예문 = 무지개 모양의 석문(石門)


화마도 비켜간 홍련암에 서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느끼다.

 

차가운 바람이 동해에 분다. 암벽에 부딪힌 높은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져 간다. 바닷가 기암괴석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낙산사 홍련암은 이런 날 더욱 매력적이다. 지난 2005년 식목일에 일어난 화재로 낙산사는 거의 전소됐었다. 하지만 거대한 화마도 홍련암에 다다르진 못했다.

중국 당나라서 화엄교학을 공부한 의상스님은 670년(문무왕10) 신라로 돌아왔다. 조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해변 굴속에서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다. 그리고 671년 그 자리에 낙산사를 창건하게 된다. 지난 2일 양양 낙산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지나면 홍예문이 나온다. 홍예문에는 직사각형을 띤 26개의 화강석이 사용됐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강원도 26개 고을서 석재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쌓았다고 전해진다.

홍예문을 지나 길을 따라 왼편으로 오르면 낙산사의 본전인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사천왕문은 아직 보수작업중이다.

사천왕문 옆으로 올라서니 고증을 걸쳐 새롭게 복원된 빈일루(賓日樓)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그림에도 명확하게 나오는 이 전각은 기록에 의하면 1888년 선학(仙鶴)스님이 중건하고 그 이후 어떤 연유로 없어졌던 모양이다.

1912년 해성(海星)스님이 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가 지난해 복원불사 회향식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빈일루를 지나 응향각을 지나니 원통보전 앞 석탑이 문 사이로 보인다. 불타는 잿더미 사이로 위태롭게 서 있던 옛 모습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원통보전 앞 7층석탑이 굳건하게 서 있다. 낙산사의 중심법당인 원통보전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난 2007년에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원통보전에 기도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범종각 옆으로 난 작은 문을 나서면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나온다. 해수관세음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길이다. 가는 중 나지막이 관세음보살을 불러본다.

자애로운 표정의 관세음보살은 사바세계를 넉넉하게 품어주듯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1977년 점안한 해수관음상은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북 익산에서 약 700여 톤을 운반해 조성했고 높이가 16m나 된다. 해수관음상 앞에 섰다. 멀리 설악산이 보이고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래로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일출로 유명한 의상대도 보인다.

홍련암으로 향한다. 2005년 화재가 났을 때 카메라를 들쳐매고 헐레벌떡 낙산사로 내려왔었다. 낙산사가 자리한 오봉산의 거의 모든 나무들이 거대한 불폭풍을 맞아 새까만 재가 되어 있었다. 바로 홍련암 바로 위 나무까지도 불타 사라졌지만 굳건히 서 있는 홍련암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신기해 했었다.

1300여년 전 의상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했을 때도 동해의 푸른 바다가 이러했으리라. 초겨울 청명한 하늘과 청정동해가 맞닿아 바다 한복판에 관세음보살이 화현할 것 같았다.

양양=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